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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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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작가다. 처음으로 읽는 파키스탄 출신 작가의 작품이다. 파키스탄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는 영어로 소설을 쓴다. 모국어로도 소설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기계발서를 유쾌하게 비판하는 글로 각 장을 시작한다. 소설의 제목에서 ‘더럽게’를 빼면 그냥 자기계발서의 제목이 된다. 하지만 단어 하나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두껍지 않은 분량과 도입부의 전개는 약간 지루하지만 빠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생각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바뀌었다. 각장의 제목이 이중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기계발서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재미있고, 재능이 가득하다. 한 인물의 생애를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그려낸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와서 교육 받고, 알바 등을 하다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린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조금 더 나아가서 일어날 수 있는 일 하나를 더 넣어 자수성가 기업가가 그 부를 지속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준다. 책 후반부로 가면 그가 힘들게 일군 부를 관료 등이 얼마나 쉽게 갈취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이 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집과 주변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준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지만 늘 외부의 폭도(?) 등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 무산계급 출신 인물의 성공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을 첫사랑이다. 이름이 생략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당신’이고,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예쁜 여자’다. 그 외 사람들도 누나, 형님, 친척, 아내, 아내의 동생, 아들 등으로 불린다.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다루는 책에서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 작가들이 부자가 아닌 것처럼. 하지만 각장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다. 부자가 되려면 도시로 나와야 하고, 교육을 받고, 좋은 연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인지 작가가 들려주는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은 낯설지 않다. 내가 자라면서 보고 듣고 한 것들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육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순수한 사랑이 조금 남아 있다. 바로 ‘당신’이다. ‘당신’도 평생 동안 예쁜 여자를 잊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더럽게 부자가 되는 과정에서 잃어가고 있는 순수함을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찾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성공을 질시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의 목숨을 위협까지 할 때 그 순수했던 사랑은 더욱 강렬해진다. 그리고 이들은 자주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걸쳐 아주 가끔 만난다. 그때 보여주는 반응은 너무 담담하고, 강렬하다. 이것만 보면 한 편의 로맨스 소설과도 같다.

 

자기계발서 형식을 빌린 성장소설이자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담고 있다. 경제적 성공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그의 성장을 보여준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패와 비리 등은 그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노골적인 모습이 왠지 정겹다. 아마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라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당신과 예쁜 여자가 나올 때면 그들의 깊은 신뢰와 사랑이 나의 가슴을 살짝 흔든다. 마지막 문장은 이 사랑과 작가가 하고픈 말을 아주 잘 표현했다. 작가가 계속해서 말한 주인공 ‘당신’이 진짜 당신일 수 있음을 안다. 읽는 동안 한 남자의 성공을 엿보았다면 다 읽은 지금은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느끼고, 그 사랑을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이 작가 계속 관심을 두어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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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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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문학상 수상집을 거의 읽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신인 작가들에 낯설다. 인터넷 서점을 들락거리다 혹은 인터넷 카페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 않으면 아예 처음 듣는 이름도 많다. 그렇다고 문예지를 읽지도 않으니 더욱 모른다. 이런 나에게 최정화란 작가는 솔직히 말해 처음 듣는 이름이다. 그러니 이 작가에 대해 그 어떤 선입견이 생길 수 없다. 늘 그렇듯이 책을 받아 펼치면 목차를 읽는데 열 편의 단편이 있다. 그런데 책 제목과 똑같은 단편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란 제목이 있다. 순간 왜 제목을 편집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추리소설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아니면 제목이 너무 긴 것일까?

 

첫 단편 <구두>를 읽으면서 나의 머리는 작가가 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읽지 않고 반전을 예상했다. 고용주가 실재 고용인이 아닐까 하고. 화자의 불안한 심리와 행동이 장르소설의 구성과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비틀린 시선이 오독으로 이어진 것일까? 이런 생각은 등단작인 <팜비치>를 읽으면서 더 심해졌다. 납득할 수 없는 남편의 행동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넋 나가고 불안한 가장의 행동과 심리가 갑자기 일반적인 남편들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발바닥의 상처가 견고한 가정의 벽에 균열을 가져오는 상징처럼 다가왔다.

