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적 정치 -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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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을 이용한 제목이지만 서민 정치와 잘 어울린다. 많은 정치인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공약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 부제로 좌우파를 넘어서 서민파라고 했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을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그의 글을 다 읽은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좌우파를 넘지 않았지만 서민파라는 부분에는 일부 동조한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새로운 정보도 꽤 있었지만 다른 책이나 팟캐스트 등을 통해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렇게 낯설지도 않았다.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고 정리하기 좋은 정도랄까.

 

목차를 보면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다. 혐오라는 단어다. 4부로 구성된 제목에서 두 부분에서 혐오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 이 단어가 바로 현재 한국 정치의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혐오, 지역 혐오, 여성 혐오 등등. 정치 혐오와 지역 혐오는 사실 같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 혐오가 각 지역의 정당의 기득권을 보장해주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감정을 해소해야 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이것을 이용해 각 정당이 이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영남만 그런 것이 아니다. 최근에 얼마나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호남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경남이다.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부모님들은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나이 드신 분만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남동생도 그렇다.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잘 산 줄 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전쟁이 일어나고 빨갱이 나라가 되는 줄 안다. 종편인 조선 TV는 늘 틀어져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외롭고 제한된 정보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늘 불편하고 짜증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성보다 감성과 감정에 더 기댄 논리는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잠시 돌아보면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이 있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P대통령을 얼마나 욕했던가.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노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이 놈 저 놈이고 해먹지 않는 놈이 없다는 양비론이다. 둘 다 똑같다는 혐오다. 그러면서 항상 구 여당을 찍는다. 그 심리는 이미 다른 곳에서 많이 다루었으니 넘어가자. 이때마다 나는 줄기차게 조금 덜 해먹는 놈과 당을 찍어야 다음에는 더 덜해먹는 놈과 당이 나온다고 말한다. 맞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이 논리는 종편 뉴스 한 방에 사라진다. 답답하다. 이 책에서 서민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정치의 관심은 20대보다 5~60대 이상이 훨씬 많다. 그런데 이 관심이 제대로 된 정보를 통해 다가오지 않는다. 이번 대선에 난무한 가짜뉴스를 철떡 같이 믿고, 조작되고 편집된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 이런 현실이 나로 하여금 정치 뉴스에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

 

읽기 부담 없다. 생각과 논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논리보다 감성이다. 프레임 전쟁이란 표현도 있다. 대부분의 전쟁에서 구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강력한 매체를 동반자로 둔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은 야당이 승리했다. 이전 정권이 얼마나 부패하고 무능력했는지 알려준다. 이 책이 대선 이전에 나와 이번 대선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가 빠진 것은 아쉽다. 책이 나온 시기도 대선 바로 전이라 저자의 바람대로 큰 바람을 일으키지 못한 것 같다. 아닌가? 하지만 단순히 대선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읽으면 저절로 느끼게 된다.

 

답답한 정치현실이 많이 나온다. 풀뿌리 정치인이나 청년들의 스펙 이야기, 개성공단,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등등. 단숨에 이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이 책의 4부는 그런 부문에서 나의 시선을 많이 끌었다. <88만원 세대>에서 청년들의 정치세력화를 외쳤지만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겹쳐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다. 노령화와 정치 세대의 퇴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더 냉정하고 차분해지길 바라는데 이 열광이 P대통령을 향한 우리 부모들의 모습과 순간 겹쳐보였다. 글을 적고 나니 왠지 횡설수설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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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진수 - 맛의 사계를 요리하다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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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집착하는 것들 중 하나가 음식이다. 맛집에 집착한 것도 몇 년 전부터다. 그 이전에도 맛있는 집을 가끔 찾아다녔지만 최근처럼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맛집을 가기 위해 몇 시간 운전도 한다. 이런 나의 집착을 아내가 탓하는 경우가 흔하다. 예전에는 그냥 동네에 있는 식당이라 들어갔다가 입에 맞아 자주 갔는데 나중에 방송을 타면서 너무 유명해진 경우도 자주 봤다. 이런 집은 왠지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줄서기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여행지에 가면 이런 줄서기를 한다. 이렇게 변하다보니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책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다.

