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 적자인생이라고 징징대면서 돈 좀 아껴쓰자고 결심한 게 불과
어제건만. 집에 안 읽은 책 잔뜩 쌓아두고 오늘 또 질러버렸다. 것도 네 권씩이나.

이번에 산 책들은 다음과 같다

마크 트웨인, 마크트웨인의 자서전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의 반전우화
토니 모리슨, 가장 푸른 눈
척 팔라닉, 다이어리

새로이 여행기 등이 출간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마크 트웨인이 한국에서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는 미시시피 3부작과 [왕자와 거지] 등으로만 소비되는 건 여전하다. 중명의 [유랑]은 품절(절판일 가능성이 많겠지)이고, 단편집들은 새로 나오지 않았다. 집에 있는 100편 단편집을 혼자 번역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럼에도 반전우화와 자서전이 나와준 건 너무 고마운 일이다. 빛은 못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앨리스 워커의 [더 컬러 퍼플]을 읽고 이런저런 불만사항에도 불구하고 감동 또 감동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앨리스 워커의 책은 에세이들만 나와있다. 시집도, 다른 소설도 없다. 심지어 단편도. 그녀의 다른 소설들을 곧 볼 수 있길 기대하며, 에세이는 살짝 미루어놓았...지만 올해 안에 반드시 살 것이다. 그래서 나아간 게 토니 모리슨이다. 노벨상 수상자라 그런지 토니의 작품은 꽤 많이 번역돼 있다. 라이가 [재즈] 도전 실패 경험이 아직 생생해 겁이 나는데 라이가 [가장 푸른 눈]부터 시도해보라고 추천해줬다. 땡큐, 라이.

인터넷에서 척 팔라닉의 책의 리뷰들을 검색하기 좋아하는 최필원 씨의 레이다망에 내가 걸려서 - 게다가 그는 내 친구와 함께 작업 기획중 - [다이어리] 출간예정 소식은 꽤 전에 알았지만 지난번에 책을 떼거지로 사면서 정작 [다이어리] 출간소식을 몰라 주문서 빼먹었단 걸, 막 주문장 제출하고 알게 되어 땅을 쳤었다. 최필원 씨의 번역은 믿음직스럽다. 언젠가 나도 원서로 읽어보고픈 욕망이 있긴 하지만 (이 욕망 충족시키려면 지금의 내 시간은 아마 하루 72시간으로 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책이 좀 많아야지, 게다가 하찮은 영어실력!

아아, 사고싶고 읽고싶은 책이 너무 많다. 시간과 돈은 언제나 모자르다. 속이 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전5권 세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당당히 여행/레저 분류에 포함되어야 마땅한(ㅎㅎ) 이 책은, 이전에 커트 보네커트의 [타이탄의 미녀들]에다 대고 내가 붙였던 딱지, '전 우주적 차원의 거대한 농담'이라는 말이 또다른 의미에서 더없이 잘 어울린다. 정말로 전 우주를 오가는 내용 와중 대부분은 허허실실 유머의 농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담이야말로 인류 유산의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여타의 동물과 다른 건, 지능이 아니라 농담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훌륭한 농담일수록, 웃는 동시에 생각을 하게 만들고, 다종다양한 의미들에 기기묘묘한 느낌과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오래 전 출판된 바 있으나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 채 절판돼 정작 너무 읽어싶어했던 사람들을 비탄에 빠뜨렸던 이 시리즈, 그나마도 4권까지밖에 안 나왔었다. 좋아하는 번역자들에 의해 이번에 재출간된 걸 알고 얼마나 기뻐서 날뛰었던지. 읽는 데에 참으로 오래 걸렸지만, 도중 종종 나도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더글래스 아담스가 이 시리즈를 결코 쉽게 쓰건 아니겠지만... 그러나 친구가 말하길, "헛소리도 다섯 권 내내 일관되게 한다는 건 보통 공력이 아니라구!." 동의, 인정, 포기!

