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1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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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소설을 읽는 것이 오랜만이다. 예전처럼 특정한 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찾아서 읽지 않다보니 가끔 만난다. 물론 아직도 어떤 문학상들은 나의 관심의 대상이다. 읽는 것은 나중의 일이고 나오면 위시리스트에 늘 올려놓는다.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럽고 자동적인 반응이다. 이 책의 선택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장편을 덥석 잡고 읽기에는 사놓은 책들이 너무 많다. 이런 기회는 또 한 명의 작가를 기억하게 만들고, 사고 싶은 책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언제나처럼.

 

구성은 간단하다. 현재와 과거의 시점가 점점 다가와 만나고, 각 시점에 주인공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이 사이에 다른 인물들이 잠시 끼어들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한 명의 눈먼 프랑스 소녀와 어린 나이에 전쟁에 끌려온 독일 소년이다. 소녀의 이름은 마리로르이고, 어릴 때 갑자기 시력이 나빠져 눈이 멀었다. 소년의 이름은 베르너이고, 가난한 탄광촌에서 부모없이 자란다. 마리로르가 열쇠 장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면 베르너는 아이들의 집이란 고아원에서 동생 유타와 함께 산다. 이 자매를 엘레나 아줌마가 돌봐준다.

 

두 아이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되지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다가온다. 다른 두 시간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만난다. 이야기는 생말로에 연합군이 폭격을 가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1944년 8월 7일이다. 과거의 시간은 성큼 성큼 달려온다면 현재의 시간은 하루씩 차근차근 진행된다. 당연히 이야기의 비중은 과거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의 사건이 어떤 과거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면서 그 시대의 모습과 광기를 차분히 그려낸다. 소녀의 시간이 패배국 국민의 입장에서 그려진다면 소년의 시간은 나치의 광기가 그 극에 달했을 당시의 일면을 극대화시킨다.

 

과거는 1934년부터다. 소녀는 아버지가 근무하는 박물관에서 하나의 전설을 듣는다. 전설의 133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불꽃의 바다’ 이야기다. 이 다이아몬드를 가진 자는 영생을 얻지만 그 주변은 불행이 다가온다는 전설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있는 전설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전설을 믿는 사람이 등장하고, 그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끈질기게 찾아다닌다. 이것은 이 소설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자그마한 축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한다. 우리가 알듯이 프랑스는 항복하고, 소녀와 열쇠 장인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피난 간다. 첫 번째 피난처는 그 다이아몬드를 전해준 박물관장이 말한 곳이다. 그 다음 피난처는 1차 대전 이후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생말로다.

 

소년은 과학에 관심이 많다. 그 당시에 귀했던 라디오를 잘 고친다. 그 시절은 나치의 망령이 전 독일을 휘몰아치던 시기다. 이 재능을 눈여겨 본 귀족 한 명이 소년에게 나치의 청년 정치 교육원에 입학하라고 말한다. 지식에 목말라 있던 베르너는 입학을 신청한다. 합격이다. 그 이전까지 소년은 동생과 함께 자신이 만든 라디오로 프랑스 방송을 듣는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프랑스 방송이다. 나치의 광기가 아이들에게까지 파고들던 그 시절 이 남매는 다행스럽게도 이성을 유지한다. 그랬던 오빠가 갑자기 나치의 교육원에 가고, 자신들의 라디오를 부셨다는 사실에 동생은 놀란다. 다정했던 둘 사이에 금이 생긴다.