 

단 가즈오. 잘 모른다. 인터넷 서점 검색을 해도 이 책을 제외하면 다른 책은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나오키 상을 수상한 이력을 생각하면 의외다. 하지만 이 작가가 활약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몰연도가 1912~1976년이다. 요즘의 유명한 작가이거나 근대 작가 중 아주 유명한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번역이 되지 않는 출판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하다. 이 책도 2006년도에 단 가즈오의 아들이 재간하지 않았고, 요즘처럼 음식 방송이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번역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박찬일 요리사가 한국의 사계절 음식 재료들을 스님들과 함께 돌면서 조사한 것을 묶은 <스님, 절밥은 왜 그리도 맛이 좋습니까>를 읽었다. 사계절 24가지 음식 재료를 다루었는데 아주 현대적이었다. 나의 추억과 기억을 살살 부채질하면서 새롭게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 책은 또 다른 기억을 불어왔다. 왜 이렇게도 우리가 먹은 음식이랑 비슷한 것이 많을까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 탓일까? 아니면 두 지역이 비슷한 기온과 식재료를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것일까? 아마도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그런 것들만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 가즈오란 인물의 전 세계 유랑기이기도 하다.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고, 유럽, 아메리카, 호주 등도 여행했다. 그가 살던 시대를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이야 너무 쉽게 해외로 여행을 갈 수 있지만 5~60년대만 해도 얼마나 힘들었던가. 물론 이 시대에도 전 세계를 열심히 돌아다닌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지역들이 눈길을 끄는 와중에 중공시절의 북경을 방문한 이야기는 약간 의외였다. 그때는 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는가 하고. 다른 일본인이 중국 음식에 대해 쓴 책을 보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기에 더욱 그렇다. 뭐 시간적으로 차이는 꽤 있다.

 

2차 대전 당시 그는 보도원이었다. 이 경험이 이 책 속에 가끔 나온다. 직접 총을 들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징발을 통해 먹을 것을 조달한 장면도 보인다. 시대를 감안한다고 해도 조금 불편한 부분이다. 그리고 조리법이나 음식 등에 대한 전래 부분을 거의 모두 중국으로 기술한 것도 조금 눈길을 끈다. 문외한이라 반박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유래한 것도 꽤 있을 것 같기에 그렇다. 이 모든 것 중에서 계속해서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단 가즈오가 직접 요리하는 장면이다. 그 자신이 아주 멋진 요리사 같다. 실제 그의 집에서 연회가 벌어지고, 해외에서 자신이 직접 재료를 손질해서 요리하는 것을 보면 전문 요리사다. 다만 식당을 정식으로 차리지 않았다는 것 정도랄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그 중 하나가 비프스테이크다. 미국에서 먹은 비프스테이크가 맛없었다는 동료의 글 때문에 맛있는 비프스테이크를 미국에서 공짜로 실컷 먹었다는 이야기는 살짝 부러운 마음이 들 정도다. 그리고 아귀 토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한국의 아귀찜이나 아귀탕 외에 다른 요리법을 흔하게 접하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귀에 대한 한국의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에피소드가 낯설게 다가온다. 아귀를 걸어놓고 손질한다는 것도 낯설다. 이런 낯섦이 하나의 재미인 것은 분명하다. 또 책 속에 나온 몇 가지 용어나 재료 등에 이야기는 한국에서 혼용하여 사용하는 단어 등에 대한 해답이다. 이것은 복어의 한자 표기 오류 같은 일본의 예와 비슷하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산과 들과 바다 등이 점점 오염된다. 개발이 되면서 사라지는 공간도 적지 않다. 이런 곳들에서 자라던 수많은 동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이 책을 처음 쓴 시절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시대의 차이는 한국의 동식물에서도 자주 본다. 예전에는 흔했던 생선이 이제는 아주 귀해진 것과 같다. 이런 많은 것들을 읽으면서 느낀다. 그리고 한국의 식재료와 비슷한 것이 대부분이라 많은 것을 배운다. 음식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절로 눈길이 갈 것이다. 나의 음식 내공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진 후에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책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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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운명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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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다. <파랑새>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벨기에 출신 유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고, 벨기에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린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시인이라는 점이다. 시적인 문체로 산문에 담았다는 평가는 나를 혹하게 만들었다. 최근 시인들의 산문집에 눈길을 자주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혹시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살짝 있었지만 이런 걱정은 몇 쪽 읽지 않아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근래 보기 드물게 많은 문장에 마음이 끌렸다.

