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노 요코식 공감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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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 몇 명의 일본 여성 작가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사노 요코다. 이미 고인이 된 작가인데 조용히 인기를 얻고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 에세이에서도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글을 봤고, 다른 곳에서도 심심찮게 만난다. 사노 요코의 대표작인 듯한 <백만 번 산 고양이>의 표지는 본 적이 있지만 그녀의 책을 실제로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기에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감각적이고 솔직한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자만 맞았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언제 출간한 책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저작권을 보니 1996년이다. 그런데 책 후기에 나온 맺음글은 1987년 3월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1982년과 1986년 사이에 쓴 것이란 표시가 있었는데 맺음글로 인해 이 의문은 풀렸지만 출판연도는 의문이다. 흔한 재간된 판본을 가져와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연도 표시가 없는 글들도 자주 보이는데 이것은 또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과 의문은 읽는 동안에는 잘 들지 않았다. 다만 한 에세이가 끝나는 순간에만 잠시 떠올랐다.

 

모두 다섯 장으로 나누었다. 이 구분에 어떤 의미가 있을 텐데 왠지 깊이 파고들기가 귀찮다. 다만 마지막 5장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해설 등으로 채워져 있어 쉽게 구분이 된다. 그런데 이 5장이 나의 호기심을 왕성하게 자극한다. 낯익은 작가 이름은 다나베 세이코가 유일하지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도 한 번 찾아 읽고 싶어진다. 이렇게까지 누군가가 극찬을 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의 시선을 끈다. 그리고 헨리 밀러가 이렇게 많은 결혼을 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의 사랑과 그를 이용하려고 한 여덟 번째 아내 이야기도 궁금하다.

 

작가는 1938년 북경에서 태어나 패전 후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읽다보면 중국 사연이 나오면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과거가 얼마나 자주 이 에세이에서 반복되는지 보면서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가 중국에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전병을 다시 재현해서 이제는 시골아줌마가 된 엄마에게 만들어줄 때, 그 당시 그녀처럼 아들이 옆에서 밀가루로 장난칠 때 가슴이 가장 뭉클했다. 단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했을 때 더욱.

 

정말 인상적인 글들이 많다. 밑줄을 주욱 긋고 싶은 글들이 가득하다. 의지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지탱했다고 했을 때 놀라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너무나도 솔직한 표현에 놀라기도 한다. 또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고 이 다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요된 모성 신화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모습에 깜짝 놀라면서도 자신의 아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본다. 물론 그녀가 못생겼다고 한 아기의 엄마는 또 다른 사랑을 표현했지만. 이런 솔직한 표현들은 조금 늘어지는 듯하고 산만한 글들 속에서 긴장감을 풀어주고 잠깐 웃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한 글은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도 교사도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다.”란 부분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확한 지적인가! 자기 아이는 특별하다고 외치는 수많은 부모들이 실제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현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들 대부분은 나처럼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이 된다. 어쩌면 부모들의 속내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시하고 평범한 어른이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길 바라는 것. 한 가지 의문을 달자면 교사가 과연 죽을 힘을 다했는가 하는 부분 정도랄까.

 

40대의 그녀와 다른 나이의 그녀가 쓴 다른 글을 읽고 싶어지는 것은 이제 나도 그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가끔 이야기하는 아줌마들의 솔직한 이야기처럼 아주 낯익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용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 여름을 처음 겪은 듯한 한국인이 표현한 말에서 깜짝 놀라지만 왠지 그녀는 담담해 보인다. 치매 걸린 큰어머니 에피소드는 몇 번 나오는데 낯설지 않다. 어딘가에서 본 듯하다. 친척 장례식장에서 그녀가 느낀 비슷한 외모로 인한 인상은 근래에 다녀온 장례식장을 잠시 떠올려보게 만든다. 이런 친숙함은 그녀가 솔직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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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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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페터 회를 만난 것은 그 유명한 <스말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었다. 우연히 이 작품에 대한 엄청난 호평을 보고 사서 읽었다. 솔직히 표현해서 어려웠다. 재미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중역 탓으로 돌리기에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인물들이 너무 낯설었다. 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책이었다. 그러다 다른 책이 나와 또 읽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역시나, 였다. 그러다 이 책을 봤다. 소개글을 보면서 매혹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 곳에서는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나왔지만 말이다. 모두 읽은 지금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더 느린 속도로 읽고, 복잡한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아주 조금씩 재미의 문을 열어주었다.