책을 읽다보니, 그리고 그 와중에 영화 <윔블던>을 보고서, 내가 좋아하는 농담의 종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왜 내가 소위 '영국식 유머'를 좋아하는지도. 어리버리하고 소심하고 쫀쫀한 루저가 발악할 때엔 마지막 무기, 비꼬기라도 해야지 어쩌겠는가. 스스로를 비꼴 줄 아는 건 기본이고. 남들이 '고급 유머'네 '고상하네' 하는 영국식 유머의 실체란 사실 바로 그거다. 그리고 나는 그 어리버리하고 소심하고 쫀쫀한 마지막 발악의 비꼬기를 사랑한다. 나 역시 어리버리하고 소심하고 쫀쫀한 루저여서 그렇겠지. 클클. 다만 더글래스 애덤스가 대단한 부분이라면, 일단 비꼬기 내공이 꽤 높다는 것. 아주 신랄하다. 더 대단한 건, 그의 비꼬기 대상이 인류 전체, 나아가 인류가 쌓아온 역사와 문명의 속성 전체란 것. 배포 한번 크다.

너무 오랫동안 이 책을 읽다보니, 내 유머감각 역시 이쪽으로 재편되는 듯. (그, 그런 게 있, 있긴 했었냐. --;;) 얼마 전에 친구에게 그 농담을 시도했다가 '썰렁하다'는 핀잔만 들었다만... 그래도 나는 이런 감성의 유머가 좋다. 그 마지막 발악 속에 깃들어 있는 냉소와, 살짝 맛볼 수 있는 서글픔이, 마치 단 듯 해도 실은 쓰고 쌉싸름한 다크 초컬렛처럼. 광활한 우주에 점 하나에 불과한 태양계에 점 하나에 불과한 지구 위에 점 하나에 불과한 나란 존재의 소소함을 직면하는 것이, (번역자가 해설에서도 지적했지만) 지구를 폭파시키는 장면으로 시작해, 기어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전 차원을 걸쳐' 지구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리는 것으로 끝내주는 막가파 정신이, 그 완전 소멸 와중에도 스타브로 물라 베타 '클럽'의 아그라작을 등장시켜 주시고야 마는 잔혹함이.

제 1권 맨 앞 챕터,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더글래스 애덤스가 직접 쓴 다양한 버전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존재한다. 애초에 라디오용으로 시작을 했으니 그 극본부터, 그의 생전 영화화를 위해 썼던 시나리오, 오디오북 등. 올해 4월말 미국에서 (드디어) 개봉 예정인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각본도 더글래스 애덤스가 죽기 직전에 다시 썼고, 그는 존 말코비치가 맡을 역을 위해 이전의 소설, 라디오 대본, 오디오북 등에는 없던 새로운 인물을 추가시키기도 했다. 그나저나 영화는, 과연 소설의 반 정도의 재미는 유지할 수 있을까? 애덤스식 이 농담을 영화 내내 유지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텐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서재 결혼시키기]를 거의 데굴데굴 구르면서 봤었다. 그 책이나 이 책, [책과 바람난 여자]나, 책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여자들이 독서와 책에 대해 늘어놓는 수다다. 차이가 있다면, [서재 결혼시키기]가 글 하나하나는 물론 각 문장들도 호흡이 다소 길고 완만하다면 [책과 바람난 여자]는 스타카토처럼 톡톡, 짤막한 호흡을 자랑한달까. 오죽하면 한 챕터의 끝나는 문장도 끝나는 문장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전자는 끝없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지는 줄줄이 수다고 후자는 톡 찌르고 빠지고 톡 찌르고 빠지는 종류의 수다. 공통점은, 내 취향은 다소 전자 쪽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이 있었나' 싶게 생소한, 이름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들이 그야말로 줄줄이 비엔나 사탕으로 나온다는 것.

그녀들만큼 엄청난 독서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녀들의 수다에 100% 공감하긴 힘들다. 예를 들면 나는 일단 몰입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고, 그 전까진 주의가 산만한 편이어서 두 페이지 읽다가 딴짓을 하거나 갑자기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문자를 보내거나 또 갑자기 부스럭부스럭 시디 플레이어에 새 시디를 넣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고, 졸리면 세 줄 읽었다가도 자버리고, 조금 배고프다 싶으면 과감하게 읽던 책 던져놓고 먹을 걸 찾아 헤맨다. (게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 왜 그리 갑자기 간식거리도 음료수도 막 땡기는지.) 이런 식으로 책 끝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해 와인잔을 접시에 놓는달지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나 역시 일단 식당에 들어가면 음식을 주문한 후 책부터 펴지만, 음식이 나오면 재빨리 책을 닫아 한쪽으로 치워놓고 먹는 데에만 열중한다.

