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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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상 경력은 언제나 시선을 끈다. 닐 게이먼의 수상 경력이 바로 그렇다. 그 덕분에 이 작품 이전에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권은 그냥 사놓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샌드맨>이었다. 읽은 것은 1권뿐이지만 2권을 사놓고 약간 주저하고 있다. 이유는 물론 금전적인 문제다. 영어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몇 권은 늘 똑같은 이유인 사놓았기 때문이다. 사기 전에는 엄청난 욕망에 시달리지만 사놓은 후는 그냥 책장으로 간다. 사놓은 책이 많아지면서 생긴 부작용 중 하나다.

 

몇 권 읽지 않은 닐 게이먼의 소설들은 간결했다. 복잡한 구성도, 확장된 이야기도 없었다. 그러니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단순히 빠르게 읽히는 책이라면 기억 속에서 작가의 이름이 사라졌겠지만 이성을 살짝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오면서 나를 매혹시킨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이어질 정도로 나의 기억력이 좋지는 않다. 하지만 읽는 동안 혹은 읽은 후는 다르다. 이 소설도 해설에서 말한 것 같은 몇 가지가 시선을 끌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전에 읽거나 본 책과 영화의 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한 중년이 장례식을 마친 후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오솔길 끝까지 걸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 시절 기억의 한 자락을 만난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잊고 있던 기억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현실의 벽은 무너지고 놀라운 판타지 세계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기존의 판타지와 다르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그리고 몇몇 설정은 은유와 파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볍게 시작한 이야기가 한 아이의 악몽 같은 현실로 바뀌고, 거대한 규모의 이야기로 이어질 때 나도 모르게 점점 몰입하게 되었다.

 

일곱 살 소년과 열한 살 소녀 레티 헴스톡. 이 둘은 예상하지 못한 일에 부딪친다. 그 시작은 한 오팔 광부의 자살이다. 가세가 기울면서 부모님은 남는 방을 세 줄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한 명인 오팔 광부는 등장부터 소년이 사랑한 고양이를 죽인다. 그가 자살한 이유는 도박으로 친구의 돈을 탕진했기 때문이다. 이 죽음이 한 소년의 입속에 동전이 들어오게 만든다. 소년이 직접 넣은 것이 아니다.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정의 장난도 아니다. 이 동전 때문에 죽을 뻔한다. 이 괴상한 사건을 가지고 소년이 간 곳은 헴스톡 집안이다. 이 사건을 키운 것은 레티의 조금은 안일한 생각이다.

 

헴스톡 집안의 삼대 세 여인은 특별하다. 이 특별함이 드러날 때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오만하다. 이 오만함이 레티로 하여금 소년을 데리고 짧은 여행을 하게 만든다. 레티가 바란 것은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손을 놓지 마라는 것이다. 의식이 있을 때 이것은 쉬운 일이지만 반사적인 경우는 다르다. 잠시 손을 놓았는데 이것이 소년의 몸에 이상한 일을 만든다. 그때 이 일을 알았다면 문제가 커지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온 후 자신의 발에서 이상한 벌레를 발견한다. 이 웜홀이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고, 소년의 세계는 불안과 공포로 휩싸인다.

 

몸이 다른 차원의 통로가 되는 설정에서, 연못을 대양이라 부르는 레티의 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우혁의 소설 중 한 설정이다. 영화 <맨인블랙> 속 우주다. 가장 작은 것에서 우리가 아는 가장 큰 세계가 존재하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 속에 들어있다. 그리고 소년이 요정의 원 속에서 굶주림새들의 유혹을 물리치는 장면은 싯다르타의 수행 속 한 장면 같았다. 어린 아이가 과연 이런 유혹과 공포를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소년이 레티가 가져온 연못을 통해 대양을 경험할 때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의 한 장면이 겹쳐졌다.

 

어린 시절 기억은 성인이 되면서 점점 희미해진다. 그것은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모두 똑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기억들이 현실을 뒤덮는 순간이 생긴다.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는 경우다. 물론 이런 일은 자주 생기지 않는다. 자주 생기면 병이 된다. 소년이 어른이 되면서 이 기억을 점점 잊고 산 것은 모든 주술이 풀린 후 가족이 사라진 어슐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헴스톡 부인이 시간을 라 기운 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등장인물이 없지만 환상적인 설정과 전개는 몰입도를 놓이고 이야기의 가지를 나 자신도 모르게 넓고 다양하게 펼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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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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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63편의 단편 소설이 실린 책이다. 모파상의 단편을 어릴 때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처럼 많은 단편을 읽은 것은 처음이다. <목걸이> 같은 작품이야 너무 유명해서 다시 읽으면서 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단편들은 상당히 낯설었다. 분명 다른 단편집에서 읽었을 텐데. 하지만 그때와 분명히 다른 느낌을 이번 책에서 받았다. 그것은 왜 모파상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문장과 구성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이 보통의 단편집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을 알려주었다. 거의 800쪽에 달하는 분량임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집중해서 읽었다.

