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세계
피에르 비달나케 지음, 이세욱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안그래도 몇년 전부터 슬슬 불기 시작한 신화 바람에다 얼마전 영화 <트로이>의 광풍도 있었지만, 원래 신화에 약간의 관심은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의 제목만 듣고 딱 삘이 꽂힌 상태였는데, 친구가 선물로 주었다. 정작 받아보니 두께는 별로 얇지 않고, 편집도 줄간이 무지허니 넓고 벙벙하다. (약간 속은 기분.)  예상과 달라 어! 했는데, 그러나 막 [마법의 등]을 다 읽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며칠간 매우 재미있고 신나는 경험을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어드]와 [오뒷세이]를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기에, 이 책을 따라가는 것이 그닥 쉽지만은 않았다. 내용이 어렵다거나 심오하다거나 해서가 아니라, 원전을 보지 않고는 그에 대한 비평이나 주석서는 결코! 보지 않는 습성 때문에. 읽는 중간중간, 지금이라도 덮고 당장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일리어드]와 [오디세이]를 주문하자! 라는 맘이 들었으나... 책이 재미있었다.
 
일단 이 책은, 호메로스(들)의 저 두 책이 역사책도 무엇도 아닌, '문학서'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을 역사서로 착각하며 책에 묘사된 오뒷세우스의 여정을 그대로 재현한달지, 당시 인구통계조사를 한달지 하고자 하는 시도들에 대해 가볍게 "쓸데없는 짓"이라 일축한다. 그보다는 [일리어드]가 창작된 시기의 그리스 사회를 추측해보고(물론 트로이 전쟁보다 훨씬 후대에 창작되었다), 당대 시대상이랄지 사회 문화랄지 등을 추측해 보는 것, 그리고 '문학서'인 이상 문장의 아름다움과 메타포에 관해 집중할 것을 권한다.(라기보다는, 문장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또 메타포들이 얼마나 풍부한 문학성을 가지고 있는지 열렬한 어조로 보여준다.)
 
또한 [일리어드]가 구술문학으로 대대로 전승되어 온 만큼, 구술문학으로서의 성격, 또 처음 활자로 기록된 후 기록문학으로의 성격 변모, [일리어드]와 [오뒷세이] 간 차이들 분석 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서구의 문학전통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이 호메로스의 세계에 기대고 있는지 풍부한 예와 인용을 들어 새삼 각인시키고 있고, 몇몇 지점들에서 대척점을 보이는 [일리어드]와 [오뒷세이] 간의 차이, 또한 후대 문학평론가들과 지성들의 두 책에 대한 선호도(예를 들면 시몬느 베이유는 단연 [일리어드]를 최고로 치고 [오뒷세이]는 [일리어드]의 모방으로 본다.)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너무나 쉽고 재미있으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호메로스의 두 책을 읽은 후 새삼 이를 음미하거나, 본격적으로 그 문학세계에 입문하기 위한 입문서로 아주 제격이다. 읽다보면 저자의 열정에 함께 흥분되어, 지금이라도 당장 두 책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또 번역자 이세욱시는 원저자가 단 주 외에도 국내 [일리어드] 및 [오뒷세이] 번역판본들의 예를 번역자주로 세심하게 달아놓고 있다.
 
책에서 인용된 [일리어드]의 부분부분을 읽다보니, 영화 <트로이>가 단순히 [일리어드]를 비롯해 트로이 전쟁에 대한 각종 전설을 긁어모아 제식대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일리어드]에서 그대로 가져온 대사들도 상당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이 외국으로 유학가면 아리스토텔레스나 그리스 4대 비극, 세익스피어 작품들 등 소위 고전 중의 고전이자 필독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것 때문에 쪽팔림을 겪는다는데, 그 수많은 고전 및 필독서 중에서도 [일리어드]와 [오뒷세이]는 리스트 맨 위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새삼 이 나이 먹도록 그 원전들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갑자기 스스로 쪽팔렸다. (물론 한국사람이 서구 전통의 고전에 약한 게 무슨 흠이겠냐만, 그렇다고 [삼국유사]나 심지어 조선시대 [춘향전] 등도 완역본으로 읽는 사람들도 얼마 없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고.) 올해 안으로 꼭, 천병희 선생의 운문 완역번역본인 [일리어드]와 [오뒷세이] 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호메로스의 책을 읽게 하는 것, 이었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매우 성공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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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4-09-17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부끄러워. 쉿~

딸기 2005-11-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린 뒤에 여기에 들르게 되었어요.
저의 허접한 리뷰 아닌 리뷰가 부끄러워지네요. 잘 읽고 갑니다.
즐찾 해놓고 자주 올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