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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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여사의 소설 중 시대물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인적으로 시대적 문제를 풀어낸 미스터리를 좋아하는데 이 시대물도 상당히 마음에 든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시대물을 몇 권 사놓고 그냥 묵혀놓은 지 몇 년 지났는데 언제 시간나면 정주행 한 번 해야겠다. 처음에는 에도 시대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적응하고 나면 그 시대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누린다. 첫 부분에서 이름과 관직과 상황 등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네 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 장은 독립적이면서 앞의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본 줄기는 도가네 번 번주의 시종관이었던 아버지가 할복을 한 후 그의 둘째 아들 후루하시 쇼노스케가 에도에 올라와서 겪게 되는 몇 가지 사건을 연작으로 다룬 것이다. 이 아버지의 할복도 의심스럽다. 뇌물을 받은 것을 부인하는데 받은 영수증에 쓰인 필적이 자신의 것과 같다. 현대 미스터리물을 자주 보는 우리라면 당연히 똑같이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시대는 아직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고 신기하다. 붓글씨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던 시대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아버지는 혼자 할복을 시도하고 장남이 우연히 발견하고 그 목을 베었다는 것인데 아무리 사무라이 시대라고 하지만 끔찍하다. 하지만 실제 소설 속 장면들에서 이런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전에도 에도 시대를 다룬 소설을 가끔 읽었다. 하지만 그때는 번의 계급체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의 지식이 워낙 얕았고, 생각이 경직되어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쇼노스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수백 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살포시 이해하게 되었다. 이 계급구조가 정체된 사회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였던 것이다. 하지만 에도만 오면 이 사고와 현실이 뒤섞인다. 조그만 번의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도 에도의 빈민은 하루에 한 끼는 쌀밥을 먹는다. 번에서는 어느 정도 지위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 하루 벌어 사는 에도인에게는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닌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 없는 지방 사람은 싼 방을 얻을 수밖에 없다. 쇼노스케가 살고 있는 도미칸 나가야가 그런 곳이다. 이곳에서 쇼노스케는 대본소 무라타야의 일을 도와주면서 생활비를 번다. 그 일이란 필사하거나 다른 소설을 수정해서 새로운 책을 내는 것이다. 이 일상을 주재한 것은 번의 에도 대행인 사카자키 시게히데, 일명 도코쿠다. 그를 만나면서 쇼노스케는 아버지의 뇌물 사건이 단순히 비리를 다룬 작은 음모가 아니라 거대한 음모를 짜기 위한 하나의 과정임을 알았다. 다른 사람의 필적을 그대로 흉내내는 대서인을 찾아야만 이 음모를 중지할 수 있고, 아버지의 원한도 갚을 수 있다. 이 긴 소설의 기본 뼈대는 바로 여기에 있다.

 

큰 흐름이 하나 있지만 재미를 만드는 것은 역시 자그만 이야기들이다. 각 장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일어나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관계와 인연이 만들어지는 자그만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쇼노스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그만 연적 관계나 꿈으로 생각했던 여인 와카와의 만남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도미칸 나가야 사람들과 엮이면서 일어나는 일상과 동명이인인 관계로 생긴 에피소드 등은 이 소설이 과연 미스터리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잔잔하고 유쾌하다. 한 소녀의 납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나은 정과 키운 정의 관계는 쇼노스케와 어머니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식적인 가족애가 제거된 모습이 너무 노골적이라 순간적으로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볍게 읽기에는 사실 조금 힘든 분량에 내용이다. 특히 마지막 장은 예상을 뛰어넘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쇼노스케가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 등이 더욱 심화되고, 기존의 관습을 단순에 깨트리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모든 것을 다 알려준 것 같은 사람들의 숨겨진 마음이 드러나고, 자신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읽으면서 분노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쇼노스케는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자신의 중심을 지키려고 한다. 약간 무력해보인다. 쇼노스케에게 그만큼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에도 최고의 빈민가에 살고 있는 나가야 사람들의 따뜻하고 애정어린 관심이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떠받친다. 가족보다 나은 이웃사촌들이다. 오랜만에 무딘듯하면서 날선 작품 한 편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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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죽음
리사 오도넬 지음, 김지현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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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고 가슴 아프고 훈훈한 이야기다. 섬뜩한 것은 아이들의 부모가 죽은 후 자신의 뜰에 묻는 내용 때문이고, 가슴이 아픈 것은 이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이다. 훈훈한 것은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레니의 존재 때문이다. 이 세 명이 각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서로 다른 문체로 쓰여 있다. 읽다가 잠시 누구지 하는 의문이 생기면 문장을 조금만 유심히 읽어보면 누군지 알 수 있다. 원문이 어떤지 모르지만 번역가의 노력도 한몫한 것 같다. 이야기는 겨울에서 다음 겨울까지 이어지는데 이 시간동안에 그들이 겪은 감정과 심리를 잘 포착해내었다.

