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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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로 나로 사로잡은 작가의 처녀작이다. 아주 자극적인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다. 흔하게 말하는 아낌없는 ‘주는’ 사랑이 아니라 ‘뺏는’ 사랑이다. 처음 이 제목을 보았을 때 오타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책 소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작에서도 악녀가 등장했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다음 작품에서도 악녀가 등장한다면 악녀 전문 작가란 타이틀을 붙여줄까 생각중이다. 그런데 이번 악녀는 조금 다르다. 아니 어쩌면 더한지도 모르겠다. 왜냐고? 그녀의 숨겨진 시간 속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 누구나 말하는 단어지만 진실로 삶을 뒤흔드는 사랑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조지 포스가 대학 1학년 때 경험한 사랑이 그 흔하지 않는 사랑이다. 첫사랑이기도 하다. 속된 말로 그는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 사랑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볼 때마다 그녀의 흔적이나 닮은 모습을 본다. 20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다. 그 긴 시간이 흐른 뒤에 전 여자 친구를 만난 술집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긴가민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다. 다시 돌아가 그녀를 확인한 것도 역시 당연한 행동이다. 그렇게 그는 첫사랑의 그녀 리아나를 만난다.

 

소설의 구성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리아나를 만난 후 사건 속으로 휘말려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과거는 리아나를 둘러싼 추억과 사건을 다룬다. 이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 작가는 아주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첫사랑 오드리와의 만남과 그녀의 죽음이란 자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면서 20년만에 만난 그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 후 그가 알던 오드리의 진실에 한 발씩 다가간다. 그리고 오드리의 집에서 그가 마주한 오드리의 진짜 모습은 다른 사람이었다. 실제 학교에서 그가 사귄 여자는 자살한 오드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빌려 학교 생활을 했다. 이렇게 과거 속에서 리아나의 실체에 대한 진실 일부분을 조금씩 보여준다.

 

현실에서 다시 만난 리아나는 도망자 신분이다. 그녀의 정체를 말하는 순간 경찰에 잡혀가야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그녀의 죄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 부분은 과거 속에서 드러난다. 그녀가 어떻게 그를 찾아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단지 그의 도움이 필요해서라고 말한다. 그의 도움이란 것도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부자 매클레인에게 훔친 돈을 돌려주는 일이다. 매클레인과 그녀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설명해준다. 그녀를 만나는 사이에 한 명의 무서운 사내가 등장한다. 리아나를 뒤쫓고 있고 DJ 라는 이름을 말하면서 그를 때리고 겁준다. 리아나의 부탁을 들어주고 이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이렇게 그는 새로운 사건 속으로 빌을 내딛게 된다.

 

조지의 행동을 보면 정말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느낀 공포나 두려움은 잠시만 생각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끼어든 폭력은 공권력을 불러 해결할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하게 막는다. 아니 자신이 부른 경찰 때문에 그의 여자들이 다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가 우는 장면을 볼 때 조금 불편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속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0년만에 찾아온 그녀의 매력에 다시 빠져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모습은 바로 미련이나 집착을 넘어 영혼에 각인된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과도한 부탁이 아니라는 것도 한 역할했을 것이다.

 

조지가 평범한 소시민인 남자를 맡았다면 리아나는 연약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재빠른 계산과 계획으로 남자들을 옭아맨다. 그녀에게 빠진 남자들은 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연약한 모습 뒤에 숨겨진 간악한 계획을 파악하기에는 그녀가 너무 매력적이다. 설사 안다고 해도 그들은 순간적으로 그 매력에 굴복한다. 전혀 이성적인 행동이 아니지만 인간은 자주 감성적인 행동을 한다. 작가는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 이야기를 만든다. 리아나가 아주 매력적이지만 누구나 빠지는 것도 아니고, 그녀의 탐욕을 아는 사람도 생긴다. 이 허점이 그녀를 떠돌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을 둘러싼 조지와 리아나의 대화는 이 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마지막 조지의 행동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던 그의 삶에 아주 큰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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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독서 - 2016년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대상 수상작
잔홍즈 지음, 오하나 옮김 / 시그마북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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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제목이다. 그런데 이 둘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여행을 바로 가지 못할 때는 독서를 통해 여행을 한다. 여행을 가면 책 속에 나온 곳을 여행한다. 이렇게 이 둘은 뗄 수 없는 상관관계다. 하지만 여행 가서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한다. 책에 나온 곳을 여행으로 바로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아쉬움은 언제나 있다. 대표적으로 제주가 그렇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주편>에서 오름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읽고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여러 오름을 올라야지 마음먹고 가지만 실제는 맛집만 열심히 찾아다녔다. 비와 아이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잔홍즈는 독서광이다. 그의 이력을 보면 언제 책을 읽을까 할 정도지만 상당한 양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아주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 여행지의 일부분은 독서와 관계있다. 이 책은 바로 그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 여정과, 그 여정 위에 ‘책과 함께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했을 뿐이다.”라면서 이 책의 특징을 말한다. 이때의 책은 세상의 모든 종류의 책이다. 어떤 때는 가이드북이 되고, 어떤 때는 소설의 한 구절이 된다. 누군가의 여행기가 그의 시선을 끌어 여행지로 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당연히 그 장면을 재현하려고 한다.

