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복, 휴休
오원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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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말을 보낸 적이 많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책읽기를 중단하거나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멍하니 텔레비전을 켜놓고 그냥 시간을 보낸 것 뿐이다. 이것이 과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아니다, 다. 휴식을 제대로 취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나간 시간이 아깝고 아쉽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이나 예전에 못했던 일을 하면서 보낼 수 있었는데 하면서. 우리는 이처럼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한다.

 

쉬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네 가지 방식을 말한다. 비우고, 몸에 귀를 기울이고, 타자와 만나고, 안과 밖이 없이 몰입한다. 이것은 다시 명상과 통합의학과 숲 치유와 예술 치유 이야기로 요약된다. 이 방법들은 저자가 잘 쉬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제시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느 순간부터 가득 채우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정보와 지식과 부를 채우려고 아등바등한다.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스트레스가 강해진다. 이때 이런 것들을 놓아버린다. 비워버린다. 생각과 마음을 비우는 명상에 빠진다. 물론 이것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몰입할 때 자신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된다.

 

몸에 귀를 기울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너무 자주 병원에 가거나 거의 가지 않는다. 나의 경우는 후자다. 가끔 금방 끝날 병을 오래 가지고 가는 경우가 있다. 자연 치유를 과신한 결과다. 제대로 몸에 귀를 기울이고 좀더 세밀하게 관찰했다면 이런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고 잘 숨 쉬며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들이다. 일상생활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바른 자세를 취하고, 생활운동량을 늘리고, 편한 자세로 좋은 호흡을 하고, 늦게 자지 않으면서 숙면을 취해야 한다. 이러면 몸 안의 의사가 살아나 우리를 돌본다.

 

나는 ‘나들’로서 존재하고 있다. 숲에 들면 나라는 타자와 나무, 새, 냇물, 바람이라는 타자가 공생한다는 사실을 느낀다고 말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피톤치드니 음이온이니 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풍부한 산소도. 숲속을 가득 채운 타자들은 음악으로 공명한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안팎이 없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사라진다. 이것 또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하다. 글쓰기의 경우 뼛속까지 모두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제 이후부터 이런 깊은 글쓰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단순히 추상적인 말들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현대 과학이 발견한 것을 근거로 역사와 과학과 경험을 엮어서 잘 쉬기 위한 방법을 제안한다. 찬찬히 책을 읽다 보면 실천으로 옮기기가 만만하지 않다. 어떤 것은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삶에서 사라진 것도 있다. 평안함에 빠져 시간을 절약한다는 핑계로 그만 둔 것도 있다. 자극적인 것을 찾아 움직이면서 몸과 마음을 혹사한 경우도 많다. 순수한 몰입의 기쁨도 점점 사라진다. 집중하는 시간도 짧아진다. 이것들을 되찾기 위해 잘 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책이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힘들어 보인다. 뭐 하나씩 한다면 다를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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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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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그 이름은 스위드다. 소설 속 작가가 아직 초등학생이던 시절 뉴어크의 동네에서 스위드는 마법의 이름이었다. 그는 풋볼에서는 엔드, 농구에서는 센터, 야구에서는 일루수였다. 흔히 말하는 만능스포츠맨이었다. 아직 2차 대전 중이었던 그 시절 유대인이었지만 그는 동네 사람들이 그를 통해 환상에 빠지고, 전쟁을 잊을 수 있게 만들었다. 정말 엄청난 일이다. 이 기억은 화자가 노인이 된 후에 그를 만나 인사만 했는데도 가슴 떨리는 흥분을 느끼게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영웅 숭배가 한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영웅이 파멸하며 추락하는 과정을 그 시대의 모습과 같이 엮어서 자세하게 풀어낸다.

 

소설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기억 속의 낙원, 2부는 추락, 3부는 잃어버린 낙원이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 이 제목이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두 읽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보니 한 편의 실낙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추억과 기억으로 윤색되었던 과거를 현실 속으로 불러오고 사실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영웅과 낙원을 산산조각낸다. 한 인간의 엄청난 성공이 시대와 딸이 불러온 사건으로 인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 과정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는지 그 시대의 풍경과 같이 보여준다. 특히 중심이 되는 시대는 60년대다.

 

한 영웅에 대한 숭배와 그로 인한 오해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오해하고 오해하면서 사는 삶에서 어릴 때 자신의 영웅을 만나 찬란했던 과거사를 듣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행복이다. 하지만 이 행운과 행복은 자신만의 착각이다. 그가 다시 만난 영웅은 딸 메리가 폭탄 테러를 가하고, 그 때문에 한 명의 선량한 시민이 죽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한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들지만 현실은 잔혹하다. 그 시대가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파도에 그 딸이 휩쓸려 들어간 것이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비록 이전에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성인은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열정적으로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빠져들기에는 충분한 나이였다.