 

제목대로 지혜와 운명에 대해 아주 깊이 있는 사색으로 가득 채웠다. 이 책을 읽은 시간은 새벽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린 후 읽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았다. 운명이란 단어에 대한 그의 해석은 놀라운 부분이 있다. “운명에 복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겪은 사태를 변화시키는 대신, 그 사태에 맞춰 스스로 변신합니다. 심지어 불행을 탓하면서도 그 불행의 모양대로 자기 삶을 즉시 두드려 맞추지요. 그러다 보니 그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에서는 운명의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그에게 운명과 우연은 비슷한 단어입니다. 물론 우연이 행운의 모습을 하기는 매우 어렵지요.” 운명론자를 한 방에 날려버릴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혜와 더불어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다. 행복이다. “삶에서 행복이 차지하는 비중을 불행의 비중보다 중하지 않게 보아, 행운을 운명에 결부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라고 말하며 행복도 운명의 한 부분임을 분명히 한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행운과 불행을 나누어 생각했지 이것이 운명의 일부분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진정한 강자론에서도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역경에 맞서, 마치 모든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처럼 용감하게 싸울 뿐입니다. 그리고 대개는 승리를 거머쥡니다.”라고 말한다. 강력한 의지와 노력과 용기가 없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에서 기존 종교 이론을 답습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놀라운 대목을 읽었다. “제도권 종교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보상과 징벌의 편협한 윤리는 더 이상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득을 바라고 악을 행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선한 행위의 보상과 악한 행동의 징벌을 다른 시각에서 본 것이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배우던 <바른 생활> 교과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한국의 수많은 종교 단체가 떠올랐다. 길에서 자신의 종교를 외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정의에 대한 그의 글은 다시금 인간 중심에서 잠시 벗어나게 만든다. “정의의 언어는 인간 정신의 고유한 언어입니다.”라고 말하고, “정의의 개념만큼 자연으로부터 동떨어진 개념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라고 주장한다. 자연의 유일한 관심사는 균형이라고 바로 이어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는 순간 정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현실적으로 인간의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개발하고, 만들고, 짓고, 훼손한다고 해도 거대한 지구의 일부분 일뿐이다.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공포에 떠는가.

 

단순히 지혜와 운명이란 한정된 범위 속에서만 맴돌지 않는다. 결국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좀더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결국 사랑으로 마무리 짓는데 그 과정 속에 담긴 수많은 고찰과 통찰은 두고두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수많은 문장들이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지나간다. 왜 인문학 도서로 분류되었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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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노 요코식 공감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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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몇 명의 일본 여성 작가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사노 요코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인데 조용히 인기를 얻고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 에세이에서도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글을 봤고, 다른 곳에서도 심심찮게 만난다. 사노 요코의 대표작인 듯한 <백만 번 산 고양이>의 표지는 본 적이 있지만 그녀의 책을 실제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기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감각적이고 솔직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자만 맞았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언제 출간한 책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저작권을 보니 1996년이다. 그런데 책 후기에 나온 맺음글은 1987년 3월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1982년과 1986년 사이에 쓴 것이란 표시가 있었는데 맺음글로 인해 이 의문은 풀렸지만 출판연도는 의문이다. 흔한 재간된 판본을 가져와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연도 표시가 없는 글들도 자주 보이는데 이것은 또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과 의문은 읽는 동안에는 잘 들지 않았다. 다만 한 에세이가 끝나는 순간에만 잠시 떠올랐다.

 

모두 다섯 장으로 나누었다. 이 구분에 어떤 의미가 있을 텐데 왠지 깊이 파고들기가 귀찮다. 다만 마지막 5장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해설 등으로 채워져 있어 쉽게 구분이 된다. 그런데 이 5장이 나의 호기심을 왕성하게 자극한다. 낯익은 작가 이름은 다나베 세이코가 유일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한 번 찾아 읽고 싶어진다. 이렇게까지 누군가가 극찬을 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헨리 밀러가 이렇게 많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의 사랑과 그를 이용하려고 한 여덟 번째 아내 이야기도 궁금하다.

 

작가는 1938년 북경에서 태어나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읽다보면 중국 사연이 나오면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거가 얼마나 자주 이 에세이에서 반복되는지 보면서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중국에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전병을 다시 재현해서 이제는 시골아줌마가 된 엄마에게 만들어줄 때, 그 당시 그녀처럼 아들이 옆에서 밀가루로 장난칠 때 가슴이 가장 뭉클했다. 단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했을 때 더욱.

