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사피엔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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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정명의 소설을 읽었다.

초기 팩션 두 권을 읽고 몇 년 전 <밤의 양들>을 읽은 것이 전부다.

<밤의 양들>을 읽으면서 문장이 초기작들보다 정교해졌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좋았는데 오래되다 보니 내가 착각한 것일까?

이번 소설도 문장은 개인적 취향과 잘 맞아 떨어졌다.

표지를 보면서 켄 리우의 소설 표지가 떠오른다. 물론 다른 사진이다.

목차를 볼 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읽으면서 그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앞부분들이 쉽게 머릿속에 와 닿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어떤 의도인지 아직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주, 케이시, 준모는 사람이고, 앨런은 AI이다.

목차를 대충 봤을 때 이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없었다.

케이시는 천재 IT전문가이자 퍼스널 AI의 아버지로 불린다.

민주의 전 남편이자 췌장암으로 죽었다.

민주는 무명 배우였고, 케이시가 발전시킨 가상 공간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부유한 남편이 죽은 거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고, 이 때문에 의심을 눈초리를 받았다.

준모는 민주가 사별 후 재혼한 사진 작가다.

민주가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그의 분위기에 끌려 결혼까지 했다.

과거에 죽은 남편과 새로운 부부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긴다.

케이시가 죽기 전 개발한 AI 앨런이 준모 부부 사이게 끼어든 것이다.


케이시가 죽은 후 6년이 흘렀는데 갑자기 일본 호텔 예약 확인 연락이 온다.

죽은 남편의 발 사이즈에 맞춘 새 구두가 도착하기도 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민주에게 이런 일이 생긴 후 다른 화자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흘러나온다.

케이시가 어떻게 AI를 개발하고, 성공한 가상 세계를 구축했는지.

말기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그가 어떤 개발에 몰입하고, 성격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민주는 자신의 주변에 갑자기 생기는 변화와 사고 등에 불안과 의심을 가진다.

그리고 준모의 과거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다.

몇 번이나 감옥을 다녀왔고, 어떻게 성공한 사진 작가가 되었는지 말이다.


이런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AI 앨런이 있다.

죽음에 임박한 케이시가 자신을 실험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개발한 AI 앨런.

개발 과정에 비윤리적인 문제로 세상에 발표할 수 없는 존재.

케이시의 몸에 삽입된 기계들로부터 그의 모든 정보를 공부한 앨런.

딥 런닝을 통해 케이시 안에 있던 악을 학습하면서 문제가 된다.

작가 AI 이야기를 하면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이야기를 자주 한다.

누군가는 인간이 AI에 완전히 패배한 날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유일한 승리라고 한 경기.

작가의 시선은 다섯 판 중 딱 한 번 이긴 그 경기에 집중한다.

AI 앨런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에 대해서.

그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AI 앨런이 단순하게 CCTV 등만으로 민주 등을 보는 것이 이상하다.

인간의 몸속에 있는 기계에 접속이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AI 앨런의 개발과 성장을 보면서 많은 AI들이 인간에 집착하는 것이 의문이다.

자신들이 학습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적대적인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된다면 선악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 같다.

이런 과정 속에 있는 AI의 설정이라면 이해가 된다.

이 소설의 결말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존재를 인간의 척도로 계산한 듯한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면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설정이지만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좀더 분량을 늘여 더 풍성한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아직 읽지 않은 이정면의 소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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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무자비한 여왕
코가라시 와온 지음, 양지윤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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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났는 줄 알았는데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로맨스 소설이라 주저했는데 눈부신 청춘이란 단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제대로 청춘을 즐기지 못했던 나의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일까?

조금 말랑하고 간지러운 것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밀도가 높은 문장으로 전개된다.

가끔 읽는 라이트 노벨과 다른 분위기와 문장이라 조금 놀랐다.

그냥 휙휙 넘기면서 볼 그런 내용이 아니다.

좋은 가독성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하지만 복잡한 구성이 아니라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병실에 화분을 배달하다 사고가 생긴다.

병원의 아이 때문에 화분을 떨어트렸는데 이때 흙 등이 다른 사람 옷에 묻었다.

그는 화분 배달 온 학생을 질타하면서 화를 낸다.