 

학창 시절에는 운동선수로 정점을 찍었고, 가업을 물려받아 장갑업체를 운영할 때는 늘 승승장구했다. 이런 영광들도 딸의 폭탄 테러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살인과 도망은 평온했던 가정의 삶을 불안과 공포로 가득 채운다. 혹시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였다. 이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의 7~80년대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자식들의 데모 참여와 죽음으로 그 부모들이 어떻게 의식을 깨우치게 되었는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메리의 폭탄 테러와 민주화 운동은 다른 문제다. 그래서인지 스위드의 대응도 그 원인을 제대로 보기보다 자기만의 생각으로 흘러간다. 어쩌면 그는 그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겼다. 스위드가 자신이 딸과 한 키스에서, 대화에서, 가족 내부의 관계 속에서 되짚으면서 찾지만 이미 자신만의 세계 속에 살고 있던 그가 또 다른 자신만의 세계에 살던 딸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자기들의 주장만 내세우면서 정면에서 진실을 마주할 마음이 없었던 스위드에게 이것은 이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항상 승승장구하면서 남들이 바라는 바대로 올바르게 행동하고 생각했던 그이기에 돌발적이고 충격적인 행동을 할 힘을 상실한 것이다. 힘들게 딸의 소재를 알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비루하고 처참한지 알면서도 힘으로 끌고 나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동생 제리와의 대화는 이제 그 추락이 바닥에 닿았음을 알려준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다. 하나는 베트남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베트남 전쟁은 다시 그 시대에 불같이 일어났던 인종차별 문제와 또 연결된다. 이것은 스위드가 유대인이란 것과 또 이어진다. 스위드의 아내인 돈이 아일랜드계 천주교도라는 것은 메리가 태어났을 때 종교와 인종 문제로 시댁과 불화를 불러왔다. 이런 과정이 어린 메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미인대회 출신의 엄마가 바라는 바대로 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메리가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방황할 때 이 부부는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베트남에서 승려들이 분신자살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지만 부모는 ‘왜 그런 일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이미 이때 아빠와 딸 사이는 벌어지고 있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고 벌이는 논쟁은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그 유명한 포르노 영화 <목구멍 깊숙이>로 이어진다. 아직 이혼이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았고 성윤리 의식이 강했던 그 시절 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 대화 속에서 핵심은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미국 시민의 의식이다. 40년이 지난 현재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그냥 있을 수도 있는 일로 치부되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가장 올바른 사나이였던 스위드의 불륜이 드러난다. 강한 윤리 의식으로 묶여 있는 것 같은 외양을 지닌 미국 가정의 허상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스위드 부자는 자신들이 성공한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노력에 의해 부가 축적되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흑인 폭동이 벌어졌을 때도 자신들은 흑인 등에게 좋은 사업가란 인상을 계속 풍긴다. 작가는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는다. 물론 그 나라 사람들이라면 역사 시간에 제대로 배웠으니 필요 없을 것이다. 이후 이 폭동에 대응하는 자본가들의 모습은 현재 미국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스위드는 잠시 늦었을 뿐이다.

 

좋은 소설이다. 읽을 때 조금 힘들게 읽었는데 글을 쓰면서 하나씩 떠올려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의식,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 정치 문제와 이에 대응하는 정치권과 시민들의 모습, 사회 운동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자본가들의 의식과 현실 인식, 잘 가꾸어진 가정의 뒤틀리고 왜곡되고 숨겨진 배신들. 사랑으로 가득할 것 같은 가족의 삶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낙원이 얼마나 허약하고 과장되고 기만적인지 그 참 모습을 보여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들의 낙원은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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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는 왠지 모르게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같은 영국 작가인 이언 매큐언의 소설에 미친 듯이 빠져든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반스의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다. 사놓은 책이 몇 권 되지만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2012년에 나온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대한 엄청난 호평을 기억한다. 이 기억은 줄리언 반스라는 작가를 그냥 포기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그러다 나온 이 에세이는 소개글부터 특이했다. 처음에는 소설인줄 알았는데 2008년 아내와의 사별 후 감정을 담은 에세이라고 한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라면 어떨까? 그렇게 인연은 이어졌다.

