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느즈막히 잠을 깼다.  신랑을 꼬셔서 차 타고 북악 스카이웨이와 함께 성북동을 돌아보려 했더니만 출근하니라 새벽에 나가버리고
계속 잠만 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죽을 해가지고 오신것이다.
맛난 소라죽을 먹고 ^0^  성북동으로 나섰다.

한성대 입구역에 내려, 성북 초등학교 앞에 내렸는데 이게 왠걸...ㅡ.ㅜ
초증학교 교문앞까지 사람들이 줄을 좌악 서있다. 안돼~
그래두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으로 45분을 서서 기다리니 겨우 전시장 건물이 보인다.


55분후,
드디어 전시장에 입장이다.ㅡ.ㅜ  전시장 안에도 사람이 참 많다.
2층부터 보고, 1층으로 내려와서 둘러봤다.


이번 전시회에서 풍속화는 다 빠졌고,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산수화쪽도 거의 작년에 전시된 거라 하신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2개. 1층에 걸려있던 백매화 한점과  고양이 그림.(제목이 기억 안난다..)
백매화는 바탕을 전체적으로 옆은 먹색으로 깔고, 어두운 밤하는 아래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백매의 모습을 드러냈다. 매화 특유의 가지는 화면을 마치 양단으로 나눌듯 힘있게 뻗어가다 뚝 꺽인다. 그렇지만 매화의 가지라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림을 조금 떨어져서도 보고, 앉아서 올려도 보고 하고 싶은데 당췌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할수가 없다. 유리에 따닥따닥 붙어선 저 사람의 커튼을 잠시 옆으로 요렇게 밀쳐 놓을수 있음 하는 생각이 간절..

그리고 고양이가 있는 그림은 오주석의 한국의 미특강이라는 책에서 본거다. 캬~ 역시 실물은 다르다.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실물로 접했을 때의 그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패랭이꽃 하나에도 세필로 잎맥이 하나하나 다 그려져서 사실감을 내는 모습. 패랭이 꽃 안쪽의 명암을 표시하기 위해 정말 세필로 동그란 점을 점점이 찍어서 표현해 놓은 것등.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더 놀라웠다. 특히나 먹그림은 실물을 봐야한다.



이건 하화청정도인데, 꽃잎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옅은 분홍색 세필로다가 잎맥이 하나하나 다 그려져 있다. 잠자리 날개도 날개의 맥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게 하나하나 다 살아있는듯 보인다. 가까이 눈을 들이대고 봐도, 실제 연잎 하나를 눈앞에 요렇게 대고 보고있는거 같은 느낌.   그리고 앞에 있는 연잎의 가쪽 부분이 너무 지저분한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시청앞에 심어논 연을 보니 진짜 잎끝이 이렇게 터들터들했다. 초상화를 그리는데도 터럭만큼도 다른 것을 허용치 않는다고 했던 우리네 그림들이니, 이 그림의 연잎도 내가 살짝 오해했던 것처럼 구라가 아니었던 게다.


유명한 마상청앵도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고, 주상관매도가 보고 싶었는데 안 나와서 좀 아쉬웠다.
2층에 있는 작품들 중 마음에 드는 폭포그림이 하나 있었는데,
2층의 작품들은 다 바닥에 눕혀놔서 폭포의 그 시원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덜했다. 벽에 걸어놨다면 정말 물이 떨어지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 살아서 좋았을 터인데. 공짜로 이렇게 좋은 그림들을 보면서 투덜 거리면 안될터이지만. 아쉽긴 했다.

그리고.. 학생들.. 내가 선생님이면 절대!! 저렇게 숙제 못하게 하겠다. 그림 제목과 설명을 베껴 적어온건 안되요. 전시회를 가면 자기가 제일 좋았던 것 2~3개 몇개만을 선정해서 느낌을 적어오세요. 모 이런게 소용이 없을려나? 도대체 모든 그림의 제목과 제작년도를 베껴서 가는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이를 키워도 절대 저런건 하지않게 해야지.

소란스러운 전시장을 뒤로하고 나왔다. 그 집 정원에 앉아 집에서 싸간 과일을 먹었다. 옆에서 무슨 소모임 같은데서 강사가 설명을 해주고 있었는데, 못알아 듣겠더라.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수연산방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번 가보기로 했다. 마을버스 1111번 종점에서 내리라길래, 1111번을 탔더니..성북2동 동사무소는  이론 한정거장이다. 1111번의 종점이 그새 바뀌었나 보다..--;;;    담엔 그냥 걸어가면 되겠다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수연산방이 어딜까 두리번 거리는데 -ㅅ- 바루 길가다. 찾아가는데 겁을 먹었는데,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바로 옆이라,  찾기가 넘 쉬운 것이다.  그래서 안으로 들었더니, 본채에는 사람들이 다 찼고 그래서 옆의 별채로 향했다.

별채 위에 커다란 낙엽송 밑의 별채가 또하나 있다. 통유리로 앞을 볼수 있게 되어있고, 앉아 있을수 있게. 옛날에 장독대 자리로 딱이었을 위치인데 지금은 사람이 앉아 호사를 즐긴다. 시원한 오미자차 -차인데 대접에 나온다- 를 마셔주고. 창문에 발이 쳐져있어서 솔솔 시원한 나무그늘 바람이 들어오고, 마당에 원두막에는 아가씨들이 조잘조잘하게 얘기하고. 한참을 앉아서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실 단원의 그림보다는, 단풍나무가 난 더 감동적이었다. 트인 창 밖으로 지붕을 온통 덮고 있는 단풍나무의 푸른잎을 보면서 기분이 침착해지는 듯 했고, 가을날 이 나무가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황홀해지기도 했다. 요즘은 나무가 참 감동적이다. 약간 늦은 가을날 수연산방에 다시 한번 가봐야 겠다.


  수연산방을 나오니 길가에 그 유명한 금왕돈까스.
돈까스가 거의 A4  돈까스 만했다. 어른 손바닥 손끝에서 팔목까지 크기를 충실히 재현한 손바닥 두개만한 돈까스. 소스 향은 좋은데 왠지 튀김기름 냄새가 쬐금 거슬린다. 근데 같이 나오는 매운고추와 된장양념이 더 맛난듯하다. ㅎㅎ
함박스테이크도 시켰는데, 도톰한 아이 주먹 2개만한개 나온다. 것도 제대로된 스테이크 서빙용 접시에. 오홀~  괜찮은데?  맛은있는데 결정적으로 돼지고기다. 함박을 돼지고기로도 만들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접하면서. 신관으로 깨끗하게 지어 자리를 옮겼는데 사실 찻집이 더 잘 어울릴거 같았다.