 

수잔 이펙트는 수잔이란 여성이 지닌 능력을 말한다. 쉽게 표현하면 초능력이다. 그녀가 곁에 있으면 누구나 진심을 말하고 싶어진다. 범죄자라면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단순히 이것만 놓고 보면 최고의 심문자가 되면 좋겠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물리학이다. 뛰어난 물리학자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쌍둥이의 엄마다. 이런 그녀가 꿈꾼 것은 평범한 삶이다. 언제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자신의 능력을 남용하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산다.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두 장소는 이후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칼스버그 재단의 명예 저택에서 이야기는 시작하지만 미얀마 국경 근처의 감옥으로 금방 넘어간다. 이 저택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대목은 수잔의 직업적 능력과 관심사를 의미한다. 감옥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처했던 상황을 말해준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무부 장관 하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잔은 이 도움을 얻기 위해 하인의 바라는 것을 얻어줘야 한다. 그것은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다. 처음에는 이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무슨 의미인지 그렇게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고, 연쇄살인이 벌어지면서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속도감과 긴장감도 같이 높아졌다.

 

기본적으로 미래위원회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 헤매는 수잔의 좌충우돌 모험담이지만 그 속에는 수잔의 개인사와 감정의 미세하면서 거대한 변화가 계속해서 흐른다. 그녀가 보고서를 얻기 위해 만난 사람들은 그 후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 미래위원회란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들의 보고서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금씩 알려준다. 놀라운 것은 이 보고서의 예측가능성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잔의 조사가 지속되면서 이 보고서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이 어떤 이익을 취했는지도.

 

간단한 이야기가 점점 거대해지는 구성이다. 종말론과 음모론이 겹쳐지고, 한 사람에서 시작한 것이 전 지구로 확대된다. 이 와중에 수잔은 자신의 평범한(?) 삶을 지키기 위한 엄마의 노력을 결코 놓지 않는다. 자신이 포기하는 순간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이 모두 감옥 등으로 가서 헤어져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조금 놀랍게 다가온 것이 있다. 바로 쌍둥이 남매에 대한 감정이다. 매년 바람을 피웠지만 이 두 남매가 자라는 동안 그녀가 보인 관심과 행동 등은 보통의 엄마와 별 차이가 없다. 차이라면 두 남매가 가진 독특한 능력과 성격일 것이다. 실제 그녀가 온갖 위험 속에서 미래위원회를 조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다. 당연히 번역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독어판 중역이란 것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야기 속에 나오는 수많은 물리학과 물리학자들은 단숨에 읽기 힘들게 한다. 제과제빵을 표현하는 것도 우리가 흔히 보는 요리법과 다르다. 이 다른 점들이 곳곳에 나오면서 낯섦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것들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장면도 꽤 있다. 그 한 장면은 한 편의 코미디다. 어쩌면 이 소설의 구성은 소설 속 빵을 만드는 장면과 같을지도 모른다. 한겹 한겹 쌓여 맛있는 빵으로 변하는 것처럼 이야기들이 쌓이고 관계가 드러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을 만든다. 여기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수잔 이펙트는 그녀의 삶이 결코 평범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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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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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인기 있다고 해서 선택했다. 이 선택은 맞았다. 이 실화소설집은 예상한 것보다 재밌다. 나에게는 낯선 작가지만 이 작가의 책에 계속 관심을 둘 것 같다. 책을 들면 가장 먼저 펼치는 부분이 작가 이력인데 눈길을 끄는 두 단어가 있다. 하나는 야생작가고 다른 하나는 왼쪽 얼굴 미남이다. 책과 인터넷서점 얼굴 사진도 모두 왼쪽 얼굴만 나온다. 야생작가란 단어도 그가 살아가는 방식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관계있다. 역자 후기에도 나오는데 실명이 공개된 경우 실존 인물이 확인된다고 한다. 실명으로 나온 사람 중 솔직히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지만.