 

이 에세이는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에세이들과 다르다. 모두 세 장을 되어 있고, 각 장이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냥 소설로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는 구성과 전개다. 특히 마지막 장인 깊이의 상실에서 그의 깊은 상실감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소설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장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문장은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바로 이 문장이다. 이후 나오는 문장은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와 “때로는 합쳐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다. 이 문장들은 각 장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앞의 두 장을 끌고 나가는 소재는 기구다. 인간이 하늘을 날기 전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도구다. 작가는 이 기구를 중심에 놓고 두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명은 세상의 변화를, 다른 한 명은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가장 핵심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렇게 길지 않은 이 이야기들이 왠지 모르게 집중력을 흐트린다. 줄리언 반스의 다른 책을 읽을 때 느낌을 떠올려준다. 단순한 역사와 기술에 대한 나열로 먼저 다가온 탓이다. 좀더 집중해서 읽었어야 하는데 보통의 장편소설처럼 가볍게 도입부를 지나갔다. 그 결과는 작가에 대한 나쁜 선입견만 강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3부 깊이의 상실 장에 오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아내의 사별 이후 그가 느낀 감정들이 하나씩 풀려나올 때 집중하게 되었다. 단순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 주는 의미를 하나씩 던져준 것이다. 누군가가 먼저 자식을 떠나보낸 후 자신들은 매일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 글 속에 자살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도 나온다. 단순히 죽는다는 것으로 이 상실의 깊이가 단숨에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변한 것들도 조금씩 들려준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살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169쪽)고 할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과 존재의 소멸을 같은 선상에 놓지 않고 이야기하면서 그 상실감을 어떻게나마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결코 버릴 수도, 보낼 수도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을 가장 절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 모습에 동의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고? 한 번도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유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별개의 이야기인 것 같은 세 장의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 오면 하나의 이야기로 모인다. 바로 줄리언 반스의 아내 팻 카바나다. 그녀의 죽음이다. 그녀에 대한 그의 비탄과 상실과 사랑이다. 사랑이다. 제목처럼 사랑은 죽는다고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작가에게는 그렇다. 이 사랑을 이런 고품격 에세이로 풀어냈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그 사랑의 깊이가 얕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제되고 잘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감정도 같이 정돈되고 다듬어졌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문장들이, 단어의 선택이 조금은 더 마음속으로 한 발 더 다가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시화선집
도종환 지음, 송필용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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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필용 화백의 이름과 그림은 낯설지만 도종환 시인의 시는 낯익다. 그 유명한 <접시꽃 당신> 때문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적이 있는데 예전에 같이 하숙하던 형이 시집을 샀던 것을 기억한다. 그 후 나도 샀다. 그 당시 시를 너무 이해하지 못해 어떻게 한 번 친해져 보려는 의도에서 몇 권의 시집을 샀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선택한 것이 베스트셀러였던 <접시꽃 당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도 지금도 시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계속 읽으면서 아주 조금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이 시화선집은 개정판이다. 2007년에 먼저 출간되었다. 7년이 지난 후 개정판을 내면서 다시 서문을 썼다. 그는 “시는 이미 내 오랜 운명입니다.”라고 말한다. 시를 쓴지가 30년이 넘은 노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시화선집은 새로운 시들이 아니다. 그가 이전까지 출간한 시집에서 뽑은 시들을 다섯 꼭지로 나눠 실은 시화선집이다. 읽으면서 어느 시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소리내어 시를 읊조려본다. 어디에서는 시보다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간다. 처음 읽는 시화선집인데 상당히 조화가 잘 된 것 같다.

 

시가 그의 운명이라고 했지만 그의 시에서 내가 발견하고 읽게 되는 것은 희망, 외로움, 쓸쓸함, 그리움, 슬픔 등의 감정들이다. 단순히 이 감정들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현실이 같이 녹아 있다. 80년 광주를 자연스레 떠올려주는 <오월 편지>에서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해직교사가 된 후 감정을 토로한 <어린이 놀이터>에서 ‘여기서 오 분만 걸어가면/ 쫓겨난 학교가 있다’고 했을 때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내가 가진 시인에 대한 좁쌀만한 정보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꽃잎>에서 ‘시작도 알지 못할 곳에서 와서/ 끝 모르게 흘러가는/ 존재의 저 외로운 나부낌/ 아득하고/아득하여’라고 할 때 다가온 외로움은 <빈방>에서 ‘내 겉옷을 들어 잠든 나를 덮어주는/ 이름 모르는 사람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로 이어진다. 이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의 베스트셀러에서 노래했던 사랑하는 사랑을 잃은 상실감에서 비롯했다. 그때의 감정은 그리움과 사랑으로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 아픔을 견뎌내고 살아가는 힘은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같은 삶의 경험과 연륜에서 시작했다.