맛나게 잘 먹고, 과학고등학교 옆으로 해서 혜화동 로타리로 걸어왔다. 길이 한적해서 걷기 좋았다. 엄마가 여행갈 책 하나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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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05-3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셨군요. 사람이 많어서. 위의 그림은 하화청정도(荷花聽靖圖 )이고요 고양이
나오는 그림은 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아닌가요? 나비 참 예쁘게 그렸죠? 그리고 패랭이꽃도 세선으로 그린게 어디 하나 나무랄데가 없이 정성스러움의 극치더군요.

토토랑 2005-06-0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하화청정도 인데, 제가 잘못 썻네요 ^^;; 수정했답니다.
녜 저두 황묘농접도 좋았어요 ^^;; 오주석 선생의 한국의 미에서 그 작품 자세히 설명해 놓은 것을 읽고가서 그런지 반갑기도 하고 그림도 눈에 쏙쏙 잘 들어 오는거 같드라구요 ^^;;;

urblue 2005-06-0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일요일에 갔다가 1층은 전혀 못 보고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게다가 덥구...

토토랑 2005-06-01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토요일날 갔는데도 그랬답니다. 2층이 좀 많이 더웠죠?
1층은 그래도 창문 많이 열어놔서 좀 덜했답니다. 1층을 못보셨다니..저런.. ^^;;
금방 다음 기회가 또 생길거에요~~
 

출처 : 오마이 뉴스

읽다가 눈물 찔끔할라구 한다. 우리 친척들 중에도 저런분이 계셨으니까. 친정이 안되서 안되서 돈 대주다가..사촌오빠랑 올케언니랑 힘들게 살고 계시니까..  아이구.. 잘 계실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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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이 뭐길래>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문유석 판사

법원가족 여러분, 언론에서 신용불량자 문제가 심각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셨죠? 법원의 파산사건, 개인회생사건도 많이 늘고 있구요. 쉽게 말씀드리면, 개인파산면책이란 가진 재산 모두 털어 빚잔치를 하여 나누어주고 남은 빚은 탕감받는 것이고, 개인회생이란 수입이 있는 사람의 경우 5년 내의 기간 동안 버는 돈으로 열심히 빚을 갚아 나가고, 남은 빚은 탕감받는 것입니다.

빚탕감이라.... 다른 법원가족들이 열심히 재판해서 빚갚으라고 판결도 해 놓고 했는데, 판결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앉아 있으니 파산부는 참 희한한 곳입니다. 저도 작년 이 곳에 전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소시적 법대 1학년생 시절 민법 교과서에서 본 “Pacta Sunt Servanda”, 즉 일단 맺어진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근엄한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거든요. 그 후 1년여 파산면책항고사건 등을 처리하면서 나름대로 느낀 것들이 있어, 감히 두서 없는 글을 써 봅니다.

1. 몇몇 사건들


전입초기, 한 사건을 심리하게 되었습니다. A씨는 어떤 중소기업의 경영자였는데, IMF 시절 거래처들의 연쇄부도를 못견디고 부도를 냈습니다. 그런데, 회사자금을 빌릴 때 대표이사 개인도 연대보증을 하도록 금융기관들이 요구하기 때문에 회사의 빚이 모두 대표이사 개인의 빚이 되었습니다. 살던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실업자가 되어 친지 집을 전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증채권자인 금융기관이 A씨가 재산을 은닉하고 있다면서 면책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보니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정도되는 세 따님이 있길래, 심문 도중 자녀들은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머뭇거리더니, 글쎄, 런던에서 음악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겁니다.


역시 흔히들 말하듯, 사업은 망해도 사업가는 다 재산을 빼돌려 잘 먹고 잘 살고 있구나 싶더군요. 그래서 저는 물었습니다. 남의 빚은 못 갚는 분이 무슨 돈으로 자녀들은 해외유학을 시키고 있느냐고. 어눌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애들이 장학금도 받구요, 애 엄마가 그곳에서 식당 일도 하고... 좀 믿기 어렵더군요. 그렇게 쉽게 처자식 영국유학을 보낼 수 있으면 대한민국 국민 누군들 안 보내겠습니까.

이후 재산은닉여부, 학비 등 조달경위에 대한 심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속속 밝혀졌습니다. A씨의 어린 세 딸들은 세계대회에서도 여러 번 수상했던 음악 영재들로, 학비 및 기본생활비를 충당할 만한 금액의 영국정부장학금 등을 받고 있었고, 주말이면 교회에서 반주자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었습니다. 애들 엄마는 식당에서 월 100만원 정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고, 사는 집도 허름한 월세집이었습니다. 서울에 홀로 남은 애들 아버지가 재산을 숨기거나 처자식에게 돈을 보낸 어떠한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얼마 후, 또 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B씨는 택시기사를 한동안 하다가 그만두고, 실업자 생활을 한 지 오래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뒤지다보니 신용카드내역서에 ‘코코’ ‘발리’등의 야릇한 이름이 자주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술집인 것 같았습니다. 남의 빚은 안 갚는 주제에 술집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니! 신문에 자주 나오는 소위 ‘모럴 해저드’가 이런 거로구나.
그런데, 심문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파산자는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하고 병색이 완연한 병자였습니다. 중증 호흡기질환 장애인이며, 말하는 것도, 오래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방탕한 생활은 커녕 일상적인 생활도 어려워 보였습니다.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택시기사로 일하며 살아가던 B씨는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급성 호흡기 질환으로 대수술을 몇차례나 받고, 1년 가까이 병원에 장기 입원해야 했고, 돌볼 친지도 없어 간병인까지 두어야 했습니다. 수천만원이 훌쩍 넘어가버린 병원비 등은 온갖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메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퇴원 후에도 살길은 막막했지만, 막연히 카드대금이 연체되어 신용불량자가 되면 큰일난다는 생각에 또다른 카드를 발급받아 앞의 카드를 막는 돌려막기를 반복하다보니 고액의 카드수수료와 연체이자로 빚은 금새 두 배로 늘어 버렸습니다. 더욱더 카드결제대금이 부족해지자 파산자는 예전 동료인 택시회사 노조원들에게 조합원 회식 등으로 단란주점에 갈 때 자기 신용카드로 계산을 하고 결제일에 돈을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사적으로 ‘카드깡’을 한 셈이죠. 결국 밑빠진 독에 물은 채울 수 없게 마련이고, 예정된 파국이 찾아와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카드대금고지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고, 신용불량자 낙인은 물론 채권추심원들 등쌀에 시달리다 못해 파산신청을 한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안타깝고, 화가 났습니다. 방탕한 생활은 커녕 빚의 반은 병원비, 나머지 반은 온갖 카드수수료, 연체이자로, 결국 손에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한 빚을 나날이 키워만 가다가 심신이 다 황폐해진 채 비로소 법원을 찾은 이 답답한 아저씨에게. 그리고, 이 지경인 사람에게 끝도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고 사용하게 한 카드회사들에게.


