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지배자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작년 이맘때쯤, 나는 누군가가 생일선물로 준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다. 퍽 사변적이고 복잡할 거라 지레 겁먹으며 펼쳤던 그 책은 도입 부분에서 묘사가 많고 상황 설정이 얼른 눈에,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자칫하면 포기할 뻔했다. 그러다 조금 넘기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고, 나는 점점 책에 빨려들어가서, 책을 다 덮고서나서도 그 책의 분위기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 책이 바로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처녀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였다. 원제는 베트남의 옛이름을 딴 [Annam].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다 읽자마자 나는 국내에 소개돼 있는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른 책 두 권, [시간의 지배자]와 [지옥 만세]를 샀다. 그리고 문학동네에 실렸던 김정란의 바타이유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시간의 지배자]에 해당하는 부분은 건너뛰고 읽었지만 꽤 매력있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스켈리그]가 불과 열 페이지 정도밖에 남지 않았던 화요일 아침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에 아직 대문도 못 나섰던 그 시각, 초조하게 내 방의 책무더기들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출근길 반도 가지 못 해서 [스켈리그]를 다 읽을 건 뻔했고, 가방 안에 읽을거리가 하나도 없으면 나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유난히 그 날 아침따라 볼만한, 필이 꽂히는 책이 없었다. 그러다 [시간의 지배자]가 눈에 띄었다. 바로 집어왔다.

역시 첫 시작은 도통 눈에 잡히지도,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묘사가 길었다. 마를리 풍경, 종이 만드는 풍경, 시테 공국의 풍경... 그러다 '늙은 제르당'이라는 인명이 나오면서부터 안심이 됐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시간의 지배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시테 공국에서 '시간의 달인'이라는 직책을 맡은, 왕궁의 시계를 관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늙은 제르당은 등장한지 불과 몇 페이지만에 어디론가 도망가고, 그 뒤를 따라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온 젊은 시간의 달인이 왔다가 여자 하나 죽게 만들고 또 몇 페이지만에 실컷 두들겨맞은 뒤 도망간다.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폴란드에서 시계 기술을 배우고 젊은 피에몬테인 뒤로 시테 공국의 시간의 달인이 된, 아르투로라는 거인이다. 시테 공국을 다스리는 공작, 공자그의 이야기와 아르투로의 이야기가 얽힌다. 화자는 프랑스 대사를 지낸 이이다.

공작과 시간의 달인은 기묘한 우정을 쌓고, 밤마다 왕궁의 218개의 시계를 돌보는 모험을 함께 한다. 하지만 공작의 손놀림은 언제나 서투르고, 심지어는 시계를 고장낸다. 공작은 곧 싫증을 느끼고는 또다시 끝없이 갈아치우는 젊은 연인들의 나신으로 돌아가고, 아르투로는 도무지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졌는지 아무도 모를, 빨래하는 처녀 헬렌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후 얘기는... (벌써 반 이상 줄거리를 요약했다.)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로도이프스카가 비명을 지르는 건 이렇게 세번 반복이 된다. 로렌을 닮은, 도무지 말이 없고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웠던 그 소녀. 그 소녀의 비명 장면은 소설에서 가장 격렬하다. 물론 바타이유는 이 격렬함 역시 그 특유의 촉촉하고 시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 격렬하지 않은 듯 격렬하고, 부드러운 듯 세다. 그리고 소설은 역시나, 몇 장 넘기지 않았다 싶은데 끝이 난다.

이전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도 그랬지만 이 소설 역시 나는 줄거리에 이입하기보다 비록 번역체라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해도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문장을 즐긴다. 그의 문체는 섬세하고 시적이다. 그의 소설은 얇고, 페이지 바꿈이 많으며 줄간도 풍성하다. 빽빽한 문장의 서사의 전개도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생략으로 인한 여백이 풍성하다.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특정한 사건이 자세히 서술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짧고 간결하고 몇 안 되는 문장들로 그는 자신의 주인공들과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전달한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그의 문장은 시적이다. 읽는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선형적인 이야기전개가 아니라 각종 이미지들이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 비해 문장의 그 섬세한 시적인 느낌들이 좀 떨어지는 듯 느껴졌던 건 원래 바타이유가 그렇게 문장을 써서일까 번역자가 바뀌어서일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번역은 김화영이었고 [시간의 지배자]의 번역은 김정란이다. 굳이 꼽자면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의 문장의 느낌이 더 좋았지만, [시간의 지배자]의 문장의 느낌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전체적으로 뭐랄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깊은 느낌, 그 풍성한 촉촉함, 이게 [시간의 지배자]에선 덜 느껴졌달까. 그래서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도 무수히 많은 문장에 줄을 치고픈 욕망을 느꼈고 실제로 감상문에 구절들을 부지런히 옮겼는데, [시간의 지배자]에선 특별히 눈을 잡아끄는 구절, 문장, 문단들이 없다. 고작해야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정도. 그리고 "사라는 그곳에서 몸을 팔았다." 정도.

