먼데이 모닝스
산제이 굽타 지음, 최필원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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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호출 문자가 온다. ‘311. 6’ 이 문자가 호출기로 올 때 의사들은 긴장한다. 뭔가 사고가 생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문자의 의미는 월요일 새벽 6시 311호에서 모임이 있다는 통지다. 병원은 태생적으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고, 의사들은 그 사고 속에서 배우고 익히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사고를 낸 당사자는 이 호출문자가 좋을 리가 없다. 실수나 사고에 대해 다른 의사들의 질타와 비난을 견뎌야 하고, 자신도 언젠가 이 자리에 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고나 실수는 병원의 절차나 시스템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소설은 한 명의 의사가 주인공이 아니다. 많은 의사들이 등장한다. 그들 모두가 실수를 한두 번씩 한다. 어떤 의사는 검사 하나를 놓쳐 죽음에 이르게 하고, 어떤 의사는 죽은 것으로 잘못 판단하여 장기 각출을 할 뻔한다. 또 누군가는 레지던트에게 믿고 맡겼다가 요리사의 후각를 마비시킨다. 누구보다 베테랑인 의사가 쉬운 수술을 실수해 환자를 식물인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실수들은 그 자신들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순간의 만용이, 아니면 믿음이, 아니면 편견이 실수를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여러 명의 의사들의 개성을 살리면서 빠르게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첫 시작은 응급실이지만 마지막은 외과수술실이다. 응급실에 한 번이라도 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이 얼마나 정신없고 무력한지. 이 무력함은 바쁜 일정에 제대로 쉬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다가 생긴 일일수도 있지만 경험 부족도 한 몫 한다. 현대 의학이 발전함에 따라 의사들의 전문 분야는 더 세분화되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점점 더 작아진다.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지만 인간에 대해, 병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이전보다 더 작다. 물론 이런 의사가 있기에 환자들의 고통이나 상처 등이 줄어들고 사라진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작가는 이 한계와 실수를 중심으로 의사들의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매력적인 인물들이 참 많이 나온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조지, 탁월한 외과수술 실력일 지닌 타이, 매력적인 외모에 한 명의 좋은 의사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티나, 무엇보다 일을 우선하면서 의사의 길을 강조하는 시드니, 부족한 영어 실력과 조직에 잘 동화되지 못하지만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한국인 성 박, 그리고 이 외과 의사들을 모두 총괄하는 하딩 등. 이들 모두가 한 명의 의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실수나 사고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뛰어난 의사지만 가정이나 연애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쉽게 생긴다. 그곳이 바로 병원이다. 이 병원의 이름은 첼시 제너럴이다.

 

“죽음과 합병증은 의사들의 숙적이다. 그리고 가끔 그것이 운명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나쁜 일은 선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의사들에게도 찾아들 수 있었다. 가끔은.” 이 문장은 타이가 실수했을 때 나온 것이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늘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의사도 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의사도 있다.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될 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자살보다는 당연하다는 듯이 지나가는 의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하나의 조건을 붙이자면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한 명의 의사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의학의 현실을 표현하는 문장이 있다. “의술은 세 걸음 발전할 때마다 꼭 두 걸음씩 퇴보했다. 의학 지식의 한계는 엄청나게 방대했지만 그에 비해 의사들이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은 굉장히 미비한 수준이었다. 의사도 가끔은 그냥 물러서서 몸의 자연 치유 능력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때가 있었다.” 이 문장은 이전까지 읽은 몇 권의 의학 서적에서 혹은 다큐에서 본 것이다. 하지만 전적으로 이 말을 신봉하는 것은 미개한 짓이다. 현대 의학의 엄청난 발전 중 하나가 외과 수술이고, 이로 인한 혜택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먼데이 모닝에 일어난 논쟁 중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수술 현장에 의료기기 영업사원들이 들어와서 수술을 도와주는 것이다. 찬성하는 의사들은 이들이 이 기계를 더 잘 알고 더 잘 다룰 수 있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 논쟁을 보면서 의사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의사의 정신이 사라지고, 기능인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이다. 표결의 결과는 그들이 계속해서 수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표결의 뒤에 숨겨진 경제와 정치 논리는 우리로 하여금 의사를 점점 더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멋진 의사들이 있어 우린 그들을 믿고 병원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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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증후군
제스 로덴버그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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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부서져 죽은 소녀 이야기다. 남자 친구가 한 말 때문에 심장이 말 그대로 부셔졌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란 말이다. 그녀의 죽음이 이해되지 않은 유명한 심장외과의사인 그녀의 아버지는 해부까지 했다. 정말 심장이 부서져 있었다. 이 말도 되지 않는 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한 소녀의 죽음과 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풀어낸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다. 이것은 또한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하다. 실제 이 다섯 단계는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레르로스가 제사한 도식이다.