답답한 사람은 또 있었습니다. C씨는 학원강사로 일하던 여자분입니다. 결혼하였고, 어린 아들도 있습니다. 학원강사 수입으로 넉넉지는 못해도 가족들이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어 보이는데, 왜 파산부를 찾게 되었을까요. C씨의 빚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100% 친언니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C씨만큼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이상하게도 식당이고 뭐고 먹고 살아보려고 시작만 하면 망하곤 하는 언니를 위해 C씨는 빚보증도 여러 건 서주고, 돈도 주고, 그러다 결국 자기도 카드돌려막기를 하는 신세가 되고도 또 현금서비스를 받아 언니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저는 너무 답답해서 C씨에게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대책 없이 언니를 위해 빚을 졌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어려서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단둘이 자란 친자매였기에, 도저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언니를 나몰라라 할 수 없었고, 자기도 너무 힘들어 모질게 맘을 먹어 보아도, 늙으신 어머니가 언니를 이번 한번만 더 도와 주라며 눈물을 보이면 견딜 수 없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되뇌이며 카드를 긁었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것은 빚진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돈을 빌려 준 사람들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D씨 사건의 경우입니다. D씨는 자수성가하여 가구공장을 경영하던 분입니다. IMF 당시 부도를 냈다가 힘들게 재기하여 어렵게 어렵게 공장을 운영하다가 불의의 화재로 공장과 재고가구가 모두 불타 수억원의 피해를 입고는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그를 안타깝게 여긴 거래업체 분들은 대부분 그가 재기하기를 빌어주며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그래도 남은 금융기관 빚을 감당할 수 없어 면책신청을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금융기관들은 아무런 이의도 안하는데, 소액채권자인 자재대금 300만원을 못받고 있는 E씨가 강력하게 면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E씨는 화재 전까지 D씨와 형님아우하며 지내던 사이였다는데 말입니다. E씨가 주장하는 이의사유들은 법적으로는 면책불허가사유가 될 만한 것들이 아니었으므로 간단히 배척하면 그만인 듯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화재로 알거지가 된 사람도 억울하지만, 돈을 떼이는 사람도 억울할 것이라는 생각에 쌍방을 모두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감정이 상당히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E씨의 말씀은 이랬습니다. D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안타까웠다. 하지만, 사고 이후에 좀처럼 연락도 없다가 면책신청을 했다기에 연락을 해서 그런 신청을 하려면 미리 상의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야박하다며 되려 화를 내기에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감정이 많이 상하여 이의신청을 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D씨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화재 이후 좌절해 있다가, 살아 보려고 고시원 생활에 부부가 일용직을 전전하며 재기해 보려고 발버둥을 치느라 미처 E씨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는 D씨에게 물었습니다. 면책을 받게 되면 법적으로는 E씨를 비롯한 거래업체 사람들의 빚을 안 갚아도 됩니다. 하지만, E씨를 비롯한 거래업체 사람들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 그 마음의 빚도 안 갚고 사실 수 있겠습니까. D씨는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면책이 아니라 무슨 결정을 받던,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아주 적은 돈이라도 벌게 되면 제가 피해를 끼친 분들께 갚으며 살아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D씨의 말씀이 E씨에게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받아들여졌는지, E씨는 흔쾌히 이의신청을 취하하겠다고 하시면서 D씨의 재기를 빌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감정표현이 서투른 40대 후반의 이 두 아저씨는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계면쩍어 서로 뭐라고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고 각자 저에게만 이렇다 저렇다 어눌하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런 사건들을 하나씩 하나씩 거치며, 그렇게 저는 파산부 판사가 되어 갔습니다.



2. 천사들과의 만남


지난 연말의 일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한 작은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헌신적인 원장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네다섯살부터 초등학생, 일부 중고생까지 여자아이들 20여명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부모님이 안계시거나, 계시지만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아이를 돌보기 힘든 가정의 자녀,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학교도 다니고, 함께 도와가며 살아가는 가정공동체입니다.

수녀님이신 원장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후원자분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 못지 않게 밝고 맑게 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작은 집이지만, 깨끗하고 아늑했구요.
말로만 듣던 판사 아저씨들이라니 호기심이 가득하면서도 쭈뼛거리는 아이들. 한 판사님이 열심히 준비한 간단한 마술 몇 가지를 선보였더니 비로소 환호성이 터지더군요. 선물도 전달하고, 다같이 앉아 피자도 나누어 먹고, 서로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숫기 없는 판사들이 처음 본 여자아이들과 금방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난망. 더구나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개별적으로 이야기를 하기도 어려웠고, 결국 다소 서먹한 채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제게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머뭇머뭇거리기에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했더니, 판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일어서기에 아쉬움이 많았던 저는 남아서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판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도 설명해 주고, 학교생활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으라고 해 줘야지...정도 생각을 갖구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한 아이씩, 한 아이씩 제 주변에 아이들이 둘러 앉아 이것 저것 물어보고, 또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투어 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는데, 이 어린 여자아이들이 무엇을 판사에게 물어볼 것 같으세요?


사채업자가 깡패를 보내서 돈 갚으라고 협박할 때 어떻게 해야 돼요?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어 다치게 했는데, 물어 줄 돈이 없으면 몇 년이나 감옥에 있어야 해요?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내서 감옥에 가면 빚 다 갚을 때까지는 못 나오는 건가요?