 

스코틀랜드. 잘 모른다. 최근에 읽은 유럽소설에서 술에 찌든 부모에 의해 망가진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복지수당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그들에게 자식은 그냥 딸린 군식구 일뿐이다. 수당은 자신들의 술값으로 혹은 약값으로 다 사라지고 음식은 집에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 펼쳐진다. 거기에 어린 딸에게 가해지는 성폭행까지. 우리의 일반적인 의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참혹하다. 비단 이것이 과연 유럽의 몇몇 나라만의 문제일까 하고 질문을 던지면 한국도 여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단지 복지수당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떤 순간은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그 돈을 약탈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현실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 열악하고 참혹한 환경이지만 마니와 넬리는 부모가 죽은 후에도 보호가정으로 가길 꺼려한다. 보호자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복지사가 와서 이 두 아이를 각각 다른 집안으로 보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부모를 뜰에 묻는 것이다. 하지만 겨울을 흙바닥은 단단하다. 그들의 힘으로 깊게 파지 못한다. 겨우 한 명을 묻을 정도다. 시체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는 집에 진동한다. 표백제로 닦아내지만 쉽게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옆집에서 냄새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경찰이 온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불안감은 이 남매의 일상에 깊게 깔려 있다. 그리고 수시로 나타난다.

 

이들의 옆에는 게이 노인 레니가 살고 있다. 공원에서 한 소년에게 성매매를 하다가 경찰에 잡힌다. 이것 때문에 동네에 아주 나쁜 소문이 난다. 알고 보면 이 노인 불쌍하다. 보통 사람과 다른 성 정체성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무시당한다. 그런데 레니는 어느 순간 이 소녀의 가장 좋은 울타리가 된다. 냄새 나는 집을 떠나 잠시나마 가족의 훈기를 느끼게 만든다. 같이 식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열다섯 살 마니가 처음에는 자신들의 현실을 숨길 목적으로 그를 이용했다면 어느 순간 그에게 감동을 받게 된다. 불안과 의심은 여전하다. 동생 넬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따뜻하고 서로를 위해주는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부모가 사라졌다. 돈이 없다. 수당을 수령할 사람이 없으니 돈이 생기지 않는다. 거기다 아빠가 마약 상인의 돈까지 떼먹었다. 월세를 낼 돈도, 음식을 살 돈도 없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면서 마약을 파는 믹에게서 알바를 뛴다. 둘이 섹스도 한다. 이 돈으로 겨우 현상을 유지하지만 월세는 어림도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문제가 생기고, 무시하던 남자가 어느 날 사랑으로 변해 다가온다. 갑자기 외할아버지도 나타난다. 자신이 버린 딸을 찾아서. 그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넬리에게 더 신경을 쓴다. 읽는 순간 그에게 사실을 말하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가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면 옆에 레니가 보인다. 이 둘은 이 남매를 두고 서로 견제한다.

