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리그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
데이비드 알몬드 지음, 김연수 옮김 / 비룡소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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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그런 물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어깨뼈가 왜 있는지. 이 책에선 어깨뼈라고 했지만, 그러니까 견갑골을 얘기하는 걸 거다. 등 위쪽 좌우로 삼각형으로 난 뼈. 당신은 왜 당신 어깨-등에 그 뼈가 있는지 알고 있는가?

소년이 새 집으로 이사온다. 혼자 살던 병든 외로운 노인이 살다 죽은 집, 생전 전혀 돌보지 않은 집이라 낡고 황폐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갓 태어난 여동생. 얼핏 보기에 평범하고 행복한, 참 단란한 가정이다. 알콜중독자에 가족들에게 주먹질을 일삼는 아버지도 없고 히스테리를 부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베베꼬인 어머니도 없다. 비룡소에서 내는 청소년 문학선, 이 책이 처음인데, '청소년 문학선'이라는 시리즈 이름 때문에 "새 환경에 적응 못하는 애 얘긴가" 했다. 무너져내리기 일보 직전의 어두컴컴한 차고에서 부랑자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가선 아, 그러니까 낯선 부랑자와 몰래 나누는 우정 얘기련가, 했다. 표지의 그림, 그리고 어딘가에서 본 어렴풋한 기억에, 그러니까 이 부랑자의 정체가 실은 천사일 거고... 어른들은 몰라요 천사와의 우정, 뭐 그런 이야기겠군.

하지만 책장을 한장씩 넘기며 나는 점점 이야기에 빠져든다. 때로 눈과 마음이 정반대로 움직일 때가 있다.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눈은 빠르게 단어와 글자 사이를 뛰어넘어 앞으로 앞으로 급하게 달려나가는데 마음은 그걸 억누르는. 일부러 천천히 아껴읽고 싶어서 눈과 마음이 계속 전쟁을 해야 하는. 이 책, 책장을 넘길수록 그랬다.

내 짐작은 반은 맞고 반을 틀렸다. 책엔 어디에도 그 부랑자가 천사란 얘긴 나오지 않는다. 중국풍 패스트푸드 27번과 53번 음식을 '신들의 넥타르 맛'이라고 부르며 갈색 에일 맥주를 좋아하는 그는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아프다. 뼈마디를 움직일 수가 없고, 맥주병을 들 힘도, 맥주를 삼키기 위해 고개를 젖힐 힘도 없다. 소년 - 이름이 마이클이다 - 은 그런 그가 안타깝다. 위험한 차고라 근처에도 못 가게 하는 부모님 몰래 그는 먹다 남은 27번과 53번 중국집 음식, 그리고 아버지 몰래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를 그에게 가져다주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고, 자긴 아무것도 아니며, 신경쓰지 말라고 귀찮게 말한다. 그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있다.
 
온몸이 그렇게 뻣뻣하게 굳어져서 꼼짝할 수 없는 그를 보며, 새로 사귄 옆집 친구 미나는 '석회화증'이라고 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어머니에게 공부를 배우며 새에 미쳐있는 소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즐겨 암송하고 그림그리기를 즐기는 똑똑한 소녀가 바로 미나다.
 
아기가 아프다. 태어난 뒤 온갖 전선과 튜브를 꽂고 유리상자에 들어가야 했던 아기, 아직 이름도 없는 아기. '그'도 아프다.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그. 곧 죽을 것만 같은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그냥 죽기로 작정한 것 같은 그를 보며, 마이클이 미나 앞에서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린다. 미나야, 아저씨는 많이 아픈데, 그냥 죽고 싶나봐,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질 않아.
 
소설을 읽으며 감정이 정화받고, 그래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한 경험도 참 오랜만이다. 그 - 나중에 그는, 자신의 이름이 스켈리그라고 말해준다 - 와 마이클과 미나가 손에 손을 붙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출 때, 그래서 어느 순간 공중으로 솟아나고 스켈리그 등에 달린 커다랗고 아름다운 깃털날개와, 자신과 미나의 등에 솟아난 희미하고 투명한 날개를 볼 때, 나는 버스 안에서 왼손으로 책을 잡은 채 오른손을 어깨위로 넘겨 어깨를 주무르는 척하면서 팔이 닿는 한 내 견갑골을 더듬어본다. 내 기억으론 아직 내 견갑골에선 날개가 솟은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어릴 땐 간간이 솟기도 했지만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엔딩을 맞기까지, 과정이 참, 지켜보는 것도 가슴이 아리고 아프다. 그것도 우리가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흔한 인간사인 데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삶, 그 소소하고 섬세한 일상들이, 나를 둘러싼 것들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해지는 것이다.
 
마이클과 미나와 부엉이들이 아무리 먹이를 갖다주어 일시적으로 기운을 회복은 했다 하더라도, 결국 스켈리그는 석회화 현상으로 점점 몸이 굳어가는 증상이 완전히 멈추거나 회복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몸이 완전히 굳어져버리겠지. 어쩌면 인간과 천사(스켈리그를 이것으로 부르는 건 왠지 그를 너무 평범하고 흔해빠지고 식상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 싫지만)가 공존했던 시대가 끝나고 점차 그들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존재가 스켈리그인지도 모르겠다. 요정과 난쟁이와 엘프와 천사들과 인간과 하플링이 모두 함께 살던 시절을, 우리의 선조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또 기록해 놓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점차 우리와 멀어지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사라져버린 사건에 대해 모호하긴 하지만 기록을 남겨주고 있으니까. 스켈리그의 몸을 괴롭게 하는 석회화증이 더 서글퍼지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우린 여전히 기억을 갖고 있는데, 이제 그들은 거의 사라져버리고, 간혹 저렇게 어쩌다 우리 옆에서 발견된 이도, 너무, 아프니까. 피로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너무나 하얗고 창백한 얼굴과 마르고 굳은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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