아참, 나는 그녀들만큼 심각한 문자중독증도 아니다. 내가 언제나 가방 속에 무언가 읽을거리를 넣고 다니는 것은 무어라도 읽어야 해서가 아니라 이 병적인 소심증으로 시선처리를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책보다 사람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지만, 특히 지하철에서, 멍하게 있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것도 없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예쁜 여자들이나, 도끼병 증세가 심각해 보이는 또래 남자들은 더욱. 책에 코를 처박고 있으면 일단 멍하게 서거나 앉아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시선 처리도 자연스럽고 덤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건질 수 있다. 난 화장실에서도 변비 환자 주제에 똥싸는 것에만 집중한다.

내 방 여기저기에 마구 쌓여있어 발 딛는 것도 어렵게 만드는 온갖 종류의 책들이 잠든 사이에 날 공격하리라는 걱정도 절대 안 한다. 가끔 제발 절 읽어주세요, 불쌍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책들을 느끼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잔혹냉정의 얼음공주가 아니던가. 걍 생까버린다. 덕분에 현재 집에 사놓은 책 중 안 읽은 게 반을 훌쩍 넘어가버려도, 언제건 읽어야지, 하지만 공포에 떨진 않는다.

하지만 몇 가지 면에서는 역시나 맞아맞아!를 외칠 수밖에 없는데, 예를 들면 이건 이래서 처분 못하고 저건 저래서 처분 못하는 증세. 김현이 아르빠공 컴플렉스라고 했던 그 증세들을 나도 가지고 있다. 음, 또 이런저런 강박증들. 충동구매. 한권만 사야지, 혹은 구경만 해야지, 해놓고 나올 땐 두 손에 주렁주렁, 그리고 카드청구서 날아올 때마다 얼굴 파랗게 질리고. 어릴 땐 물론 독서로 인해 고무줄 놀이를 마다하고 책을 읽었고, 반 애들이 다 청소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혼자 책을 읽다가 당시 나를 못마땅해하던 담임 선생에게 찍힌 적도 있다. 어디 여행갈 땐 책부터 챙긴다. 평소 가방엔 언제나 읽을거리가 들어있다. (하지만 난 되도록 가볍고 날렵한 게 좋다. 허리가 약해서리.) 직장인이란 핑계에 출퇴근 시간 버스/지하철 안에서만 책을 읽는데 그 덕에 내려야 할 역/정거장을 놓치는 일도 상당히 있다. 아니 프랑수아가 글자를 대강 뭉개서 읽는, 남들 모르는 난독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종류는 좀 다르지만 남들 모르는 난독증을 약간 가지고 있다.

그녀처럼 책에 일어나는 어이없는 실수들도 매우 좋아한다. 오타나 비문이라도 발견할라 치면 꼭 씹으면서 즐거워하고, 특히 내가 아는 이가 그 책에 참여했을 때엔 그 사람에게 내가 발견한 오타와 실수를 꼭 말해주며 놀린다 (으하, 이건 정말 특별한 즐거움이다.) 모서리가 잘못 접혀 여분의 종이가 발생하고 위아래가 붙었을 때에 떼어내는 것도 좋아한다. (손으로 그냥 뜯어내는 게 좋다.) 물론 책을 읽을 때 나는 온갖 소음들, 예컨대 책 넘어갈 때 나는 팔랑거리는 소리, 두꺼운 책을 접을 때 나는 탁 소리, 심지어 책을 읽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내는 키들거리는 웃음소리나 한숨소리 듣는 것도 좋아한다. 나 역시 남이 내 책을 흘끔대는 건 불편해 하면서 남이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으면 제목을 보기 위해 궁금해서 미친다. 여행갈 때 무슨 책 가져갈까 고민을 가장 먼저 하는 것도 비슷하고, 또... 아, 근시의 장점들! 하하. 인사하기 싫은 사람을 만나거나 했을 때 자연스럽게 쌩깔 수 있는 거. (내 근시는 책이 아니라 컴퓨터 때문에 심해진 것이긴 하지만)