 

<오가닉 코튼 베이브> 속 여자는 주체성이 없어 보인다. 건강보조식품에 빠졌다가 생협 활동가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유행과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단히 취약해 보인다. 열성적인 활동가인 것처럼 움직이지만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철학의 부재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가 실제 그녀의 본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준다. <틀니>를 처음 읽었을 때는 아내의 첫 마음과 같았다. 틀니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런데 틀니를 뺀 남편을 본 후 변한 아내의 심리 변화에 더 눈길을 주면서 현실과 상상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문장은 있는 그대로 읽기에 너무 강렬하다.

 

<홍로>의 도입부를 읽을 때만 해도 나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백화점 판매원이란 선입견 때문이다. 계약부부인 이들이 동창 여행에 가서 보여주는 행동과 심리 변화는 불안과 자신감의 뒤섞임이자 권력의 역전이다. 늘 움츠려 있던 그녀가 거짓말을 한 후로 곧게 등을 펴고 빠르게 걸을 때 통쾌했지만 그 이면을 한 번 더 생각하면 더 깊은 추락이 보인다.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는 1인칭 소설로 화자의 심리 변화와 행동에 진실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화자의 사소한 장난이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것이 왠지 마지막 장면과 어긋나 보인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가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타투>의 아버지를 보면서 대부분의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중학생 딸의 임신을 바로 묻지 못하는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딸의 친구들을 보면서 누가 아빠일까 추측한다. 실제 알려주지도 않는다. 또 딸이 담배까지 핀다. 사진기자인 아빠가 자고 있던 딸의 등에서 타투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갖다대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다양한 해석으로 이어진다. 직업의식과 에로틱함이 교차한다. 선입견으로 시작한 또 다른 작품이 <대머리>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해 줄 여자의 사촌이 여자 대머리다. 추락한 삶을 일으켜 세워 줄 것이란 기대는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과 상관없다. 잘 의도되고 계산된 행동과 말이 술로 인해 무너질 때 묘하게 감정이입되면서 불안감을 느낀다.

 

<파란책>의 아내는 <오가닉 코튼 베이브> 속 여자와 닮아 있다. 단순히 인테리어 목적으로 산 책을 두고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 문화 허영에 찌든 중년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또 남편은 왜 친구들에게 장식용이란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괜히 아내가 하이데거를 이해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글은 왜 그렇게 어려운지. <집이 넓어지고 있어>는 실제 공간이 늘어나는 곳에 사는 화자의 불안감이 먼저 다가왔다. 자신의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차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불안해하는 그와 집이 넓어져 좋아진 그가 교차한다. 그러다 다른 집도 자신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느끼는 편안함과 행복은 괜히 짠하다. 중산층이라 불리며 조금씩 집을 불려갔던 시절의 우리가 조용히 스쳐지나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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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위드 파파 - 꿈많은 아빠와 딸의 꿈같은 여행
이규선.이슬기 지음 / 성안당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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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의 해외 배낭여행을 다룬 책이다. 이 둘의 첫 해외여행지는 인도다. 인도 여행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멋진데! 하고 감탄하고 지나갔겠지만 그 여행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는 지금은 ‘정말 무식하게 용감했구나!’하고 감탄한다. 이들이 함께 한 여행지는 상당히 많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곳은 인도, 네팔, 중국 차마고도, 영국, 프랑스 파리와 남부, 벨기에 등이다. 책 뒷날개를 보면 다른 여행지도 나올 모양이다. 그때는 이 책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주었으면 좋겠다. 딸과 아빠의 사이가 너무 정답고 부럽기 때문이다.

 

자식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에 관심이 있다. 여행관련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더 강해졌다. 이전에 친구와 둘이서 방콕을 여행했을 때 엄마가 딸 둘과 함께 두 달 동안 동남아를 여행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었다. 하지만 그 감탄은 가족여행 정도로 늘 축소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오고, 돈이 없다고 말하면 자식 중 한 명만 데리고 다녀오라고 부추긴다. 친한 친구 부부와 애들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바람을 심하게 넣는다. 늘 그들은 가지 못하는 핑계를 대기 때문이다. 나도 이전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많이 대면서 멈추어 있었다. 30대 초반까지는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 동해 바다로 갑자기 떠나기도 했는데 말이다.

