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
빈첸초 체라미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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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는 구성도 까다롭고 주제의식도 심오하다. 술술 읽히는 책에 익숙한 독자라면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게 이 책의 매력이다. 독특한 구성, 빼어난 대화체,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으면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제1악장'부터 제4악장'까지 4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각 장은 '모레나'를 중심으로 두 남자 '클라우디오', '조르고'의 이야기를 다룬다. 각 장의 구성, 시점, 핵심내용 등이 전부 다른데다,  모레나는 이름을 바꾸어 등장하기에 각기 독립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묘미는, 각 장의 관계를 분석하고 4개의 장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옴베르토 에코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이 책이 4악장의 소나타 리듬으로 이뤄진 독특한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1악장] 클라우디오를 떠나는 안젤라(모레나)의 이야기(A), 다신교 전통을 붕괴시키려는 종교지도자 무함마드의 이야기(B)가 번갈아 제시된다. 구성이 독특하다. B는 클라우디오가 쓴 영화 시나리오(p.73참조)이고, 안젤라가 이를 읽고 있다.(p.28) 즉, 안젤라가 읽고 있는 시나리오 내용이 B로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유사한 구성이다. 민요섭을 쫓는 남경사 이야기(C), 예수와 추종자들에 의문을 품는 아하스페르츠의 이야기(D)가 번갈아 제시되고, 남경사가 읽는 민요섭의 글이 D로 제시되는 구조. 또한 액자속 B와 D의 핵심인물인 무함마드와 아하스페르츠가 기존 종교에 대항하는 인물이란 점도 같다.

또하나 구성상 독특한 게 있다. B는 영화 시나리오답게 속도감있고, 시각적 이미지가 풍성하다. 그런데 중간중간 안젤라에게 말을 건네는 클라우디오의 독백(p.15,35,66등)이 있다. 자칫 흐름을 끊을 수도 있는 독백의 존재의의는 무엇일까? A와 B는 상호 관련성이 있다. 클라우디오는 자신을 모함마드에 비교하고 있으며, B에 등장하는 하디자, 아이샤는 안젤라를 모델로 한 것이다. 독백은 양자의 관련성(시나리오의 상징)을 해석하는 단초가 되는 동시에, B의 내용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2악장] 2악장을 처음 읽으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갑작스런 등장, 모레나를 향한 병적집착을 이해할 수 없고, 내용 대부분이 발리아니 박사에게 털어놓는 알렉산드리아의 독백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왜 저리도 모레나에 분노하는 걸까? 모레나와 조르조가 주고받은 편지(p.137이하)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 결국은 4악장이 완성되는 순간에서야 제대로 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제3악장] 촐리 교수와 가브리엘라의 대화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용실에서 모레나가 '가브리엘라'란 가상인물을 상상하는 장면(p.57이하)이 있기에, '가브리엘라=모레나'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출판업자가 가브리엘라를 찾는 장면(p.252이하)에서 가브리엘라가 모레나임이 확실하게 밝혀짐) 핵심내용은 윗층 마르타부인 일가와의 기묘한 에피소드, 촐리 교수의 이중생활이다. 촐리 교수의 모습은 마치 미스터리의 반전처럼 충격적이다. 갑작스런 촐리 교수의 등장과 존재의의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 (가브리엘라가 촐리 교수를 통해 자신을 돌아 본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

[제4악장] '조르조 젠느'의 어린시절 이야기, 음악스승 코스탄치와 조르조의 관계가 이어진다. 모레나가 자취를 감추고, 갑자기 조르조의 어린시절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의아하다. 하지만 곧 둘의 접점이 밝혀진다.(p.312이하 참조) 이어 4개의 장을 포괄할 수 있는 단서가 속속 제시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정체, 조르조와 모레나의 관계, 모레나가 이름까지 바꾸며 방황(?)했던 이유까지. 이전 장과는 전혀 다른, 모레나의 지고지순한 면모엔 크게 놀랐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당신이 사랑한 게 나였을까>의 묘미를 발견해 낸다면 이제껏 느끼지 못한 감동에 전율할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그렇겠지. 빈첸초 체라미는 최선을 다했고 남은 건 독자의 몫이다.


* 빈첸초 체라미는 말솜씨가 탁월하거나 수다스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긴 호흡의 생생한 대화체는 아무나 쓸 수 없는 것인데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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