 

부모가 사라진 핑계는 터키 여행이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믹이 여권까지 찾아낸다. 더 이상 변명이 통하지 않는 상황인데 레니를 제외한 누구도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잠시 의문을 품지만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이 자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는 모습이라 조금 씁쓸하다. 호기심은 있지만 깊은 관심은 없는 사회, 어쩌면 나도 그런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읽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도 각박해지고 참혹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늙은 노인이 방을 구하기 얼마나 힘든지 알려줄 때 우리사회의 시선이 어디를 보고,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 늘 안타깝다.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이 자매가 공부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넬리는 바이올린까지 잘 켠다. 인생이 잘못 흐리지 않으면 좋은 직장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더 넓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것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흔든다. 마약, 섹스, 폭력, 부모의 시체 등등. 그리고 부모의 시체 일부분을 물고 나타나는 제니의 개 바비가 있다. 언제 이것이 밝혀질지 모른다. 여기에 이 자매는 서로 착각하고 오해한다. 아빠 진을 죽인 것이 서로라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그들의 하루는 계속 이어진다. 미스터리도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외할아버지 집에서 벌어진 상황이 이해되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잘 짜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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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자놀이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소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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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천일야화>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읽으면서 <데카메론>이 떠올랐다. 오래 전에 읽은 두 책의 내용이 지금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조금은 힘들게, 때로는 즐겁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문체와 이야기 구조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단어의 선택도 나의 생각과 달라 반감이 생겼다. 서울보다 한양이 맞는 표현이 아닐까 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조금 더 읽으면서 이 위화감은 금방 사라졌다. 각 장의 단편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솔직히 말해 구성의 힘이나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의 재미는 덜하다. 하지만 각 장의 단편들은 각각 다른 재미를 주면서 강한 흡입력을 발휘했다.

 

때는 정조 시대. 소설이 금지되던 시절이다. 주인공 조인서는 백탑 근처 사는 친구 최린을 찾아가다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 그곳은 폐가고, 그 동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곳이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사대부 양반인 친구 최린이 소설에 빠져 있다. 조인서가 보기에 한심한 모습이다. 그 다음은 쉽게 예상되는 진행이 펼쳐진다. 조인서가 여차저차하여 소설로 빠져드는 것이다. 어느 날 그에게 소설이 한 편씩 한 편씩 전해진다. 이 소설들이 각 장의 단편소설로 나온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를 새롭고 색다르게 재해석하여 풀어내었는데 신선하고 재밌다. 물론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조인서는 교리로 불리는 노인과 내기를 한다. 귀신 나오는 집으로 불리는 곳에 살면서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100냥을 주겠다는 내기다. 친구는 이것을 말리지만 살 곳도 마련하고 성공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기회다 보니 덥석 내기를 한다. 그런데 이 집에 심상치 않은 내력이 있다. 역적으로 몰려 죽은 자의 집이다. 이 역적을 고변한 인물이 바로 친구고, 그가 집을 물려받았다. 친구의 아내까지. 하지만 그 아내에게 경제권을 빼앗기고 결국 집안이 패가망신한다. 유현당은 이제 귀신이 나오는 집이 된다. 마을 사람들이 가길 끄려하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사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것은 당연하다.

 