 

생말로에 도착한 소녀의 일상은 파리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 소녀의 아버지는 파리에서처럼 생말로의 도시 모형을 만든다. 눈먼 딸이 홀로 다닐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소녀의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은 광장공포증이 있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마네크 부인이 늘 그의 곁에서 돌봐줬다. 이 구성원은 독일의 지배 아래에서도 이전과 별 차이 없이 살게 된다. 아버지가 전보 한 통을 받고 파리로 돌아가다가 잡혀 어딘가로 사라지기 전까지. 그 이후도 소녀는 그녀를 돌봐주는 마네크 부인과 에티엔 할아버지 덕분에 큰 불편함 없이 산다. 재미있는 것은 마네크 부인이 또래 할머니들과 함께 점령군을 골려주고, 연합군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 입학한 베르너는 강한 군사 교육을 받는다. 이때 수학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다. 이것이 학교의 과학자 눈에 들어간다. 과학자는 그를 시험한다. 그가 연구하는 것은 삼각측정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전파가 발생한 장소를 알 수 있다. 이 방법은 나중에 베르너로 하여금 파르티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전문가가 되게 한다. 그리고 이 학원에서 친구 한 명을 사귄다. 프레데리크다. 새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눈이 나빠 학원에 올 수 없는데 테스트 시험지를 모두 외워 입학시험에 통과했다. 베르너처럼 그도 아직 이성이 남아 있다. 모두가 전쟁과 나치의 광기에 휩싸여 있던 시절이라 이성이 밖으로 드러나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이성이 광기를 몰아내던 한 순간 소년의 삶은 파괴된다.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성장한 두 소년 소녀의 이야기가 빠르고 간결하게 진행된다. 이들이 만나는 것은 단 하루다. 책 소개처럼 이 하루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자신들은 알지 못하지만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눈 먼 소녀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면 전쟁과 광기의 소용돌이 중심에서 움직인 소년의 삶은 참혹하다. 그의 삼각측정법이 적을 찾아내는데 엄청난 활약을 펼치지만 그 결과는 잔인한 학살로 마무리된다. 독일군이 아니라면 멋진 활약이라고 칭찬할 뻔 했다. 그러다 실수를 한다. 실수는 그의 마음속에 불안감을 가져다준다. 이 불안감은 소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레지스탕스 활동이 쉬울 리가 없다. 단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사람들이 잘 돌봐주고 있을 뿐이다.

 

하루.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된다. 누군가는 이 하루가 자신의 삶을 바꾸게 한다. 작가는 잔인하고 참혹한 장면을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고 간결하게 그려낸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이다. 이 이후의 삶도 역시 간결하다. 그러나 그 여운은 길고 강하다. 어떻게 보면 흔한 후일담일 수 있는데 갑자기 강한 슬픔이 가슴을 강하게 두드린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전쟁의 참혹함을 견디고 살아남았지만 그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 있다. 30년이 지나도 그것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들의 일상을 짧게 보여주는데 그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 거대해 보인다. 일상의 위대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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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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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년 전 8월 하치오지 교외 신축 주택단지 느티나무 언덕에 지은 단독주택에서 부부 살해 사건이 일어난다. 그들은 오기 유키노리, 리카코 부부다. 이들을 죽인 남자는 한동안 집안에 머문다. 이 부부를 살해한 후 욕실까지 옮기고, 그 흉악한 현장이었던 복도에 피로 쓴 글자를 남겼다. ‘분노’란 단어다. 이 남자가 오기 저택에서 나온 것은 새벽 1시 무렵이다. 옆집 사람이 인사를 건넸고, 자전거 불을 켜지 않고 달리다 검문 중이던 경찰관에 제지당했다. 자전거 등록 번호를 조사하기 시작하는 순간 도주했다. 다음 날 범행이 발각 났고, 몽타주가 작성되어 지명수배되었다. 곧 이 남자의 신원과 주소를 밝혀졌다. 남자의 이름은 야마가미 가즈야다. 하지만 만 1년 동안 도주 중이다. 간략한 사건 개요를 설명한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작가는 노련하게 세 명의 남자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가출한 후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딸 레이코를 데리고 온 요헤이 주변에 살고 있는 다시로 군, 게이 유마가 섹스를 위해 찾아간 장소에서 만난 나오토, 이즈미의 엄마가 저지른 불륜으로 도망간 오키나와의 작은 섬에 숨어 있는 배낭여행객 다나카 등이 바로 그들이다. 작가는 이들을 직접 화자로 등장시키지 않고 요헤이, 유마, 이즈미 등의 일상 속에 등장시켜서 혹시 이들이 살인범 야마가미 가즈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계속 품게 만든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속 수사 중인 형사 기타미를 등장시켜 야마가미에 대한 최신 정보를 언론을 통해 알린다. 하지만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속에 의심의 싹을 틔우게 만든다. 독자도 마찬가지지만.