 

정말 인상적인 글들이 많다. 밑줄을 주욱 긋고 싶은 글들이 가득하다. 의지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지탱했다고 했을 때 놀라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너무나도 솔직한 표현에 놀라기도 한다. 또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고 이 다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요된 모성 신화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에 깜짝 놀라면서도 자신의 아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물론 그녀가 못생겼다고 한 아기의 엄마는 또 다른 사랑을 표현했지만. 이런 솔직한 표현들은 조금 늘어지는 듯하고 산만한 글들 속에서 긴장감을 풀어주고 잠깐 웃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한 글은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도 교사도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다.”란 부분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확한 지적인가! 자기 아이는 특별하다고 외치는 수많은 부모들이 실제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 대부분은 나처럼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이 된다. 어쩌면 부모들의 속내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것. 한 가지 의문을 달자면 교사가 과연 죽을 힘을 다했는가 하는 부분 정도랄까.

 

40대의 그녀와 다른 나이의 그녀가 쓴 다른 글을 읽고 싶어지는 것은 이제 나도 그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가끔 이야기하는 아줌마들의 솔직한 이야기처럼 아주 낯익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용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여름을 처음 겪은 듯한 한국인이 표현한 말에서 깜짝 놀라지만 왠지 그녀는 담담해 보인다. 치매 걸린 큰어머니 에피소드는 몇 번 나오는데 낯설지 않다.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친척 장례식장에서 그녀가 느낀 비슷한 외모로 인한 인상은 근래에 다녀온 장례식장을 잠시 떠올려보게 만든다. 이런 친숙함은 그녀가 솔직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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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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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페터 회를 만난 것은 그 유명한 <스말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었다. 우연히 이 작품에 대한 엄청난 호평을 보고 사서 읽었다. 솔직히 표현해서 어려웠다. 재미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중역 탓으로 돌리기에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인물들이 너무 낯설었다.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책이었다. 그러다 다른 책이 나와 또 읽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역시나, 였다.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소개글을 보면서 매혹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 곳에서는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나왔지만 말이다. 모두 읽은 지금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더 느린 속도로 읽고, 복잡한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아주 조금씩 재미의 문을 열어주었다.

 

수잔 이펙트는 수잔이란 여성이 지닌 능력을 말한다. 쉽게 표현하면 초능력이다. 그녀가 곁에 있으면 누구나 진심을 말하고 싶어진다. 범죄자라면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단순히 이것만 놓고 보면 최고의 심문자가 되면 좋겠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물리학이다. 뛰어난 물리학자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쌍둥이의 엄마다. 이런 그녀가 꿈꾼 것은 평범한 삶이다. 언제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산다.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두 장소는 이후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스버그 재단의 명예 저택에서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미얀마 국경 근처의 감옥으로 금방 넘어간다. 이 저택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수잔의 직업적 능력과 관심사를 의미한다. 감옥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처했던 상황을 말해준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 하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잔은 이 도움을 얻기 위해 하인의 바라는 것을 얻어줘야 한다. 그것은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다. 처음에는 이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무슨 의미인지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연쇄살인이 벌어지면서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속도감과 긴장감도 같이 높아졌다.

 

기본적으로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 헤매는 수잔의 좌충우돌 모험담이지만 그 속에는 수잔의 개인사와 감정의 미세하면서 거대한 변화가 계속해서 흐른다. 그녀가 보고서를 얻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그 후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 미래위원회란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들의 보고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금씩 알려준다. 놀라운 것은 이 보고서의 예측가능성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잔의 조사가 지속되면서 이 보고서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이 어떤 이익을 취했는지도.

 

간단한 이야기가 점점 거대해지는 구성이다. 종말론과 음모론이 겹쳐지고, 한 사람에서 시작한 것이 전 지구로 확대된다. 이 와중에 수잔은 자신의 평범한(?) 삶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노력을 결코 놓지 않는다. 자신이 포기하는 순간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감옥 등으로 가서 헤어져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조금 놀랍게 다가온 것이 있다. 바로 쌍둥이 남매에 대한 감정이다. 매년 바람을 피웠지만 이 두 남매가 자라는 동안 그녀가 보인 관심과 행동 등은 보통의 엄마와 별 차이가 없다. 차이라면 두 남매가 가진 독특한 능력과 성격일 것이다. 실제 그녀가 온갖 위험 속에서 미래위원회를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다. 당연히 번역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독어판 중역이란 것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은 단숨에 읽기 힘들게 한다. 제과제빵을 표현하는 것도 우리가 흔히 보는 요리법과 다르다. 이 다른 점들이 곳곳에 나오면서 낯섦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장면도 꽤 있다. 그 한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다. 어쩌면 이 소설의 구성은 소설 속 빵을 만드는 장면과 같을지도 모른다. 한겹 한겹 쌓여 맛있는 빵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야기들이 쌓이고 관계가 드러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든다. 여기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수잔 이펙트는 그녀의 삶이 결코 평범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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