예전엔 나 역시 아니처럼 장서표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읽었던 부분을 찾는 데에만 한참 시간을 들이곤 했다. 요즘은 3M 반투명 라벨 테이프를 사용한다. (근데 꼭 비싼 돈 주고선 몇 개 못 쓰고 잃어버리더라.) 책에 낙서도 못한다. 첫 페이지에만, 책을 사거나 처음 읽은 날짜(한권만 특별히 샀을 땐 산 날짜, 아닌 경우 대부분 처음 읽기 시작한 날짜)와 간단한 한 문장 정도를 적어놓는다. (물론 아니처럼 헌사를 훨씬 더 좋아한다.) 예전엔 책 윗쪽 모서리에 도장을 꽝 찍었는데, 어느 날부턴 싸인을 해놓다가, 요즘은 ''노바리'란 이름으로 장서표시용 막도장을 하나 파야되는데..." 생각만 하며 아무 표시도 안 해놓고 있다. 참, 아니는 인상적인 구절들을 따서 베껴놓는 작업을 할까? 난 번번이 인상깊은 구절을 잊어버리는지라, 요즘엔 포스트잇 대짜를 갖고 다니면서 그런 구절 나올 때마다 표시할 생각을 한다. (물론 그 포스트잇도 몇번 못 쓰고 또 잃어버린다.)

마지막으로 내 주변 책 좋아하는 지인들이나 아니나, 자신을 굉장한 독서가 혹은 교양 철철 넘치는 지식인으로 오해받는 게 꼭 사기치는 것같아 당황한다지만, 나는... 좀 다르다. 물론 오해가 불편하고 민망하긴 한데, 또 한편으로는, 뭐랄까, 열등감에서의 자기보호 욕구가 있달까. 내가 외국문학을 좋아하는 게 워낙 어릴 때부터 외국소설 위주로 읽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잘난 척 하기 좋아서이기도 하니까. *씨익*

예를 들어 가브리엘 마르시아 마르케스가 화제가 될 때 [백년 동안의 고독]만이 아니라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나 [사랑과 다른 악마] 혹은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이 두 권은 '절판된' 책임을 확인하고 긴급히 덧붙였다. ㅎㅎ) 같은 책들, 아옌데파빌라 같은 작가를 같이 언급해 준달지, 한국에선 인기도 없고 아동문학가로만 각인되어 있는 마크 트웨인에 대해 미시시피 3부작 외에 단편들이나 [아더왕과 양키] 같은 책을 한번 언급해주면, 그 다음엔 잘난 척하기가 매우 쉬워진다. 제인 오스틴을 얘기하면서 [오만과 편견]뿐 아니라 그 옆에 [노댕거 사원]이니 [설득] 같은 책(이 두 권 역시 제인 오스틴의 책 중 가장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다.ㅎㅎ)의 제목을 같이 언급하면 - "그런데 한국엔 제대로 번역된 게 없어" 같은 말을 덧붙이면 완벽해진다 -, 다소 사대주의자란 놀림을 받을 순 있어도 대략 꿀리지는 않게 된다. 이런 연막을 치고 나면, 인문학도 출신 주제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8년이 지나도록 실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플라톤의 [국가론], 혹은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책도 안 읽은 무식쟁이란 사실을 그럭저럭 커버할 수 있다.

뭐, 그렇다고 내가 오로지 잘난척만을 위해 그 책들을 억지로 읽는 것도 아니고, 읽지 않은 책 읽었다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난 전작주의자 기질이 없지 않다. 할 수 있다면 작품 전체를 그것도 연대순으로 읽어가는 걸 좋아하니까. 남들이 안 읽었음직한 혹은 제목만 보고 지나쳤을 수많은 책들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아니 프랑수아를 보며 이 여자,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나랑 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억지로 믿어버리고 있다. ^^ 하지만 약간의 스노비즘을 즐기는 건 그리 고상하진 못해도 워낙 꿀리는 거 많은 사람의 나름 자기방패막이라고 귀엽게 봐줄 수 있지 않느냔 말이다.

짤막짤막하고 내용도 금방 읽을 수 있는데 무려 하드커버에 비싼 책. 하지만 크기도 마음에 들고 - 가방에 쏘옥 들어가는 작은 책들이 너무 좋다. - 그리고, 재미있다. 닉 혼비더글라스 애덤스의 책을 읽으며 나는 사정없이 터져나오는 낄낄대는 웃음을, 소리는 전혀 내지 않고 목울림대 혹은 배 근육만 움직이는 방식으로 웃는 방식을 익혔는데 - 이 방식을 사용하면 남의 눈 의식 않고 내 맘껏 웃어댈 수 있다 -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렇게 참 많이 웃었다. 가끔은 억지로 소리를 참는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뭐 어떠랴. 이 책은 그렇게 웃으면서 볼 수 있다. 이 여자의 그 까다로움과 강박증, 얼마든지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말이다.


