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춤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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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지만 난해한 소설집이다. 열아홉 편의 단편들이 각각 다른 분량과 분위기를 지녔는데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량의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많고, 어떤 것은 너무 짧아 어! 하는 순간 끝나기도 한다. 가끔은 그 결말이 명확한 실체를 보여주지 않아 그 불친절함에 화가 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열린 결말이지만 왠지 이야기를 중간에서 뚝 끊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다른 단편에서 앞의 결말을 보고 연작인가?, 하는 의문을 품기도 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책 끝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일부분 담겨 있다.

 

읽으면서 짝이 되는 연작이 아닐까 생각한 작품들이 몇 편 있다. 첫 작품 <변심>과 <오해>가 약간의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면 <충고>와 <협력>은 노골적으로 이어진다. <변심>에서 치밀한 설정이 뭔가를 보여줄 듯하다가 끝나 ‘뭐지?’ 하는 황당함을 느꼈다면 <충고>는 어떤 결말일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결말을 보여주는 <협력>에서 반전의 재미를 만끽했다. 반면에 <오해>는 <변심>이 보여준 치밀함과 장치들을 결코 넘지 못했다. <타이베이 소야곡>과 <화성의 운하>도 짝을 이루는데 영화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던 시절에 너무나도 유명했던 에드워드 양을 모델로 썼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그의 작품 목록을 검색해봤다. 그 유명한 <고령가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잘 모르고, 본 영화는 더 없다.

 

짝을 이루는 작품은 아니지만 SF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들도 눈에 들어온다. <주사위 7의 눈>이나 <소녀계 만다라>나 <도쿄의 일기> 등이다. 무의미한 토론을 뒤집는 <주사위 7의 눈>의 주장이 흥미로웠고, <소녀계 만다라>에서 만물이 조금씩 움직이는 세계에 사는 학생들의 모습과 일상에서 놀라운 상상력을 봤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욕이 나왔다. 이 불친절함이란... 미래의 일본을 상상하면서 쓴 글이 섬뜩하면서도 재미있었던 <도쿄의 일기>는 얼마나 지금 일본의 현실을 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둘이서 차를>이나 <나와 춤을> 같은 작품은 모델이 되는 인물이 누굴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론 답은 작가의 글 속에 있다. 음악과 춤이 짝을 이룬다는 점과 그 속에 담긴 열정과 애정이 쉽게 몰입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변명>과 <극장에서 나와>는 이야기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었고, 그들의 변화가 순간적으로 가슴 깊이 와 닿지 않았다. <성스러운 범람>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나>와 <꼭두서니 빛 비치는>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취향과 맞지 않아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유>의 황당한 이야기가 가볍게 읽혔던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양한 설정과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었지만 그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그리움과 열정은 같다. 분량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쓴 듯한 느낌이다.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내는 장면을 볼 때는 노스탤지어의 작가라는 명성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 인간과 동물이 정보를 나누고, 교감을 하고,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긴다. 이렇게 열아홉 편은 독자의 취향을 저격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열여덟 편이다. 나머지 한 편은 표지에 있는데 조금 읽기 불편하다. 다른 단편집과 이어지는 작품들도 있는데 저질 기억력과 아직 읽지 못한 단편들로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 세계를 잘 표현해주는 작품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고? 읽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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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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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여행이라니 대단하다. 그녀가 다녀온 나라를 보면 이 금액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비행기 가격만 해도 350만원이 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책을 펼치면 그녀가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가격으로 발권했는지 보여준다. 4년 간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일정을 짜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지간한 열정과 준비가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여행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떠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부분이 더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갈 수 없는 수많은 변명만 늘어놓는 것을 보면 더욱더.

 

적은 금액으로 가는 여행은 풍족해질 수가 없다. 숙소와 식사와 교통수단 등이 모두 최하로 갈 수밖에 없다. 인도를 떠나 모르코로 가면서 카우치서핑으로 숙박비를 줄였지만 그외 비용은 계속 지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하게 된 것이 아마도 현지인처럼 먹고 사고 절약하는 여행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는 수많은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도움이 있었다. 이 여행기를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나도 떠나고 싶다고 마음먹게 만든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런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일 것이다. 실제 낯을 많이 가리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닌 내가 이 책의 저자처럼 생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에어아시아로 도착한 말레이시아. 이곳은 인도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만난 인연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도착한 인도. 인도 여행에 관한 방송이나 책을 읽을 때면 가고 싶은 마음보다 가지 않을 이유만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예전에 긴 시간이 생기면 꼭 가보고 싶었던 배낭여행지가 인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변화다. 이곳보다 더 한 곳으로 남미를 꼽는 사람도 있다. 대충 알면서 괜히 겁만 먹은 것 같은데 계속해서 이런 책이나 방송을 듣는 것을 보면 그 바닥에는 그곳을 가고 싶은 열망이 아직 있는 모양이다. 실제 저자도 쉼 없이 인도의 나쁜 점을 말하지만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지 않은가. 아마 그곳에서 만난 너무나도 인정 많고 좋은 사람들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가 몇 나라를 돌고 어떤 것을 보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실제 그런 내용을 그렇게 많이 다루지도 않는다. 머문 나라만 따지면 열 나라도 되지 않는다. 말레이시아, 인도, 모로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이집트, 태국 등이 전부다. 패키지로 도는 사람들이라면 10일 만에 유럽 10개국을 그냥 도는 사람도 있다. 비교되는 여행이다. 아니 그녀의 여행은 관광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돈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루 쓸 예산을 정해놓고 싼 숙소를 구하러 다니고, 가장 저렴한 현지 식당에서 많은 이물질과 함께 식사해야 했던 일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것은 더 분명하다.

