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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1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창식 옮김 / 창해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크게 히트한 소설의 속편이 가지는 공통점은 스케일이 커지는 대신 약간 산만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속편은 속편이다'로 달았던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억지로 삽입된 듯한 미샤라는 캐릭터, 그리고 어색한 독백들. 이 소설은 모모 소설의 속편입니다 라고 광고하는 듯한 느낌이다.
전편은 철저하게 클라리스 스탈링의 시점에서 한니발 렉터를 묘사했기 때문에 '식인종 한니발(Hannibal the Cannibal)'이라는 캐릭터는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띨 수 있었다. 그 매력적인 캐릭터가 이번엔 주인공이다. 우리는 한니발의 무의식과 기억 저장소를 전지적인 작가 시점을 통해 고스란히 여행한다.
소설상에서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던 괴물(악당이 아니다!)이 인간화하는 대신 신비스러움을 댓가로 치르는 아이러니. 전편의 응축되고 단단했던, 그리고 신비로웠던 분위기가 걷히고 약간 산만하고 풀어진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스탈링의 컴플렉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갈등과 긴장, 이런 것들은 속편에 들어와 단순화되고 평면화됐다. 마치 헐리웃산의 블럭버스터 영화를 한편 보고 난 느낌이랄까. 전편의 '지적인 긴장감'은 사라졌다.
사실 <한니발>은, <양들의 침묵>의 속편이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장르의 전혀 다른 소설이기도 하다. 전편과 연결지어 비교하는 게 어느 면에서는 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니발>은 <한니발> 고유의 소설적 재미와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막판에 벌어지는 향연은 강력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매력만점이었던 클라리스 스탈링과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 그리고 그들과 그 주변인물들과의 관계에서 구축했던 다양한 긴장과 갈등이라는 전편의 장점을 그대로 사용한 이상, 이런 장점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더욱 발전하지 못하고 퇴보한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