 


ps. 내가 만약 아니였다면 나는 이걸 꼭 추가시켰을 것이다. 절판된 책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난 사놨지롱~' 하면서 놀려먹기. 고약하지만 특별한 즐거움이다. 물론 이건 나만의 즐거움도 아니고, 종종 나도 똑같이 당하면서 파르르 떨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매지 2005-04-2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에 대해서 쓰신 리뷰가 맞는 것인지. <책과 바람난 여자>의 리뷰같은...

노바리 2005-04-2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바람난 여자] 독후감인데요...

노바리 2005-04-26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재미있는 오류를 제가 발견한 것 같군요.
제 마이서재에서 [책과 바람난 여자] 마이리뷰를 쓰면서 본문에서 제가 언급한 책제목마다 각 책의 알리딘 페이지를 링크시켰는데, 그 페이지마다 이 마이리뷰가 다 카피되어 등록된 것 같습니다. 알라딘에 문의를 요청했으니 곧 조치가 있을 듯합니다. ^^

폴오스터 2005-05-05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 개인적으로 아니 프랑수아보다는 노바리님에 제가 더 가까운 듯하여 뭐 다행이라고 할까요.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임에도 결코 동화되기란 쉽지 않았거든요.

노바리 2005-05-0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사실 아니 프랑수아 정도면 책에 미친 일종의 '폐인'이죠. 우리나라야 워낙 독서율이 낮아 독서를 지나치게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책 폐인이 게임폐인이나 드라마폐인보다야 대접을 받지만, 사실 아니가 고백한 대로,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 맺기 힘들 겁니다. 흐흐.

앨런 2006-11-17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책은 감동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구.
 

존 쿳시 지음, 조규형 옮김 / 책세상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2003년 노벨문학상 작가, 라는 타이틀보다는 컬티즌에 글을 기고한 김선형 님의 '이보다 더 탈식민주의를 구현한 소설은 없으리라'라는 평에서 관심을 가졌던, 존 쿳시.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쓰기 했다는, 포.
 
책의 말미에 붙은 해설도 그렇고 김선형님의 글도 그렇고, 그러니까 존 쿳시의 책은, 로빈슨 크루스의 표류기에서 삭제됐던 여성, 그리고 프라이데이의 입장에서 다시 씀으로서 '타자'의 언어를 복원한 책, 이라는 식으로 전개된다. 심지어 책의 띠지에 박힌 선전도 그렇다. 고립된 섬과 고립된 삶에 침입한 한 여인. 그리고 그들에게 내는 여성의 목소리, 뭐 이런 식.
 
하지만 읽고 나서의 느낌은... 해석이 너무 거창하다는 느낌. 그리고 역시나, 소설은 비평을 먼저 보고 읽어선 안 된다는 교훈. 비평에 맞춰서 독서를 하게 되니...
 
탈식민주의 운운에 내가 혹했던 건, 아카데믹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나는 나의 언어가, 여성의 언어가, 페미니스트의 언어가, 언제나 '대상'의 말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몸으로 깨닫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것을 가장 그럴듯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언어들이 탈식민주의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수전 바턴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살고 있던 섬에 표류하게 된 여인. 크루소가 죽고 프라이데이와 함께 극적으로 구조되어 영국에서 살면서, 소설가 다니엘 포 선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화시켜줄 것을, 그리하여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을 부탁하는 여인. 그러니까, 이 소설대로 하면, 소설가 다니엘 디포는 수전 바턴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자면 소설의 히트를 위해 수전 바턴의 존재 자체를 삭제하고, 로빈슨 크루소는 엄청나게 미화시키고, 프라이데이는 야만인 식인종으로 설정한 뒤 온갖 살을 붙인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출판한 셈이 된다.
 