 

63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왔고 첫 작품인 <비곗덩어리>은 모파상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놓았다. 물론 이 인식은 <목걸이> 같은 단편에서 비롯한 것이다. 어떤 편역자는 공포라는 장르로 모파상의 소설을 묶어 내놓기도 했지만 이 작품은 그 시대의 삶을 잘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그 시대 상류계급의 오만과 허식과 위선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창녀의 희생을 강요하는 그들의 위선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이 장면은 이후 수많은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성적인 은유와 표현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직설적이다. 불륜이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사랑이 꽃피는데 작가는 이 결말을 다양하게 마무리한다. 어느 이야기에서는 비극으로, 어딘가에서는 코믹하게. 누군가는 그 사랑으로 삶을 마감하고, 다른 누군가는 들통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의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부분이 많고,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도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이 반응은 그 시대 그 사회 분위기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씁쓸했다. 우리의 현재와 비슷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을 다룬 이야기에서 적군들과 잘 지내다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소바주 아주머니가 보여준 행동은 다른 이야기 속 노인과 겹쳐지면서 섬뜩했다. 그 이야기 속에서 농부들은 애국심에서 나온 증오 같은 것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다.”(515)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들의 죽음이 적군을 집에 몰아넣고 불태워 죽이는 행동으로 변해버린다. 이때 복수는 무얼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라는 단순한 복수일까? 이 네 명의 적군들의 주소를 받은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복수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일까? 복수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피의 고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단편집의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의 시작과 실제 주인공이 다르다는 것이다. 모임이나 만남 속에서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이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공포나 사랑이나 기이한 일 등이다. 이 방식을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길지 않는 이야기다 보니 핵심만 간략하게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완결된 이야기라 집중하기 좋았다. 얼마 전에 읽은 미국 단편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과 다른 모습이다. 내가 아직 현대 거장들의 단편을 읽을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인지.

 

사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읽다 보니 지금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강한 인상을 준 단편 몇 편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런데 이 단편들이 또 다른 단편을 연상시킨다. 책을 뒤적이면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 시대 사람들의 위선과 해학과 공포와 사랑 등이 복잡하게 엮인다. 순간적으로 이 단편들을 각각의 이야기로 구분해서 분류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작업이 작위적이고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파상을 잘 모르는 독자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괜히 이전에 읽은 모파상 편역 단편집이 떠올라 덧붙여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탐욕 경제 - 부의 분배 메커니즘을 해부하다 화폐전쟁 5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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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경제 5권이다. 이 시리즈를 띄엄띄엄 읽고 있다. 1권을 사놓고 몇 년을 묵혀두고 있는데 그 사이 세 권을 더 읽었다. 물론 1권을 산 것은 2권과 다른 책들을 재미있게 읽은 덕분이다.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세계 경제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통찰은 이전부터 경제를 공부하면서 품었던 몇 가지 의문을 잘 해결해주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음모론을 좋아한다. 하지만 단순히 음모론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역사와 현실을 잘 해석해주었기 때문에 열광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책은 좀 힘들게 읽었다. 특히 2장과 3장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금융권의 최신 금융기법을 설명하면서 이 금융 시스템이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 알려준다. 그런데 이 금융 시스템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어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렸다. 파생상품으로 넘어가면 학창시절 배운 경제학은 유물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저자도 여러 차례 지적한 것이다. 현실에서 금융이 엄청난 발전과 변형을 거쳤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아직도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수많은 금융 전문가들도 손을 들고 항복한 것이다. 그러니 나 같이 문외한은 뻔하다.

 

화폐경제 5권이란 제목보다 <탐욕경제>를 앞에 내세웠다. 그것은 이 책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사람의 탐욕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의 본성으로 탐욕을 말하면서 이 탐욕에 제한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과거 로마제국과 북송의 사례를 통해 현재 미국 경제를 해석한다. 물론 이런 설명이 나오기 전에 미시적 관점에서 미국 경제의 현황을 분석한다. 그것은 “황금시장을 통해 화폐를 금융을 탐색하며, 금리시장을 통해 위기를 탐지하고 주택시장을 통해 거품을 통찰하며, 취업시장을 통해 회복을 구분”하는 것이다.

