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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202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2025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이 작가는 첫 장편인데 30일 만에 완성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모르고 읽었는데 알고 나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용구 등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단숨에 읽게 하는 흡입력은 조금 약하지만 읽는 재미는 가득하다.
현학적인 요소가 많아 곰곰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 부분들 덕분에 몇몇 작가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표적으로 한 명 꼽는다면 히라노 게이치로인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장인과 사위가 독일 여행을 왔다가 장인이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위는 이 이야기를 녹음했다가 소설로 구성했다는 설정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일본 최고의 괴테 연구자 도이치가 마주한 한 문장이다.
결혼기념일 식당에서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명언이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로 번역했다.
독일 유학 중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고 친구와 농당했지만 이 문장은 낯설다.
아내가 출처를 물을 때 <서동시집>이 아닐까 하고 말하지만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아니다.
이때부터 도이치의 이 문장에 대한 조사가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이나 주변 누구도 정확하게 이 문장의 출처를 모른다.
한 유명인이 한 말로 알려진 명언들이 실제 그 사람도 인용한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작가는 이런 경우도 중간중간 넣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원래의 문장을 요약하면서 명언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이런 사실들만 나열했다면 순간적으로 시선을 끌었겠지만 재미는 없다.
여기에 자신의 가족 이야기, 학계의 분위기, 학생의 논문 지도 등이 엮인다.
한정된 인간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전문 분야 이야기이지만 재밌다.
노년의 괴테 연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만의 세계를 풀어낸다.
약간 특이하게 느낀 것은 주인공 가족들이 기독교 신자들이란 점이다.
물론 도이치가 교회에 가는 것은 일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때 뿐이지만.
스승이자 장인이 성경을 히브리어로 필사한다는 부분도 놀랍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첫 장면에서 사위의 정체를 숨겼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혹시 했던 사람이 나왔는데 역시 그였다.
딸이 운동화를 신고 밤에 운동한다고 나가는데 알고 보니 연인을 만나러 갔다.
이 사실을 아내와 딸이 속이고 있었는데 괴테의 문장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알게 됐다.
하나의 문장이 불러온 일상의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문제가 잘 그려져 있다.
나 자신도 학창 시절 후배가 던진 문장 하나 때문에 수없이 도서관을 뒤진 적이 있다.
정확한 출처는 아직도 모르고, 그 의미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단어와 단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은 단어만 이해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잠시 그 시간이 떠올랐고, 도이치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도 궁금했다.
이 지적 탐구 과정은 약간 현학적인 부분이 있지만 이 또한 좋아하는 것이다.
이 가족의 일상을 간단하게 보여주는데 우리도 그런가 하는 의문이 있다.
밖에서 함께한 후 집에 와서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진다.
딸은 자신의 논문이나 공부 때문에, 아내는 실내 조경으로, 도이치는 자신의 서재로.
자주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아내가 만들고 있는 실내 조경에 대한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서 자신의 작업을 만들어 나가는데 도이치는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마지막에 독일에 가서 자신이 얼마나 가족들의 일에 무관심했는지 알게 된다.
이 장면도 우리가 가족들의 일상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려준다.
그리고 자신의 <파우스트>에 대한 방송에 출처 불명의 문장을 마지막에 넣는다.
엄격했던 이전의 나라면 잠깐 욕을 했을 지 모르지만 이젠 이 상황이 재밌다.
도이치가 이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언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어떤 식으로 요약되어 유통되는지도 봤다.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단순한 캐릭터가 주는 매력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