.....저는 어리석게도 이 집에 흐르는 안온한 분위기와 밝은 아이들의 모습만 겉으로 보고는 이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어느 어른들보다 가혹한 삶의 무게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아이들에게서 가정을, 엄마 아빠를 빼앗아 간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돈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용불량자 400만이 어떻고 쉽게 숫자로 이야기하지만, 그 한 명 한 명은 숫자가 아니고 피가 흐르는 ‘사람’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가정이 있고, 부모형제가 있고 아이들이 있습니다. 400만명이 신용불량자면, 최소한 400만 가정이 빚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며, 그 중 상당한 수의 가정은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아이들이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거친 세상에 던져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 없이 아이들의 질문에 가능한 한 알기 쉽게 답해 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아이들 중 가장 어려보이는 네 살 정도의 아이가 제 주변을 맴돌더니 괜히 제 어깨도 만지작거리고, 눈이 마주치면 웃음을 보이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언니들이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을 알아들을 나이도 아닌 이 꼬마아가씨는, 여자들만 사는 이 집에서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아빠의 모습을 제게서 찾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재작년 법원회보에 제 딸아이 육아이야기를 썼었는데 기억하세요? 이제 일곱 살, 다섯 살인 두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이 예쁜 꼬마아가씨도 안쓰럽지만, 이 아이의 아빠 가슴은 어떨지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맘 속으로는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지만, 값싼 감상과 동정 따위는 필요 없어 보일만큼 아이들이 자기들이 짊어지고 있는 운명에 대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저는 이들을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어른에게 법률상담하듯이 제가 아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이 얘기 저 얘기 하다보니 헤어지기 전에는 보다 진지한 토론도 잠시나마 할 수 있었습니다.

- 동방신기에서 누가 제일 멋진 것 같니? 아저씨는 믹키유천이 모자 쓴 스타일이 멋지더라.
에이, 아저씨. 유노윤호가 최고예요.


3. 모럴 해저드?

아이들과 이야기하던 중, 파산면책제도에 대하여 제가 잠시 이야기해 주었더니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에이, 그런게 있으면 누가 빚을 갚겠어요?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빚 때문에 남들과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는 이 순진한 아이가, 자기 빚을 떼일까 겁나서 목청을 높이는 돈 많고 힘 있고 유식한 어른들과 똑같은 말을 합니다. 저 말을 우리나라 유식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어로 하면 바로 모럴 해저드 아닙니까.

유식한 사람들은 숫자나 유식한 말로 모든 것을 자신 있게 결론 내리기를 좋아합니다.
그 말들을 실제 사람의 삶과 연관지어 보려면 통역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소비의 하방경직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득이 줄어든 주제에 종전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여 빚이 늘어난다는 거죠.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도 유지하려 하는 종전 소비라는 것은 실제로 어떤 것들일까요? 외제차, 해외여행, 골프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유치원을 그만두게 하느냐이고, 남들 고액과외시킬 때 아이들 동네 학원이라도 보내며 공부 잘해서 나중에는 부모보다 잘 살기를 바래 왔는데, 그나마 그만두게 하느냐이고, 노환으로 병원 출입이 잦으신 고향 부모님께 병원비와 용돈 보태시라고 보내던 10만원을 계속 보내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이 경제학자들처럼 과감하게 ‘소비수준을 하강시키지’ 못한 채, 앞으로 열심히 돈을 벌어 갚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마이너스대출을 받고, 현금서비스를 받아 학원비, 병원비, 유치원비를 내다가, 결국 월말 카드대금고지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파산은 고사하고 카드대금 연체 1회라도 시작되면 인생 끝장이라고 두려워한 나머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잘도 발급해 주는 신용카드를 또 발급받아 돌려막기를 시작하고 카드깡을 해 가며 카드대금을 갚아도 원금은 난공불락, 연체료 갚기도 버겁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빚이 1억이라는데 그 중에 학원비, 병원비, 유치원비로 써 보기라도 한 돈은 반도 안 되고 나머지는 다 이자, 연체료인 상황이 되자 벼랑 끝에서 뛰어 내리는 심정으로 빚을 탕감받고자 법원을 찾는 것이 늘어난다. : ‘모럴 해저드가 우려된다’는 말의 통역입니다.


그런데, ‘모럴 해저드’라는 말에는 다른 뜻도 있더군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연구한 ‘신용불량자 증가의 원인분석과 대응방향’이라는 자료를 보니, 신용불량자의 증가는 1998년 소위 IMF 시대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을 거치며 시작되었지만(이는 실업과 불황 등 ‘소득 감소’를 원인으로 하는 것이겠죠),


이를 확대시킨 것은 1999. 5. 현금서비스 한도규제 폐지 후 신용카드 회사들이 길거리 모집 등 위험관리를 도외시한 치열한 자산확대 경쟁을 전개하여 잠재적 부실을 축적한 채 신용팽창이 계속되다가(통역: 소득이 줄어들었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전에도 빠듯하게 살던 생활수준을 더 낮출수도 없었던 사람들에게 일단 돈을 쓰게 해 주고, 다시 앞에 빌린 돈도 못 갚는 사람들이 돌려막기로 파산을 모면하며 버틸 수 있게 온갖 카드를 발급하여 주면서 업계 1위, 외형 1위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2002. 6. 이후 감독당국에 의해 건전성 감독규제가 도입되자 갑자기 카드회사들이 신용정책을 엄격화하여 잠재적인 부실이 현재화하게 된 것(통역: 더 이상 위와 같은 사람들이 돌려막기를 할 수 없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까다롭게 하자 곧바로 카드대금 연체가 시작되고,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는 사람이 급증하게 된 것)이라네요.

그러면서 2002년 3/4분기 이후 드러난 신용불량자의 급증은 주로 신용카드회사의 ‘도덕적 해이’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겁니다. ‘모럴 해저드’라는 말은 이럴 때도 쓰는 것이더라구요.


제가 요즘 자기 전에 읽는 책이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의 파산법 교수인 엘리자베스 워런 (Elizabeth Warren)교수가 따님인 컨설턴트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Amelia Warren Tyagi)와 함께 쓴 ‘맞벌이의 함정(The Two-Income Trap)'이라는 책입니다. 이는 하버드대학이 주관한 개인파산에 대한 통계적 분석과 연구성과를 기초로 미국에서의 개인파산의 증가(2002년에 200만명이 파산신청을 했다는군요) 원인을 알기 쉽게 분석한 책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의 파산자 중 상당수는 맞벌이로 상당한 소득을 올리는 중산층이라는 겁니다. 소득이 올라갔는데 웬 파산이냐구요? 요약하면 소득 올라가는 것보다 고정지출 늘어나는 것이 휠씬 높아서 여유자금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든 빡빡한 삶을 살아가다가 실업, 급여감소, 질병 등 변동요인만 발생하면 곧바로 파산상태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고정지출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냐? 그건 바로 자녀의 ’안전‘과 ’교육‘에 대한 지출이라는 것입니다. 도시의 범죄율 증가와 공교육의 부실화로 중산층 부모들은 안전한, 그리고 좋은 학교가 있는 학군 좋은 교외주택가(비벌리힐즈 같은 부촌과 귀족사립학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웬만한 평범한 주택가를 말하는 것입니다)로 너도나도 몰려가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그런 곳의 주택값은 천정부지, 대출금 이자 값는 데만도 허리가 휜답니다.