여전히 우리는 프라이데이의 주체성, 프라이데이의 욕망을 알 수는 없다. 이 책에서 그는 혀가 잘린 것으로 나오니까. 과연 누가 혀를 잘랐을까. 수전 바턴이 크루소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노예상인이다. 하지만 책은, 크루소가 직접 잘랐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바턴은 여전히 프라이데이를 낯선 저편의 사람 취급을 하며, 자신의 기준을 강요한다. 글쎄, 여기서 비평자들이 언급했던 소수자의 연대란... 별로 보이지 않는데. 나로썬, 왜 이 책이 '그렇게' - 번역자의 해설, 컬티즌의 글, 띠지의 선전문구 - 해석되는지 의아할 뿐이다. 내가 너무 무얼 모르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이건 남성 독자들을 위한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로빈슨 크루소]에 익숙한 남성독자들은 확실히, 존재 자체 지워졌던 수전 바턴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새로운 버전의 크루소의 표류담에서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노예 밀수를 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난파를 당한 크루소와 달리, 바턴은 '납치된' 딸을 찾아 떠돌다가 남성 선원들에 의해 '버려진'다. 그리고 그녀가 런던에서 포의 집에서 살게 될 때, 그녀의 딸을 자처하는 - 그녀는 부정하는 - 소녀가 찾아온다. 번역자는 해설에서 이것이 포의 농간이었을 것이라 딱 잘라 말하지만, 사실 독자들에겐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부분이다. (번역자는 대체 무슨 권리로 그런 식의 해석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걸까.) 어쩌면 수전은 오랜 힘든 생활로 살짝 기억상실증을 겪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그녀에게 있어 삶의 목적은 어떻게든 표류담을 재생시키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그녀에 의해 부정당하는 딸의 존재는...? 그녀는 또다른 타자가 되는 것인가?
 
여전히 프라이데이의 목소리와 욕망은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속을 알 수 없는, 사연을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경원시의 대상이다. 혀가 잘린 프라이데이는 실은 생식기마저 거세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녀는 누구못지 않은 독립심을 가졌으나 계속 경제력을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녀는 바이아에서 경제적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아마도 근대소설의 선구격 작품이자, 청교도적 자본주의의 가치관을 선구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로빈슨 크루소]는 사실은 이런 식의 시대적 협잡과, 이런 식으로 다른 이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소설인지도 모른다. 생존자이기에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사회적/관계적 측면에선 계속 타자이고, 누군가 - 정확히 말하면 돈을 가진 백인 남성 - 에게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그녀가 프라이데이에게 의존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아, 그리고, 소설의 화자는 맨 마지막 몇 장을 제외하곤 모두 수전 바턴인데, 왜 제목은 [포]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딸기 2005-11-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바리님께서 쓰신 리뷰들을 쭉 훑어보려고 했는데...
모두 제가 모르는 책들이고 이 책 하나 읽었네요. ^^;;

문학과 역사 2010-01-05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설의 시작 - 로빈슨 크루소 - 다니얼 디포 (원래 이름 포)
소설의 새로운 시작 - 포 - 다니얼 디포의 원래 이름
저는 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인비저블 몬스터 메피스토(Mephisto) 7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척 팔라닉과의 첫 만남은, 당연하게도, [파이트 클럽]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를 완전히 넋놓고 보며 완전히 빠져버린 뒤, 원작소설을 찾아 읽었다. 놀라웠다. 그러니까 영화 <파이트 클럽>은, 원작소설의 아우라를 갉아먹지 않고 괜찮게 스크린에 옮긴 드문 예에 속한다. 심지어 엔딩은, 소설보다 영화의 그것이 더 낫기까지 하다. (이건 척 팔라닉 스스로 인정했던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은, 또한 소설만이 줄 수 있는, 영화와는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척 팔라닉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소설로 옮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눈앞에 생생히 보이는 듯 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경쾌한 문체(번역소설에서 이런 표현은 한계가 있지만)를 자랑한다. 1인칭 화자 시점을 즐기는 그는 여타 소설에서 작은 따옴표 안에 들어갈 구절들을 그냥 한 문단 짜리 한 문장으로 표현해 버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같이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이 읽는 독자와 어느새 대단한 밀착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의 소설은 마치 전개 빠른 영화들을 보는 듯하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들은 현대 메트로폴리스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미디어, 정보화, 산업사회, 첨단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차 소외돼가는 왜소한 사람들의 기행, 혹은 그들이 휘말리는 기이한 사건들.
 
책세상 메피스토 시리즈를 통해 나온 총 다섯 권의 척 팔라닉의 소설 중 내가 가장 읽기 힘들었던 건 [질식]과 [인비저블 몬스터]다. 척 팔라닉의 소설은, 읽기 까다롭거나 난해한 건 아니지만 특유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 권 중 [질식]은 맨 마지막 작품이지만 영화로 일단 익숙한 [파이트 클럽] 바로 다음 읽은 터라 읽는 게 조금 지지부진했다. 반면 다섯 권 중 가장 마지막에 읽은 [인비저블 몬스터]는, 아무래도 그의 첫 작품이라 아직 그 스타일이 완결돼 있지 않아서 그랬던 듯하다.
 