 

외로움, 그리움, 아픔 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희망도 있다. <담쟁이>에서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고 말하지만 <희망의 바깥은 없다>에서‘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면서 희망의 고통스럽고 처절한 현실을 노래한다. <상선암에서>에서 ‘가장 험한 곳에 목숨을 던져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 있는 것이다’라고 할 때 벗의 당당한 쓰러짐을 기원하는 <풀잎이 그대에게>에서 ‘벗이여 온몸으로 쓰러져주셔요’라고 외친다. 이때의 벗들은 누구일지 궁금하다. 시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연필 깎기>에서 지조, 신념, 정직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질타하지만 ‘아주 고요해진 한순간을 만나고자’ 연필을 깎는다. 하지만 시인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꽃씨를 거두며> 아는 것이다. 이 수많은 감정들을 감싸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삶이다. ‘가장 낮은 곳을 택하여 우리는 간다/ 가장 더러운 것들을 싸안고 우리는 간다’<강>고 할 때 아름다운 사랑이 가슴 한 곳으로 살며시 스며든다.



 
 
 
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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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어야 산다. 먹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매일 출근을 한다. 그런데 이 출근이 싫다. 이런 그녀 앞에 한 여자가 맥스봉을 까먹는다. 화려하게 치장한 여자가 죽도록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다. 이때 하나의 멋진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배고픔이란 질 낮은 양아치 새끼 같은 거란 비유다. 하루 세 번 찾아오는 허기가 이런 비유로 이어진 것이다. 거기다 평생 따라다니니 얼마나 끔찍한가.

 

주인공은 유양이다. 여자다. 여자란 것을 쓴 것은 그림체를 보고 남자라고 미리 짐작한 결과다. 전철에서 만난 두 여자가 같은 화장실을 사용할 때 바로 알았어야 하는데 둔한 나의 감각이 놓쳤다. 잘 꾸민 채 회사를 다니는 조예리와 달리 유양은 사무실에서 겉돌며 자신만의 삶을 산다. 점심시간도 직장 상사와 함께 먹지 않고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찾아 먹는다. 1화가 온메일국수인 것은 단순히 날씨 탓일까? 화려함이 없는 이 만화를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먹거리들에 대한 단상들이 내 시선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독특한 캐릭터 유양. 그녀 때문에, 그녀가 먹는 음식 때문에 낯선 세계에서 낯익은 세계로 쉽게 빠져든다. 화려함이 제거된 그림체와 일상생활에서 흔히 먹는 음식이 유양이 처한 현실과 맞아 떨어지면서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늘 먹던 음식들인데 말이다. 회식 술자리에서 사장이 권한 음주 폭력에 대한 그녀의 대처는 속 시원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대가로 짤렸으니. 무직자의 자유는 좋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궁핍은 삶을 움츠려들게 만든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을 찾아온 엄마에게 당당하게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 단순히 선의의 의도에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뒤에 다가올 다양한 요구와 기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참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길지 않고 책 분량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맥스봉에서 시작하여 대전 성심당까지 이어지는데 그 속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음식들이다. 조금 낯선 것이라면 훠궈 정도랄까. 몇 년 전 상해에서 생각보다 부담없이 먹었지만 왠지 그 이후 손길이 가지 않은 음식이다. 그런데 이 만화 속 두 여성은 너무 좋아한다. 다시 먹고 싶어진다. 음식을 다룬 만화를 볼 때 자주 경험하는 현상이다. 떡볶이&튀김에서 MSG의 강한 맛을 표현할 때 며칠 전 먹은 떡볶이&튀김이 떠올랐다. 먹을 때 좋지만 먹고 난 후 결코 좋지 않았던 그 맛.

 

유양의 남자 친구로 유병이란 남자가 등장한다. 추남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얼굴 형상도 없다. 그런데 이 남자가 만든 캐릭터가 상당히 인기 있다. 하지만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에일리언에 나온 괴물들이다. 이 남자와의 만남이 정상적이지 않지만 이 둘의 궁합이 잘 맞는다. 특히 음식. 술에 취해 하룻밤을 잔 후 남자가 말한 쌀국수 한 그릇은 이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만나 팥빙수를 먹으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선수의 분위기가 풍긴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다. 음식은 어느 순간 두 연인을 하나로 강하게 묶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1권 마지막 이야기는 대전 나들이다. 몇 번 갔던 곳이지만 그 당시는 맛집에 대한 관심도 정보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기다. 아내가 친구가 있으니 한 번 가보자고 할 때도 그냥 무시한 곳이다. 성심당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항상 그냥 지나가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던 그곳을 유양과 유병은 찾아간다. 여기서 조예리 커플과 만난다. 이 두 커플이 보여주는 불안하면서 알콩달콩한 모습은 다음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흘러갈까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든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주변에서 늘 접하게 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멋진 캐릭터와 더불어 풀어낸 이 만화, 상당히 매력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