 

작가는 이 다섯 단계를 통해 사랑을 잃은 슬픔 때문에 죽은 소녀 브리의 성장을 보여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부정하게 되는 그녀가 현실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사건 때문에 분노한다. 그 바탕에는 오해가 있다. 이 분노가 소녀의 마음을 집어삼켜버린다.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후회가 밀려오고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 때문에 우울해진다. 이 과정을 극복한 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과정이다. 어떻게 보면 이 도식에 이야기를 집어넣은 듯하다. 가끔 미국 영화에서 본 사후의 주인공들 모습과 겹쳐진다. 마지막 해피엔딩은 당연한 결말이다. 솔직히 이런 과정이 너무 빤해 긴장감과 흥미를 떨어트린다.

 

흔한 구성과 빤한 전개지만 몇 가지 설정과 영화를 보는 듯한 이미지들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 첫 번째는 패트릭이다. 사후 세계에서 브리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그의 정체는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80년대 영화 <탑건>의 톰 크루즈 복장을 한 그에게 은연중에 끌리는 브리의 모습은 둘만의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흔들리는 가족과 아빠의 외도, 가장 친했던 친구들의 모습과 오해는 가장 순수한 분노를 터트리게 한다. 여기에 살짝 끼어든 악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이때 작가는 제이컵의 숨겨진 진실을 끄집어내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설정이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영혼이 현실 세계를 간섭하기 위해 보여주는 몇 가지 설정은 이미 영화 등에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마치 영화보는 것처럼 머릿속에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이다. 작가의 문장과 표현은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건을 만들지도 않고, 복잡한 사후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도 적지 않은 페이지를 빠르게 끌고 나간다. 십대 소녀의 감정 기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사춘기 소녀의 속내를 살짝 드러내면서 새로운 로맨스의 분위기를 풍겼다. 가장 나쁜 빤함인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같은 설정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두 개라는 설정은 쉽게 알 수 있는 미스터리지만 재미있었다.

 

십대를 지나온 지 오래되었고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한 나에게 이 소녀의 과장된 사랑이 그렇게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이 과장된 설정이 심하다고 느껴지지만 어쩌면 가장 순수한 감정의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세파에 찌들고 순수함을 잃어버린 나에게 현실이란 높은 벽이 이 과장된 감정을 받아들일 공간을 조금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그때는 심장이 부셔지는 듯한 아픔과 고통을 느꼈다. 만약 소설처럼 상심증후군이 생겨 심장이 부셔지는 일이 일어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도 사랑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심증후군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랑이 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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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동남아 - 모험이 필요할 때
서진 지음 / 미디어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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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가 서진의 첫 배낭여행을 다룬 책이다. 문단에 여행중독자로 소문이 났다고 하는데 서른아홉에 처음 배낭여행을 갔다고 한다. 그 장소는 동남아고, 기간은 30일이다. 떠나게 된 이유도 간단하다. 에어아시아 프로모션 금액이 너무 저렴했기 때문이다. 가끔 프로모션이 나오면 누가 가나? 궁금했는데 그 사람 중 한 명이 서진 부부였다. 이들이 30일 동안 돌아다닌 곳 중 내가 실제 가본 곳은 몇 곳 없다. 이들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지금 갈 수 있을까 살짝 고민이 되지만 가슴 한 곳에서 배낭여행의 욕구가 꿈틀거린다.

 