게다가 맞벌이를 하다보니 필수인 아이 봐주는 보육비와 유치원비는 대학등록금보다도 비싸지고, 자녀가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이라도 하려면 대학교육은 필수라는데 대학등록금은 오르기만 하고, 건강보험료와 본인부담금은 늘어만 가고. 사치는 커녕 부부가 뼈빠지게 일해서 자녀 남들만큼만 교육시켜 보려고 지출하는 돈이 소득의 거의 대부분이어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여유자금이라고는 없고. 아슬아슬하게 꾸려가는 이 생활이 작은 충격에도 무너져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4월 14일 미국 하원에서는 부시 정부가 내놓은 파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더군요. 파산신청의 남용을 규제한다면서 파산면책받기를 까다롭게 만들어 놓은 법입니다. 그것도 주 타겟은 바로 중산층인 것 같더군요. 지난 몇 년간 미국 파산법 개정을 위해 소비자신용업계 등 대기업들이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다더니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결실을 보신 모양이네요.

4월 14일, 엘리자베스 워런 교수는 하버드 대학 연구실에서 어떤 심정으로 이 뉴스를 바라보고 계셨을지 일면식도 없는 주제에 전화라도 해 보고 싶어집디다. 이화여대 법대 오수근 교수님의 글을 보면 파산법의 역사는 영국의 1542년법 이래 450년 동안 발전해 왔다고 합니다. 빚 못 갚는 채무자 목에 칼을 씌워 구경거리로 삼고 감옥에 투옥시키던 때로부터 정말 오랜 세월을 거쳐 불운하나 정직한 채무자에게 채무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된 것입니다.

그 오랜 역사동안 언제나 채권자들은 채무자들이 파산법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죠.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파산법 개정안 통과 뉴스를 반갑게 지켜 보았을 분들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백년 파산법 역사에 연간 200만명 가까이 파산신청하는 미국에서도 위 개정법에 대해서는 악법이라고 논란이 많던데,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로 1만건을 넘은 우리나라에서 이용도 하기 전에 남용부터 막으려 할 정도로 장래를 내다보시는 분들이, 왜 40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에 진작 무분별한 소비자신용업의 남용을 걱정하지 않으셨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물론 미국에서의 중산층의 위기와는 달리 보다 서민층에게 집중적으로 나타난 문제이지만, 우리나라 중산층의 교육열, 사교육비, 강남 집값 등을 보면 위 책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파산의 문제는 특정한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면책제도와 개인회생제도는 일종의 사회적 보험인 것입니다.

파산면책을 이용해 남의 빚을 안 갚는다구요? 안 갚는 것이 아니라 못 갚는 것입니다. 면책결정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빚 갚을 능력은 고사하고 신불자로 취업도 안 되고 신용거래도 되지 않아 자기 가족의 기본적 생활도 꾸려나가기 힘든 사람들이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을 받는 것이고, 그나마 수입이 조금이라도 있어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라도 갚아 나간 후 남은 채무를 면책받는 것이 개인회생입니다.

경제적으로 말하면 이런 사람들에 대한 채권은 액면이 10억이던 100억이던 이미 가치가 제로나 다름 없는 부실채권입니다. 어찌 보면 법원의 면책결정이 별 게 아닙니다. 원래 가치가 0원인 채권을 0원이라고 공식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꼬박 꼬박 잘 갚고 있고, 앞으로도 갚을 수 있는 빚을 어느날 갑자기 법원이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갚지 못해 왔고, 앞으로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숫자에 불과한 채무의 노예로 묶어 놓고 취업도 못하게 하고, 빚독촉전화에 자살하고 싶도록 궁지에 몰아 넣어서 채권자들이, 이 사회가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어차피 못 갚는 빚, 무의미한 숫자 지워주고 경제활동에 복귀하여 자기 앞가림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으면, 결국은 이 사람들은 국민 세금으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복지의 대상자가 되거나, 심하면 홈리스, 범죄자가 되어 또다른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요?


물론, 빚을 갚을 수 있으면서도 재산을 숨겨놓고 파산을 신청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면책불허가사유가 있고, 사기파산죄가 있는 것입니다. 빚진 사람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누굽니까. 돈 빌려 준 사람 아닙니까. 채권금융기관들이 신용관리를 제대로 해 왔다면 애초부터 돈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돈 갚을 재산과 능력이 있다고 파악되어 있는 사람이 이를 숨기고 면책신청을 하는 경우가 발견되면, 파악하고 있는 자료를 첨부하여 법원에 이의신청하면 당연히 법원이 참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볼 때 이러한 경우는 매우 소수입니다. 물론, 파산사건의 증가와 함께 이러한 악용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은 저희들도 항상 염려하고 주시하고 있습니다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의 개인파산은 남용을 걱정하기보다는 이용하지 않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가 2004년도에 처리한 면책사건의 면책율은 98.6%입니다. 금년 1/4분기에는 99.3%입니다. 파산부 판사들이 우표에 소인 찍듯이 사건만 들어오면 곧바로 면책 도장 찍어주고 있냐구요? 물론 가능한 한 신속하게 처리하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그래도 채권자들에게 온갖 이의신청 기회 다 주고 있을 뿐 아니라, 판사라는 사람들의 천성상, 기록이 아무리 쌓여 있어도 기록상 명백히 사치, 낭비, 투기를 일삼거나 재산을 빼돌리는 등 진짜 파산을 남용하는 흔적이 나타나는데 바쁘다고 안 보고 지나가지는 못합니다.


