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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조예은 지음 / 마카롱 / 2017년 8월
평점 :
고통을 옮기는 능력자 이야기다. 자신의 몸을 통로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질병을 자신이나 또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 이 전이능력이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저주일 뿐이다. 축복은 그 고통과 질병을 넘겨준 사람들이고, 저주는 그것을 받는 사람이다. 실제 이런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능력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이 소설처럼 악당들에게 끌려가 돈벌이로 이용되면서 사육당할 것이다.
소설은 두 인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찬의 능력을 본 이창 형사고, 다른 하나는 찬의 능력을 전이받은 동생 란이다. 이창 형사는 조카를 살리기 위해 사이비종교 천령교 교주를 찾아다닌다. 자신의 누나가 교주에 의해 병이 완치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주의 능력은 가짜지만 찬의 전이 능력이 이것을 기적으로 만든다. 이 사실은 모르는 형사는 열심히 교주만 찾을 뿐이다. 그러다 한 폐건물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그가 바로 사라진 천령교의 교주였던 한승목 목사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이야기가 들린다. 교주의 능력이 아니라 찬의 능력이란 정보다. 이제 좇는 대상이 바뀐다.
란의 이야기는 한승목 목사가 어떤 인물이고, 그가 저지른 악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찬의 능력을 이용해 사이비종교를 만들고, 그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킨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와 그에게 기적을 바란다. 교주는 열성적인 신도에게만 기적을 펼친다. 열성도는 헌금에 달렸다. 이창의 아버지가 전재산을 바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교주의 아들로 포장된 것 때문에 교단은 파괴된다. 능력자가 없다면 지속될 수 없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능력이 란에게 전달된 것은 아직 모른다. 한 목사의 변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 목사의 죽음은 그의 비리와 악행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다. 아이들을 납치해 찬이에게 병을 옮기도록 했다. 이 저주 받은 능력은 질병과 고통을 받을 그릇으로 연약한 아이들을 납치하게 만든다. 한 목사 일행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찬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만 죽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그는 자신이 그 질병과 고통을 안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쌍둥이 동생 란이 있었다. 동생에게 가해지는 고통 혹은 죽음이 두려워 누군가에서 받은 질병을 납치된 아이에게 옮긴다. 교주가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아이가 납치되고, 죽어나간다. 정말 저주 받은 능력이다.
작가는 이렇게 능력에 한계를 둔 채 이야기를 만들었다. 특별히 이야기를 확장하지도 않고, 그 능력을 과도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공간도 작은 지방 도시로 한정한 채 많지 않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는 있지만 왠지 너무 가지를 쳐 앙상한 느낌이 든다. 란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안 이창의 고민이 가슴 깊은 곳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 분석하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결심하는 모습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결정이 너무 느렸거나.
손과 손의 직접적인 접촉만으로 그 능력이 발현된다는 설정은 또 얼마나 제한적인가. 이 능력을 사용해 정의로운 활동을 하고, 악당을 쳐부술 수도 없다. 누군가의 병을 고친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병을 안고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악당들에게 이 병을 옮겨준다면 통쾌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육체적 능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 능력의 예방법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이지만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시리즈로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