 

이 세 명의 남자들의 외모와 과거는 분명하지 않다. 일단 의심의 싹이 자라면 분명하지 않은 과거가 무시무시한 환상을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과 그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순간 그 환상은 어느새 부쩍 자란다. 마음은 요물이라 신뢰라는 거대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조그만 바람에도 쉽게 넘어가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더 쉽게 일어난다. 아이코의 좋지 않은 과거가 걱정인 요헤이나 게이란 사실이 알려지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유마나 나쁜 일을 겪은 이즈미와 다쓰야 등이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등장인물들이 의심하는 만큼 독자도 같이 이들 중 누가 과연 범인인지 혹은 전부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책 후반부가 되기 전까지 이 의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첫 도입부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분노’란 단어를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소설은 바로 이 분노의 원인과 이유를 찾아서 긴 여정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하지만 다른 세 곳에 나타난 수상한 남자와 이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노보다 관계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되었다. 노련한 작가가 이들의 일상을 편하게 보여주면서 경찰의 공개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단서를 이들과 살짝 연결시킨다. 이 작은 연결 고리는 누군가 혹은 자신들이 품게 된 자그만 의심으로 인해 점점 부풀려진다. 현실에 만족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와중에도 이 의심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언제나 그들의 마음을 집어삼킬 준비가 되어있다.

 

이 세 명의 남자 외에 또 한 명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형사 기타미와 사귀는 미카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다. 기타미가 형사라고 했을 때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녀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들은 사귄다. 하지만 기타미가 그녀를 강렬하게 원하고 열망하게 됨에 따라 이 관계는 깨어진다. 그녀의 삶을 자신의 삶 속으로 끌고 들어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다. 이것과 반대의 현상이 벌어지는 사람들이 세 곳에 등장한 그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남자들이다. 세 남자와 관계된 사람들은 이들을 자신들의 삶 속에 편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의심의 싹을 틔운다. 물론 이 세 명 중에 범인은 있지만 그것은 어느 순간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의심이란 귀신에 먹힌 사람들의 심리 묘사와 행동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엄청난 가독성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묵직하게 전개하지 않고 약간은 가볍지만 일상의 모습과 문제들을 보여주면서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범인의 심리를 깊게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면서 또 다른 방식의 범죄소설을 썼다. 공개수사를 통해 야마가미의 사건 전후의 흔적을 경찰이 쫓아가지만 좀처럼 살인 현장에 있던 ‘분노’란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분노란 단어가 꿈틀거리면서 사람을 잠식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단서를 제공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친절하지만 열린 결론으로 맺으면서 분노보다 더 무서울 수 있는 의심이란 심리를 아주 잘 표현했다.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 조금 아쉽지만 다른 방식으로 만족감을 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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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하루 - 하나님께서 출타 중이셨던 어떤 하루의 기록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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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많은 한국 교회에 돌직구를 던졌다는 작가에 대한 소개가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한국 교회에서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알고 있던 사랑의 교회 故 옥한흠 목사의 장남이란 사실은 덤이다. 물론 지금은 서초동 사랑의 교회가 온갖 비리와 부패로 인한 소문으로 방송에 나올 정도가 되었다. 교회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그 훌륭한 목사님이 계셨던 교회가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한국 교회의 역사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듣고 다른 대형 교회들이 어떤 단계를 거치면서 수많은 문제를 양산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훌륭한 신자들이 많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신자들의 반응을 보면 나의 믿음에 금이 간다.