여행은 언제나 계획을 짤 때 가장 설렌다. 어디를 갈까? 뭘 먹을까? 어디서 어떻게 움직일까? 등등. 이 부부는 그 시작과 끝을 쿠알라룸푸르로 잡았다. 이유는 저렴한 에어아시아 일정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거의 관문의 역할만 한다. 30일 동안 적지 않은 곳을 돌아다녔다. 방콕, 수린 섬, 끄라비, 뜨랑, 끄라단 섬, 핫야이, 페낭, 믈라카, 싱가포르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 지명 중 가본 곳은 겨우 두 곳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긴 시간을 뺄 수 없다 보니 여행을 하면 많아야 두세 도시를 돌아다닌다. 개인적으로 관광객처럼 여기 찍고 저기 찍고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여행 일정을 보면 살짝 질리기도 하지만 부러운 마음도 생긴다. 한 곳에 며칠 머무는 것이 단순히 그곳을 잘 알기 위해서라기보다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서진 부부만 여행을 간 것이 아니다. 중학생 조카 세미도 같이 갔다. 물론 조카는 중간에 귀국했다. 프롤로그에서 이 부부가 2년 연속으로 하와이에서 한 달씩 머물렀다는 글을 읽고 상당히 부러웠다. 일에 매인 사람은 불가능한 현실이기에. 쿠알라룸푸르에서 방콕을 경유해서 그들이 간 첫 목적지는 수린 섬이다. 건기 때만 섬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곳은 텐트 생활만 가능하다고 한다. 며칠 동안 머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멍 때리거나 스노클링을 하거나 쉬는 것이 전부다. 텔레비전도 전기도 없다. 식당에서 충전이 가능하지만 풍족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국립공원인 이곳에서는 정말 쉬는 것이 가능하다. 태국에서 흔히 보는 술판이나 맛사지샵도 없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오고, 장기 체류하는 유럽 젊은이들이 있다. 체류하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데도. 예전에 빠이에서 잠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조금은 이 기분을 알겠다.

 

이 부부의 여행 주제는 섬이다. 앞에서 말한 곳 중 몇 곳이 섬이다.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걷고 하면서 각 도시와 섬을 오고 갔는데 읽으면서 조사를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주로 게스트하우스를 돌면서 자고, 로컬식당에서 현지 음식을 먹었는데 반가운 음식이 많이 나왔다. 기본적으로 여행기는 일자별로 나오는 일기다. 매일 기록을 책으로 내었다. 이 일기가 단순한 정보만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을 하나씩 풀어낼 때는 가슴 한 곳을 살짝 건드리는 매력이 있다. 또 하나, 이 부부의 친화력은 정말 좋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배낭여행을 즐거움을 만끽한다. 물론 힘들게 고생한 것도 있다.

 

처음 방콕의 사진을 보고 정말 촌스럽게 찍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본 방콕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나오는 수많은 사진들이 약한 푸른빛이 조금씩 들어있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색 보정에 문제가 있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사진은 어떤 블로그의 여행기에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있다. 아마 비슷한 풍경과 비슷한 장소에서 찍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 여행을 간다면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보의 배열이나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듣고 싶다면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끄라단 섬의 그 쓰레기에도 며칠을 머문 것을 보면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싶어진다. 갈지 말지 고민이 된다. 이런 경계를 이 책은 잘 보여준다.

 

여행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두 가지다. 교통과 숙소. 이 부부처럼 우리 부부도 다양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숙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긴 시간을 여행한다면 이들처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통 여행이 일주일 이하의 일정이다 보니 캐리어를 끌고 다니지(혼자 갔을 때는 배낭 하나였다) 길어지면 캐리어가 짐이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태국을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섬은 거의 가보지 못했다. 태국에서 쿠알라룸푸르를 가는 방법으로 버스나 기차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늘 비행기 노선만 알아보았는데 다음에 여행을 조금 길게 간다면 버스나 기차도 한 번 검토해봐야겠다. 가보고 싶은 곳이 또 늘어났다. 올 겨울에 가까운 곳이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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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7
안치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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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 이름이다. 이력을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섬, 그리고 좀비>에서 <도도 사피엔스>를 썼었다. 그때 쓴 평을 읽어 보니 영화 이미지가 가득하고 분량이 아쉬웠다는 글이 있다. 이것은 이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금은 현실적인 사건 전개로 빠르게 이야기를 펼치지만 한 편이 아닌 두 편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재림>만 가지고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깊이 있는 장편을 만들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속도가 빨라지면서 간결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것은 다음 이야기인 <만남, 그리고 시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좋은 소재를 완전히 활용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하나의 장편을 생각하고 읽었는데 두 편이었다. <재림>이 현재를 다룬다면 <만남, 그리고 시작>은 이 소설 속 탐정팀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고 팀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과거를 다룬다. 이 순서대로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시리즈로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가장 이성적이고 탐정 능력이 뛰어난 180센티의 여자 권민과 인간 심리 분석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풍부한 지식을 가진 승주와 변호사를 하면서 어릴 때 꿈꾸었던 탐정이 되고 싶었던 독고잉걸 등이 그들이다.

