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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일기 - 아프리카의 북서쪽 끝, 카나리아에서 펼쳐지는 달콤한 신혼 생활
싼마오 지음, 이지영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알고 있는 거침없는 영혼은 딱 둘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중국인 싼마오. 자유에 관한 한 조르바는 감히 범인이 넘볼 수 없는 초인이므로 그를 존경, 혹은 경이의 시선으로 우러를 수는 있을지언정 속세의 룰을 완전히 벗어던진 그에게 개인적인 친밀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는 자유를 상징하는 신성불가침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싼마오를 ‘거룩한 영혼으로 절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초인’과 나란히 언급한다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조르바처럼 살고 싶지는 않고 싼마오처럼 살고 싶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니어링 부부를 존경하고 그들의 실천적인 삶이 위대하다는 데 일말의 의심조차 두지 않아도 내가 타샤 튜더처럼 살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유를 꿈꾸지만 범인들에게 방종한 기인으로 여겨지기는 싫고, 자연을 꿈꾸지만 물질의 혜택도 완전히 포기하기는 싫다. 싼마오와 타샤 튜더는 나와 조르바, 나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 나와 니어링 부부 사이에서 내가 안전하게 정착하고 싶은 기착지다. 범속한 인간의 한계도 연민 어린 시선으로 공감해 줄 것 같은.
싼마오라는 중국, 정확히는 타이완 여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칠팔 년 전에 지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그 낯선 이름을 첫손에 꼽았기 때문이다. 책 이야기에 관해서라면 내 귀는 지나치게 팔랑거리는지라 한번 읽어보고 싶었지만, 그때만 해도 썩 괜찮은 번역서가 없었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당신은 나 없이 살 수 있나요』라는 낯간지러운 제목을 달고 나온 1994년도 번역서를 발견하긴 했지만 여전히 아쉽기 그지없었다. 그 지인이 싼마오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사하라 이야기』와 『흐느끼는 낙타』를 정성스레 번역해서 출판했다. 『허수아비 일기』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다.
싼마오는 사하라 사막에서 호세 쿠에로와 알콩달콩 좌충우돌 신혼 생활을 거침없이 시작한다. 타이완 여자가 스페인 남자와 결혼하여 뜬금없이 사하라 사막으로 날아간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경을 넘나드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가장 매혹적인 것은 싼마오라는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녀는 내일 먹고살 걱정을 하기보다 오늘 제대로 먹고사는 데 열중한다. 가령 당장 내일 돈이 똑 떨어진다고 해도 그녀는 오늘의 식탁만큼은 풍성하게 차려내어 자기 집에 찾아든 손님들을 배불리 먹인다. 오늘을 즐겨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혹은 어제에 사로잡혀 오늘까지 망쳐버린다. 내일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을 저당 잡혀도 내일 행복해지기는 쉽지 않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오지랖 넓은 싼마오는 사하라 사람들의 만물상 노릇을 하다가 사하라 사막이 전란에 휩싸이자 카나리아 제도로 옮겨 간다. 유럽 각국의 노인들이 주로 살아가는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그녀는 딱 한 가지만 결심한다. “이번에는 사하라 사막에서처럼 내 개인의 안녕을 해치면서까지 이웃들과 과도하게 가까이 지내지 않겠다고.” (그런데 싼마오가 사하라 사람들을 가리켜 ‘얄미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가? 그 표현에 동조하면서 한참 웃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책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다. 사실 나는 『사하라 이야기』와 『흐느끼는 낙타』를 읽는 내내 사하라 사람들이 너무 얄밉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듯이 싼마오에게 구하면서도 싼마오가 필요한 것은 하나도 내주지 않으려는 태도가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글로벌 오지랖의 대명사 싼마오는 “쓸모없는 노인네” 이웃들과 왕래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만 땅땅 쳤지, 결국 그들에게 매혹당하고 만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과 꽃잎을 주우면서 하루 종일 거리를 쓸고 닦는 노인과, 그런 노인을 두고 볼 수 없어 온 마을의 나무를 흔들어대는 싼마오가 있는 풍경은 정겹고 아름답다. 한밤에 악기를 들고 한둘 모여들어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노인들과, 그들과 어우러져 왈츠를 추는 싼마오가 있는 풍경은 더없이 감동적이다. 싼마오는 그제야 “인생의 끝자락에도 봄이 올 수 있고 희망을 품을 수 있고 믿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싼마오는 그런 노인들을 이웃하여 살아가는 이곳이 좋아서 호세의 친구 미카까지 불러들인다. 그를 10년 넘게 기다린 베티와 결혼시키는데, 베티는 싼마오와 정반대인 여자다. 싼마오는 오늘을 살지만, 베티는 내일을 살기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힌다. 사하라 사막의 분쟁이 극심해지자 싼마오는 호세부터 회사를 그만두게 하지만, 베티는 회사가 해산하지 않는 한 미카가 돈을 벌어 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남편을 사지로 내몰면서까지 돈을 악착같이 모으려는 것은 내일의 행복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늘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 행복할 리는 없다. 인간의 내일은 언제나 불안한 법이다. 오늘이라도 행복해야 한다.
자유분방하게 거침없이 살아가는 싼마오에게도 재갈을 물리는 것은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시(媤)’ 자가 붙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풍경은 다를 게 없나 보다. 자기 가족들 사이에만 있으면 호세는 돌변하여 싼마오에게 가부장적인 위세를 떨치는데, 밉고 어처구니없다가도 철부지 꼬마처럼 귀엽달까? 역시 자기 가족들이 불현듯 보고 싶어진 싼마오가 냉큼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타이완으로 날아가자 호세는 싼마오를 돌아오게 하려고 애정과 유머와 그리움이 가득 담긴 편지 공세를 펼친다. 그런 남편을 어찌 미워만 할 수 있을까.
싼마오와 호세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은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지상에서 해피엔딩을 맞지는 못했다. 몇 년 후 호세는 잠수 사고로 사망하고, 싼마오는 마흔여덟 살에 자살한다. 그토록 삶을 사랑한 싼마오는 왜 수술을 받으려고 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 새벽에 자살을 선택했을까? 쟈핑와에게 죽음의 징후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편지를 보내고서……(쟈핑와 『친구』). 싼마오와 호세는 어쩌면 싼마오가 꿈꾸던 천상의 파라과이 농장을 일구며 지상에서 못다 누린 생을 함께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싼마오가 내일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한 일은 일 년 동안 동전을 모으는 일뿐이었다. 호세에게 “크림 케이크도 안 사주고” 모은 동전으로 복권을 사서 파라과이에 드넓은 농장을 세울 꿈을 앓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병을 앓듯이 내일의 꿈을 앓고 나서는 다시 오늘을 용감하게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