 

모두 다섯 편인데 모두 분량이 제각각이다. 이야기의 내용에 따라 분량이 달라진다. 실화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각색하고 구성했는가에 따라 독자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이야기 솜씨는 대단하다. 번역만 가지고 문장이나 문체를 말하기는 그렇지만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다. 화려하게 묘사하고 거창하게 설명하기보다 인물과 상황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편견을 많이 알게 되었다. 물론 역시 중국이야! 하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이것도 잘 생각하면 우리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유랑가수 라오셰>는 라오셰의 삶을 극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게 산 그의 인생은 행간에 모두 담겨 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무소유의 삶은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진 피해자를 위해 모든 돈을 기부하고 홀로 걸어서 1500킬로미터를 걸어왔다는 대목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그가 겪은 몇 가지 놀라운 일들은 비현실적이지만 아주 현실성이 높다. 인신매매되어 팔려갔다가 돌아온 그가 보여준 행동도 놀라운데 그 매니저의 반응은 더 놀랍다. 탈출 기재라며 자신과 계약하자는 것이다. 현실에서 라오셰가 시집을 낸다고 하는데 어떨지 궁금하다.

 

표제작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는 게이 희소 이야기다. 유명하지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그가 다빙의 주사 때문에 그 사실이 드러난다. 실명은 숨겨져 있다. 이 인물이 대단한 것은 다빙의 데뷔에 힘을 썼다는 것도 있지만 그가 한 두 번의 결혼식이다. 한 번은 미혼모를 위해, 다른 한 번은 외국에서 한 가족의 탈출을 돕기 위해. 뒤의 경우는 자신의 부모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신파적인 부분도 있지만 현실은 신파로 가득하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그가 한 행동들은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다. 누군지 궁금해지지만 작가가 찾지 말아달라고 하니 잠시 관심을 꺼두자. 다빙의 말처럼 이 소설이 그의 결혼식에서 읽혔으면 좋겠다.

 

<은방울>은 한 편의 신파다. 몇 년을 짝사랑한 남자를 몰래 따라다니다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헤어진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안으로 흐르는 하나의 흐름이라면 그 밖은 그가 경험했던 은세공사인 스승을 둘러싼 이야기다. 이 둘의 적절한 조합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흔한 스토커 소설의 행복했지만 비극적인 결말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스승과 사저의 인연이 어디에서 시작했고, 그가 수행하면서 만든 것이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면서 순간적으로 울컥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부분은 사저가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겪은 부분들인데 조금 낯설다. 시대와 국가와 환경이 다른 탓일까?

 

<상어와 헤엄치는 여자>를 읽으면서 아는 이름 하나가 나왔다. 그리고 두 인물을 검색했고, 한 인물만 나왔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더 가는 인물은 샤오윈도인데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한국어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은 너무 자극적이고 활동적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언젠가 검색이 가능해지면 그녀의 사진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다빙이 안전벨트 미착용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장치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아! 찾은 한 명은 언젠가 한 번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 왕쓰총이다.

 

<난 이야기가 있는데, 당신 술 있어요?>는 뉴질랜드에서 버스킹을 한 S의 이야기다. 퀸스타운의 분위기만 놓고 보면 한국의 아마추어 가수들이 그곳에서 살아도 되겠다는 것이다. 중간중간에 인종차별 등의 문제가 나오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막아준다고 하니 문제없다. 뉴질랜드에 사는 한국인들이 심심해 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S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닌 것 같다. 다빙의 다른 이야기처럼 이야기 속에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지루할 새가 없다. 한 가지 눈에 확 들어오는 이야기는 같은 동포들을 싼 임금으로 부려먹으려는 주인장 이야기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약자를 약탈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왠지 위안보다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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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
김주욱 지음 / 황금테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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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에 이런 표지로 나온 책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책 내용을 감안해도 표지와의 관계가 별로 없어 보인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아쉬움과 별개로 7편의 단편은 낯설고 기이하고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최근에 읽은 다른 작품들과 다름에서 비롯한다. 분명한 관계 설정이나 상황 설명보다 의식의 표현에 더 집중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면 현실과 상상의 간극이 쉽게 채워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또 어떤 인물은 광기를 표출하면서 나로 하여금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표제작 <허물>은 가장 분량이 많고 기술적인 설명이 충실하다. 미용실 원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미용기술 부분을 읽다보면 혹시 이 분야에 종사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커트와 펌이나 염색 등의 묘사와 설명이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의식으로 나눠 진행되는 이야기는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뱀을 사 집에서 키우는 그녀가 제목처럼 허물에 집착하는 광기로 발전하는 순간은 한 편의 호러물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인물의 성공 뒤에 남겨진 수많은 일들은 어쩌면 허물벗기였는지도 모른다.

