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2 - 1916-1920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35년 시리즈 2
박시백 글.그림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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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35년의 역사를 다룬 박시백 화백의 <35년> 2권이다. 1권을 읽지 않고 2권부터 읽었지만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을 다루고 있기에 많은 부분이 낯익었다. 하지만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시대를 그려낸 이 만화는 낯익음을 넘어선 섬세함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학창 시절 배운 단순한 역사를 넘어선 풍성한 사료는 내가 기존에 읽었던 역사서 등과 맞닿아 있으면서 더 확장되어 있다. 그래서 곳곳에서 낯선 이름과 낯선 활동 등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이 낯섦 대부분은 최근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나의 무지가 큰 역할을 한다.

 

이제는 일제강점기와 35년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만 한때는 다른 단어를 사용했었다. 일제 36년이란 용어였다. 35년이냐, 36년이냐 하는 것도 한때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이제 이런 용어들이 정리된 모양이다. 일제강점기란 단어도 낯익어진 것도 황교익이 방송에서 자주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내가 상당히 연식이 되기는 된 모양이다. 동시에 최근 역사 용어에 대한 무식이 그대로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알고 있던 단어가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낯선 단어로 다가온 것인지도.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독서가 최근에 거의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1916년부터 1920년까지 시대를 다루지만 가장 중요한 사안은 두 가지다. 하나는 3.1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이제는 3.1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전에는 3.1운동이었다. 만세운동의 성격만 부각시킨 교과서를 배웠던 세대라 혁명이란 단어가 낯설다. 이 3.1운동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과장되게 표현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시대의 상황과 함께 아주 냉정하게 그려내었다. 물론 과장된 부분은 이 3.1만세운동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응이었다. 그 시대가 아직 식민지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제국 열강들에게 이 운동은 우리가 세계 뉴스에서 본 작은 독립운동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의도를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었다. 하지만 그 시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아직 완전히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이것은 하나의 좋은 시발점이었다. 만세운동이 혁명으로, 해외로 번져가는 과정을 보여준 장면들은 기존의 인식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한계가 분명한 운동이 다른 활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출범이었다. 최근 임시정부를 두고 벌어지는 몇 가지 논쟁은 아직 다루고 있지 않은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임시정부를 세우고, 기존의 세력을 통합하려는 노력 등에는 아주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이해관계를 작가는 간결하면서도 세부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고 만화 속에 풀어낸다. 안창호의 퇴진을 둘러싼 평가 속에서 작은 말 하나로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부분은 이 시대의 사료들을 제대로 읽고 소화하지 못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의 흐름 속에서 꼭 필요한 사건들과 인물만 뽑아서 풀어내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는 이 책 한 권이 다른 공부의 작은 시작임을 알려준다. 연해주 지역과 조선공산당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다른 통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참고문헌을 간단하게 읽으면서 내가 읽었던 책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작은 열의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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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문장
에도가와 란포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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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치 코고로 시리즈다. 장편인데 그렇게 분량에 많은 편은 아니다. 대부분 란포의 소설은 단편으로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것들 대부분이 그렇다. 물론 동서에서 나온 <외딴섬 악마>는 별도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읽은 적이 없다 보니 기존 출간물 중 중복해서 읽은 단편도 꽤 많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도 잠시 읽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책을 끝까지 읽은 다음에도 유지되었다. 왜냐고? 그것은 이 소설에서 사용된 트릭을 생각보다 빨리 파악했고, 낯익은 설정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을 자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기존 추리소설의 트릭 등과 비교하게 된다. 내가 자주 트릭을 금방 간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의학계의 권위자 겸 명탐정인 무나카타 류이치로 박사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의 조수가 힘겹게 도착한 후 하나의 지문을 남긴 후 죽는다. 독살이다. 그런데 이 지문이 상당히 특이하다. 3중 소용돌이 지문으로 악마의 모습과 닮았다. 이 지문이 소설 속에서는 살인자의 도장처럼 사용된다. 사건 현장에 항상 그 지문이 찍혀 있다. 현재 한국이라면 이 지문만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겠지만 일본은 한국처럼 지문 등록 제도가 없다. 이 소설이 나왔을 당시는 한국도 물론 없었다. 이 괴이한 지문은 어느 순간 불길함의 표시이자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나카타 박사는 아케치 코고로와 함께 명탐정으로 불린다. 기업가 가와테 쇼타로의 의뢰를 받은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이 당시에는 아케치 코고로가 한국으로 사건 조사하러 간 상태였다. 한국이란 지명은 번역하는 도중에 바뀐 듯한데 아마 원문에는 조선일 것이다. 출간된 것이 해방 전이란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이 한국이란 단어가 묘하게 시대상을 왜곡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리고 이 무나카타 박사의 활약은 언제나 한 발 늦다. 우리의 김전일도 그렇듯이. 여기에 이 사건 전체를 기이하고 묘하게 만드는 역할도 담당한다. 언제 넣었는지 모르는 편지나, 언제 찍었는지 모르는 지문 등과 함께 범인의 정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물론 이 때문에 내가 범인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살인에 대해서 ‘혹시’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금방 사라진다. 일말의 주저함도 없다. 가와테 쇼타로의 두 딸이 죽게 되는 과정은 나오지 않지만 그들의 시체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장면들은 순간의 망설임도 허용하지 않는다. 무나카타 박사가 단서를 좇아가는 그곳에서 최악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이 잔혹한 장면을 보면서 처음에는 약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런 납치 살인을 다룬 소설에서 조금의 가능성을 남겨둔 것을 읽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란포는 빠르게 이 시체를 보여주면서 다른 가능성도 같이 없애버린다. 이 두 딸의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신출귀몰한 범인을 등장시켜 일반적인 과학 수사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린다.

