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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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는 갑자기 당뇨병 선고를 받았던 작가의 투병기가 바탕이 된 소설이다. '당뇨병 투병기가 뭔 재미?' 할지 모른다. '히라야마 미즈호'를 몰랐다면 나 역시 그랬을 테니. 하지만, 놀랍게도 재미있다. (어디까지나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니 실례는 아닐 것이다) 눈물겹고 감동적인 투병기, 아내와의 사랑 갈등, 개성 넘치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등이 잘 버무러져, 유쾌하면서(?) 감동적인 작품이 탄생했다. 

사실, 투병은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소설의 소재로는 적합하지 않다.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기도 어렵고, 인물 간 갈등을 그려내기도 힘들다. 또한, 분위기 자체가 무겁게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다. 투병자의 내면갈등 표현하거나 눈물을 자아내는 건 쉬울지 몰라도,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하지만, 히라야마 미즈호는 이를 해냈다. 투병기란 자전적 소재로 이런 완성도 있는 작품을 써냈다니, 놀랍기만 하다.

개성 넘치는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는 이야기의 활기를 불어 넣는다. 먼저 '히가시노 아리사'. 아리사는 가타세(화자)와 마음이 통하는 술친구다. 나이는 9살이나 어리고 '쇼트 헤어가 잘 어울리는 동안'(p.20참조)이지만, 엄청난 주당이다. 또한, 고풍스런 한자어를 자주 구사한다. 예를 들어, "가타세 선배의 '종음주연'에 기꺼이 수행하지요. 오늘은 죽을 각오로 마셔 주십시오. 뼈는 거두어 드리겠습니다."(p.19)라는 식이다. 이들은 회사 창립 20주년 기념파티에서 만나, 운명적인 주도형제 결의까지 맺었다. 가타세가 좌절할 때마다 아리사는 알게 모르게 힘이 되어 준다. <달콤한 나>의 최대 활력소는 바로 아리사다.

두 번째 인물. '운노 마사루'. 운노씨는 입원한 가타세와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중년남성이다. 불평불만 많고 모든 문제는 자기 잘못이 아닌 이 남자를 가타세는 '책임 전가의 남자'라고 칭한다. "당뇨에, 고지혈증에, 지방간에…많기도 하네. (중략) 이게 다 환경이 나빠서 그래요. 공기도 나쁘고, 물도 나쁘고, 그런 나쁜 환경 속에서 사는데 좋을 리가 없잖아?"(p.100) 본인의 생활습관은 문제없고 뭐든 환경의 탓이다. 더 심한 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참견한다는 것이다. 이 책임 전가의 남자에게서 가타세는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마지막은 묘한 관계인 '아키요시 고토미'. '고토미는 같은 회사를 다니는 5살 연하의 후배'(p.118)다. 원래 아리사처럼 술친구였지만, 약간 복잡한 관계가 된다. 고토미는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고 가타세는 흔들린다.(p.119, 216참조)

가타세는 갑작스레 당뇨병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한다. 뚱뚱한 사람들만 걸리는 병으로 알고 있던 당뇨병이라니, 하지만 그는 열심히 치료에 임한다. 당뇨병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식이요법의 바이블이라는 <식품교환표>도 공부(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p.144이하 참조 하시길)한다. 2단계인 교육입원도 성실히 끝낸 그의 상태는 혈당치는 정상에 가까워 지고 있었다. 마침내 퇴원(p.149). 엄격한 식이요법을 해야했지만 곧 회복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가타세가 얼마나  엄격한 식이요법를 하는지 눈물겨울 정도다. 그는 '식단/쇼핑메모'를 고안하기도 한다. 뒤에 실려 있음)

그러나 당뇨병은 그리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고행자처럼 엄격하게 먹을 것을 조절했지만 병세는 도리어 악화(p.201이하)된다. 가타세는 좌절한다.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도리어 떨어진 성적표를 받아든 심정일까? 고양이 미케마츠에게 짜증(p.213)내고, 아리사와 술마시다 종업원에게 짜증내고, 짜증에 발기조차 되지 않는다. 병은 악화되고, 바쁜 아내와의 관계마저 점점 악화되는, 최악의 상황. 이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가타세는 자포자기한다. 마구 먹어댄다. '어차피 악화되는 병이지 않은가?'하며.

가타세는 결정타를 맞는다. 2형이던 당뇨가 1형으로 전이되었다(p.241)는 진단결과를 받게 된다.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가타세는 아리사에게 연락(p.245)을 한다. 절망의 순간을 함께 할 가장 절친한 술친구, 아리사에게. 역시 아리사는 활기 넘친다. 끔찍했던 분위기는 잠시나마 밝아진다. 그런데,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다. 가타세가 쓴 소설 <이지리 사진관>이 '신세기픽션대상' 최종심에 올랐다며 유명 출판사 고에이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최악이라고 좌절했던 순간조차 희망은 싹을 틔우고 있었다.

제목 '달콤한 나'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처음엔 '당뇨병을 앓는 자신의 처지를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저것도 타당하다. 그러나 중요한 의미가 하나 더 있다. 병을 삶 일부로 받아들이고, 인생의 달콤함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당뇨병이란 괴물에 고통받았지만, 가타세는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는 나쁜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당연한 일 같지만, 나를 혼란의 벼랑 끝으로 떨어뜨린 그날의 일도 그 '당연한 일'의 극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좋은 일과 나쁜 일의 반복,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쁜 일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는 틀림없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p.289)


"그렇다. 내 인생은 충분히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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