 

적은 금액과 긴 여행을 무사히 다녀왔지만 이것은 어쩌면 행운이 많았던 덕분이지 모른다. 저자 자신도 철저한 준비와 천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무식하게 용감했고 무모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겁쟁이인 것 같은 자신의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너무나도 넓고 깊은 강을 건너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큰돈이 아닌 여행 경비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말할 때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늘어놓는 안되는 이유의 변명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먼 곳을 과감하게 다녀오는 회사 직원들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책은 각 나라 각 도시에서 만난 친구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풍경은 실제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긴 여행에는 언제나 향수병이 찾아온다. 그녀도 그때의 외로움을 심하게 겪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좋은 친구들이 나타나 그 외로움을 씻어준다. 그리고 이 여행은 자신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된 것도 아니고 멋진 풍경이나 문화재를 보기 위한 것도 아니다. 가장 핵심은 역시 사람들이다. 자신이다. 여행은 언제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아플 때면 왜 이런 여행을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지만 낫게 되면 또 사람들 속에서 자신을 찾게 된다. 만약 여행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이 책 앞에 나오는 저자의 기록을 참고하면 된다. 물론 엄청나게 많은 다른 정보를 읽고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가이드북을 만들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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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 박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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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높이 올라간 산은 지리산 천왕봉이다. 자주 올라간 산은 북한산이다. 한때 몇 달 동안 북한산을 자주 올라간 적이 있다. 처음 갔을 때 산 잘 타는 친구를 따라가다 쥐가 나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고생했지만 나중에 홀로 올라가면서 생각보다 쉽게 정상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몇 번 동안 나의 주말은 북한산, 관악산을 올라가는 것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것은 아주 한시적이었다. 하지만 산을 올라가면서 느꼈던 그 기쁨과 즐거움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회사에서 단체로 가까운 산을 올라가면 튀어나온 배 때문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호흡이 엄청 가빠오지만 말이다. 이런 낮은 산의 짧은 경험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나의 경험은 이들에게 뒷동산을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포로들은 케냐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지 않게 되면서 생명의 위험은 사라졌지만 가장 중요한 자유가 없어졌다. 이 포로수용소가 감옥 같은 밀착 감시 아래에 있는 곳은 아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의 결과를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이 수용소 생활이 축복일 수도 있었다. 많은 대문호들이 감옥에서 작품을 구상하고 쓴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수용소에서 시험을 준비하고, 외국어를 배우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군의 특수성에서 비롯한 다양한 직업군 중에서 예술가도 있었다. 하지만 감옥과 달리 나갈 날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수용소 생활을 힘들게 만들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정체된 삶이 주는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다. 이런 삶에 열정과 의지를 북돋아주는 일이 생겼다. 바로 케냐 산 등반이다.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소설로 착각했다. 현실에서 수용소를 나와 등산을 한 후 다시 수용소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열정과 의지라면 탈출해서 다른 곳으로 가면되지 않는가 하고. 그런데 이 놀랍고 황당한 일이 실제 발생했던 일이다. 포로수용소에 갇힌 세 명의 남자들이 케냐 산을 등반 한 후 다시 감옥으로 무사히 돌아와서 남은 기간을 보낸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수용소를 탈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려준다. 몇 명의 탈주자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공감했다. 하지만 이들이 케냐 산을 오르기 위해 어떤 사전 준비를 하고, 장비를 만들고, 식량을 모았는지 봤을 때 혹시 이들이 탈출을 시도했다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물자가 제한된 포로수용소. 대규모 인원이 수용되면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탈출 외에 그들이 기획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무기력한 일상이다. 이때 저자는 눈앞에 드러난 케냐 산봉우리를 보게 된다. 그의 마음이 빼앗긴다. 황당하고 위험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이 바로 케냐 산 등반이다. 수용소에 갇힌 상태에서 그는 등반 준비를 한다. 만년설이 깔린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두툼한 옷이나 피켈이나 아이젠, 텐트 등의 등산 장비가 필요하다. 수용소가 그들의 등반을 응원할 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 모든 물품을 그들이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몰래. 동시에 같이 갈 동료도 모아야 한다. 첫 동료로 의사인 귀안을 맞이했지만 세 번째 동료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의 초반부는 바로 이런 준비 과정과 수용소 풍경을 묘사하는데 그들의 열정과 의지가 얼마나 단단하고 대단한지 잘 드러난다.

