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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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라고 되어 있지만 일반적 의미의 소설은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 주위를 둘러쌌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혈통을 따라 자신의 가족사를 써내려간 [에세이 혹은 자서전]이라 해도 무방하다. 해설을 보니 <혈통>은 파트릭 모디아노의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작품인 듯하다. ('~자신의 문체까지 포기했다'는 부분. 원래 그의 문체와는 많이 다른 듯.) 처음 접하는 입장이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웠던게 사실.

초반부 수많은 인명이 등장한다. 조르주 니엘스, 클라우드 발랑디네, 즈느비에브 보두아예, 단테 비누치등등. 이에 대해 저자가 코멘트 한 부분이 있다. "이 모든 인명들과 뒤에 나올 다른 인명들에 대해 독자들의 용서를 바란다. 나는 혈통 있는 척하는 한 마리의 개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뚜렷한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너무나 파란만장하고 불확실해서 마치 반쯤 지워진 글자들로 신분증명서나 행정서식을 채우려 애쓰는 것처럼, 나는 이 흐르는 모래 속에서 몇 가지 흔적이나 몇 가지 표지를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p.10) 혈통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 속에서 흐릿해진 가족사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주목한 것은 두가지이다.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힘겹게 성장한 저자의 모습, 저자의 독서 이야기.

파트릭 모디아노와 부모의 빗나간 관계는 충격이다. 특히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모성애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다. 어머니에 대한 파트릭 모디아노의 코멘트는 이렇다. "어머니가 내게 번번이 보여주었던 그 공격성과 쌀쌀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한 번도 아는 어머니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그 어떤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혈통도 없이 지나치게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졌던 개처럼, 이따금 나는 어머니의 매몰참과 모순된 행동 때문에 내가 겪어야 했던 일을 분명히 그리고 상세하게 글로 쓰겠다는 치졸한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p.94) 약혼자가 선물한 차우차우가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자살을 할 정도니 참. 아버지와도 원만하지 않다. 심지어 아버지는 아들을 불량배라며 경찰에 넘기기까지(p.111) 한다.

파트릭 모디아노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군데군데(p.35,40,47,70등) 나온다. 위대한 작가가 어린시절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에 감명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부분을 보자. '아캉부레 신부는 내게 모리악의 소설 <바다로 가는 길>을 권했는데, 무척 좋았고 특히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도 마지막 문장 "……옛날 캄캄한 새벽처럼"을 기억할 정도로.'(p.70,71)

자전적 이야기답게 충격적 고백도 빠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도둑이었음을 고백(p.123이하)한다. 그(와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가 벽장속에 넣어둔 물건, 도서관의 책등을 훔친다. "나는 개인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훔쳤고, 돈이 없어서 그 책들을 팔았다. (중략)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사소한 좀도둑질도 저지르지 않았다.'(p.125) 좀도둑에서 위대한 작가로, 거의 인간극장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다.

'저자가 그간 써 온 작품의 열쇠'라는 <혈통>, 이 작품으로 파트릭 모디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불운이었다. 전작을 읽고 이 작품을 읽었다면 훨신 많은 것을 얻었을 것이다. 그의 전작을 읽고나서 천천히 다시 읽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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