책 말미에 붙은 김정란의 해석은 일부러 읽지 않았다. 언어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이미지와 느낌 덩어리로 부유하는 이것을 조금 더 즐기기 위해서다. 그걸 충분히 즐기기 전에 다른 이의 시각을 통해 해석해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 이 느낌을 충분히 즐기고, 그것이 스스로 언어화하고 싶어 형태를 갖출 때, 그때 이 책을 다시 읽고, 그리고 나서야 김정란의 평론을 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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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세계
피에르 비달나케 지음, 이세욱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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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그래도 몇년 전부터 슬슬 불기 시작한 신화 바람에다 얼마전 영화 <트로이>의 광풍도 있었지만, 원래 신화에 약간의 관심은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의 제목만 듣고 딱 삘이 꽂힌 상태였는데, 친구가 선물로 주었다. 정작 받아보니 두께는 별로 얇지 않고, 편집도 줄간이 무지허니 넓고 벙벙하다. (약간 속은 기분.)  예상과 달라 어! 했는데, 그러나 막 [마법의 등]을 다 읽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며칠간 매우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을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뒷세이]를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 책을 따라가는 것이 그닥 쉽지만은 않았다. 내용이 어렵다거나 심오하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원전을 보지 않고는 그에 대한 비평이나 주석서는 결코! 보지 않는 습성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 지금이라도 덮고 당장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주문하자! 라는 맘이 들었으나... 책이 재미있었다.
 
일단 이 책은, 호메로스(들)의 저 두 책이 역사책도 무엇도 아닌, '문학서'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역사서로 착각하며 책에 묘사된 오뒷세우스의 여정을 그대로 재현한달지, 당시 인구통계조사를 한달지 하고자 하는 시도들에 대해 가볍게 "쓸데없는 짓"이라 일축한다. 그보다는 [일리어드]가 창작된 시기의 그리스 사회를 추측해보고(물론 트로이 전쟁보다 훨씬 후대에 창작되었다), 당대 시대상이랄지 사회 문화랄지 등을 추측해 보는 것, 그리고 '문학서'인 이상 문장의 아름다움과 메타포에 관해 집중할 것을 권한다.(라기보다는, 문장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메타포들이 얼마나 풍부한 문학성을 가지고 있는지 열렬한 어조로 보여준다.)
 
또한 [일리어드]가 구술문학으로 대대로 전승되어 온 만큼, 구술문학으로서의 성격, 또 처음 활자로 기록된 후 기록문학으로의 성격 변모, [일리어드]와 [오뒷세이] 간 차이들 분석 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서구의 문학전통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이 호메로스의 세계에 기대고 있는지 풍부한 예와 인용을 들어 새삼 각인시키고 있고, 몇몇 지점들에서 대척점을 보이는 [일리어드]와 [오뒷세이] 간의 차이, 또한 후대 문학평론가들과 지성들의 두 책에 대한 선호도(예를 들면 시몬느 베이유는 단연 [일리어드]를 최고로 치고 [오뒷세이]는 [일리어드]의 모방으로 본다.)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나 쉽고 재미있으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호메로스의 두 책을 읽은 후 새삼 이를 음미하거나, 본격적으로 그 문학세계에 입문하기 위한 입문서로 아주 제격이다. 읽다보면 저자의 열정에 함께 흥분되어, 지금이라도 당장 두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번역자 이세욱시는 원저자가 단 주 외에도 국내 [일리어드] 및 [오뒷세이] 번역판본들의 예를 번역자주로 세심하게 달아놓고 있다.
 
책에서 인용된 [일리어드]의 부분부분을 읽다보니, 영화 <트로이>가 단순히 [일리어드]를 비롯해 트로이 전쟁에 대한 각종 전설을 긁어모아 제식대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일리어드]에서 그대로 가져온 대사들도 상당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이 외국으로 유학가면 아리스토텔레스나 그리스 4대 비극, 세익스피어 작품들 등 소위 고전 중의 고전이자 필독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 때문에 쪽팔림을 겪는다는데, 그 수많은 고전 및 필독서 중에서도 [일리어드]와 [오뒷세이]는 리스트 맨 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새삼 이 나이 먹도록 그 원전들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갑자기 스스로 쪽팔렸다. (물론 한국사람이 서구 전통의 고전에 약한 게 무슨 흠이겠냐만, 그렇다고 [삼국유사]나 심지어 조선시대 [춘향전] 등도 완역본으로 읽는 사람들도 얼마 없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고.) 올해 안으로 꼭, 천병희 선생의 운문 완역번역본인 [일리어드]와 [오뒷세이] 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호메로스의 책을 읽게 하는 것, 이었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매우 성공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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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4-09-1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끄러워. 쉿~