 

어렵게 세 번째 동료로 엔초를 받아들였다. 이제 그들은 준비한 물품들을 들고 수용소를 벗어나 케냐 산을 향해 걸어간다. 원래 일정은 14일 정도였는데 실제는 18일 정도 걸렸다. 정상적인 체력에 풍부한 물품을 지원받았어도 성공할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은데 그들은 용기 있게 도전했다. 이 용기의 일정 부분은 몰라서 생긴 것이다. 책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지만 그것이 현실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잡혀 다시 수용소 감옥에 갇힐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직접 쓰레기 더미를 뒤져 힘들게 만든 장비들과 조금씩 아껴먹고 남겨둔 식량을 가지고 이들은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예상했던 낭만적인 모습은 금방 사라지고 난관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그래도 그들의 의지와 열정은 꺾이지 않는다.

 

실제 그들이 처음 목표했던 바티안 봉은 오르지 못했다. 날씨도 준비된 물품도 그들의 체력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지원을 받은 등산가도 쉽지 않은 곳이 바로 이 바티안 봉이다. 하지만 이 바티안에 대한 그들의 도전이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순수하고 위대한 일이다. 최선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차선은 달성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들에게 가장 먼저 닥친 문제는 하산과 허기와 체력 저하 등이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힘겹게 걷는 것을 보면서 한때 지리산을 내려오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잠시 와 닿았다. 등산 용어를 잘 몰라 그 긴박감이나 상황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위험에는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황당하고 미친 듯한 등반이지만 ‘포로수용소의 고리타분한 삶에 대한 반항’과 ‘무기력함 속에서도 의지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었음을 나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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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카페
오정은 지음 / 디아망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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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누구나 겪는 주변의 물건이 사라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즉 살다가 양말 한 짝, 볼펜 한 자루 잃어버리는 일을 소재로 글을 썼다는 점이다. 여기에 전직이 의심스러운 78세의 할머니 김춘분 여사에 대한 설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물건이 사라지는 일과 그 물건이 나타나는 곳에 살고 있는 김춘분 할머니의 조합은 어릴 때 즐겨 읽었던 버뮤다 삼각지대의 미스터리를 떠올려주었다. 이런 설정들이 먼저 다가온 후 가볍고 경쾌한 캐릭터와 이야기들이 빠르고 부담 없이 책을 넘기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SF, 판타지적인 설정을 제외하면 로맨스 소설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진지하고 무겁게 진행하는 것이 아닌 로맨틱코미디에 더 가깝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여주인공 기연이 있고, 주변에는 그녀와 연결된 부자집 아들이자 동창생인 우완과 붉은귀거북의 인연으로 그녀를 매혹시킨 카페의 주인이자 일명 미시시피로 불리는 남자가 있다. 여기에 감초처럼 등장하여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김춘분 할머니가 있다. 이들은 기연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사라짐 때문에 연결된다. 아니 우완은 사라짐이 아니라 그녀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남자들 생각이 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가 하는 확신을 가질 정도다.

 

기연과 우완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앞부분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면 중반에는 납치와 살인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결코 무겁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엉성하다. 코믹영화에 가끔 나오는 약간 떨어지는 악당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기연 주변에 모여 뭔가를 찾는데 그 비밀이 조금 황당하다. 아니 많이 황당하다.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사람에게 생겼고, 이것이 물건을 한동안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블랙홀은 당연히 기연이고, 화이트홀은 우완이다. 우완이 느낀 남자에 대한 감정들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알려주는 설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설정을 아주 다양하게 사용하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으면 상당히 재미있다.

 

라디오와 시나리오 작가를 한 이력 때문인지 문장은 경쾌하고, 장면전환은 빠르다. 곳곳에 유머 코드를 집어넣어 지루함을 막으려고 했다. 덕분에 좋아하는 장르가 아님에도 빠르게 읽었다. 엄청난 일들을 너무나도 쉽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이 소설이 얼마나 판타지적인지 알 수 있다. 기연이 자신이 일시적으로 얻은 능력을 통해 벌이는 일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그리고 우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들은 노골적으로 코미디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0대의 사장도 놀랍지만 그 대신 대표이사로 추대된 인물은 더 놀랍다. 작가 자신도 이 사건을 두고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을 말하는데 의도적인 패러디라고 말하는 듯하다.