 

아빠와 딸. 쉬운 여행 동반자가 아니다. 주변을 보면 엄마와 딸이 떠나는 경우는 자주 보지만 아빠와 딸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들의 동행이 현지에서도 눈길을 많이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들은 엄마와 함께 오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이들의 첫 여행은 티격태격도 무척 많았다. 그런데 같이 다니면서 서로의 사이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긴 여행은 두 사람의 사이를 가름하는데 아주 좋은 척도다. 부모 자식 사이라고 해서 마음이 딱 맞을 수는 없다. 가끔 블로그에서 아들이 엄마를 모시고 여행한 곳의 정보와 소식을 올린 것을 볼 때 부러움을 느낀다. 왜냐고? 아직 한 번도 부모님과 여행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칠순을 앞두고 해외여행 한 번 같이 가자고 했을 때 비행기 타기 싫다며 거절한 이후 더 이상 여행은 말하지 않는다. 제주도라도 가자고 늘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딸이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그 사이에 아빠의 글이 일기나 단상으로 채워진다. 처음부터 책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가진 여행이 아니었기에 일반 여행 가이드책들과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자신들이 돌아본 곳의 정보도 충실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의 여행이 유명한 곳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경험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달려가기보다 샛길로 빠져 다른 경험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할 정도다. 내가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기도 하다. 같이 간 사람은 무척 힘들어 하지만.

 

긴 여행은 좋은 아빠와 좋은 딸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논의할 정도로 발전한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이지만 방송이나 다른 사람들의 글을 통해 본 것과 딱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캠핑과 여행을 같이 가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함께 여행할 때 나 혼자만 열심히 찾다가 그곳을 말하면 금방 그곳을 가리키며 알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일방적인 행동이 만들어낸 잘못이 말 한 마디에 해결된 것이다. 여행은 이런 실수를 대화로 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금방 모든 것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둘 만의 추억은 두고두고 우려먹는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전철역으로 내려 올 때 풍경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곳에서 본 파리의 풍경도 노트르담 성당이나 개선문보다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너무 상업화된 모습이랄까. 다른 나라들은 가보지 못한 곳이라 추억이 끼어들 틈이 없지만 파리는 아는 지역이 나올 때마다 그곳의 추억이 떠올랐다. 동네 빵집 이야기는 지금도 가끔 이야기한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고, 아주 맛있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이렇게 둘 사이에 추억을 쌓고, 쌓인 감정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벨기에 와플에 감탄할 때 이때까지 큰 관심이 없었던 그곳이 가보고 싶어졌다. 배낭을 싸고 아주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부모님과 같이 갈 수는 없지만 아내와 아기와 함께라도. 한참 초딩 딸과 싸우고 있는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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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급투쟁 -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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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이 하나 있었다. IS의 파리 테러 사건이다. 중동 지역에서 일어났던 테러가 유럽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전 세계는 파리에 애도했고, IS를 규탄했다. 뉴스를 잘 보지도 듣지도 않는 나에게도 이 사건은 충격이었다. 알 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가장 많이 전 세계의 시선을 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칠 동안 언론은 파리 테러 사건으로 도배가 되었다. 파리를 추모하는 수많은 보도가 이어졌다.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왜 이런 테러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분석은 뒤로 하고.

 

시리아 난민 문제를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슬람 난민이 유럽 각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뉴스를 그렇게 심도 있게 방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발적인 테러가 며칠이나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한 것과 대조적인 보도다. 이 보도에서도 각국의 반응과 대응은 나오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심층 분석 보도는 없다. 그 지역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이 상황은 단순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예전에 베트남 난민처럼. 기억을 더듬어 보면 지난 역사에 수없이 많은 난민들이 안전한 나라를 찾아 자기 나라를 탈출했다.

 

현재 유럽의 가장 큰 문제 두 가지는 난민과 테러다. 테러의 경우 올해에도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서 발생했다. 프랑스의 경우 단순하게 이슬람 이민자가 많아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브뤼셀은 그런 상황도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몇 가지 이유가 나오는데 크게 공감할 만한 것은 눈에 금방 들어오지 않는다. 그 대신 IS와 테러에 대한 즉각적인 규탄과 반격의 목소리가 나오고, 다른 한 편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거부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의 선량하고 무고한 이슬람 이민자들은 움츠리고 있고, 자신들의 무고함을 말해야 한다. 이 상황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아주 바라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젝은 이 난민과 테러에 대해 언론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을 거부한다. 언론이 IS와 이슬람의 문제로 축소하고 왜곡할 때, 혹은 인도주의 시선으로 볼 때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 상황을 바라보는 좌파에 대한 질타도 잊지 않는다. 좌파의 금기를 깨자고 주장한다. 유럽 중심적 비판을 끝내야 하고, 고유의 생활방식의 수호가 그 자체로 파시즘적 징후나 인종차별적이라는 생각에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 것과 이슬람에 대한 일체의 비판을 거부하는 태도와 정치 세력화한 종교를 광신과 동일시하지 말고 이슬람 교도를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광신도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중 몇 가지는 나에게도 해당되고, 대부분은 우파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프레임이다.