딸기 2005-11-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 뒤에 여기에 들르게 되었어요.
저의 허접한 리뷰 아닌 리뷰가 부끄러워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즐찾 해놓고 자주 올께요. :)
 
스켈리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
데이비드 알몬드 지음, 김연수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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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그런 물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어깨뼈가 왜 있는지. 이 책에선 어깨뼈라고 했지만, 그러니까 견갑골을 얘기하는 걸 거다. 등 위쪽 좌우로 삼각형으로 난 뼈. 당신은 왜 당신 어깨-등에 그 뼈가 있는지 알고 있는가?

소년이 새 집으로 이사온다. 혼자 살던 병든 외로운 노인이 살다 죽은 집, 생전 전혀 돌보지 않은 집이라 낡고 황폐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갓 태어난 여동생. 얼핏 보기에 평범하고 행복한, 참 단란한 가정이다. 알콜중독자에 가족들에게 주먹질을 일삼는 아버지도 없고 히스테리를 부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베베꼬인 어머니도 없다. 비룡소에서 내는 청소년 문학선, 이 책이 처음인데, '청소년 문학선'이라는 시리즈 이름 때문에 "새 환경에 적응 못하는 애 얘긴가" 했다. 무너져내리기 일보 직전의 어두컴컴한 차고에서 부랑자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가선 아, 그러니까 낯선 부랑자와 몰래 나누는 우정 얘기련가, 했다. 표지의 그림, 그리고 어딘가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에, 그러니까 이 부랑자의 정체가 실은 천사일 거고... 어른들은 몰라요 천사와의 우정, 뭐 그런 이야기겠군.

하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기며 나는 점점 이야기에 빠져든다. 때로 눈과 마음이 정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눈은 빠르게 단어와 글자 사이를 뛰어넘어 앞으로 앞으로 급하게 달려나가는데 마음은 그걸 억누르는. 일부러 천천히 아껴읽고 싶어서 눈과 마음이 계속 전쟁을 해야 하는. 이 책, 책장을 넘길수록 그랬다.

내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책엔 어디에도 그 부랑자가 천사란 얘긴 나오지 않는다. 중국풍 패스트푸드 27번과 53번 음식을 '신들의 넥타르 맛'이라고 부르며 갈색 에일 맥주를 좋아하는 그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아프다. 뼈마디를 움직일 수가 없고, 맥주병을 들 힘도, 맥주를 삼키기 위해 고개를 젖힐 힘도 없다. 소년 - 이름이 마이클이다 - 은 그런 그가 안타깝다. 위험한 차고라 근처에도 못 가게 하는 부모님 몰래 그는 먹다 남은 27번과 53번 중국집 음식, 그리고 아버지 몰래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를 그에게 가져다주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고, 자긴 아무것도 아니며, 신경쓰지 말라고 귀찮게 말한다. 그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온몸이 그렇게 뻣뻣하게 굳어져서 꼼짝할 수 없는 그를 보며, 새로 사귄 옆집 친구 미나는 '석회화증'이라고 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어머니에게 공부를 배우며 새에 미쳐있는 소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즐겨 암송하고 그림그리기를 즐기는 똑똑한 소녀가 바로 미나다.
 
아기가 아프다. 태어난 뒤 온갖 전선과 튜브를 꽂고 유리상자에 들어가야 했던 아기, 아직 이름도 없는 아기. '그'도 아프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그. 곧 죽을 것만 같은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그냥 죽기로 작정한 것 같은 그를 보며, 마이클이 미나 앞에서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린다. 미나야, 아저씨는 많이 아픈데, 그냥 죽고 싶나봐,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질 않아.
 