각 장은 소설에 대한 유학자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 시대에 사대부들이 소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소설 폐인이 양산되던 시기다. 소설을 반대하던 조인서마저 돈이 궁해지면서 중국 소설을 번역한다. 시대 배경만 살짝 바꾸면 현재 소설가의 삶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소설 폐인들은 새로운 소설이 나오길 바라고 세책점 주인들은 신작을 쓸 작가나 번역자를 모은다. 인쇄가 아닌 필사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 혁명 당시 위화의 일화가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소설에 빠진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액자구성 속 소설에는 귀신도, 도깨비도, 이어도도, 온달 장군도 나온다. 현실 속 유현당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조인서는 이성적으로 이 기이한 현상을 파악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유현당을 둘러싼 소문과 진실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 축을 이룬다. 과거사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교리가 바라는 것은 그 집을 팔아서 목돈을 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집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들이 이 집을 제값 받고 팔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심이란 기생의 정체도 궁금해지고, 유현당의 미스터리도 미궁으로 빠져든다. 정말 귀신이 움직인 것일까? 그럼 왜? 역적의 누명은 어떻게 될까? 의문은 더 많아진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란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더 눈길을 끈 것은 미스터리 소설이란 부분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역시 유현당이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만 불 땐 흔적이 없고, 철이 아닌데도 매화향이 풍긴다. 판타지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액자소설 속에는 이보다 더한 일도 일어나지만 조인서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여인네 가죽신이다. 단순한 관찰력만으로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귀신을 믿지 않으니 그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다. 건축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솔직히 이 방향이 거슬린다. 마지막 장면은 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나 작가의 다른 소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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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 어쩌면, 때로는… 그렇게
윤서원 지음 / 알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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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늘 한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적게는 한 달 정도, 실제는 그보다 더 오래 머물면서 그 지역 근처를 돌아다니고 싶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 이런 생각은 늘 불가능한 일로 치부한다.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힘들다. 백수가 된다면 가능할 것 같지만 결혼이라도 했다면 역시 쉽지 않다. 하지 않았다고 쉬울까? 아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지 못할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것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저자는 혼자 여행 10년 차다. 반듯한 직장을 다니다 백수가 된 후 한국을 떠났다. 목적지는 미국 보스톤이다. 왜 보스톤이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보스톤에 친구가 있어 방값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에 친구가 있다고 누구나 쉽게 그곳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옛날부터 친구나 선후배들이 놀러오라고 했지만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나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것 또한 대단한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라고? 그냥 떠나면 된다고? 그럼 당신은 멋지고 강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아니면 엄청나게 부유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거나.

 

3개월 동안 저자가 한 것을 보면 단순히 보스톤에만 산 것이 아니다. 뉴욕도 다녀오고, 크루즈도 타고, 캘리포니아, 로스 엔젤리스, 라스베이거스 등을 다녀왔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아는 길도 물어봤다. 뭐 실제로 친구가 이렇게 생기지는 않았다. Meet up이란 모임을 통해 친구를 사귀었다. 이 모임에서도 단숨에 친구가 생긴 것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을 했고, 적극적으로 다가간 결과다. 또 영어에 대한 노하우도 나온다. 단순하고 누구나 아는 것이다. ‘아무리 틀려도 뻔뻔하게 말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우린 네이티브가 아니다. ‘You speak, I listen'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공부법이다.

 

서른네 살. 적지 않은 나이다. 물론 많은 나이도 아니다. 언제나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면 많이 먹었다고 느낀다. 십 년 전 나나 지금의 나나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었다. 핑계를 대기 바빴다. 그래서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저자는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맞다. 그녀처럼 낯선 곳에 살고 싶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하지만 이런 그녀조차도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사랑, 결혼이다. 이것을 못했다고 문제나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삶은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있다.

 

낯선 곳에 머물다 보면 향수병이 찾아온다. 아플 때 더 하다. 친구가 생기지 않으면 더 힘들다. 예전에 치앙마이로 여행 갔을 때 장기 여행자가 밤에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혼자를 즐기고 싶어 거절했다. 나의 여행이 조금 더 길고 시간의 여유가 많았다면, 아니 내가 좀더 붙임성이 좋았다면 그와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은 늘 여행이 끝나고 나면 떠오른다. 하지만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나의 틀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행과 사는 것이 다르다고 말한다. 여행자들과 만나는 것과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다른 모양이다. 그 속에서 느낀 외로움이 드러날 때 향수병은 더 깊어진다. 포기하고 떠날까도 생각한다. 그러나 머문다. 그 대가는 달콤하고 색다르다.

 

