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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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正欲)이란 단어가 낯설다.

한자의 정(正)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바른 욕망으로 번역했는데 무엇이 바른 욕망일까?

어느 정도를 페티시즘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담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욕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보면서 이런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재단한다.

이 과정에 그들의 욕망은 왜곡되고, 본질은 흐려진다.

만약 이들이 공공성과 법을 어겼다면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욕망을 제대로 알아야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하나의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3명의 소아성애자에 대한 기사다.

이 기사를 보고 세상에 이런 나쁜 놈들이 있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은 후 이 생각은 완전히 바뀐다.

기사에 실린 것과 다른 사실을 각자의 사연 속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사람과 다른 욕망을 가진 채 살아야 하는 그들의 고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욕망도 다른 소수자의 삶과는 달라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일어난 사건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본 인물은 검찰청의 조사관 한 명이다.

법과 원칙에 집중할수록 사건의 이면을 보는 것은 더 힘들다.


등교 거부 중인 아들을 둔 검사 히로키,

정확한 이유를 숨긴 채 침구 전문점 직원으로 살아가는 나쓰키.

히키코모리가 된 오빠의 av에 남성 혐오에 걸린 야에코.

처음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먼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아들이 학교로 돌아갔으면 하는 아빠, 아들과 관계가 단절된 아빠.

아내가 조금씩 내민 손길을 자신의 잣대로 거부했던 그.

그와 일하는 조사관을 통해 과거의 특이한 사건 하나를 듣는다.

수도꼭지 절도 사건과 범인의 이상한 마지막 감상 하나.

그런데 이 인물과 사건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노력도 열정도 없다면 그 사실은 그냥 지나갈 뿐이다.


나쓰키의 삶을 보면서 너무나도 정적인 모습에 놀란다.

다른 직원의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한다.

그녀에 대한 오해가 퍼졌을 때도 그녀는 그냥 듣고만 있는다.

이 소문을 퍼트린 사람을 만났을 때도 특별히 정정을 요청하지 않는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렇게 수동적이고 사람과의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일까?

그녀를 통해 처음에 나온 세 명의 소아성애자 중 한 명과 이어진다.

바로 사사키인데 그들은 같은 욕망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모두 읽고 다시 첫 기사를 볼 때 만난 그녀의 모습은 마지막에 검찰에게 한 말과 이어진다.

사라지지 않는다고 전해주세요.”란 말의 의미는 아주 중요하다.


야에코. 그녀가 빠진 남성이 바로 세 명의 소아성애자 중 한 명인 모로하시 다이야다.

오빠의 방에서 본 av 제목과 자신의 외모가 남성 혐오로 이어졌다.

하지만 학교 행사에서 우연히 본 다이야는 그녀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보통이라면 남자를 떠올리자마자 혐오를 느끼겠지만 그는 다르다.

다이야에 대한 관심을 또 다른 방식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욕망과 시선이 다이야에게는 부담스럽고 힘들다.

뛰어난 외모는 남자에게 타고난 복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과 섞여 살아가는데 힘들어 하는데 너무 많은 관심이 쏠리기 때문이다.

이런 각자 다른 욕망과 같은 욕망이 섞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묵직하고 파괴적인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나를 뒤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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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 룰렛
오윤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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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된 범죄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소설이다.

100% 실화 모티브란 단어와 프로그램 이름은 나를 매혹하기 충분했다.

서로가 먹고 먹히는 전대미문의 살인 시나리오’는 나의 상상력을 다른 쪽으로 흐르게 했다.

누군가가 살인 시나리오를 짜고, 이 시나리오대로 행동한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를 그대로 한 사람을 죽이는 또 다른 시나리오가 있다는 설정이다.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가해자가 피살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피살자 정상구는 코인 사기로 큰 돈을 번 재력가이다.

이 살인 사건은 피살자의 직업을 통해 코인 사기의 방식을 조금씩 알려준다.


대충 보면 그냥 강도 살인처럼 보이는 사건이다.

피해자의 지갑이 사라졌기에 이런 생각으로 흘러가기 쉽다.

그런데 피해자의 손목 시계가 아주 고가의 시계다.

단순 강도라면 이런 시계를 놓아두고 달아날 리가 없다.