 

지젝은 ‘아프리카는 결코 자율적으로 사회를 바꾸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왜? 서구인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미국과 유럽과 중국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 배후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IS와 학살과 난민 등은 이런 현실에서 발생한다. 살아남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 이후 한 난민의 인터뷰는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파리 같은 도시가 이런 비상사태에 빠져 몇 년은 아닐지라도 몇 달 동안 일상생활의 평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바로 우리가 도망친 곳입니다.” 난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의 희생자임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정치적 목적에 의해 난민 속에 테러리스트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왜곡하고 물타기 하는 정치세력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잘못과 모순을 알려야 한다.

 

난민 문제에 있어 “우리는 난민과 인도적 동정을 한데 묶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난민을 도우려는 자세는 그들이 겪는 아픔에 대한 동정에 뿌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돕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 제발 일체의 감상일랑 떨쳐버리자.”라고 말한다. 동정과 아픔에 대한 감상은 일시적일 뿐이다. 테러에 대한 심판에서도 올바르게 심판하자고 말한다. 테러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 하고. 그리고 계급투쟁을 다시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세계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것뿐이다. 이런 전체적 시야 없이, 파리 테러 희생자들과의 비장한 연대감은 윤리의 가면을 쓴 모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 뒤에 이 세계적인 연대가 유토피아일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제 패배할 것이고, 패배함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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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잡문
안도현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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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광고를 보기 전에는 시인 안도현이 시를 절필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최근에 몇 명의 작가가 절필한 것을 보았지만 그렇게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은 나의 현실을 감안하면 아쉬울 수는 있어도 두려울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면 그들의 작품이 나올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 안도현이 시를 절필하고 선택한 것은 트위터다. 140자 글자수 제한이 있는 SNS다. 이 책은 그가 3년 동안 트위터에 올린 것 중 244개를 선택해서 묶었다. 어떤 것은 한 줄이고, 어떤 것은 한계 글자수를 가득 채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도 안도현은 시인이다.’란 감상이다. 224개의 트위터가 어떤 것은 한 편의 시로 다가왔고, 어떤 글은 그 당시의 아픔으로 가슴에 와 콕 박혔다. 한국 정치와 현실에 대한 아픔과 분노가 드러나는 순간도 자주 있었고, 세월호 사건의 큰 아픔도 같이 나왔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단상들이 어떤 때는 가볍게, 어떤 순간은 유쾌하고 경쾌하게 표현되었다. 살짝 농을 치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여 잠깐 웃기도 했다. 많지 않은 분량이다 보니 짬짬이 읽어도 금방 다 읽게 된다. 다 읽은 후 살짝 살짝 책을 넘기면 반가운 글들이 나온다. 가끔 펼쳐보기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를 절필했다고 하지만 나에게 이 트위터 속 글들의 일부는 시로 다가온다. 어떤 글은 왠지 모르게 하이쿠처럼 다가왔다. 형식을 따지면 아닐 수 있지만. 시인으로 산 세월 때문인지 많은 글들이 정제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의 대히트작인 <연어>와 오래 전에 읽은 시집 한 권 등이다. 얼마 전에는 같은 시인이었던 도종환이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그가 대선으로 절필선언을 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누가 낫다고 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현실에서 두 시인의 삶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사실 그들의 시집을 최근에 새롭게 읽기 전에는 그들이 이렇게 사회에 많은 참여를 하는 시인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이 없었다.

 

1만개의 글 중에 선택한 개수가 겨우 244개다. 많이 적다. 한 장에 하나의 트위터만 적었다. 종이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이 글을 잡문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과연 잡문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짧은 글 속에서 시대와 호흡하는 시인의 일상과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글은 감탄하고, 어떤 글은 의미를 곱씹는다. 어떤 글은 그냥 슬쩍 훑어보고 지나갔다. 나의 마음이 복잡할 때 더욱 그렇다. 아마 책이 아닌 트위터 상의 활자로 봤다면 지금과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글들은 너무 휘발성이 강하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읽으면서 멋진 글이란 생각에 어딘가에 표시를 해 둔 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다. 다음에 그냥 술렁술렁 넘기다 보면 발견하지 않을까. 무겁고 지친 마음에 잠시나마 휴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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