얼마전에 서울중앙지방법원장님께서 파산부 판사들에게 저녁을 사주시면서 건의사항이 있으면 하라시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파산부 쪽 전기배선이 안 좋은 것 같다. 밤 11시가 되어도 밤 12시가 되어도 도통 불이 꺼지질 않는다. 좀 수리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심리해서 면책한 비율이 99%입니다. 그럼 나머지 1%는 정말 흉악한 사기꾼들이냐구요? 솔직히 아닙니다. 그 1%도 비록 면책은 여러 가지 사유로 불허가되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다 힘들게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사건이 급증하면서 남용이 우려되는 사례도 늘기는 하겠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의 파산자들은 대체로 세 가지 종류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기 가족이 빠듯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가까스로 충당하다가 실업, 질병 등의 이유로 감당할 수 없게 된 사람들, 조금이라도 잘 살아 보고 싶어서 돈을 벌어보려고 이것저것 애쓰다가 망해버린 사람들, 자기도 자기 앞가림만 겨우 하는 처지에 그놈의 ‘정’과 ‘핏줄’에 목이 매인 한민족으로 태어난 죄로 부모형제, 친지의 빚보증을 어쩔 수 없이 섰다가 같이 망한 사람들.

도대체 ‘모럴 해저드’를 걱정하는 분들이 말씀하는 남의 돈 빌려서 흥청망청 신나게 쓰고는 자기 먹을 것은 다 숨겨 놓고 파산신청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입니까. 골프장 해저드 안에 숨어 있나요?


바쁜 직장생활을 살다보면 들곤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도 돌려막기하며 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돌려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할 시간을 돌려서, 아름다운 음악과 책을 즐길 시간을 돌려서, 해야 할 일을 막아내는데 쓰며 살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지난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 주책 없이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내가 세 명이었으면 좋겠다. 일하는 나,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나, 나 자신을 위해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는 나. 그랬더니 친구 왈, 이미 세 명인지도 모르잖아.
....그런데 너는 그 중 일하는 쪽이고.

일만 하다보면 어느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지를 잊기 쉽습니다. 그게 진짜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언제나 조용히 야근을 하고 있는 올해 새로 전입한 판사가 있습니다. 대학교 동기인 친구인데, 제가 하루는 많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즐겁게 일하고 있다더군요. 힘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구하는 일인데 왜 즐겁지 않겠냐구요. 그렇습니다. 우리 법원가족들은 주로 잘못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누가 누구에게 돈을 주라고 하거나, 남의 집을 팔아 빚을 받아 주거나 하는 일을 합니다. 모두 사회를 유지하려면 꼭 필요한 일들입니다. 하지만, 파산면책․개인회생사건 한건 한건은 한 사람을, 한 가정을, 한 아이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회사정리나 화의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회사가 살아나면 주주도, 근로자도, 협력업체 사람들도 살아납니다. 파산부는 회생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4. 마법책


지난 연말 아이들과 만났을 때, 한 판사님이 보여준 마술 중 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마술그림책이었습니다. 한번 스르륵 넘길 때는 아무것도 없다가, 다시 한번 처음부터 넘기니 예쁜 그림이 나타나고, 또 다시 처음부터 넘기니 색깔이 칠해져 있고.

저도 호그와트에라도 가서 진짜 마술을 배워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그 아이들에게 환하게 웃는 엄마아빠가, 친구들 집같은 평범한 가정이, 작지만 예쁘게 꾸민 자기 방 한 칸이 나타나도록. 그리고 빚갚으라며 아빠 멱살을 잡던 험상궂은 아저씨의 기억도, 엄마가 보고 싶어 남몰래 베개를 적시고 마는 눈물도, 소풍때 엄마아빠와 온 학교친구들 곁에서 느낀 부러움도 영원히 사라지도록 말이죠.


하지만, 평범한 머글인 판사들이 할 수 있는 마법은 한 가지 뿐입니다. 손에 골무를 끼고 기록을 뒤적이다가, 컴퓨터 자판을 눌러 주문을 외웁니다.

'주문,파산자를 면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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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본적이 없지만 이따금 이메일을 교환하는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얼마 전에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니 알 수 있는 책이나 사이트를 소개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좀 의외였습니다. 그는 요즘치곤 꽤 반듯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는 대학생인데 어떻게 광주를 모를까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이면 1980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린아이였으니 말입니다.

당시 고3이었고 청년 시절 내내 광주를 품고 살았던 저희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광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태”라고 할 때는 “사태”인 줄 알고 “항쟁”이라고 하니 “항쟁”인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무식하다’고 합니다. 유식하다 무식하다는 제도교육 학력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의 한 성원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입니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그런 무식한 사람들로 가득 차고 있습니다.

하여튼 광주는 25년이 되었고 다른 모든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현실 속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 속의 사건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광주항쟁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당부하고 싶은 건 광주항쟁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하라는 겁니다. 광주항쟁을 제대로 모르면서 한국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학술적인 책을 사볼 것까진 없고 여러분들 아마도 매일 인터넷에 들어갈 테니 시간을 조금만 헐어서 광주항쟁 관련한 사이트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기본적인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은 5.18기념재단도 있고 여럿 있습니다.

광주항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통해 이른바 ‘민주주의’의 뜻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광주 전의 민주화 운동은 반독재 운동, 즉 선거나 개인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회복하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좀 딱딱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운동이었지요. 그러나 광주 이후의 민주화운동은 좀 더 근본적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운동으로 바뀝니다. 그 동기는 미국입니다. 광주가 계엄군이 일시 퇴각하고 해방된 상태이던 80년 5월 24일 미국 항공모함 코럴씨 호가 부산항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자유의 나라 미국이 우리를 구하러 오는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신군부의 쿠데타나 계엄군의 작전은 미국의 암묵적인 승인 아래 진행되고 있었죠. 광주를 거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미국에 대한 자각이 생기는데 이건 미국이라는 일개 나라에 대한 자각을 넘어 미국식 민주주의,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자각으로 발전합니다. 80년 5월 22일부터 닷새 동안의 해방 광주의 모습은 바로 그 진정한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그런 세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광주를 진압한 군사 파시즘은 더 강력한 공포정치에 들어갔지만 그럴수록 저항은 되살아났습니다. 80년대 중반이 채 되기 전에 한국의 사회운동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좇는 부분이 남아있었지만 그 성원의 대부분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좇는 변혁적인 성격을 갖게 됩니다. 87년 6월 29일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가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쳐 절차적 민주주의는 계속 정착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80년대에 변혁운동을 했던 운동세력의 상당수가 변신하는 것이지요. 진정한 민주주의니 변혁이니 하는 건 다 지나간 일이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사회주의가 80년대 말 무너지자 그들도 함께 무너지게 되었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절망감에 빠진 많은 청년들이 사회운동을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 사람을 욕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운동 안 했던 사람에 비하면 백배 훌륭한 사람들이지요. 모든 사람이 활동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니 현실적인 삶을 살면서도 얼마든 운동을 지지하고 후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력을 사용해서 주류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불거지는 경우는 이른바 ‘386정치인들’입니다. 학생 시절의 신념은 슬그머니 뒤로 버리고 그 운동을 통해 얻은 제 명망을 사용해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갔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느니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다 개소리고 그들은 결국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운동을 했던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10년 쯤 지나면 이 자리에서도 역시 그런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운동의 종목을 바꾼 사람들입니다. 바로 9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시민운동입니다. 활동가라면 한눈에도 체제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 영등포나 구로동에 구질구질한 사무실에서 구질구질한 옷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시내 한 복판에 번듯한 사무실에 넥타이를 맨 활동가들이 나타났습니다. 운동의 주제는 근본적인 것에서 시민의 일상과 관련한 것들, 다시 말해서 체제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체제 안의 문제들을 위주로 했고 시위나 싸움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의 각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안티조선운동을 비롯한 언론개혁운동, 정치개혁운동들과 결합하고 확산되면서 결국 정권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런 개혁운동들이 갖는 의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안티조선 운동의 초기에 매우 적극적으로 가담했고 제가 만들었던 아웃사이더라는 잡지는 일종의 좌우 합작이었지만 공동의 적은 조선일보라고 밝히고 있지요.