소설을 읽으며 감정이 정화받고, 그래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경험도 참 오랜만이다. 그 - 나중에 그는, 자신의 이름이 스켈리그라고 말해준다 - 와 마이클과 미나가 손에 손을 붙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출 때, 그래서 어느 순간 공중으로 솟아나고 스켈리그 등에 달린 커다랗고 아름다운 깃털날개와, 자신과 미나의 등에 솟아난 희미하고 투명한 날개를 볼 때, 나는 버스 안에서 왼손으로 책을 잡은 채 오른손을 어깨위로 넘겨 어깨를 주무르는 척하면서 팔이 닿는 한 내 견갑골을 더듬어본다. 내 기억으론 아직 내 견갑골에선 날개가 솟은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어릴 땐 간간이 솟기도 했지만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엔딩을 맞기까지, 과정이 참, 지켜보는 것도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그것도 우리가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흔한 인간사인 데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삶, 그 소소하고 섬세한 일상들이,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해지는 것이다.
 
마이클과 미나와 부엉이들이 아무리 먹이를 갖다주어 일시적으로 기운을 회복은 했다 하더라도, 결국 스켈리그는 석회화 현상으로 점점 몸이 굳어가는 증상이 완전히 멈추거나 회복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몸이 완전히 굳어져버리겠지. 어쩌면 인간과 천사(스켈리그를 이것으로 부르는 건 왠지 그를 너무 평범하고 흔해빠지고 식상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싫지만)가 공존했던 시대가 끝나고 점차 그들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존재가 스켈리그인지도 모르겠다. 요정과 난쟁이와 엘프와 천사들과 인간과 하플링이 모두 함께 살던 시절을, 우리의 선조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또 기록해 놓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점차 우리와 멀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사라져버린 사건에 대해 모호하긴 하지만 기록을 남겨주고 있으니까. 스켈리그의 몸을 괴롭게 하는 석회화증이 더 서글퍼지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우린 여전히 기억을 갖고 있는데, 이제 그들은 거의 사라져버리고, 간혹 저렇게 어쩌다 우리 옆에서 발견된 이도, 너무, 아프니까. 피로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너무나 하얗고 창백한 얼굴과 마르고 굳은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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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유골 캐드펠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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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불모지라는 한국에서 브라운 신부보다도 덜 유명한 캐드팰 수사를 주인공으로 한 캐드펠 시리즈의 첫째 권. [성녀의 유골]은, 위니프레드 성녀의 유골을 수도원에 모셔오기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음모와 살인사건을 다룬다. 파란만장한 청, 장년기를 보내고 노년기에 수도원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캐드팰 수사는 소설에 등장하는 여타의 수사들과 (당연히) 다르다. 전쟁터를 누볐고 여러 여성들과 사랑의 추억을 갖고 있기에, 그는 ‘속세를 너무 많이 아는’ 수도사다. 그런 사람은 으레 어릴 때부터 성직자를 지망했거나 십대부터 열렬한 신앙에 빠진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욱 가혹하고 엄격할 법도 하건만, 캐드펠 수사는 인생의 지혜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시대적 배경이 중세이니만큼 등장인물들이 모두 참으로 종교적이고 중세적이건만, 캐드팰은 상당히 근대적인 인물로 보인다. 종교적 광신에 대한 냉소도 그렇거니와, 약초를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지극히 중세적이면서도(만약 그가 평민의 처녀였다면 당장 마녀재판을 받았으리라), 이를 처방하는 방식, 그리고 사고논리는 대단히 합리적이다. 그런 인물이 지극히 중세적인 공간에서 나름대로 튀지 않고 그럭저럭 묻혀 살아가는 방식. 혹자는 ‘처세술’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십자군 전쟁에서 오랫동안 떠돈 그에겐 당연한 삶의 지혜일 것이다.

