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 붙은 '해설'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구절은 이 책을 '한 편의 우주적 농담'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농담'이라...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이제 두 권 읽은 나로서는 아직 커트 보네거트의 세계에 대해 단언하기 힘이 들지만, 보통 그의 문학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유머'나 '농담'이란 말은 한없이 부족한 느낌이긴 하다. 어쨌건 '농담'이라는 부족한 말로 표현해 보자면, 이 소설이 우주적 농담에 해당하는 건 맞는 말이다.
흥미로운 예언 뒤에 펼쳐지는 황당한 '우주적' 전투. 그리고 지극히 씁쓸한 전후의 세계와 주인공들의 운명. 이 소설이 농담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큰 뼈가 박힌, 황당함과 무시무시함과 섬뜩함과 비애와 슬픔의 농담이다. 너무나 식상한 표현이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알량한 자존심을 가지고 잘난 척 해오던 인간이란 존재는 이 소설에서 커트 보네거트에게 철저하게 조롱의 대상이기도, 가슴 싸한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에고. 더 이상 쓰는 게 불가. 줄거리를 요약해봤자 황당해질 테고, 이 소설의 매력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읽어나가야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나같은 범부의 언어로 표현하기란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더라도 커트 보네거트적 감성에선 그저 조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터. 기-승-전-결의 내러티브 구조에 익숙한 나로서는 이 소설을 읽기가 그리 쉽지가 않았지만, 그 쉽지 않음을 상쇄하는 무시무시한 매력이 내러티브 밑에 마구잡이로 펼쳐져 있음을 고백하는 수밖에 없겠다. 어느 순간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문장들이 콕, 콕, 감성을 찌르며 쉽사리 낄낄거리게도, 쉽사리 한숨을 짓기에도 곤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책은 '새와물고기'라는 출판사에서 우르르 출판되었고, 모두 절판되었고, 몇몇 책이 몇몇 출판사를 통해 나왔지만 [갈라파고스]를 제외하고 모두 절판되었다. (세계인에서 출판된 갈라파고스는 절판, 최근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번역자에 의해 다시 나왔다.) 한국에서 소수의 컬트팬에게만 알려져있는 그의 책은, 최근에 금문서적이라는 출판사에서 다시 출판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새와물고기에서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 봐'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이 책은, 금문에서 원제의 번역제목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끝까지 읽어보니, 새와물고기 버전에서 왜 번역자가 원제와 상관없는 그 제목을 지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 느껴지는, 그 제목이 풍기는 책에 대한 미묘한 선입견을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책 내용과 그 제목은 꽤나 잘 어울린다. 적어도 '타이탄의 미녀'라는 건조한 제목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