저는 개혁운동의 진보운동의 일부라는 사실과 기존의 진보운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잡아냈다는 사실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그 운동이 갖는 반동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 운동이 여전히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진보운동을 철지난 운동,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행태로 몰아붙이는 부분에 대해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하든 안 하든 개혁운동이 ‘오늘의 진보운동’을 자처하는 한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혁운동이 진보를 자처하면 한국사회는 보수 대 진보의 구도가 아니라 극우보수 대 개혁보수의 구도가 되고 진보는 아예 무대에서 밀려나버리는 것입니다.

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개혁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야만과 폭력성을 제거하여'합리화'하는 운동입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것은 나쁜 신문이 곤경에 처하고 비리 정치인이 잡혀 들어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도 언론이나 정치란 바로 세상의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왜곡이나 비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이 바뀐다는 건 바로 그 언론이나 정치의 뿌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경제의 문제이고 계급적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서 한국사회는 민주화와 개혁이 진행될수록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양극화되고 있다는 건 이젠 한나라당 의원들도 인정하는 일입니다. 노동자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 절반은 비정규노동자고 그 비율은 늘어가는 중입니다. 농업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포기한 지 오래지요. 그런 문제들은 개혁운동에서 배제되고 촛불시위에서도 배제됩니다. 이런데도 여전히 언론개혁이나 정치개혁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면 초인적으로 순진한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이 학교 안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근래 맑스주의가 어떻고 좌파가 어떻고 말하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도 모르게 개혁운동의 최면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파시즘 상태에 있습니다. 새로운 파시즘, 군사파시즘이 아니라 자본의 파시즘이지요.

군사파시즘은 억압과 폭력으로 우리를 다스리지만 자본의 파시즘은 우리에게 자본의 욕망을 심어서 스스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본의 매우 충성스런 백성들입니다. 얼마 전 고대에서 일어났던 일과 그와 관련한 반응들은 바로 그 사실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은 고대나 고대학생들의 태도가 “밥그릇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인터넷 신문에 보니까 그 발언을 두고 “직격탄을 날렸다”고 적혀 있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밥그릇 때문”이라는 말은 속으론 인정하지 않지만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없이 인정한다는 뜻인데

제가 보기엔 그게 아니라 그들은 진짜로 진심으로 이건희를 인정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이건희와 다른 건 이건희보다 돈이 없다는 것뿐입니다. 노동자 착취와 정경유착과 온갖 비리로 부자가 된 아버지를 둔 덕에 부자가 되어선 다시 온갖 편법을 동원해서 재산을 제 자식에게 상속하는 사람이 한국이 자랑하는 기업인입니까? 노조조차 만들 수 없는, 노동자들의 위치추적을 하고 협박을 하는 회사가 세계적인 첨단 기업입니까? 지금 한국 사람들이얼마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지 뻔히 알면서 프랑스의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스키를 타는 인간이 과연 철학을 가진 인간입니까? 그런 인간에게 이 나라의 대표적인 명문대학이라는 곳에서 명예 철학 박사학위를 주려고 작전을 벌이고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힌 학생들이 현실을 깨우쳐주었는데도 총장은 엎드려 용서를 빌고 보직교수들은 사퇴서를 내고 수천명의 학생들은 총학생회를 탄핵하는 서명을 하고, 이게 대체 정신병원입니까 대학입니까?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 한국인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건희라는 파렴치한 인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진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성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먹고사는 게 원수라 저런 놈 밑에서 일한다”고 부끄러워해도 신통치 않을 판에, 그런 파렴치한 인간을 왕처럼 떠받들며 노조조차 없는 회사에서 ‘삼성맨’의 자부심에 젖어 삽니다. 참으로 무지한 그러나 돈은 많은 주인 아래서 배불리 먹여준다는 걸 자랑으로 삼는 머슴들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런 삼성맨을 부러워합니다. 대학생들은 삼성맨이 못되어서 안달이 나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이건희처럼 살수 없다는 것을 인생의 한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태, 모든 사람이 자본의 권력에 자발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사회는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탄압받고 억압받아도 정신만은 해방되어 있던 시절보다 스스로 정신을 내어준 시절은 더욱 끔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절보다 나은 음식을 먹고 자가용과 휴대폰을 갖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욕망이 인간을 억압하는 걸 넘어 우리 스스로 자본의 욕망에 젖어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오늘 부모들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로지 경쟁에서 동무를 누르고 이길 것만을 가르치고 사랑이나 존경조차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치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서 엘리트가 된다 한들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박사학위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 박사학위는 내가 아니라 돈에게 수여된 것입니다. 이건희가 돈이 없다면 누가 그를 존경할까요? 모든 사람이 그의 돈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이건희 씨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프랑스에 가서 스키장을 통째로 빌려서 울타리 밖에선 다 보고 있는데 혼자 스키를 타는 사람이 과연 자의식을 가진 인간일까요? 여러분 같으면 쪽팔려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신이 완전히 파탄 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건희라는 사람은 그렇게 합니다. 대체 얼마나 추켜올렸으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오늘은 5.18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부른 이유도 오늘이 5.18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묵념도 했지만 5월에 죽어간 사람들,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들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광주는 처음엔 엘리트 지식인들, 대학생들이 주도했지만 마지막에 가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떠납니다. 계엄군과 협상을 해서 더 이상의 희생을 줄여야 한다, 헛되게 죽지 말고 힘을 기르자, 이런저런 합리적인 이유를 주장하던 수습파들은 떠나고 무릎 꿇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항쟁파만 남습니다. 그 순간부터 시민군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광주 인민의 군대라고 해야 맞습니다. 항쟁파의 대부분은 평소에 인간 취급 못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본 인간으로서 품위가 목숨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어차피 인간 취급 못 받고 사는 세상,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처럼 살자. 결국 그들만이 인간의 품위를 간직했습니다.