 

시카고 한인 교회 목사 장세기의 하루를 다루고 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감명 받은 작가가 자신이 잘 아는 교회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제목처럼 낯선 하루다. ‘힘든 하루다. 힘들다. 정말 힘든 하루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오전 4시 50분부터 시작하여 오후 7시 5분까지 다루는데 참으로 많은 일이 벌어진다. 나쁜 일은 몰려온다는 말처럼. 그 힘든 하루의 최고점을 찍는 것은 딸 은정의 신앙 포기 선언이다. 이것만도 놀라운 일인데 그 이전에 다른 일들이 그를 최고로 힘들게 만든다. 그가 이렇게 힘든 것은 회의와 의심과 갈등을 내적으로 끝없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대별로 나눠 이야기가 진행된다. 4시 50분은 새벽 기도를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신도는 그 교회의 최정예 신도라고 한다. 회사 동료가 아내를 따라 한동안 이 예배를 힘들게 따라다녔다고 했는데 출장으로 가지 않게 되었다고 좋아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이 시간은 야간형 인간인 목사를 힘들게 한다. 그의 아내가 깨워주지 않으면 늦을 뻔했다. 신도 300명의 한인교회를 운영하는 그에게 이 신도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 새벽 기도는 그에게 오래전 잊고 있던 한 신도의 기도로 혼란스럽게 변한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하는 신도 때문이다. 그의 강렬한 기도는 그 바람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최소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고 이것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이것이 힘들고 낯선 하루를 보내는 장 목사의 일정 시작을 알린다.

 

솔직히 교회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 주변에서 들었던 것과 책에서 읽은 것들이 전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한인 교회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고, 폐쇄적이란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고 절실하게 믿고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이 교회 최고의 기부자인 김신수의 아버지가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불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마지막까지 개종하길 바라는 부분은 중세 유럽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철저하게 십일조를 내고 있는 그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들에게 신앙은 직선적이고 배타적이면서 명확한 것이다. 박주명이 반복되는 최면성 말로 자신의 어머니가 임종 전에 ‘하나님’을 외친 것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종교가 지닌 가장 비이성적이고 편협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장세기 목사도 모태 신앙이지만 중간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한 친구가 그에게 해준 말은 아주 인상적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증거를 찾아 모으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님이 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사건 사고를 수없이 찾아낸다. 이 의심은 미국에서 힘든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비행기 안에서 경험한 기적에 의해 사라진다. 그는 신학을 공부해서 목사가 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신의 목소리가 그를 목회자로 인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단 한 번 뿐이었다. 이후 그의 삶은 어느 목사와 다름없는 평범한 교회 운영자다. 대형 교회를 성장시키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다. 잘 운영되는 교회의 설교나 다른 것을 벤치마킹해서 그나마 신도수를 유지한다. 이제 교회가 비즈니스로 변했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다.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외치는 신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삶은 철저하게 인간적이다.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다.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우상을 숭배해서 그렇다고 말한다. 무신론자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늘 이 부분을 신자와 대화를 나누면 신앙이란 벽에 부딪히는데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장 목사도 기적이란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의 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 목사가 아닌 아버지란 사실은 하나님의 존재와 상관없이 현실의 우리는 많은 문제와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이란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한 유명 교회 목사와 그 교회의 문제를 본 후 목사직을 그만둔 한 목사가 ‘말이 되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한 말은 한국 교회의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이성적인 목사가 현실의 교회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하루 속에 압축해서 넣었다. 이성과 욕망, 신앙과 의심 사이에서 그는 흔들린다. 이 흔들림이 나로 하여금 그의 믿음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축복과 찬양 일색으로 흘러가는 교회의 모습은 어느 순간 이성이 마비된다. 그래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기적을 말한다. 딸 은정이 보여준 반응에 그 어떤 이성적인 대응도 하지 못한다. 무력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것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묻고 고민하고 의심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80년대 종교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느낌이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장 목사가 좀더 자신을 내려놓고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하나님을 사랑을 신도들에게 나누어주길 바란다. 힘들고 정말 힘든 일이란 것을 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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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카드 하우스 오브 카드
마이클 돕스 지음, 김시현 옮김 / 푸른숲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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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텔레비전 광고를 보기 전까지 <하우스 오브 카드>란 미국 드라마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요즘 미드를 잘 보지 않다 보니 제목을 아는 드라마가 몇 없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 당연히 몰랐다. 그런데 원작 소설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삼부작으로 쓴 책이다. 그 중 첫 권인데 대단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무시하고 있던 정치판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정치평론가나 기자들이 하나의 발표를 두고 수많은 가정을 세우고, 그 숨은 의도를 해석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 책을 보면 모두가 사전에 합을 맞춘 것 같다. 예전에도 정치 뉴스를 보면서 다른 의도를 의심하곤 했는데 이 의심이 더 깊어질 것 같다.