 

첫 작품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은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을 보여준다. 플라스틱으로 밥을 짓고 이것을 먹는다. 이것이 가능한지는 남겨두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한 인물의 불행한 삶이 조용히 드러난다.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남겨진 자에게는 아쉬움이 더 큰 법이다. 열악한 산업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이 바닥에 흐르는 와중에 이 밥이 중첩되면서 무력한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전한다. 마지막 문장은 읽을수록 비극적이다. <추억의 여자만>은 정말 비루하고 멍청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여자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따라온다.

 

<한 가닥의 터럭>은 집착과 페티시로 가득하다. 그가 등에 난 한 가락의 터럭을 뽑기 위해 하는 행동은 전 여친의 페티시와 연결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무력함과 남자의 졸렬함은 어쩔 수 없다. <개새끼>의 화자는 분명히 혼혈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출신이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괜히 궁금하다. 부산의 한 지역을 무대로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과 이미지가 이어진다. <고백>은 한 남자의 순정(?)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다 읽은 지금 왜 <한 가닥의 터럭> 속 화자와 겹쳐보이는 것일까? 그의 무력함과 연약한 의지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처한 현실과 상황들 때문일까?

 

<우리 사이>는 뒤틀린 부부 사이와 불륜의 한 장면이 나란히 표현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너가 하면 불륜이라는 남편의 마음이 성욕으로 표출되는 장면은 강압적이다. 그의 성기 크기를 둘러싸고 두 여성의 반응이 다른 것은 감정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경험의 차이일까? 남자의 의심이 마지막 장면과 이어질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나의 판단 때문이다. 틈에 집착하는 남자의 모습이 부부 사이의 균열과 이어진다. 어쩌면 흔하게 보고 들은 우리 사이 이야기다. 이 남자의 모습이 <추억의 여자만> 속 남자들과 연결되는 것은 과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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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초지로 -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고이즈미 사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콤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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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직접 길러 본 적이 없다. 예전에 고양이를 집에서 기를 때도 그냥 집밖에 놓아두고 길렀다. 개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본가로 가면 어머니가 몇 마리의 개들을 기르시고, 집밖에 있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신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 번 집 안에서 개를 키우려고 한 적이 있다. 치와와였다. 아마도 하루만에 돌려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우리집에서는 최소한 집안에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개도 고양이도, 혹은 다른 무언가도.

 

이런 나에게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들의 집에 놀러 가면 달려와서 짖어대고, 물고, 할퀴는 그것(?)들이 결코 귀여울 수 없었다. 단독주택도 아니고 공동주택에서 키울 때는 더욱.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주거 환경도 바뀌었다. 홀로 살거나 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공동주택에 사는 비율도 더 높아졌다. 당연하게도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방송에도 이런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나. 나의 인식도 이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이해하는 쪽으로.

 

이 책의 저자는 늘 고양이를 키웠다. 반려묘나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사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질병이 생겨도 사람보다 치유하기가 힘들다. 우리집에서도 몇 마리가 죽었는지 모른다. 이때의 상실감과 고통은 그 애정에 비례한다. 그리고 늘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또 금방 데리고 와서 키운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초지로와 라쿠도 이런 과정 속에 저자의 집으로 들어왔다. 물론 남편과도 상의했다. 가족의 구성원이 된 두 반려묘는 가정의 활력이 되었고, 행복 바이러스를 사방에 뿌렸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형과 누나가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나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울 때 생긴 문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알 수 있었다.

 

사람도 나이를 많이 먹으면 아픈 곳이 늘어난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픔과 고장으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 책 속 초지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랑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병은 어쩔 수 없다. 친구의 촉진으로 시작된 검사는 종양으로 결론난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안락사가 떠올랐다. 비관계자가 볼 때 경제적으로 인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다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수술도 하고, 좋은 음식도 먹이고, 더 많은 패드를 깐다. 읽을 때는 못 느낀 것인데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이별 준비다. 실제 초지로가 죽었을 때 보인 반응은 나의 기억 하나를 건드렸다.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길 한 가운데서 죽은 개를 안고 울었다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 읽는 동안 저자의 감정에 푹 빠지지 못했다. 몇몇 장면만 나의 경험과 기억이 맞물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애완동물을 집밖에 버리는 현실이다 보니 더 냉정하게 봤다.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반려묘를 수술할 때는 그 비용이 먼저 떠올랐다. 현실에서 사람들에게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부질없다고 느낀 것은 초지로에 대한 저자의 끝없는 애정과 걱정을 보면서다. 초지로가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려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은 이제 조금은 낯익다. 아마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단숨에 읽었는데 그 여운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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