 

승주와 독고잉걸이 만담가처럼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권민은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연락책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인물이 독고잉걸이라면 사건을 해결하는데 중심에 선 인물은 단연 권민이다. 그의 과거가 잠시 나오는 이들의 만남을 다룬 <만남, 그리고 시작>은 권민의 능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편이다. 그는 무술가이자 뛰어난 프로그래머다.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사건에 교활하게 다가간다. 이 교활함이 그의 가장 큰 무기다. 뛰어난 분석과 추리로 만들어진 통찰력은 가장 큰 자산이다. 이것을 아주 잘 활용해서 사건을 해결하는데 그 앞에 중요한 것은 효율과 효과다. 이것이 너무 간결하고 빠르게 진행되어 앞에서 말한 소재 활용의 아쉬움이 생긴다.

 

<재림>은 제목에서 풍기는 것처럼 기독교의 광신을 다룬다.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한국 기독교의 문제와 생활 속 기독교를 엮으면서 풀어내었다. 신이 아닌 교회와 목사를 더 신뢰하는 모순된 한국 교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그 광신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시작은 화가 박진우의 실종이다. 경찰은 그의 실종을 가출로 생각한다. 그를 아는 사람, 특히 담당 큐레이터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경찰이 움직이지 않자 사립탐정을 찾는다. 그들이 바로 독고잉걸의 팀이다. 이 팀의 일처리 방식은 한마디로 일사천리다. 조금의 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특성을 살려 현장을 잘 파악하고 분석한다.

 

탐정이 현실에서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 탐정을 하려면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흥신소나 신부름센터 같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조사원이다. 작가는 민간조사원으로 이들의 역할을 조정하지만 실제 하는 일은 탐정이다. 공권력인 경찰이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작가는 간단하게 풀어내었다. 갈등을 생략하고 이들의 능력과 배경을 앞세워 너무 쉽게 현장 속에 들어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단서를 찾아내고 경찰의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모습은 현실을 너무 쉽게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 기존 스릴러 소설 속 엄청난 범죄자들보다 실제 범인들은 단순하다는 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너무 쉽다. 속도감 속에 인간의 고뇌가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승주와 장태경의 신앙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다. 개인적으로 승주의 편에 있지만 이성 대신 광신과 집착으로 자신을 무장한 태경의 말들이 눈길을 끌었다. 몇 가지 나의 의문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광신에서 비롯한 광기는 어느 시대나 있어 왔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살인자에 대한 설명에서 한 가지 생략된 것이 있다. 바로 왜 어떤 이유로 연쇄살인범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생략되어 있다. 냉철하고 높은 지성을 이용한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마지막 장면은 더 많은 분량으로 채워졌어야 할 부분이 생략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종교와 연쇄살인범을 다룬 멋진 장편이 한 편 탄생할 수도 있었던 기회인데 말이다.

 

<만남, 그리고 시작>은 무대가 영국이다. 이 팀이 결성되기 전 이야기다. 탐정이 되고 싶었던 독고잉걸이 승주와 함께 처음으로 의뢰받은 사건이다. 런던에서 갑자기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부모의 요청이다. 외국인 여자의 실종을 영국 경찰이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조사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독고 일행이 왔을 때 그들이 보여준 반응도 그렇다. 분노가 조금 쌓인다. 하지만 분노가 폭발한 것은 대사관의 대응이다. 해외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늘 대사관은 한국인의 편이 아니다. 자신들의 입장과 편의만 생각한다. 이것을 작가는 약간 노골적으로 인용했다.

 

낯선 곳에서 그 어떤 경험도 지원도 없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단서 하나 찾은 것을 빼면 말이다. 이때 독고영걸의 친구가 한 명을 추천한다. 바로 권민이다. 권민의 조사와 추적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그리고 너무 쉽다. 현실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긴장감이 조금 떨어진다. 물론 그녀가 이렇게 빨리 사건을 해결하는데 단서를 제공한 것은 독고영걸과 승주의 가택침입과 현장 조사 및 분석 능력 덕분이다. 실제 몸으로 해결하는 것은 권민이지만 독고 일행이 알게 모르게 지원한 것이다. 이때 이 팀이 멋진 시리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조금만 더 덧붙이는 능력을 발휘한다면 멋진 걸작이 탄생할 지도 모르겠다. 한 번 기대해본다.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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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지른 책들!!

올해는 생각보다 적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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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여름
아카이 미히로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4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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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섀도우 헌터스 3 : 유리의 도시
카산드라 클레어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3년 8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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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이에몬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1월
12,800원 → 11,520원(10%할인) / 마일리지 6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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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3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10월 30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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