낯선 곳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잘 적어놓았기 때문일까?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발상의 전환도 돋보인다. 하지만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들이 넘실거린다. 자신의 독립보다 남자의 도움이나 부를 바라는 부분이 나오거나 키 작은 남자 혹은 머리숱이 적은 남자를 약간 경멸하는 문장들이 보인다.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겠지만 불편하다. 저자의 외모를 모르는 상태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너는?’이란 질문이 절로 나온다. 이전에 내가 예쁜 여자를 찾으면 주변에서 나보고 거울을 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글들이다. 이성을 돋보이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감성에 충실하다. 내가 남자라는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불편한 부분도 많다. 차이를 잘 보여주는 글들에서는 많이 공감하고 그 재치와 표현에 놀라지만.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하나를 뽑는다면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내 생각한 대로 살고 있으니....”란 문장이다. 실제 나의 삶은 꽤 많은 부분 살아지는 대로다. 이 나이되도록 생각한 대로 산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지만. 저자의 관찰과 재미있는 표현들이 감수성의 옷을 입고 잘 어울려 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더 맞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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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은 행복하다
양정훈 글.그림 / 부즈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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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사이 북유럽이 유행이다. 인테리어, 디자인, 복지까지. 이 책은 저자가 1년 동안 스웨덴과 노르웨이에 머물고 공부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은 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메모를 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그냥 찍으면 되는 단순한 일도 귀찮아하는 나의 성격을 감안하면 더더욱 놀랄 일이다. 그만큼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대답은 신선했고 잊고 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던 것들이었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것을 사회 전체가 공감하고 지키려고 한다. 물론 이런 사회라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저자도 인정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고 공부하는 여행을 한 그는 말한다. “바깥을 향한 여행이 결국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보는 탐험이 되는 일이며, 더 높고 더 먼 곳에서 삶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성찰의 고도가 바뀌는 일인 것”이라고. 이 책은 바로 이런 관찰과 성찰로 우리 사회와 다른 북유럽의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다른 유럽이나 다른 대륙 사람들과도 다른 모습이다. 단순히 문화의 차이라고 하기에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향이나 생각들이 너무 다르다. 요즘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말이 뜨고 있는데 과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한 번 깊게 고민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복지 문제에 있어서 누군가는 이것을 제도나 시스템이나 자금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장 스웨덴이 어떤 제도와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아닌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했고, 복지를 무엇이라고 생각하기에 이게 가능한가 말이야.”라고 말한다. 가치의 선택과 복지가 무엇인지를 먼저 교육하는 나라라면 우리가 늘 말하는 예산은 그 다음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산을 위해 전체 예산의 우선순위가 조정될 것이고, 필요하다면 증세 등을 통해 그 자금을 충당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렇게 할 마음도 의지도 없다. 가진 자들이 내놓아야 할 돈이 더 많고, 그들이 이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유럽은 이제 ‘제대로’ 살고 싶어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처럼 ‘그저 열심히’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행복을 위해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위한 ‘열심히’인가. 왜 ‘열심히’인가. 그 ‘열심히’가 정말 맞는 것인가, 같은 물음들” 또 그들은 “사회적 행복을 높이는 작은 일들에 언제든 관여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부행한 사회 속에서 행복한 개인이란 존재하기 어렵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에게 행복은 생태계적이며, 사회적인 것이다. 최근 한국의 자기계발서가 온통 개인에게 모든 책임 등을 떠넘기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노동자가 조금 더 급여를 받고 싶어 투덜거리면 양보를 외치면서 자신들의 거대한 탐욕과 실수에는 너무나도 관대한 이중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생각하면 더 차이가 커 보인다.

 

행복하고 공정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고 늘 정치인들은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개인이 노력한 만큼, 성취한 만큼의 대가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이 공정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들은 똑같은 기회를 준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스웨덴의 공정한 기회는 “같은 곳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기회가 부족한 사람들을 그 출발선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언젠가 만평에서 본 한국의 공정한 기회와 경쟁이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그려졌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다가온다. 그리고 ‘열심’과 ‘느긋함’에 대한 생각이 다른데 그들이 보여주는 ‘느긋함’은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게 쫓기지 않는 것에서 비롯한다. 흔한 말로 쓸 데 없이 바쁘기만 한 우리의 삶에 대한 질타이기도 하다.

 

짧다고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스칸디나비아에 머물렀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간 탓인지 그 글에 담긴 질문과 문제의식이 가볍지 않고 묵직하다. 단순히 북유럽의 풍경이나 사람들을 만난 여행 에세이로 생각하고 달려들었다가 아름다운 풍경 사진 사이에 담겨 있는 관찰과 성찰에 깜짝 놀랐다. 다른 문화가 주는 놀라운 삶과 문화의 충격도 같이 실려 있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어느 순간에는 사진에서 풍기는 고요함과 아름다움에 빠져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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