형사 준현은 신입 형사 도윤의 지적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두 형사는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 대충 알게 된다.

그리고 정상구가 대표로 있는 회사를 찾아가는데 명패가 없다.

그의 피해자들이 직접 찾아오지 못하게 사무실 정보를 숨긴 것이다.

노련한 형사 준현은 경비에게 경찰임을 밝히고 사무실을 찾아간다.

사무실에는 정상구의 죽음을 모른 채 많은 직원들이 일하고 있었다.


다른 부사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지만 그는 특별히 놀라지 않는다.

그와 정상구는 같은 사기꾼이고, 경찰에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에게 예상외의 정보를 전달하는 회사 직원이 나타난다.

그는 잠입 르포 중인 신문기자 성주다.

성주를 통해 정상구가 어떤 사기를 치는 지 알게 되고 수사의 돌파구 하나가 생긴다.

정상구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살인 용의자가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용의자가 나오고, 더 많은 피해자가 나타난다.

그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 하나가 밝혀지면서 이야기가 꼬인다.

정상구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코인 사기를 친 인물이 나온 것이다.


작가는 피해자들이 등장할 때 그들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조심을 했지만 순식간에 당한다.

단순히 그들의 탐욕이 거대해서 생긴 문제라면 간단하겠지만 아니다.

각각의 사연 속에 그들의 바람은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순간의 탐욕은 그들이 가진 것들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불쌍하고 불행한 그들의 사연은 그냥 그들의 욕심과 탐욕으로 통치기에는 너무 가슴 아프다.

그들은 성실하게 일했고, 작은 성공을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순진함과 상황과 그들을 속이려는 노력이 그들을 피해자로 만들었다.

코인 사기가 분명한데 법의 테두리는 이런 피해자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다.

언론도 이런 가해자들의 광고를 실어주면서 돈을 벌어간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지만 사건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예상한 것과 다른 이야기이고, 구성도 생각보다 간단하다.

살인 사건 수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용의자와 단서를 모은다.

중간에 용의자들 중 한 명을 살인자로 지정해 사건을 마무리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준현은 이 사건을 더 깊이 파고 들고, 더 많은 의문을 품는다.

이 과정에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수사에 혼선이 생긴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용의자의 범위를 더 줄일 수 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다.

형사들의 노력과 열정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단서를 발견하게 한다.

그리고 밝혀진 사건의 진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아주 처참하고 잔혹한 살인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은 오히려 가슴 아프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살인의 진실은 또 다른 의미에서 가슴 아프고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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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갈게
임태운 지음 / 북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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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장편 소설을 끝까지 읽은 것은 처음이다.

주로 장르 소설 단편 모음집에서 그의 소설을 재밌게 읽었다.

연재를 한 후 장편으로 나오는 듯한데 이 책도 마찬가지다.

교보문고 스토리 플랫폼 ‘창작의날씨’에서 독점 연재된 작품이다.

최근 인터넷 서점에 연재된 후 책으로 출간되는 작품들이 자주 보인다.

이번에 다루는 부분은 누구나 꾸는 꿈이다.

사람들의 꿈을 공유하는 기계가 등장한 미래의 이야기다.

하지만 꿈이 공유되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특수 부서 직원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 장면만 보면 한 편의 판타지 액션 장르처럼 보인다.

꿈 도둑이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 꿈 속의 물건을 훔쳐간다.

이런 인물의 발견한 몽재진압반 3팀장 수현은 그를 팀원으로 영입하려고 한다.

3팀원들과 꿈 도둑의 대결 장면은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하다.

온갖 무기들이 등장해 꿈 도둑 지후를 공격하고, 염력에, 괴수까지 그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런 공격이 왠지 모르게 지후에게 통하지 않는다.

지후는 대포 공격에도 다치지 않고,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꿈에서 물건을 훔치는 능력까지 모든 것이 수현에게 매력적이다.

결국 지후의 약점과 수현이 제시한 조건이 그를 팀원으로 만든다.


꿈을 공유할 수 있는 기계 드림캐스터.

이 기계가 상용화된 지 20여 년이 흘렀고 280억 개 이상의 꿈이 업로드되었다.

드림캐스터를 개발한 기업은 SOF 코퍼레이션인데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올라온 꿈 중에 깨어난 후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꿈이 있다.