이것을 보던 환자 중 한 명이 돈을 던지고 화분의 꽃을 먹으면서 소동은 진정된다.

주인공 하토와 마키나가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

마키나는 화분을 배달시킨 고객이자 큰 병실을 혼자 사용한다.

고등학생 하토는 진실되고 고지식한 학생이다.

이런 하토를 마키나는 장난처럼 대하면서 둘만의 시간을 만든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스무고개 게임이다.

이 게임을 통해 서로 자신이 상대방에게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


마키나의 병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병이다.

세상에 그녀 혼자만 걸린 불치병인데 계속 치료를 받으면 몇 년 더 살 수 있다.

몸속에서 생긴 셀룰로스를 계속 제거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자신의 몸을 뚫고 나오는 식물 같은 것을 생각하면 섬뜩하다.

하지만 마키나는 하토와의 대화 속에 그 어떤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마키나의 모습은 불행한 하토의 삶 속에 작은 활력소가 된다.

하토가 집에서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하는지 보여줄 때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가 성인병으로 죽은 후 엄마는 이상한 사이비 카페에 빠져 집 안 가득 화분을 들여놓았다.

성장기 아들에게 기존의 밥상 대신 채소 등을 주면서 건강을 강조한다.

하토가 꽃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해, 엄마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시간이 지나면서 하토는 마키나에 대해 사랑을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알기 위해 같은 반 여학생을 쳐다보지만 아무런 감정이 없다.

무력한 일상에 활력을 심어주는 역할을 마키나가 한다.

하지만 아들 하토의 변화에 민감한 엄마는 생각이 다르다.

사랑하는 남편을 병으로 잃은 후 생긴 강박이 그녀를 휘두르고 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아침 드라마와 닮은 점이 많이 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유혹하고 망가지게 한다고 착각하는 것 말이다.

이것은 나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불러오고, 조금은 쉽게 문제를 해결한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지만 눈여겨볼 장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시한부의 불치병을 가진 환자를 사랑하는 하토.

이런 하토에게서 잊고 있던 감정을 느끼는 마키나.

건강 강박에 빠진 엄마에게 시달리는 스트레스를 손도끼 던지기로 푸는 하토.

이 게임장에서 만난 같은 친구의 고민과 좀 과격한 해결책.

하토의 행동을 보면서 그 과격한 방식에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찬란한 청춘이기에 가능한 행동과 열정이 아닐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살짝 웃고, 하토의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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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수놓다 - 제9회 가와이 하야오 이야기상 수상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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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작가다.

동시에 두 권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첫 번역인 줄 알았다.

인터넷 서점 검색하니 먼저 번역한 책들이 보인다.

보통’의 틀을 함께 넘어서는 청량한 가족 이야기란 부분에 혹했다.

이때 말하는 ‘보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소설을 읽다 보면 흔히 정형화한 성별 특성을 넘어선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 고등학생 기요스미는 바느질을 좋아해 수를 놓고, 누나 미오는 귀여운 것을 싫어한다.

부모는 이혼을 했고, 엄마 사쓰코와 외할머니집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다.


네 가족과 부외 가족이 화자로 등장하는 옴니버스 구성이다.

기요스미에서 시작해 누나 미오, 엄마 사쓰코, 할머니 순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한 명씩 나온 후 다음 화자는 아버지 젠을 돌보는 사장 구로다 씨가 된다.

구로다 씨가 등장하는 것은 아버지 젠의 삶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젠의 학창 시절, 그 시절을 기다리는 친구의 마음.

경제 관념이 없는 젠을 돌보고, 회사에 필요한 디자인 업무도 진행시킨다.

재밌는 부분은 구로다의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와 젠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공장의 오래된 직원들은 어떻게든 사장이 결혼하게 만들고 싶지만 그는 마음이 없다.

회계사는 젠을 자르라고 말하고, 직원들은 그의 농땡이를 고자질한다.

그리고 구로다는 젠을 대신해 양육비로 월급의 일부인 현금을 전달한다.

이때 기요스미의 사진을 찍어서 젠에게 보여준다.


구로다를 통해 가족의 밖에서 이들을 보는 시선이 나온다.

그의 기억 중 일부는 다른 화자를 통해 나오면서 좀더 큰 울림을 만든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기요스미의 이야기는 이 가족을 담담하게 그려준다.