 

얇은 책이 아닌데 다루고 있는 곳은 열 곳 정도다. 첫 장에서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다루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한 나라를 넘어가는 경우가 없다. 인터넷 서점 책 광고에 나오는 사진 속 장면은 바로 여기서 비롯했다. 책을 그대로 믿고 따라한 것이다. 스위스에서도 책을 믿고 그대로 했다가 낭패를 봤다. 실제 이런 일 때문에 실종 사고나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한다. 상호확인의 중요성을 알려주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이런 교훈적인 내용이 아니라 그들 부부의 고생이다. 첫 고비에서 돌아갔으면 됐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다음 고비는 무엇이고 종착점은 어떨까 하는 기대로 이어지는 그 과정 말이다. 이후 이런 고생은 더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인도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속고 있구나’ 였다. 오마르 하이얌의 시를 읽고, 장중한 사유를 붙여 설명하지만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양탄자의 아름다움이다. 인도 여행기를 읽다 보면 늘 마주하는 것 중 하나가 사기인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고 한다. 한두 번은 꼭 당한다고 해야 하나. 독자에게는 빤히 보이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왜 그렇게 매혹적인 것인지. 뭐 이것을 저자에게 한정할 것도 없다. 나 자신도 외국에 나가면 작은 돈이지만 늘 속지 않는가. 반면에 미식평론가로 오해받아 인도 호텔 주방을 들여다본 장면은 예상과 다른 결말로 이어졌다. 어떻게 보면 상황이 뒤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이 책 속에서 테러와 지진으로 피해 본 곳을 다녀온 이야기가 두 편 있다. 한 곳은 요즘 윤식당으로 인기 절정인 발리고, 다른 한 곳은 동일본이다. 발리 이야기는 호화로운 호텔에서 보내는 일정인데 너무 황량한 분위기가 강해 쓸쓸함만 강하게 남는다. 휴양지의 활력이 사라지고, 공포가 똬리를 튼 곳에서 어떤 모습이 보이는지 아주 잘 묘사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다시 그곳을 찾아간 그의 여행은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곳의 현실을 새롭게 파악하게 만든다. 피해와 공포가 확대 해석된 상황임을 보여주고, 그 지역을 살리기 위해 현지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대만의 관계가 살짝 보였고,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친 그들의 역사가 떠올랐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경험한 곳도 두 곳 있다. 아프리카 초원과 알래스카다. 알래스카 편을 읽으면서 얼마전 휴가를 내고 이곳으로 여행을 떠난 직원이 떠올랐다. 비록 저자처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보낸 며칠 동안은 야생 속 현대의 삶이다. 머무는 곳은 현대식으로 깔끔하고, 그 경계를 벗어나면 사자들이 먹이를 잡아먹는 잔혹한 야생의 삶이 있다. 모험가, 탐험가의 시대가 끝난 후에도 인간들은 야생의 맛을 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이곳에 온다. 단순히 동물만 보려면 각 나라에 있는 동물원으로 충분한 텐데 말이다. 알래스카 이야기는 여행보다 여행을 가기 전에 있었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더 재미있었다.