내가 추리소설을 잘 안 읽게 되는 것은, 대부분의 추리소설이 살인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대단히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코끝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것같다. (물론 불과 몇 편의 추리소설을 읽었을 뿐인 나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가능성이 크지만,) 살인사건이 폭력적인 것은 단순히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차원이라기보다는 피살자가 여성일 경우가 많고, 보통은 살인자보다 약자이며, 동기와 과정 등에서 뭐랄까, 인간 본성의 추악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면이 극단적으로 드러난달까, 하는 점들 때문이다. 성선설 신봉자도 아니고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삐딱할 수밖에 없는 뱀파이어 혼혈족이긴 하지만, 그리고 냉소와 독설을 퍽 즐기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추리소설이 다루는 사건과 일반적으로 추리소설들에 깔려 있는 정서는 좀 그렇다. 게다가 사건을 해결하는 이는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범인을 가려내는 ‘게임’에 더 골몰하곤 하는 것 같다. (뭐, 이건 다른 한편으론, 내가 추리소설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성녀의 유골]은 이상하게도, 그 질척하고 답답한 피 냄새가 없다. 이 소설 역시 살인사건이 등장하고, 끝간 데 없이 추악한 탐욕과 권력욕이 드러난다. 권력과 음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줄을 살 서기 위한 암투, 거짓말과 광신과 허위가 난무한다. 그것도 신을 섬긴다는 수도사들 사이에서. 그러나 ‘탐정’ 혹은 ‘형사’격인 캐드팰 수사에게서는,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여 명성을 떨치겠다는 소영웅주의 대신, 살인사건으로 죽은 이와 남겨진 가족들의 상처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보인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젊은 연인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자신의 후배인 젊은 수사를 보며 안쓰러워하는 시선도. 비록 인생풍파를 겪어온 이답게 꽤나 냉소적일지라도 그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느낄 줄 알며, 추악하고 역겹다 하더라도 그런 권모술수에 빠져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향해 독설과 냉소 속에서도 연민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그는 이제껏 보아온 다른 추리소설의 주인공들과 꽤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마무리를 짓는다. 비록 그것이 진실을 그대로 하늘 아래에 드러내는 것이 아닌, 엄밀히 말해 또다른 거짓말을 하는 방식일지라도, 나는 섣불리 캐드펠 수사를 비난하지 못하겠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그 당황은 공모자의 동의와 끄덕거림, 그리고 캐드펠 수사에 대한 신뢰로 바뀌었다. 현명하다고 할 순 없으나, 100% 동의할 순 없으나 충분히 그의 판단과 방식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막 책을 다 읽은 며칠 후,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의 덕택에 어쩌면 나머지 캐드펠 시리즈를 조금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안 되더라도 한권씩 한권씩 차례로 사볼 예정이지만. 다음권도 꽤 기대가 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BBC에서 제작해서 방영한 바 있는, 역시나 오마이스타인 데렉 자코비 영감이 캐드펠 수사로 등장하는 TV 미니 시리즈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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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6-1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바리님, 축하드려요!!! 또 상타셨네요!

노바리 2004-06-16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근데 어째 이주의 리뷰 당선 소식은 언제나 마태우스님께서 알려주시는군요. 마태우스님 리플 읽고나서야 알고 허겁지겁 확인했답니다. ^^;; 아무튼 공돈이 생긴 기분이라 참 좋네요.
 
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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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에 붙은 '해설'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구절은 이 책을 '한 편의 우주적 농담'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농담'이라...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이제 두 권 읽은 나로서는 아직 커트 보네거트의 세계에 대해 단언하기 힘이 들지만, 보통 그의 문학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유머'나 '농담'이란 말은 한없이 부족한 느낌이긴 하다. 어쨌건 '농담'이라는 부족한 말로 표현해 보자면, 이 소설이 우주적 농담에 해당하는 건 맞는 말이다.

흥미로운 예언 뒤에 펼쳐지는 황당한 '우주적' 전투. 그리고 지극히 씁쓸한 전후의 세계와 주인공들의 운명. 이 소설이 농담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큰 뼈가 박힌, 황당함과 무시무시함과 섬뜩함과 비애와 슬픔의 농담이다. 너무나 식상한 표현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알량한 자존심을 가지고 잘난 척 해오던 인간이란 존재는 이 소설에서 커트 보네거트에게 철저하게 조롱의 대상이기도, 가슴 싸한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에고. 더 이상 쓰는 게 불가. 줄거리를 요약해봤자 황당해질 테고, 이 소설의 매력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읽어나가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나같은 범부의 언어로 표현하기란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커트 보네거트적 감성에선 그저 조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기-승-전-결의 내러티브 구조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소설을 읽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지만, 그 쉽지 않음을 상쇄하는 무시무시한 매력이 내러티브 밑에 마구잡이로 펼쳐져 있음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겠다. 어느 순간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문장들이 콕, 콕, 감성을 찌르며 쉽사리 낄낄거리게도, 쉽사리 한숨을 짓기에도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책은 '새와물고기'라는 출판사에서 우르르 출판되었고, 모두 절판되었고, 몇몇 책이 몇몇 출판사를 통해 나왔지만 [갈라파고스]를 제외하고 모두 절판되었다. (세계인에서 출판된 갈라파고스는 절판, 최근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번역자에 의해 다시 나왔다.) 한국에서 소수의 컬트팬에게만 알려져있는 그의 책은, 최근에 금문서적이라는 출판사에서 다시 출판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새와물고기에서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 봐'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이 책은, 금문에서 원제의 번역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끝까지 읽어보니, 새와물고기 버전에서 왜 번역자가 원제와 상관없는 그 제목을 지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 느껴지는, 그 제목이 풍기는 책에 대한 미묘한 선입견을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책 내용과 그 제목은 꽤나 잘 어울린다. 적어도 '타이탄의 미녀'라는 건조한 제목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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