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노 요코식 공감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최근에 몇 명의 일본 여성 작가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사노 요코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인데 조용히 인기를 얻고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 에세이에서도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글을 봤고, 다른 곳에서도 심심찮게 만난다. 사노 요코의 대표작인 듯한 <백만 번 산 고양이>의 표지는 본 적이 있지만 그녀의 책을 실제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기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감각적이고 솔직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자만 맞았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언제 출간한 책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저작권을 보니 1996년이다. 그런데 책 후기에 나온 맺음글은 1987년 3월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1982년과 1986년 사이에 쓴 것이란 표시가 있었는데 맺음글로 인해 이 의문은 풀렸지만 출판연도는 의문이다. 흔한 재간된 판본을 가져와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연도 표시가 없는 글들도 자주 보이는데 이것은 또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과 의문은 읽는 동안에는 잘 들지 않았다. 다만 한 에세이가 끝나는 순간에만 잠시 떠올랐다.

 

모두 다섯 장으로 나누었다. 이 구분에 어떤 의미가 있을 텐데 왠지 깊이 파고들기가 귀찮다. 다만 마지막 5장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해설 등으로 채워져 있어 쉽게 구분이 된다. 그런데 이 5장이 나의 호기심을 왕성하게 자극한다. 낯익은 작가 이름은 다나베 세이코가 유일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한 번 찾아 읽고 싶어진다. 이렇게까지 누군가가 극찬을 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헨리 밀러가 이렇게 많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의 사랑과 그를 이용하려고 한 여덟 번째 아내 이야기도 궁금하다.

 

작가는 1938년 북경에서 태어나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읽다보면 중국 사연이 나오면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거가 얼마나 자주 이 에세이에서 반복되는지 보면서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중국에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전병을 다시 재현해서 이제는 시골아줌마가 된 엄마에게 만들어줄 때, 그 당시 그녀처럼 아들이 옆에서 밀가루로 장난칠 때 가슴이 가장 뭉클했다. 단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했을 때 더욱.

 

정말 인상적인 글들이 많다. 밑줄을 주욱 긋고 싶은 글들이 가득하다. 의지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지탱했다고 했을 때 놀라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너무나도 솔직한 표현에 놀라기도 한다. 또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고 이 다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요된 모성 신화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에 깜짝 놀라면서도 자신의 아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물론 그녀가 못생겼다고 한 아기의 엄마는 또 다른 사랑을 표현했지만. 이런 솔직한 표현들은 조금 늘어지는 듯하고 산만한 글들 속에서 긴장감을 풀어주고 잠깐 웃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한 글은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도 교사도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다.”란 부분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확한 지적인가! 자기 아이는 특별하다고 외치는 수많은 부모들이 실제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 대부분은 나처럼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이 된다. 어쩌면 부모들의 속내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것. 한 가지 의문을 달자면 교사가 과연 죽을 힘을 다했는가 하는 부분 정도랄까.

 

40대의 그녀와 다른 나이의 그녀가 쓴 다른 글을 읽고 싶어지는 것은 이제 나도 그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가끔 이야기하는 아줌마들의 솔직한 이야기처럼 아주 낯익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용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여름을 처음 겪은 듯한 한국인이 표현한 말에서 깜짝 놀라지만 왠지 그녀는 담담해 보인다. 치매 걸린 큰어머니 에피소드는 몇 번 나오는데 낯설지 않다.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친척 장례식장에서 그녀가 느낀 비슷한 외모로 인한 인상은 근래에 다녀온 장례식장을 잠시 떠올려보게 만든다. 이런 친숙함은 그녀가 솔직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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