 

식도락의 즐거움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오사카에 가고 싶었던 것도 일본의 주방이라는 말과 흘러넘치던 맛집 정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장소는 교토와 도쿄였다. 교토에서 그가 맛본 음식들은 단품이나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식당들이다. ‘카모메’의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맛난 음식은 최상의 식재료를 최고의 스시 명인이 만드는 오노 지로의 스시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재미를 준다. 늘 회전초밥과 뷔페 초밥을 먹다가 스시집에서 주방장이 직접 만들어주는 것을 먹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예약하기 힘들다는 오노 지로의 스시를 먹고 쓴 글은 맛있다는 말 너머의 뭔가를 생각하게 만든 모양이다.

 

이렇게 미식에 대한 글들이 나를 유혹하는 와중에 터키가 나왔다. 양 머리라는 부분에서 조금 질색을 하지만 우리가 소머리와 돼지 머리를 먹는 것을 생각하면 특별한 것도 없다. 예전에 시장에 가면 얼마나 돼지머리가 얼마나 많이, 자주 보였던가. 이렇게 이 책은 멋진 풍경의 묘사보다 관광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보다 책과 음식에 더 집착한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의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적인 장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압도적인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먹기 위해 여행은 간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뭐 이런 곳에 간 것도 책 때문이다. 서문을 보면 1/3을 줄인 것이라고 하는데 몇 곳은 더 손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살짝 그 줄인 2/3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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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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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앞부분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낯선 라틴어는 개념을 충분히 잡기에 부족했다. 번역도 매끄럽지 않아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낯선 개념과 이야기는 후반부로 넘어오면서 조금씩 이해의 문을 열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모두 읽고 페터 슬로터다이크를 검색했는데 생각보다 정보가 없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에 읽은 독자의 서평은 내가 이해한 것과 달라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분노. 이 책을 관통하는 단어이자 주제다. 저자는 분노를 키워드로 세계 역사를 재해석했다. 고대 호머의 일리아드에서 시작하여 현대의 이슬람까지 이어지는 긴 이야기는 이해의 깊이만큼 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가 분노의 은행 개념이다. 이 분노 은행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작동하게 되었는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 하나는 기독교이고,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고, 나머지 하나는 새롭게 다가온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라 혹은 이슬람이다. 너무 광범위한 시간을 다루고 있지만 서구의 역사 속에서 이 시기들은 구분이 충분히 가능한 범주다.

 

이 책의 서문은 상당히 길다. 거의 전체의 사분의 일 정도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이 서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인용하면서 풀어내는 라틴어의 개념은 아주 낯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 철학자의 글에서 한 단어의 개념이 전체를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데 사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 단어는 티모스다. 저자는 “티모스는 자랑스러운 자아의 충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수용하는 감각을 의미한다”고 정의한다. 검색한 번역으로 보면 용기, 기개, 분노 등이 보인다. 어떻게 이해할지 모른 상태에서 저자의 분노의 정치심리학 속으로 빠져들었다.

 

분노의 은행에서 “폭발적이고 복수심에 찬 도덕적 프로젝트를 위한 저장고인 분노의 은행을 세움으로써 개별적 분노의 숙주는 하나의 관리체계에 의해 주도되는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이 폭발한 것이 혁명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그렇다. 저자는 이 혁명을 낱낱이 해부하고 혁명의 오류와 잘못을 끄집어내어 진열한다. 이것 이전에는 기독교의 허구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분노의 신이란 개념이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교리 변화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분석한다. 연옥을 발명했다고 했을 때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또 한 번 깨어졌다.

 

혁명과 공산주의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 둘을 근현대사에서 자발적으로 이룬 나라다. 하지만 이 두 나라는 모두 실패했다. 러시아의 쿨라크 정책이나 사회민주주의자의 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스탈린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드러났다고 해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서구의 지성인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입을 다물었다고 했을 때 나의 머릿속에서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이런 바 문빠를 둘러싼 여러 가지 사태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하고.