 

인간은 탐욕스럽다. 이것을 저자는 전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탐욕에 제한이 풀릴 때 부의 분배는 한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소수의 사람들이 국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제체계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설명한다. 이 과정은 개인적으로 신선했다. 잘 몰랐던 역사라 더 그런 모양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월스트리트의 탐욕이다. 2008년 금융권 위기를 FED의 도움으로 벗어난 후 약간의 반성도 없이 이전처럼 그들의 탐욕은 끝없이 펼쳐진다. 소위 말하는 대마불사의 신뢰가 그들을 휘감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해석은 이전에 한국 경제학자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어 더 공감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양적완화와 저금리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다. 양적완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읽었지만 그 연관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것을 금리와 연결하면서 이전과 다른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이 연관성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파생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완전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더욱 그렇다. 미국 채권을 둘러싼 파생상품의 무시무시한 증식은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놀라게 되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모든 책임을 예금자와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은 이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현재 미국 경제지표가 좋아졌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왜곡된 정보인지 알게 되었다. 저금리로 돈을 빌려 자기주식을 사 주당순이익을 높이고,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순간적인 자본수익성을 노리는 투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소식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양질의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계약직 일자리만 늘어나는 현실에서 통계 숫자만 좋아진다고 현실의 경기가 결코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미국 부동산 시장을 둘러싸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이것은 우리의 부동산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실질소득이 점점 감소하는데 그 누가 집을 살 수 있단 말인가.

 

현재 우리의 경제는 폭탄을 안고 있다. 부동산과 국가 부채다. 이 둘은 저자의 표현대로 금리화산이 폭발하지 않아 겨우 유지되고 있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가도 개인의 부동산 매물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엄청난 적자재정을 가진 국가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저금리는 ‘강제적으로 예금자의 돈을 고액 자산가에게 이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방법에 대해서는 각 장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소수에게 부가 점점 집중되는 현상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즉시성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우리 경제가 지닌 문제를 인식하는 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미국과 세계경제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해석이지만 부의 분배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도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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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역사가 이덕일을 처음으로 인식시킨 것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였다. 친구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할 일이 없던 중 책장에서 꺼내 잠시 읽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대충 읽자고 꺼냈다. 그런데 이 책이 내 마음을 어느 순간 빼앗아 버렸다. 정신없이 단숨에 읽어나갔다. 3분의 1정도를 읽고 집에 가면서 빌려 그날 끝까지 읽었다. 기존에 내가 알던 역사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풀어낼 수 있구나, 하고 놀랐다. 이것은 <사도세자의 고백>으로 가서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줬다. 역사의 이면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니! 그리고 나는 그의 책을 어느 순간 한 권씩 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역사가지만 출간된 책을 모두 읽지 않았다. 사놓고 쌓아둔 책도 몇 권 있고, 사길 주저한 책도 있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고 그의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된 책들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그 시대를 새롭게 해석한 책들이다. 송시열, 사도세자, 김종서, 이회영 등이 그들이다. 정약용은 사놓고 한 권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미루어뒀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반면에 주저하는 책은 기획성으로 편집된 책이다. 조선왕 독살이나 갑부나 천재에 대한 책들인데 인물들의 깊이가 부족해서 뭔가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적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오면 왠지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그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길게 이덕일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는데 이 책도 사실 후자에 가깝다. 이덕일이란 이름이 없었다면 그냥 눈길도 주지 않았을 책이다. 하지만 이덕일이라면 다르다. 그의 모든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 역사를 풀어내는지 조금은 알기에 옛날과 현재를 엮어 들려줄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책을 편 후 목차를 보니 다섯 꼭지 아래 엄청난 제목들이 보인다. 하나의 이야기가 두 쪽을 넘지 않는데 어딘가에 연재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어디에 연재했다는 글을 찾지 못한다. 만약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쓴 것이라면 정말 대단하다. 아니면 블로그나 자신의 글을 쓰는 도중에 하나씩 쓴 것을 모아둔 공간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추측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 책의 기록들은 단순히 몇 개월의 기록이 아니다.