 

추리소설의 특성 상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과학을 뛰어넘은 마법이 펼쳐진다고 해도 그 한계는 설정해놓아야 말이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무나카타 박사가 만난 기이하고 괴이한 수법들은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것 같다. 아니면 그 뒤에 또 다른 트릭이 숨어있거나. 읽으면서 가능성을 지워나갔고, 간결했던 살인에 비해 조금 긴 범인의 설명은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케치 코고로가 이 사건을 해결한 방식도 제3자의 시각에서 봤기 때문일 것이다. 당사자가 아니고, 시간이 지난 후 기록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본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장치까지 곁들여진다면 사건 해결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그것을 말하면 스포일러이니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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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참회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6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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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을 제대로 보지 않다가 반가운 소설 한 권을 발견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에서 알려준 것이다. 오래전에 읽었던 <살인마 잭의 고백>이다. 최근작들을 보니 아는 제목들이 꽤 있다. 역자 후기를 보니 엄청난 다작을 내놓고 있는데 어느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작하면 일본 작가 몇 명이 먼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결코 좋은 평가만 내릴 수 없다. 아마 이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이 번역된다면 개인적 평가도 바뀔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 놓고 보면 좋은 작품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다른 작품들을 거의 읽지 않아 작가의 작품 속 세계가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살인마 잭의 고백>은 전편에 해당한다. 후속작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하나의 중요한 등장 요소 중 하나였던 방송국 프로그램과 그 속에 소속된 보도기자가 주인공이다. 데이토 TV의 간판 보도 프로그램 [애프터 JAPAN]은 <살인마 잭의 고백>의 방송 때문에 방송윤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상태다. 이 권고 사항을 알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보도 기자 다카미와 사토야의 활약이 펼쳐진다. 특종에 목매는 기자와 방송국의 이면을 보여주면서 언론 보도의 명암을 하나씩 파고든다.

 

