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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과학철학을 생각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끌고 와 종교나 철학 등과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바로 ‘과학, 철학을 만나다’란 제목 때문이다. 과학철학이 분명 과학과 철학이 만난 것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철학 입문서란 광고와 서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늘 어렵게 생각했던 과학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잔뜩 안고 책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 세 파트와 열두 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첫 파트가 과학지식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면 두 번째 파트는 그곳에 실천적 감각을 더했고, 마지막 파트에서는 풍성한 창조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여정이 뒤로 가면서 조금 더 과학적 내용으로 발전하면서 나의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학창시절에도 과학에 대한 점수가 형편없었고, 이 수업을 지겨워했던 과거가 다시 되풀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과거를 좀 씻어내고,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의도에서 읽은 책인데 말이다. 초반의 재미는 과학 실험과 설명과 해설로 이어지는 순간 조금씩 증발했다.
저자는 포퍼와 쿤으로 대변되는 두 과학철학 거두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쿤이 패러다임을 강조했다면 포퍼는 반증주의 이론을 세웠다. 이 둘이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데 저자는 이 둘의 포용하고 융합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로 다원주의가 등장했고, 마지막 파트에 이것을 넣으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실제 과학계에서 한 시대를 대표했던 과학 이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다시 융합되는지 보여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절대성이나 독재를 경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뉴튼의 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이 각각 다른 분야에서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보고 조금 더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가졌다.
포퍼가 ‘과학적 태도란 곧 비판적 태도’라고 하면서 ‘종교나 정신분석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 등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대해서 비판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할 뿐, 발전과 향상이 없’다고 했을 때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의 시초를 고대 그리스의 철학 전통에서 본 포퍼와 이것을 과학이 제대로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로 본 쿤의 의견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과학의 시초에 대한 책이 어떤 의견에서 비롯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무비판적으로 단순히 받아들였던 그 분류가 현대 과학철학의 두 흐름 중 하나를 대표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과학혁명의 논란이나, 과학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과학이 정말 진보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질 때 과학 교육으로 인해 굳어져 있던 과학 상식들이 하나씩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번째 파트에서 산소와 물이 H2O란 것을 어떻게 아는가와 물은 항상 100도에서 끊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이것을 하나씩 실험하면서 설명할 때 주입식 교육에 의한 과학 상식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닌 수많은 물음표를 남기기 시작했다. 저자가 “과학방법론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과학의 결과만 믿는 것은 맹신에 불과하고, 믿지 않는다면 근거 없는 비이성적인 거부”라고 말하고, 이런 과학의 본질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과학정책을 세울 때 큰 문제일 것이라고 지적할 때 우리의 과학교육이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걱정과 불안이 생겼다.
어려운 화학식이나 실험방법들은 잘 모른다고 해도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과정과 어떤 사고방식으로 그 결과를 얻어’내는지 안다면 주입식 과학 상식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과학이 어렵고 재미없었던 이유가 어쩌면 바로 이런 주입식 상식의 암기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긴다. 마지막 파트에서 다원주의적 과학을 주장하기 위한 저자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인식의 지평을 조금 더 넓힐 수 있었다. 물론 현재까지는 이 책 속의 수많은 지식이나 정보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더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