 

중국의 혁명을 아주 날카롭게 비판한 글은 낯익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으로 죽은 인원이 몇 명인가 하는 것은 러시아의 대기근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하지만 현대 중국은 이 사실에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당연히 출판은 금지다. 마오주의가 한때 유럽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왜곡되고 선별적인 정보가 어떤 효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현재도 마오주의가 변형된 채 제3세계를 돌아다닌다고 하니 조심하고 더 유의할 부분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몇 가지 사실만 기억하는 우리에게 저자가 주장하는 모택동의 공산주의 혁명은 사실이 아니라는 대목에서 눈길이 머문다. 다만 그가 성공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알바니아와 루마니아의 대규모 투자 사기극에 대한 부분은 이전에 한 번 다른 곳에서 들은 적이 있지만 다시 봐도 놀랍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이런 대사기극이 가능한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당하는지 등. 물론 한국에서도 조희팔의 거대한 피라미드 사기가 있었다. 이 모든 사기의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고, 그 탐욕은 허술한 정보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개인들과 사회 시스템 부재와 맞물린 결과다. 여기에 저자는 프랑스에서 발생한 폭동을 보여주고, 새롭게 자라는 이슬람의 테러를 조금 다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나온 시기가 2006년이란 부분이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어난 이슬람 테러가 저자가 주장하는 분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다. 뭐 독일에서는 저자의 논문이나 주장이 나와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고, 쉽지도 않다. 냉소로 가득한 문장과 사실 지적은 저자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없다면 오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번으로 이 책을 이해하기는 나의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번역의 아쉬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분노를 키워드로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부분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한국의 분노 은행이 어떤 식으로 적립되고 이것이 어떻게 폭발했는지 연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역시 나의 이해력과 지식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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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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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표지다. 소설 속 연쇄살인범의 살인 위치와는 조금 다르지만 내용을 알고 난 후 그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재미난 것 중 하나는 목차의 제목들이 모두 잭슨 폴락의 그림 제목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왜 이런 제목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마지막에 나온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뒤엉킨다. 내가 알고 있는 잭슨 폴락의 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사용한 몇 가지 중요한 도구는 너무나도 낯익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인터넷 댓글이다. 이 댓글을 별도의 인용 없이 나열하다보니 잠시만 집중을 잃어도 개인의 의견인지 댓글인지 구분을 못하는 순간이 생긴다. 그렇다고 이 경계가 불분명한 것은 아니다.

 

저스티스맨이란 제목을 보고 이 책의 연쇄살인범인 줄 알았다.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나오지 않고 한 카페 운영자인 저스티스맨이 연쇄살인범에 대해 적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표시를 분명하게 남긴다. 그것은 이마를 관통한 두 발의 총상이다.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총기 살인이지만 경찰은 그 어떤 흔적도 찾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공통점도 파악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오리무중이다. 그런데 이 피해자들이 죽은 원인을 알려주는 카페가 있다. 바로 저스티스맨이 운영하는 카페다. 대중은 이 카페를 통해 왜 이들이 살인을 당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작가는 이 사연을 이야기의 줄기로 삼았다.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다. 첫 번째 피해자의 경우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한때 유행했던 무슨무슨 충이란 설정이다. 소설 속에서는 오물충으로 불린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그가 한 번 실수한 것 때문에 사회와 가족에게 버림을 받는다.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보통의 누리꾼들은 이것을 확대 재생산하고, 익명의 공간에서 마구 욕을 쏟아낸다. 이 욕의 배설로 쾌감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다. 실명과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의 약점을 공격했던 옛 동기가 이것을 폭로한다. 우리가 순간의 호기심으로 소비했던 이미지들이 그 피해자에게 어떤 작용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언론으로 넘어갔다가,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노출한 사람과 그 사이트 운영자로 넘어간다. 이것은 다시 많은 회원을 가진 인터넷 카페 운영자로까지 확대된다. 연쇄살인범의 존재와 행위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열띤 설전이 벌어진다. 이성은 감성과 익명의 폭언으로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작가는 이런 과정을 살인자의 시선이 아닌 다른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살인의 당위성을 피력한다. 왜 그들이 죽을 놈인지, 하고. 법 위에서 선 살인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분노를 대리해줄 누군가가 나타났다는 것이 반가울 뿐이다.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늘 있어 왔다. 개인의 복수가 금지된 사회에서 누군가가 이를 대신해준다는 만족감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법의 정당성과 살인의 부당성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할 때 이 사회의 순기능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저스티스맨이 주장하는 살인의 이유가 사실인가 하는 것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경찰의 입장을 빼놓았다. 몇 가지가 사실로 확인되었지만 몇 가지는 그냥 그대로 둔 상태다. 독자들은 이미 인터넷 세상에서 이것과 비슷한 수많은 게시글을 봐왔다. 권력과 폭력과 매춘과 성추행 등이 뒤섞인 곳이 바로 우리 사회 아닌가.