현재 시청률이 가장 우선인 방송국의 현실은 보도 기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건을 쫓을 기회를 박탈한다. 정확한 보도보다 선정적이라도 시청률이 더 좋은 방송이 우선이다. 2년차 여기자 다카미가 베테랑 사토야와 함께 경찰청에서 납치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보도 협정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다음은 시청률이란 거미줄에 걸린 PD의 방송으로 인한 대오보로 이어진다. 이 과장 속에 이전에 있었던 문제들이 다시 반복되는데 특종과 과시욕이 이것을 더 부채질한다. 이 과정 속에서 가장 냉정한 판단을 하는 인물이 사토야지만 월급쟁이 한계를 그는 결코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한 여고생이 납치되었고, 결국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라고 방송한 아이들 중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하고, 취재의 열기는 더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언론의 모습은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 권리라는 말 속에 담긴 진짜 속내는 특종과 시청률 등으로 대표되는 욕망들이다. 이런 욕망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 다카미다. 여동생이 자살한 후 제대로 된 언론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기성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잔인하고 악독한 게 TV와 신문, 주간지라고요.”라고 말하는 것과 그녀를 처음 보자마자 기자란 사실을 알았다는 것에서 이것이 드러난다. “언론 일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해요?”라고 물을 때는 우리가 미화하고 과장해온 언론의 본질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여고생의 죽음을 다루다 보니 학교 문제와 청소년 범죄를 간단하게 말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 “희생된 학생과 유족의 비탄에는 일절 귀 기울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학교의 보신만을 위해 내달리는 모습은, 교육자라기보다 상사의 지시에 따라 사고를 진화하기에만 급급한 회사원으로 보였다.”와 “소년 범죄는 잔혹성을 차지하고 발생 건수 자체로 보면 전후로 거의 변동이 없다.”란 말들은 우리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계의 문제는 이미 다른 책에서 잘 다루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소년 범죄의 경우는 그 잔혹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전체를 호도하는 분위기다. 교묘하게 건수가 아주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언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언론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결론은 아직은 언론인이 필요하다는 쪽이다. 경찰과 언론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말하면서 그 지위를 어느 정도 올려놓았지만 탐사 보도의 영역이 아닌 경우라면 그 필요성을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실수와 오보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방송 한 번 내보지 않고 있는 현실과 그 오보로 인한 피해자들이 겪는 아픔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법조계의 모습이 겹쳐진다. 언제부터 알 권리가 인권보다 우선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치열한 취재 경쟁과 그 속에 담긴 비열한 욕망은 국민의 알 권리를 이용한 것 이상으로 보기 힘들다. 기레기란 단어가 나오게 된 것도 이 연장선일 것이다. 마지막 반전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 반전이 그렇게 강렬하게 와 닿지 않는다. 그보다 힘겨운 일상 속 삶에서 비롯한 작은 실수와 악의가 더 눈에 들어온다. 부모이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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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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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SF는 잘 모른다. 근래 몇 권 정도 출간된 것 중 읽은 것도 거의 없다. 물론 사놓은 책은 몇 권 된다. 이 형제 작가들의 이력을 보다 낯익은 작품이 한 권 보인다. 바로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이다. 한참 책을 사 모을 때 출판사를 보고 집어넣었던 책이다. <종말전 10억년>과 같은 소설인데 그 당시는 약간 헷갈렸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출판사 열린책들의 초기 판본을 볼 수 있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이전 작품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겼다.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외계와의 첫 접촉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상상력에 먼저 놀란다. 외계인들이 다녀간 곳을 구역이라고 부르며, 그곳을 몰래 들어가는 인물들을 스토커라고 한다. 이 구역에 대한 설명은 현재의 과학으로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만약 이 도구를 현실에 적용만 할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고 더 다양한 구역 내 물건을 가져오길 바라지만 이 구역을 관리하는 조직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막는다. UN같은 조직의 역할이다. 하지만 높은 수익은 언제나 높은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든다. 주인공 레드릭 슈하트도 그런 스토커 중 한 명이다.

 

하몬트란 지역의 한 곳을 외계인이 다녀갔다. 그들이 다녀간 후 그 구역은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상식과 현실의 과학을 넘어선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물체는 닿기만 해도 고무처럼 변하게 만들고, 어떤 지역은 중력에 문제가 생긴다. 이 구역은 그냥 걸어 들어가서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스토커는 이런 일을 몰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스토커가 아니라 오히려 밀수꾼 혹은 도굴꾼에 더 가깝다. 그곳에서 챙겨나온 물건들은 높은 가격으로 암시장에서 거래된다.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그 물건들은 작가들의 의도에 따라 정확한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나의 뇌는 그 이미지를 상상한다고 무척 바빴다.

 

레드릭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스토커가 그 구역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모험을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이 구역 안에서 발견된 혹은 가져 나온 물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긴 세월을 지나면서 그가 겪게 되는 일들은 그렇게 넓지 않은 그 구역이 어떤 곳인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들로 가득한 공간임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처음에는 왜 그가 조약돌을 던졌는지 그 이유를 몰랐지만 뒤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 그가 발견한 물건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현실의 과학과 별개의 문제다. 모험과 상상력이 한꺼번에 집약되어 있다.