 

저자는 마가렛 대처의 1987년 선거 참모장이었다. 귀족 출신에 상원 의원이었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대처의 선거 참모장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영국 정치에 큰 힘을 발휘했다는 의미다. 선거전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작전으로 상대방을 흠집내고, 자신의 후보를 부각시킬지 잘 안다는 말이다. 이것은 작가가 FU로 불리는 프란시스 이완 어카트를 창조하는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해서 아주 매력적이고 현실적이면서 위험한 정치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그가 보여준 배후 조정 기술은 ‘권모술수’란 단어가 이렇게 잘 맞아 떨어질 수 없다. 언제나 가장 믿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적일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소설을 끌고 나가는 인물은 두 명이다. 한 명은 어카트고, 다른 한 명은 신문기자인 매티 스토린이다. 소설은 의원 선거로 시작한다. 보수당의 압승이 예상되었던 여론 조사는 선거 당일 그 어느 때보다 의석 차이가 준 채 끝난다. 원내총무인 어카트는 야심 많은 인물이다. 그는 선거 후 내각으로 들어가고 싶어 내각 개편 안을 들고 총리를 찾아간다. 총리가 이것을 거절한다. 선거 결과가 좋지 않아 내각을 개편하면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이유다. 이것은 총리가 한 선택 중 최악이 된다. 바로 어카트의 검은 욕망이 불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총리 아래에서는 자신의 어떠한 정치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총리를 무너트리고, 자신이 총리가 되기 위한 작전을 세운다. 치밀하고 무시무시하게 위험하고 잔혹한 계획이 차근차근 진행된다.

 

매티는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진 기자다. 하지만 그녀가 입사한 신문사는 사주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곳이다. 편집장은 사주의 충견처럼 움직이고,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은 편집장에 의해 방해를 받는다. 이때 그녀에게 도움을 손길을 내미는 정치인이 있다. 어카트다. 그는 정보를 살짝 흘리거나 노골적으로 전달하면서 그녀의 기사를 통해 자신이 바라는 작전이 신문 기사로 나오길 바란다. 그녀는 특종이나 고급 정보란 것에 홀려 그 숨겨진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기자의 특종병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총리를 무너트리기 위한 기사나 정보 누출이 어떤 사악한 배후의 조정이 아닌가 하고. 불행하게도 증거가 단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런 조사가 누군가를 불안하게 만든다.

