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카니발
안 소피 브라슴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몬스터 카니발>은 두 남녀의 미묘한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간의 추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을 수집'(p.10)하는 남자, '조아생 켈레르망'.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추한 여자, '마리카 마르비에'이다. '동화처럼 아름다운'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주인공에서부터 알 수 있다.

작품의 스토리 라인은 간결하지만, 품어내는 예술적 향취는 강렬하다. 특히, 안 소피 브라슴의 인물 내면묘사는 탁월하다. 괴물을 수집하는 조아생의 변태적 성향, 특이한 외모때문에 마리카가 짊어져야 했던 응어리, 이 모든게 내밀한 내면묘사를 통해 극적으로 부각된다.

마리카가 남자에 대한 욕구를 말하는 부분을 보자. '나는 남자들의 성적매력을 구걸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그들과 접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중략) 지하철이 급커브를 틀 때 그들의 팔꿈치가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러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에서 내린 후에는 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웬 남자가 나를 따라오고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나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만의 환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p.26) 대단하다. 안 소피 브라슴의 내면묘사는 감미로운 동시에 충격적이다.
 
둘의 만남은 조아생이 낸 광고로 시작된다. 조아생은 '사진 모델, 그것도 특별한 신체적 결함을 지닌 모델을 찾고'(p.10) 마리카는 조아생을 찾아 온다. 마리카의 추한 외모는 조아생이 내건 조건과 잘 어울렸다. 미묘한 이들의 관계는 조금씩 친밀해져, 마리카는 조아생의 누드모델이 되기(p.72)까지 한다. 이들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조아생과 마리카의 관계가 변화하는 계기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조아생의 그림이 전시되는 전시회의 특별초대전, 다른 하나는 이들의 동거이다. 특별초대전(베르니사주)이후 마리카가 조아생의 집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사실, 양자는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베르니사주에서 조아생은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예쁜척을 하며 다른 남자의 관심을 끌려는 여자에게 일종의 질투 비슷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p.160)이다. 그런 다음 마리카와 동거를 시작한다. 소유욕에서 비록된 일련의 행동들. 더욱 놀라운 건, 동거 이후 조아생은 창작의욕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독백을 보자.  

'베르니사주에 다녀오고서부터 계속 그 모양이다. 자폐증에 걸린 것 같다.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새하얀 화폭을 대할 때마다 허무하기만 할 뿐이다. (중략) 더는 선을 그어댈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초라한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내 폭력성을 가둘 필요가 없다. 마리카를 그려서 뭐 하나? 이제 그녀는 내 것인데.'(p.184)

몬스터 카니발의 의미, 조아생의 비밀(p.201이하)이 밝혀지면 이야기는 정점에 달하며 두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종말로 치닫는다. 결말은 충격적이며, 의외의 반전도 있다. <몬스터 카니발>, 예술적 깊이가 대단한 작품이다. 안 소피 브라슴의 세련된 문체, 강렬한 이야기에 빠져보시길.

 


* <몬스터 카니발>은 조아생과 마리카의 시점이 번갈아 제시된다.(A-B-A-B) 아예 다른 필체로 인쇄했다.

* 전체적으로 아멜리 노통브의 감성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노틀담의 꼽추'의 설정을 재해석한 아멜리 노통브의 <공격>과 이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그리고, 안 소피 브라슴의 작품은 처음이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생생한 대화는 아멜리 노통브가, 인물 내면묘사는 안 소피 브라슴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 <몬스터 카니발>의 표지는 지금까지 본 책 중 최고다. 표지 속 여자는 인중부터 입까지 가리고 있다.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읽고나서 다시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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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2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카란 인물이 굉장히 매력적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저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인물이어서 동경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책표지는 아마도 마리카...일까요...?^^

쥬베이 2008-06-24 16:10   좋아요 0 | URL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에요. 조아생이 마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화하는 걸 포착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혐오하다 점점 빠져들거든요.
아무튼, 예술적 향취가 대단한 작품이에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