[인비저블 몬스터]는 역자 소개에 의하면, 척 팔라닉의 첫 장편소설이지만 내용이 너무 센세이셔널해 출판을 계속 퇴짜 맞다가 [파이트 클럽]의 성공 이후 비로소 출판이 성사됐다고 하는데, 다섯 소설들 중에선 확실히 가장 덜 여물었다. 화자는 알고 있으나 아직 독자에게는 감춰져 있는 정보를 터뜨리는 시점이 조금 덜 교묘하달까. 하지만 이후 척 팔라닉 소설들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의 절대적 완성도가 낮다는 건 결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소설을 첫 작품으로 쓰는 사람이란 도대체 어떤 괴물일까, 읽을수록 척 팔라닉이란 인간이 궁금해진다.
 
패션잡지를 보다가 착안을 해서 수많은 광고 페이지 사이사이에 띄엄띄엄 기사가 있는 방식을 소설에 적용시켰다는 이 소설은, 그래서 시점(時點)이 마구 왔다갔다 한다. 영화에서 마치 결말부터 보여주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방식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그리고 패션모델로 막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할 때 누군가 쏜 총에 턱뼈가 날아가 '괴물'이 되어버린 화자와, 끝없는 수술 끝에 여자가 된 트랜스젠더 브랜디 알렉산더, 그리고 추후에 정체가 밝혀질 남자, 이렇게 셋의 로드무비, 아니 로드소설이 전개된다.
 
부모세대를, 사랑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증오와 부정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행각을 쫓아가다보면, 척 팔라닉의 여타의 소설들이 그랬듯 소설 속에 정신없이 빠져들어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서도 묘한 슬픔을 아니 느낄 수가 없다. 언제나 자식세대란 부모세대에게 그런 걸 느끼는 법이지만, 특히나 '몇 살 이상 먹은 사람들이 다 죽어야' 발언이 심심찮게 나오는 지금의 한국 땅에선, 척 팔라닉이 그려놓은 부모세대에 대한 부정이 조금 다른 의미로, 그리고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올 법하다. 또한 첨단화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종 미디어의 혜택(?)을 풍요롭게 누리고 있는(혹은 그 미디어 사회의 노예가 되어버린), 풍요 속의 빈곤에 허덕이는 우리 현대인들, 그 중에서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게다가 척 팔라닉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도저히 밖으로 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선택하는 방법이 종종 자기파괴이다. 그의 주인공들을 향한 연민과 슬픔 역시, 실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여성이 되고자 - 그리고 자신의 누이동생과 똑같은 외모를 갖고자 - 계속되는 성전환 수술을 했던 브랜디 알렉산더나, 또 히스테리컬하고 질투심 강한, 화자의 친구 이비나, 어느 날 턱뼈가 완전히 날아가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무덤덤한 화자나... 또... 계속 중독되어 가는 약물. 그들의 '자기파괴'는, 기이하면서도 안쓰럽다. 일전에 트랙백을 걸면서 고백한 바 있듯, 나 역시 내가 몹시 몸이 아플 때, 비로소 온몸의 신경세포가 하나하나 살아있는 듯 느껴지면서 아, 나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 때문에 지독한 감기에 앓는 기간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데 - 너무 오래 되면,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 아마도 나의 그런 습성 역시, 실은 저항방법을 결국 자기파괴에서밖에 찾을 수 없는 척 팔라닉의 주인공들의 습성과 비슷한 건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그의 소설들을 더욱 좋아하는지도.
 
끝으로, 내가 너무 감성이 무딘 건가. 나는 이 책이 왜 19세 구독불가 판정을 받고 서점 매대에 진열되지 못한 채 쓰레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에든지 중독되어 있는 게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습성이라고 한다면, 허구헌날 각종 약품 - 게다가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대기업으로 군림하는 각종 대형 제약회사들의 제품으로 국가는 그 제품들의 유포를 어느 나라에서든 거의 방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도와주고 있기까지 하지 않은가 - 에 취해있는 주인공들이 독자들에게 마약중독을 권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책을 읽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no 2005-01-1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도 서재가 있으셨군요. 이젠 자주 들러서 읽어야겠습니다. 제임스 엘로이의 <블랙 다알리아> 같은 서평은 제 카페에 살짝 퍼가고 싶네요.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한솔로님과 엘로이 얘길 하다 왔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