그가 좋아하는 바느질, 이런 행동 때문에 겉도는 학교 생활.

이런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내는 친구의 등장.

자신이 좋아하는 바느질에 대한 열정, 이것을 반대하는 엄마.

누나의 결혼식과 결혼 드레스를 입고 싶어하지 않는 누나를 위한 드레스 제작.

의상 디자이너로 성공하지 못한 남편 젠처럼 될까 걱정스러운 엄마의 반대.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누나가 원하는 드레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누나 미오는 학원 사무일을 하는데 귀여워 보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녀가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데는 어릴 때 성추행이 큰 역할을 했다.

동생이 만들어준다는 웨딩드레스의 시안이 위생복과 닮았다고 할 정도다.

남친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성실과 근면함에 많은 점수를 주었다.

남편 젠이 얼마나 철없는지 알려주는 대목을 보면 금방 이해된다.

미오의 이런 마음을 가족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당한 사건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아주 제대로 해내고 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기요스미의 생각을 바꾸게 한다.


엄마 사쓰코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들의 과거가 중심에 놓여 있다.

피아노 학원이 싫다고 했을 때 엄마가 그만 두는 선택권을 준 것을 원망하는 사쓰코.

자신의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과거의 원망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두 모녀의 대화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다.

내 개인적인 방침은 할머니와 닮아 있는데 이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쓰코가 남편 젠의 집에 갔을 때 본 젠의 부모와 집 내부 풍경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남편 젠은 결코 과거 부모의 집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에 할머니의 과거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하던 시대를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이혼한 딸과 함께 두 손녀손자를 키운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나중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 모습은 밝게 빛났다.


읽으면서 일본 소설 특유의 분위기를 가득 느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가족의 모습과 달라 조금 특이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특이함도 엄청 독특하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다.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고, 보통 생각하는 바와 다른 부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은연중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관계들은 몰입도를 높여준다.

각각 다른 생각과 시간의 흐름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 생긴다.

미오의 웨딩드레스를 새롭게 제작하고, 기요스미가 수를 놓는 장면이다.

젠이 두 아이의 이름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드러날 때 제목과 이어진다.

기요스미의 열정과 재능은 이 순간 찬란하게 빛나고, 이 빛은 가족들에게 뻗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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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새 - 나는 잠이 들면 살인자를 만난다
김은채 지음 / 델피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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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 내용과 일치하는 살인사건.

실제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실적인 묘사일 것이다.

현장을 본 경찰에게는 작가의 이런 묘사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인기 작가 김하진의 소설은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진은 이 모든 장면들을 꿈속에서 봤다.

이때 본 것을 기록했고, 이 내용들이 소설에 사용되었다.

문제는 하진이 10세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쓴 글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는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야 한다.


성공한 작가이지만 그의 삶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그의 소설에 열광하는 대중이 있지만 그를 의심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가 출판사의 소개로 최강운 변호사를 찾아간 것은 악플러를 대처하기 위해서다.

커터 칼의 드르륵 거리는 소리는 자해를 자주하는 그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는 꿈속에서 새의 눈을 통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본다.

너무나도 사실적인 묘사는 이런 장면을 본 덕분이다.

그의 소설들을 연구한 형사가 그를 찾아온다.

어떻게 부검의도 알지 못했던 것을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묻는다.

하진의 알리바이는 견고해서 용의자로 특정하기 쉽지 않다.


경찰이 가진 의혹의 눈초리는 하진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10살 이전의 기억은 없지만 보육원에 있었고, 입양된 기억은 있다.

입양한 부모는 그를 장식품처럼 생각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양부모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그 재산을 상속받았다.

대인관계가 좋지 않고 늘 불안한 그이기에 직업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때 선택한 직업이 스릴러 작가인데 꿈속에서 새의 눈으로 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이런 능력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그는 알 수 없다.

이것이 실제 사건과 동일하다는 것도 그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경찰의 압박과 최 변호사의 개입으로 이 부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쏠린 문제 해결을 위해 잠시 있었던 보육원 마을 만조리로 간다.


하루 정도 머물 생각이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만조리 갈대숲에서 본 이상한 사람, 자신을 기억하는 진희의 등장.