 

어카트가 자신의 정치적 술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인물이 있다. 로저 오닐이다. 오닐의 여당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실수를 했다. 코카인이다. 이 비싼 마약을 사기 위해 당의 홍보비를 사용했고 이것을 어카트에게 들통난 것이다. 약에 중독된 오닐은 악마의 계약을 맺게 된다. 그것은 어카트의 손발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바라는 바를 대신할 입과 손을 이 계약으로 어카트는 얻었다. 당 내부의 기밀정보를 다른 당 초선에게 흘리거나 언론에 보내는 등의 역할을 한다. 당연히 이것은 모두 총리를 몰아내고, 총리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어카트의 전술이다. 한 번 중독된 마약은 결코 그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을 중심에 놓고 펼쳐진다. 물론 핵심이 되는 인물은 FU다. 매티가 그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녀는 어카트에게 매혹되었다. 정치인과 여기자의 밀월관계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데 도움이 되질 않는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기자 정신은 자신이 소속된 언론사의 방침과 충돌한다. 한국에서 기레기들만 보이는 현실을 감안하면 박수를 치고 싶은 인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가졌지만 그것을 발휘할 배경이 제대로 없다. 추악한 악으로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는 어카트를 전혀 견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감정이 눈을 가린다. 정보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휘두르는 정치판에서 순수한 이상은 너무 무력하다. 정적의 반격으로 총리 선거를 사임한 홀의 의중은 정치가 얼마나 계산적이고 위험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이제 권력의 핵심이 된 프란시스 이완 어카트의 활약을 보고 싶다. 멋지고 현실적이면서 무시무시한 정치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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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으로 산책 - 고양이 스토커의 사뿐사뿐 도쿄 산책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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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만 책이다. 문고본 크기다. 책을 받고 크기에 놀랐다. 예전에 이런 판형과 인쇄된 것을 본 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문고판이 먼저 떠오른 것도 최근에 흔히 볼 수 없는 크기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이런 문고본을 옷 속에 넣고 다니면서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다. 221쪽 정도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런 크기도 분량도 아닌 고양이 눈으로 도쿄를 산책한다는 글 때문이다. 물론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고양이 눈이 아니다. 도쿄 산책이다. 겨우 한 번 방문한 곳이지만 수없이 많이 읽은 일본 소설과 드라마 덕분에 도쿄는 낯선 곳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곳들은 흔히 가거나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갔다.

 

고양이 눈은 사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 고양이도 아니고 사람이 고양이 눈을 가진다는 것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이런 생각은 조금씩 사라졌다. 하루밍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고양이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잔잔한 일상의 재미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열여섯 편의 에세이 속에 각각의 지도가 나와 지명과 건물 이름 등을 알려주지만 가본 적 없는 곳이 낯선 상태에서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이때 고양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열심히 찾으려는 마음을 진정시켜주고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뭐 그렇다고 내 눈에 특별한 것이 보일 리는 없지만 여유와 따스함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고양이 눈으로 산책을 하다 보니 고양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저자 자체가 고양이를 좋아하니 매번 나오는 고양이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고양이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관계 등을 말해주는데 실제 그런가 하는 의문도 살짝 들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정도 애정과 관찰로 고양이를 봤다면 믿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하고. 에세이 한 편에 하루밍 마음속에 살고 있는 고양이의 탄생과 첫 만남 등의 이야기를 풀어내었는데 멋진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였다. 유쾌하고 즐거우면서 유머가 넘치는 글이었다. 마지막 문장은 가슴이 살짝 아팠지만.

 

처음에 이 책도 다음에 가게 될 도쿄 여행안내서 중 하나로 이용할 생각을 했었다. 낯선 도쿄의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설정에 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기대는 지극히 도쿄인의 일상적인 행적 때문에 점점 사라졌다. 화려함도 자세한 묘사도 많이 생략되어 있어 꼭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 것이다. 제목처럼 고양이 눈으로 산책하다 보니 보통의 인간의 눈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도쿄여행 시 숙소였던 우에노의 모습이 그렇게 확 와 닿지 않는 것도 인간 여행자의 시선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간략한 지도와 귀엽게 그려진 일러스트는 또 한 번 쉴 틈을 준다. 너무 많이 쉬나? 물론 이것이 이 에세이가 주는 매력이기는 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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