 

누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은 이 소설의 제목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 구역이 의미하는 바도 같이 보여주는데 외계와의 첫 접촉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 신선했다.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과 과학적 난제를 안겨준 그 구역이 실제 외계인들이 잠시 다녀간 피크닉 장소일 뿐이라는 가정은 인류가 안고 있는 수많은 의문과 철학을 뒤집어보게 한다. 사람들의 인식이 지닌 한계를 이런 식으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것이 얼마나 한계가 분명한지 잘 나온다.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우리의 상상력도 그 한계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하몬트라는 지역을 결코 확장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하몬트 출신이 살면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말하기는 하지만 항상 그 대상은 하몬트에 한정된다. 이 놀라운 구역의 발견물들이 현실의 과학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도 말하지 않는다. 그 중 일부의 쓰임새가 나오기는 하지만 과학적 설명은 없다. 이런 불친절한 설명은 오히려 상상력을 키운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에 더 집중한다. 이런 설정들이 어쩌면 검열관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마지막 레드릭의 모험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 읽을 때 놓쳤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느꼈다. 인간의 의지는 어떻게 되는가 하고. 외계인의 피크닉은 인류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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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의 밤
올리비에 트뤽 지음, 김도연 옮김 / 달콤한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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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란드란 지명이 아주 낯설다. 하지만 지도에서 찾아보면 낯익다. 이 낯섦과 낯익음의 차이는 이 지역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스칸디나비아 반도라는 불리는 그곳 속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사미족이 살았던 이 땅은 노르웨이, 스웨덴, 필란드의 세 나라에 걸쳐 있는 광대한 영토다. 구글에서 라플란드를 검색하면 오로라, 북극, 필란드, 여행 등이 먼저 나타난다. 이 지역의 오로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 같이 문외한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다. 이 소설은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과 사건 등을 다룬다.

 

라플란드에 먼저 살았던 민족은 사미족이다. 순록을 치면서 산 이들에게 종교와 인종 문제가 엮이면서 큰 변화가 생긴다. 멀리는 기독교가 사미족 샤먼을 말살하고, 19세기는 사미족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이루어졌다. 현재 가장 선진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역사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인종 탄압과 함께 강한 동화 정책이 펼쳐졌고, 현재도 이 민족을 둘러싼 많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 이름만 진보당인 극우 정당이 소설 속에서 내뱉는 말들은 우리가 북유럽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만 현실이다.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극우정당들이 더 많은 득표를 한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북유럽 스릴러가 아주 인기 있지만 이 소설처럼 극지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주로 대도시를 배경으로 살인자를 좇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작은 마을이 배경이다. 순록치기들이 등장하고, 사미인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스노우모빌을 타고 순록치기들을 관리하는 경찰이 등장하고, 사미인들은 라플란드 속 국경을 오고 간다. 이 국경이란 인위적 구분이 오래전에는 하나의 비극이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순록경찰도 이 국경을 넘어 다니고, 어떤 순간에는 라플란드에 있는 순록경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개인적으로 아주 낯설다.

 

순록경찰인 클레메트와 니나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간다. 아버지가 사미인이고, 어머니가 스웨덴인 클레메트는 사미인 동화정책 때문에 아주 큰 고생을 했다. 이 이야기 속에 가끔 나오는 이 인종정책은 니나가 북유럽에 있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무지와 이어진다. 과거의 역사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현재의 모습만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역사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프롤로그와 사미족 북의 도난으로 인한 시위에서 목사가 하는 말과 행동이다. 이 경건주의파가 어떻게 사미인들의 문화를 파괴했는지, 풍부한 자원이 사미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등은 이 소설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라플란드의 자연환경을 알려주기 위해 각 장마다 일출과 일몰과 해가 떠있는 시간을 알려준다. 극야의 시기를 지나 조금씩 햇볕이 나오는 시간과 함께 이야기는 점점 더 확대된다. 사미족 북의 도난과 순록치기 사미인 마티스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노르웨이의 작은 사미 마을 카우토카이노에 많은 분노를 자아낸다. 그리고 곧 열릴 예정인 UN 컨퍼런스에서는 소수민족의 인권을 다룰 예정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 사건들이 재빨리 해결되길 바란다. 상부의 압력과 달리 아직 충분한 수사도 지원도 없는 상태다. 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엮기 시작한다. 여기에 극지의 아주 열악한 자연 환경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솔직히 아주 복잡한 미스터리나 충격적인 반전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다. 의외성은 살아있지만 감탄할 반전은 없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를 따라가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미인들의 역사와 황량한 풍경과 극저온의 기온들과 엮이면서 읽는 동안 머릿속에 이미지를 쌓아간다. 이 쌓인 이미지와 사미인들의 역사와 자원개발 등이 섞인다. 언제나 비극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한다. 이 작품도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강한 인상과 함께 약간의 허무감을 던져준다. 뭔가 뒤끝이 남는 느낌이다. 좋게 말하면 여운이려나? 두툼하지만 이미지가 조금씩 쌓이면 생각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이런 극지 스릴러라면 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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