지나간 일, 자신의 삶과 직접 관련을 갖지 않는 역사 속의 사건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아주 진보적이라는 역사학자 한 분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까지 끌어대면서 유시민 씨를 두둔하고 나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현실 속에서 체 게바라나 김산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한다면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 현실 속의 체 게바라나 김산을 존경할 줄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체 게바라나 김산을 흠모하는 우리는 현실 속의 체 게베라나 김산엔 관심이 없거나 그들을 비웃곤 하지요.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다시는 만난 수 없는 늙은 어머니, 처음으로 입을 맞춘 날의 두근거림이 그대로 남은 애인, 제 목숨보다 귀한 새끼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처럼 죽고 나서 존경과 명예가 남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폭도요 빨갱이로 남는 것입니다. 남은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해 언제까지 어떤 고통을 겪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끝까지 총을 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입니다.

여러분들 매일 밤 인터넷에서 활동하지요? 지금 이 나라의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먹고 나서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다들 사회평론가로 활동합니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사회평론가인 시절이지요. 그러나 마치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이지만 그 대부분은 개혁이라는 체제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입니다. 체제는 그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이라고 부추기고 그들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네티즌들”로서 활동합니다. 오로지 체제가 제공하는 이슈에 매일 밤 메뚜기 떼처럼 몰려다니며 좀 더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들을 은폐하는 데 동원되지요.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광주의 정신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당장 실현가능한 문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우리가 인간임을 진정으로 증명할 수 있는 문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니 설사 내 생애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면 그 일에 대한 신념을 버려선 안 됩니다. 중세의 암흑 속에서 근대라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신념을 버리지 않은 아주 적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당대의 사람들에게서 어떤 소리를 들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어리석고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라고 했겠지요. 그러나 바로 그 “비현실적이며 관념적인 사람들”이 깨지고 또 깨지면서 결국 중세는 무너집니다. 우리의 암흑도 그렇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게 바로 광주의 정신,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입니다. (연세대 강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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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김규항씨의 모든글들에 공감하고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자본에의 자발적 복종'..  그런가..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덕담이 되고. 매주 로또를 사고

쩝..

덧붙이자면.. 광주는 그 때 발생했던 사건이 아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행방불명자로 처리된 암매장된 시신이 어디있는지도 알수 없고

행불자 가족들은 아직도 실종된 사람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그때 총에 맞은 사람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고 생활고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

....

하긴 서울에 와서 만난 어떤 분들은 '진짜로 그런 일이 정말 있었냐?' 라고 물어보기도 하시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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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까지 해야할일 2가지

- 2달동안 들어온 온라인 교육의  숙제 제출.. 후발기업으로서 선발기업을 뛰어넘은 사례 분석.. 여기저기 뒤지다 삼양라면, 농심라면의 사례 분석.. 개인적으론 삼양라면이 맛있다고 생각함. ㅡ,.ㅡ 그 말도 안되는 우지 파동만 아니었다면.. 삼양과 농심이 양대산맥으로 군림하며 뭔가 더 다양하고 재밌는것들을 만들었을지도. 모 라면은.. 잘 먹지도 않지만 말이다.. 쿨럭..

으.. 퇴근시간 얼마 안남았는데 완성해서 제출할 수 있을까?/ 으휴..

-진/우맘님 이벤트 참가?

크.. 갈수록 다른 사람들 글 올라오는거 보니.. 하아~  별로 엄두가.. ㅋㅋㅋ  그냥 좋은 리뷰나 페이퍼를 보고 댓글을 다는 것과는 다른 느낌.  마치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가서, 저기요~ 저랑 놀아주세요 라고 가르릉 거리는 고냥이가 되는거 같은 기분이랄까 -;-  누군가의 일상에 내가 끼어들기 하는거 같은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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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0분.. 하아~  일단 숙제는 냈다.

서재질 시작하고 달라진것 하나.. 보통 이런 숙제는 열심히 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필휘지, 휘리릭 써서 내곤 했는데...(맞춤법 무시,, 비문 생각도 안함. 워드의 맞춤법 검사 기능은 옵션 꺼놓고 함)

오늘은.. 장장 6시 10분에야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프린트 해서 빨간 펜으로 혼자 교정보면서.. 간만에 돼지꼬리, 삭제 기호 써가며 수정을 해서 냈다. 하하. 어쩌면 이리하는게 당연한건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대충해서 내고 통과되면 그만이고 그렇게 스스로를 길들인건 아닌지 약간 반성. (어디까지나 약간..--;;)

진/우맘님은 우짜지..ㅡ.ㅜ 집에 감 인터넷이 넘 느려서 알라딘은 제대로 뜨지도 않는데 흑흑흑

그래도 일단은 배가 너무 고프니 퇴근을 하여 집으로 가도록 한다. 배를 채우고 생각해 보자고..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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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3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토토랑 2005-05-30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물만두 님이다.. 사실 제가 물만두 진짜 좋아 하거덩요...
중국식 물만두.. 그 왜 돼지고기랑 부추랑 여튼 재료 많이 안들어 가서, 그 진한 맛을 내면서도, 크 >.<
물만두님 볼때 마다, 집에가서 물만두를 해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시는걸..ㅡ.ㅡ 모르시겠지요 흑흑흑
(물만두 님을 보고 물만두에 유혹을 느끼다.. 왠지 위험한 발언 같지 않습니까
ㅋ-_-ㅋ
여튼,, 맛난 물만두를 발견하게 되면 물만두 님께 바루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
왠지 그래야 할거 같은 압박감이..--;;)

물만두 2005-05-3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헉=3=3=3

2005-05-31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좀 추워서

감기 기운이 오실려는지.. 속이 더 자주 메슥메슥한다.

음 시간을 보니. 뭔가 먹어줘야 할 시간이군.

토토야 오늘 이상한 떡복이 먹어서 미안..

다음엔 집에가서 제대로 된거 해먹을꼐..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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