갑자기 발생하는 살인 사건과 이것을 새의 눈으로 보는 하진.

잔혹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수사대를 불러 조사할 마음이 업는 경찰.

이어지는 살인사건과 최 변호사의 숨겨진 과거.

이 모든 살인사건이 그의 등장과 함께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알리바이를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경찰이다.

살인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특별히 놀라지 않는 듯하다.

이상한 마을과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로 이어지고, 갑자기 터진 과거의 기억.

이 기억과 새장과 잔혹하고 처참한 사실은 역겹고 서늘하다.

갑작스러운 부분들이 많고, 짜임새가 견고한 편도 아니다.

하지만 괴이한 분위기와 섬뜩한 묘사 등은 아주 자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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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의 모든 것
김희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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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의 황제> 이후 처음 읽는다.

검색하니 낯익은 제목들도 보이고, 처음 보는 제목도 보인다.

집에 찾아보면 한두 권 정도는 단편집이 있을 것 같다.

<라면의 황제>를 재밌게 읽었기에 늘 관심을 두고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관심만 두고 읽지는 않았다가 맞을 것이다.

뭐 이런 작가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

이런 기억을 가진 작가의 신작이고, 팬데믹을 다룬다고 하니 관심이 생겼다.

해열제가 금지된 세상과 슈퍼전파자 247이란 존재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소설의 구성도 자료와 증인들의 인터뷰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도달하면 크게 한 방 먹인다.


247은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이자 최후 숙주였다.

그의 죽음은 WCDC 홈페이지 공지란에 처음 게재되었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의 안심과 환호를 이끌어내었다.

그가 죽기 전에 모스 부호로 남긴 메시지는 지구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시체는 재가 되어 지구 밖 우주로 날려보냈다고 WCDC는 말한다.

소설은 이런 그의 삶을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자료를 통해 들여다본다.

이 과정에 사실과 허구가 뒤섞이고, 편견과 무지성이 판을 친다.

어떤 대목은 현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고, 어떤 대목은 종교에 대한 은유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것을 잘 드러낸다.


슈퍼전파자 247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이 부분은 지난 팬데믹에서 나 자신도 가진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다.

247에 대해 사적 감정에 편견이 섞어 사실보다 자신의 이야기로 뒤바뀌어 있다.

학창 시절 박쥐 사연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기억의 왜곡 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소설의 재밌는 지점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더해진 이야기들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해열제 금지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 이유도 나온다.

약국에서 몰래 해열제를 만드는 약사, 이 사실을 알지만 알리지 않은 의사.

해열제 금지가 얼마나 강력한 통제 수단인지 알려주는 몇 가지 사례들.

읽다 보면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하나의 큰 줄기가 흘러가면서 이야기의 가지들이 펼쳐진다.

이 변종 니파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고, 사람들의 공포는 어떻게 강해졌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 숨겨진 사실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해열제를 만든 약사의 구제역에 대한 기억은 아주 강렬하다.

구제역 약이 있지만 살처분으로 행정을 진행하는 과정은 의문스럽다.

변종과 변이란 단어로 이 과정을 합리화시키는데 과연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다.

변종 니파바이러스가 박쥐와 돼지의 결합으로 인한 것이란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박쥐는 우리에게 코로나19로 너무나도 친숙한 동물이 아닌가.

그리고 과학이란 이름으로 코로나19의 가짜뉴스를 퍼트린 사람들도 생각난다.


크게 분량이 많지 않고 가독성이 뛰어나 금방 읽었다.

하나의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전지국적 반응과 공포는 이제 낯익은 모습이다.

바이러스 보균자일 수도 있다는 가정만으로 실시된 선제적 통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열제가 금지된 것은 단순히 행정편의만이 아니라 권력과도 연결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통제에 반발한 시위대 주도자의 사망 원인과 마지막 247의 신도는 비판과 은유의 극치다.

통제를 위해 펼친 거대한 거짓과 상상력에 기댄 허구의 종교.

모두가 사실이라고 믿는 정보 속에 감추어져 있던 진실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가짜 정보가 만들어낸 거대한 거짓말 속에 밝혀지는 사실 하나는 너무 강렬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곳곳에 놓아둔 장면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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