 

이 소설에서 또 하나 유의해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인칭대명사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남녀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라는 대명사로 남자와 여자를 표현한다. 이 효과는 아주 좋다. 최소한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라는 단어를 보면서 가장 먼저 남자를 생각했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피해를 선입견처럼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 대명사가 소설 중간과 마무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은 한다고 말하면 스포일러일까? 그리고 여운을 남기는 설명은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사족을 하나 달면 이 작가의 문체다. 깔끔하고 간결한 문장이 아닌데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런 것인지 궁금하다. 현재 이 책 포함 딱 두 권이고, 다른 책을 읽지 않은 상태라 뭐라고 말 할 수 없다. 다만 요즘에 흔히 보는 문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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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 - 불일암 사계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최순희 사진 / 책읽는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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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인이 된 법정 스님은 자신의 글을 모두 절판하라고 유언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글들은 새롭게 묶여 나오고 있다. 스님의 유언을 생각하면 이런 책이 나오고, 이 책을 읽는 것이 기분 나쁜 일이지만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잘 나왔다는 생각을 한다. 이 모순된 감정이 계속해서 법정 스님의 책들이 나오게 만든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은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故 최순희 할머니 때문이다. 그녀가 15년 동안 불일암을 오르내리면서 찍은 사진집 <불일암의 사계> 때문이다. 이 책은 비매품이고 소량만 찍은 후 주변의 아는 사람들에게만 주었다고 한다. 이 책의 기본 구성은 바로 이 <불일암의 사계>에서 시작한다.

 

최순희 할머니의 이력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빨치산 경력이다. 이태의 <남부군> 속 최문희의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최순희 할머니에 대한 글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장 서두에 소설가 정지아가 적어 놓은 것이 전부다. 기껏해야 겨우 네 장 정도인데 이 속에 담긴 내용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아주 잘 요약해서 보여준다. 최순희라는 인물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빨치산이 되었으며 체포 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와 그 후의 삶까지. 이 글을 읽다 보면 그녀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불일암에 올라와 암자의 잔일을 묵묵히 하고 사라진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불일암의 사계> 속 불일암은 보통의 산속 암자다. 계절의 변화가 있고, 손으로 투박하게 만든 의자 등이 보인다. 작은 암자다 보니 솔직히 볼거리도 별로 없다. 법정 스님이 계신 곳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잠시 스쳐지나가는 암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법정 스님이 그곳에 머물면서 그곳을 그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 최순희 할머니는 직접적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고 배움을 얻기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씻고 있은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로 불임임과 주변의 풍경 등을 담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려 15년 동안이니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책 속에서 그 시간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내가 아쉬울 뿐이다.

 

최순희 할머니의 사진 속에 사람이 들어 있는 장면은 딱 한 장이다. 감자를 캐는 법정 스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사진집 속에는 여러 권의 책 속에서 뽑아져 나온 스님의 글들이 심어져 있다. 어딘가에서 읽은 것도 있고, 조금 낯선 글도 있다. 어릴 때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중늙은이가 다 되어 그 글에 감탄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점점 쌓여가는 책들에 둘러싸여 스님의 글을 읽다 보면 나의 강한 수집욕이 부끄러워진다. 정리해야지 하면서 더 많이 모으는 이 못된 버릇 혹은 욕망이 이때만은 잠시 사그라진다. 이런 일이 조금씩 많아져서인지 이전보다 조금 더 생각하면서 책을 산다. 아주 비루한 변명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꽃과 나무에 대한 나의 무지다. 최순희 할머니의 사진 속에 담긴 꽃의 이름을 모르니 ‘뭐지?’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감상이 조금 뒤로 밀린 것 같다. 엮은이들이 선택한 글들이 모두 사진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 들지 않지만 충분히 책 속으로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 15년의 세월 때문인지 불일암의 모습에 변화가 꽤 있는 것 같다. 전문가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화려하지도 깊이도 부족하지만 몇몇 사진은 바람에 나를 태워 그 곳을 노릴게 만든다. 시원한 바람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불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없으면 절대 찍을 수 없는 사진들도 보인다. 사진들에 찍은 날짜를 넣어서 세월의 변화도 같이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바람도 생긴다. 채워져 있지 않아서, 정밀하게 세련되지 않아서 더 정감 가는 사물들은 잠시 마음에 여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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