 

깊이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지만 소소한 정보와 지식들은 곳곳에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제목부터 벌써 카페가 들어가 있지 않은가. 카페 주인 미시시피의 외가가 커피 농장을 경영하고, 그도 관심이 많다. 당연히 커피에 관한 정보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과 가공의 비율을 적절하게 조절해서 상황을 만들고, 이것을 유쾌하게 풀어내면서 독자가 고민할 거리를 원초적으로 제거했다. 아마 이런 내용과 구성들은 라디오 작가를 하면서 닦은 실력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주인공의 나이가 스물아홉 살로 정하고,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것으로 만든 것을 보면서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살짝 떠올랐다. 상관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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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련
미셸 뷔시 지음, 최성웅 옮김 / 달콤한책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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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한 마을에 세 명의 여자가 살고 있다.”는 나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그 세 여자를 심술쟁이, 거짓말쟁이, 이기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것 단 하나를 말한다. 바로 지베르니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그들은 여든이 넘었거나 서른여섯 살이거나 곧 열한 살이 되는 나이다. 곧 열한 살이 되는 아이 파네트 모렐은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중간은 스테파니 뒤팽으로 가장 영악했으며 첫 번째 여자는 가장 단호했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 도입부는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뒤적이게 되었는데 하나의 이야기 속에 계속해서 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정원 지베르니. 이곳은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탄생시킨 마을이다. 이 마을이 바로 연쇄살인의 무대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소재는 바로 인상주의 화가 모네와 그의 작품 수련이다. 책을 읽기 전 모네가 현대 회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수련 시리즈만 30년 동안 그렸다는 것은 몰랐다. 한 명의 위대한 화가가 한 마을에서 30년 동안 같은 시리즈를 그렸다면 많은 사람들이 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관광객일 뿐이다. 실제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세 여자는 그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새벽에 한 남자가 살해당한다. 그의 이름은 제롬 모르발이다. 안과 의사이자 바람둥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지베르니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살인사건이 아니다. 새롭게 그 마을 경찰서장이 된 로랑스 셀레낙과 그의 비서격인 실비오가 이 사건을 조사한다. 기본적으로 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다루는데 이 사이사이에 세 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그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파트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선생 스테파니,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는 노파가 이 경찰들의 수사와 뒤섞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점의 변화가 갑자기 바뀐다. 경계가 모호한 부분이 자주 두드러진다.

 

제롬의 몸에서 발견된 엽서에 쓰인 글은 아라공의 시다. 제롬이 모네의 그림에 광적인 관심을 보였던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고가의 모네 그림을 겨우 안과 의사가 살 수는 없다. 그리고 형사 앞으로 전달된 제롬의 정부인 듯한 여자들 사진이 의문을 더한다. 누가 그를 죽였을까? 사진 뒤에 적힌 숫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새벽에 넵튠이라 불리는 개와 돌아다니는 노파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그 노파가 범인일까? 파네트의 아버지는 누굴까? 스테파니는 제롬과 어떤 관계일까? 수많은 의문들이 교차하고 엮인다. 눈앞에 보이는 관계 속에서 범인과 이유를 찾으려고 눈을 부라린다. 그 답은 작가의 트릭 속에 꼭꼭 숨어있다.

 

세 여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면 경찰서장 로랑스의 수사는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 그는 제롬의 엽서 때문에 학교에 왔다가 스테파니의 미모에 반한다. 그의 마음과 눈은 이제 스테파니를 향한다. 실비오가 단서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수사를 한다면 로랑스는 직관에 의한 수사를 한다. 이 둘의 조합이 생각보다 유기적이고 잘 어울린다. 형사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수사를 할 때면 새로운 증거물이 나온다. 이 증거물은 파네트의 친구와 관계가 있다. 하루의 이야기 속에 이들이 모두 등장하여 하루의 일과를 마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속에 계속해서 모네와 그의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이 소설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의문을 던져준다. 모네의 숨겨진 그림이 또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사실 이 작품은 구성 자체가 하나의 트릭이다. 한 번 읽고 그 구성이나 숨겨진 설정을 파악하기는 무리다. 읽으면서 느꼈던 이상한 점들이나 전혀 느끼지 못한 어색함들이 잘 어우러져 한 편의 미스터리와 사랑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의 열정과 광기에 대한 소설이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이 거대한 트릭에 대한 호불호가 떠오른다. 이전에 일본 미스터리에서 처음 이런 설정을 만났을 때 욕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것은 공정한 대결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설정에 많이 관대해졌지만 미스터리로서는 점수를 그렇게 놓게 줄 수 없다. 하지만 마지막 쪽에서 품어져 나오는 사랑의 떨림과 기대와 흥분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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