 

고금통의, <<사기>> <삼왕세가>에 나오는데 예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의는 같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 책을 서술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고전과 역사 속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내어 알려주고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부조리나 불의나 양심이나 인사 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 마무리한다. 옛 이야기 속에서 현재의 문제를 돌아보고 그 해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데 그러다가 문득 그때도 지금 같은 문제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발췌한 기록들이 현재의 짧은 시간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는 것은 잠시 뒤로 하고 말이다.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인용에서 중복되는 것도 조금씩 보인다.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역사와 문화와 정치 등의 철학이 곳곳에 흘러나온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시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상당히 많은 자료를 통해 중국의 역사 왜곡을 비판한다. 또 우리 역사 교육의 문제점도 같이 다룬다. 일본 식민사관이 아직도 교과서 등에 강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지적은 광복절 전후를 생각하면 특히 강하게 다가온다. 역사 교육의 중요성은 사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현재 우리는 역사를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바꾸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이 없는 국민이 어떻게 세계에서 자국을 자랑하고 알릴 수 있겠는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대부분은 나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몇몇 문제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세금 문제에서 특히 그렇다. 제대로 세금이 걷히지 않는 현실을 탓하기보다 많다는 인식을 먼저하는 것은 나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조금 아쉽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쌀 가격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서 풀어낸 것도 단순한 수평 비교라 왜곡된 정보로 다가온다. 물론 이런 것들이 좀더 간략하게 현실을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편집자가 주석 정도는 달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또 하나. 저자의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인용되고 해설한 곳에서 다른 책들의 흔적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발견할 때마다 상당히 반가웠다. 



 
 
 
모르겐스테른 프로젝트 프로젝트 3부작
다비드 카라 지음, 허지은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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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3부작의 완결편이다. 언제나 대단한 속도감으로 단숨에 읽게 만든다. 이번에 다루는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과정에 에이탄의 숨겨져 있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물론 이전 작품에서도 에이탄의 과거가 조금씩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용소를 탈출한 후 그가 어떻게 한 명의 전사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살인기계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교육도 같이 받는다. 누군가를 죽일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에이탄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에이탄의 능력은 엄청나다. 체력과 힘과 지력이 모두 뛰어나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늙지 않고 있다. 이런 능력은 좀더 강한 군대를 바라는 사람들이 항상 바라는 바다. 그런데 그의 능력은 극비 사항이다. 하지만 수십 년 시간이 흐른 뒤에도 외모의 변화가 없는 그의 정체를 밝혀내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때부터 그들에게 에이탄은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 바뀐다. 그를 사로잡아 연구소에 넣은 후 온갖 실험과 조사를 해보고 싶어 한다. 문제는 어떻게 그를 잡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1편에 등장했던 재키와 제레미를 납치해 함정을 파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최악이다.

 

에이탄을 잡기 위한 미 특수부대원들과의 대결이 하나의 축이라면 수용소를 탈출한 후 폴란드 게릴라와 만난 후의 생활이 또 하나의 축이다. 이 둘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현재와 과거는 시간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에이탄 모르겐스테른을 생포하는 것이다. 당연히 에이탄은 이들의 의도를 파괴하려고 한다.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과감한 액션과 빠른 전개다. 그리고 조금씩 흘러나오는 에이탄의 새로운 모습이다. 새롭다고 했지만 전작들을 좀더 유심하게 읽었다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시리즈 최악의 적은 그 정체가 불분명한 컨소시엄이다. 에이탄으로 하여금 방부제 외모를 갖게 만든 것도 이들이고, 현재 그의 정체를 미군에 알려 그와 친구들을 사냥하게 만든 것도 컨소시엄이다. 하지만 이 조직은 너무 방대하고 거대하고 점조직이라 그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컨소시엄과의 엄청난 대결을 기대했지만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면서 약간 기대(?)를 저버렸다. 물론 이 선택은 옳다. 만약 컨소시엄과의 대결로 시리즈를 채웠다면 에이탄이 말한 것처럼 그를 슈퍼맨으로 만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 대결이 없는 덕분에 혹시 다음에 이 시리즈가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된다.

 

솔직히 에이탄의 존재는 매력적이다. 신체적 능력도 그렇지만 늙지 않는 외모는 요즘 같은 세상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다. 동안 외모를 줄창 외치는 현실에서 이런 약이 개발된다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설 것이다. 이런 화학적 변화와 함께 다뤄지는 것이 있다. 바로 미 해병을 통해 실험된 정밀하게 제작된 인조팔다리다. 이 시장 가치를 말할 때 나오는 당뇨병은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어떤 병인지 조금은 알 수 있다. 여기에 에이탄의 몸에 엄청난 상처를 남길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군대에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최상의 군인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런 욕망이 개인의 인권 등을 무시하고 달려들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폴란드 게릴라들과의 생활이다.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보여줄 때 지극히 서구적인 시각에서 본 2차 대전의 이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동유럽에서의 나치를 정면에서 만난다. 폴란드 국민과 게릴라의 협력과 이를 깨트리려는 나치의 잔혹한 학살이 잠깐이나마 나올 때면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다. 참혹한 그들의 삶 속에서 살인에 빠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변하는 그를 볼 때 현재 그가 벌이는 살인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과거를 의미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외친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