이런 문재를 일으키는 꿈을 몽재(夢災)라고 규정하고, 몽재진압반을 투입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 부서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특수부대이다.

다른 사람의 꿈속에서 초월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각몽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후를 공격한 동동, 예니, 소라 등도 바로 꿈 속에서 자신만의 특수능력을 가진 자각몽자다.

물론 이 팀을 이끄는 수현도 아주 뛰어난 자각몽자이다.


기본적으로 문제가 되는 꿈은 인공지능 수키가 걸러낸다.

꿈을 체험한 후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것은 삭제를 한다.

물론 이 꿈을 몽재진압반에서 해결한다면 플레이어들이 다시 즐길 수 있다.

소설은 이 문제가 되는 꿈들을 해결하는 3팀의 활약과 그들의 사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각자의 사연과 문제가 되는 꿈 속의 화려한 모습들.

새롭게 참여한 지후의 놀라운 신체 능력과 그에게만 나타나는 다른 수키.

여기에 이 드림캐스터를 개발한 오재욱의 실종과 그를 찾으려는 수현의 노력.

꿈속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평범한 3팀원들.

꿈속의 화려한 풍경과 대비되는 밑바닥 삶의 모습들.

몽재진압반이 해결하는 각 사건들이 담고 있는 서로 다른 장르의 재미.

장편 소설 안에 각각 다른 장르 소설의 재미를 잘 버무려 놓았다.

마지막 대결 장면은 판타지 소설의 설정과 너무 닮아 있어 재밌지만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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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제3부 (2024 리뉴얼) - 신들의 신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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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3부작의 마지막 신들의 신비 편이다.

두툼한 분량과 편철 방식이 들고 읽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출간된 방식과 동일하게 3권으로 낸 것은 좋다.

물론 이 리뉴얼 이전에 양장본으로 나온 것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박스로 나와 소장용으로 놓아두기에는 이 리뉴얼 판이 더 좋을 것 같다.

2부까지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이란 것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나의 예상을 벗어난 전개와 마지막 부분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머리가 상당히 복잡했다.

좋은 쪽으로 해석한다면 앞에 나온 설정들이 조금 이해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그리스 신화와 수비학을 잘 버무려 놓았다.

미카엘이 신 후보생이 된 아에덴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이 모두 모인 곳이다.

전편에서 제우스를 만난 미카엘은 다시 아에덴으로 돌아와 결승전을 치른다.

열두 명의 신 후보생이 남아 있고, 이 중 한 명이 제우스의 산 너머로 갈 수 있다.

미카엘은 라울과 마지막 대결은 펼치지만 패한다.

그는 진 승부에서 재경기를 요청한다. 이때 제우스가 재경기를 도와준다.

반복된 경기에서도 미카엘의 돌고래족들은 패배한다.

이 경기는 제1지구의 세계대전과 닮아 있다.

돌고래족은 유대인들이란 사실이 분명해지고, 라울의 부족에게 진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는 구질구질하게 패배를 부정한다.

 

미카엘의 돌고래족이 진 것은 지구의 역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미카엘이 보여주는 행동은 결코 깔끔한 모습이 아니다.

그의 행위를 둘러싼 신들의 재판이 벌어지고, 그는 18호 지구의 소설가가 된다.

그 소설가의 모습 속에는 작가의 이미지가 살짝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신 후보생에서 인간으로 전락한 미카엘.

현실에 적응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소설 등으로 남기고자 한다.

그리고 이 지구에서 새로운 여인을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이 소설을 보면서 아주 짧은 시차를 두고 여인들에게 사랑에 빠진 그를 보고 놀란다.

너무 사랑에 헤픈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면 작가의 바람인가?

 

돌고래족의 신이었던 미카엘은 자신의 민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신의 권능을 보여주지도, 그의 형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수가 현재에 환생하면’ 이란 가정들이 떠올랐다.

신 후보생이었지만 전능하지 못한 그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그리고 이 지구에 내려왔을 때 만날 것이라고 예상한 인물과 만난다.

그와 만남을 통해 18호 지구와 1호 지구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이 부분에서 다음은 어떻게 진행될까 하는 순간 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3부작 중에서 가장 구성의 변화가 심하고, 복잡하다.

