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 가드닝 - 우리는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리처드 레이놀즈 지음, 여상훈 옮김 / 들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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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함께 놓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있다. ‘전쟁’과 ‘평화’, ‘사랑’과 ‘무관심’처럼 의미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게릴라’와 ‘가드닝’도 마찬가지이다. 게릴라는 정규군에 속해 있지 않으며 전투를 치르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미하며, 가드닝은 말 그대로 정원이나 꽃밭을 가꾸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작가는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함께 사용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리처드 레이놀즈의 『게릴라 가드닝』은 총 대신 꽃씨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대체 꽃씨를 들고 어떻게 싸운다는 것인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 집에 꽃을 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터이니 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게릴라들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인가?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특히 공공 소유의 땅―에 불법―정부는 자신의 땅에 꽃을 심는 것조차 법을 어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으로 꽃밭을 가꾸는 싸움이다. 그야말로 ‘작은 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소규모로 몰래 게릴라전을 수행하듯 꽃밭을 가꾼다. 다만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혁명이 아닌 꽃을 가꾸기 위한 게릴라전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전쟁(게릴라)’과 ‘꽃밭(가드닝)’이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도 많다. 통제하기 힘든 적과 싸우며 주변을 변화시키고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것처럼 둘을 연결시키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전쟁의 결과가 승리의 기쁨은 잠시이고 남은 것은 파괴와 허무함뿐이라면 가드닝의 결과는 승리의 기쁨은 물론 아름다운 생명체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싸움이 어렵고 힘들수록 승리의 기쁨은 더하다. 현대사회는 싸우기 어려운 거대한 적이다. 시멘트밖에 없는 공간, 무수히 많은 각종 법률들은 이들의 투쟁을 힘겹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흙이 있는 작은 공간―쓰레기통 주위나 가로등의 홈 안이나 아무도 가꾸지 않는 아파트의 화단도 좋다―이라도 있으면 꽃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땅뿐만이 아니라 시멘트 건물을 담쟁이로 덮거나 버스 정류장에 화분을 매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투쟁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척박한 곳에서는 꽃이 자라나기 힘들 뿐 아니라 땅의 소유권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전쟁의 승자는 없다고 한다.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피를 흘리고 막대한 손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는 것은 정치가들이나 부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승자만 있는 전쟁이 있다. 게릴라 가드닝, 설혹 진 쪽이라 하더라도 예쁘게 자라난 꽃을 보며 억울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세력이 위협적으로 성장하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메마른 곳을 찾아 불법적으로 꽃밭을 가꾸고 향기를 만들며 도시 속의 작은 혁명을 꿈꾸고 있다. 이들은 게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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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삽질하는 대학생, 게릴라 가드닝
    from SK텔레콤 대학생 자원봉사단 써니 블로그 2012-11-24 10:49 
    눈 뜨자마자 5.3인치 HD슈퍼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시야에 비춘다.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으면 외출준비 완료.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어두운 지하 소굴로 입장한다. 반찬통같은 지옥철에서 영역다툼을 하다가 물 밀리듯 밖으로 튕겨져나오면 획일적인 네모세상이 늘 보던대로 우중충하게 서있다. 회색 빛 네모세상 속 초록빛 한줌을 찾아 늘 지나치는 주변을 새삼스레 다시 둘러보자. 콘크리트 건물, 쭉 뻗은 도로, 온통 규격화되고 디지털화된 콘텐트들...획일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