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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배자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평점 :
품절
작년 이맘때쯤, 나는 누군가가 생일선물로 준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다. 퍽 사변적이고 복잡할 거라 지레 겁먹으며 펼쳤던 그 책은 도입 부분에서 묘사가 많고 상황 설정이 얼른 눈에,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자칫하면 포기할 뻔했다. 그러다 조금 넘기자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고, 나는 점점 책에 빨려들어가서, 책을 다 덮고서나서도 그 책의 분위기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 책이 바로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처녀작, [다다를 수 없는 나라]였다. 원제는 베트남의 옛이름을 딴 [Annam].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다 읽자마자 나는 국내에 소개돼 있는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다른 책 두 권, [시간의 지배자]와 [지옥 만세]를 샀다. 그리고 문학동네에 실렸던 김정란의 바타이유 인터뷰를 찾아 읽었다. [시간의 지배자]에 해당하는 부분은 건너뛰고 읽었지만 꽤 매력있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스켈리그]가 불과 열 페이지 정도밖에 남지 않았던 화요일 아침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 있어야 할 시간에 아직 대문도 못 나섰던 그 시각, 초조하게 내 방의 책무더기들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출근길 반도 가지 못 해서 [스켈리그]를 다 읽을 건 뻔했고, 가방 안에 읽을거리가 하나도 없으면 나는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유난히 그 날 아침따라 볼만한, 필이 꽂히는 책이 없었다. 그러다 [시간의 지배자]가 눈에 띄었다. 바로 집어왔다.
역시 첫 시작은 도통 눈에 잡히지도,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묘사가 길었다. 마를리 풍경, 종이 만드는 풍경, 시테 공국의 풍경... 그러다 '늙은 제르당'이라는 인명이 나오면서부터 안심이 됐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시간의 지배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시테 공국에서 '시간의 달인'이라는 직책을 맡은, 왕궁의 시계를 관리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늙은 제르당은 등장한지 불과 몇 페이지만에 어디론가 도망가고, 그 뒤를 따라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온 젊은 시간의 달인이 왔다가 여자 하나 죽게 만들고 또 몇 페이지만에 실컷 두들겨맞은 뒤 도망간다.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폴란드에서 시계 기술을 배우고 젊은 피에몬테인 뒤로 시테 공국의 시간의 달인이 된, 아르투로라는 거인이다. 시테 공국을 다스리는 공작, 공자그의 이야기와 아르투로의 이야기가 얽힌다. 화자는 프랑스 대사를 지낸 이이다.
공작과 시간의 달인은 기묘한 우정을 쌓고, 밤마다 왕궁의 218개의 시계를 돌보는 모험을 함께 한다. 하지만 공작의 손놀림은 언제나 서투르고, 심지어는 시계를 고장낸다. 공작은 곧 싫증을 느끼고는 또다시 끝없이 갈아치우는 젊은 연인들의 나신으로 돌아가고, 아르투로는 도무지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졌는지 아무도 모를, 빨래하는 처녀 헬렌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후 얘기는... (벌써 반 이상 줄거리를 요약했다.)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로도이프스카가 비명을 지르는 건 이렇게 세번 반복이 된다. 로렌을 닮은, 도무지 말이 없고 어릴 때부터 어른스러웠던 그 소녀. 그 소녀의 비명 장면은 소설에서 가장 격렬하다. 물론 바타이유는 이 격렬함 역시 그 특유의 촉촉하고 시적인 느낌으로 표현한다. 격렬하지 않은 듯 격렬하고, 부드러운 듯 세다. 그리고 소설은 역시나, 몇 장 넘기지 않았다 싶은데 끝이 난다.
이전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도 그랬지만 이 소설 역시 나는 줄거리에 이입하기보다 비록 번역체라 간접적일 수밖에 없다 해도 크리스토프 바타이유의 문장을 즐긴다. 그의 문체는 섬세하고 시적이다. 그의 소설은 얇고, 페이지 바꿈이 많으며 줄간도 풍성하다. 빽빽한 문장의 서사의 전개도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생략으로 인한 여백이 풍성하다.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특정한 사건이 자세히 서술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짧고 간결하고 몇 안 되는 문장들로 그는 자신의 주인공들과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전달한다.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그의 문장은 시적이다. 읽는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선형적인 이야기전개가 아니라 각종 이미지들이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 비해 문장의 그 섬세한 시적인 느낌들이 좀 떨어지는 듯 느껴졌던 건 원래 바타이유가 그렇게 문장을 써서일까 번역자가 바뀌어서일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번역은 김화영이었고 [시간의 지배자]의 번역은 김정란이다. 굳이 꼽자면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의 문장의 느낌이 더 좋았지만, [시간의 지배자]의 문장의 느낌도 나쁘진 않다. 다만 전체적으로 뭐랄까,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 느꼈던... 그 깊은 느낌, 그 풍성한 촉촉함, 이게 [시간의 지배자]에선 덜 느껴졌달까. 그래서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으면서도 무수히 많은 문장에 줄을 치고픈 욕망을 느꼈고 실제로 감상문에 구절들을 부지런히 옮겼는데, [시간의 지배자]에선 특별히 눈을 잡아끄는 구절, 문장, 문단들이 없다. 고작해야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질렀다." 정도. 그리고 "사라는 그곳에서 몸을 팔았다." 정도.
책 말미에 붙은 김정란의 해석은 일부러 읽지 않았다. 언어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이미지와 느낌 덩어리로 부유하는 이것을 조금 더 즐기기 위해서다. 그걸 충분히 즐기기 전에 다른 이의 시각을 통해 해석해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 이 느낌을 충분히 즐기고, 그것이 스스로 언어화하고 싶어 형태를 갖출 때, 그때 이 책을 다시 읽고, 그리고 나서야 김정란의 평론을 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