마지막 부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라 당혹스럽기도 하다.

 

신에 대한 소설이라고 하지만 너무나도 인간적인 신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이나 반신들이 등장한 것도 이런 설정 때문이다.

2부까지 읽으면서 등장하지 않은 신화 속 신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알뜰하게 그리스 신화를 소설 속에서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 신 후보생 이후 새로운 멕시코 신 후보생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럼 각 나라 혹은 민족으로 신 후보생을 뽑는다면 지구의 숫자는 얼마나 되어야 할까?

프랑스 신 후보생이 아시아 민족의 신이 되어 활약을 펼치는데 왠지 어색하다.

이런 저런 설정상의 문제들은 마지막 문장으로 이해가 된다.

다시 이 이전 작품인 <타나토노트>나 <천사들의 제국>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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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
백진호 지음 / 고유명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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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의 위작을 다룬 소설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위작과 진품에 대한 논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가가 자신의 손으로 그리지 않은 것도 진품인가 하는 것이 가장 기본 설정이다.

이 소설을 보면서 자연스레 조영남 화투 그림 사건이 떠올랐다.

화가가 부인한 그림에 대한 진품 논란은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사건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그림의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실제 소설 속에 고혼기 화백은 자신의 위작을 그리던 화가를 지켜보고 지시한다.

노구의 몸으로 붓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에게 이 짝퉁 화가는 최고의 손이다.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이런 그림이 진품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두 개의 줄기로 시작해 이어진다.

하나는 마약조직에 동료 형사를 잃은 강청식의 폭주와 늦은 일상이다.

다른 하나는 고혼기 화백의 80년대 작품을 새롭게 만들어낸 김지연 관장 등의 이야기다.

강청식 형사는 마약조직의 보스를 총으로 죽인 후 자해로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경찰에서는 이 사건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범죄자를 쫓는다고 집을 등한시한 그의 딸은 학교 폭력으로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딸과 엇갈리는 공간과 시간 속에 그의 삶은 조용히 가라앉고 있다.

이런 그에게 사건 하나가 떨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고혼기 위작 사건이다.

이전에 그는 천경자의 <미인도> 같은 사건 하나를 해결한 이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건 해결보다 다른 용도로 그를 쓰려고 한다.


김지연 관장은 소설 속 표현을 빌리면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고혼기 화백의 대표작인 ‘비속의 나신’의 모델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그를 발굴해 한국 등에 알린 관장이기도 하다.

늙은 화가의 전성기 작품이라고 소개된 그림은 수십 억에 팔린다.

그림이 감상의 영역이 아니라 투자의 대상이 된 현재 그의 작품은 좋은 투자재다.

당연히 많은 투자자들은 이 그림을 원하고, 그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 틈새를 갤러리 나래의 김지연 관장이 파고들어 전시를 기획한다.

이 전시회는 예상한대로 크게 성공하고 모든 작품이 팔린다.

위작의 문제는 이 그림을 산 한 부동산 부자가 위작을 말하면서 생긴다.


이 작품이 위작으로 감정이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80년대 사용한 물감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사용되는 물감이란 것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로 ‘그렇지’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 이전에 김지연 관장의 약혼자가 이 위작 작품을 지켜본 적이 있다.

이것을 본 그가 위작이 아니냐? 하고 물었을 때 김지연은 미술계에 있는 사례를 설명한다.

현대 미술에서 자신의 손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화가도 있다고 알려준다.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감성적으로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 위작 문제는 강청식에게 넘어간 후 더 엮이고 꼬인다.

그것은 바로 김지연의 연인이자 강력한 대권후보인 홍정훈 변호사 때문이다.

김지연을 통해 고 화백의 그림을 팔고, 경선을 위해 김지연에게 받았던 것이다.

홍정훈이 엮이면서 위작에서 정치 스릴러로 분위기가 바뀐다.


위작이란 제목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욕망들이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강직한 홍정훈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법 현실을 비판한다.

위작 사건을 통해 감상이 아닌 투기재로 바뀐 미술계의 민낯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다 보면 현재와 과거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현대의 예술론과 권력에 대한 탐욕이 뒤섞인다.

많은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넣었는데 아는 만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예상하지 못했고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 바람은 더 긴 분량으로 다루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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