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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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보일드'"원래 계란을 완숙하다라는 뜻을 내포한 형용사이지만, 계란을 완숙하면 더 단단해진다는 점에서 전의(轉義)하여 비정 ·냉혹이란 뜻의 문학용어가 되었다. 개괄적으로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무감정의 냉혹한 자세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수법을 의미한다.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이 수법은 특히 추리소설에서 추리보다는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으로서 하드보일드파를 낳게 하였고, 셜록홈즈를 창조한 코넌 도일 류의 계획된 것과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하드 보일드라는 장르의 거의 대부분을 창조한 작가라면 흔히 레이먼드 챈들러가 거론된다.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로 대표되는 고전 미스터리의 우아한 세계에서 탈피하여 피와 땀으로 점철된 어두운 뒷골목, 정의가 아닌 이익과 탐욕이 동력이 되어 움직이는 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그린 작가이다. 51세의 늦은 나이에 빅슬립 (Big Sleep)으로 데뷔한 챈들러는 평생 미완성작 한 편을 포함해 단 8편의 소설만 남겼다. 석유회사의 간부 (부사장까지 승진했다)로 일하다가 알콜중독으로 해고를 당한 챈들러는 직장에서의 은퇴 이후 생활고를 겪다가 아내의 격려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소설가로서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영미권 하드 보일드 문학에 레이먼드 챈들러가 있다면 일본에는 하라 료가 있다. 일본의 추리소설은 영미권과 함께 양대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하라 료는 데뷔작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를 통해 챈들러의 필립 말로에 비견되며 이후 작가의 분신이 되는 사립탐정 사와자키를 창조해내었다. 이후 하라 료는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물인 <내가 죽인 소녀>로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하드보일드 문학의 대표 기수로 떠올랐다. 하라 료는 여러 면에서 챈들러와 유사하다.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다가 40대의 다소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했다는 점, 하드 보일드의 거장으로 불리지만 그 명성에 비해 그리 많은 작품을 발표하지 않은 대표적인 과작 작가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소설도 04년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시즌 2를 알린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이후 무려 14년 만에 출간되었다. 오랜 팬으로서 작가 하라 료와 사와자키의 귀환이 너무나 반가웠다.

 


 

"니시신주쿠 변두리 쇠락한 거리에 있는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찾아오는 건 의뢰인만이 아니었다. 낡은 문을 노크만 하면, 기억을 잃은 사격 선수도, 성전환 수술을 받은 대필 작가도, 탐정을 지망하는 불량소년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었다. 1억 엔을 빼앗긴 폭력단 조직원도, 나를 죽이고 싶어 하는 악덕 경찰도 나타났다." (p. 9)

 


 

여전히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를 지키고 있는 사와자키에게 어느 날 한 신사가 찾아와 사건의뢰를 한다. 그는 자신이 저축은행의 지점장임을 밝히며, 대출이 예정되어 있는 요정집 여주인의 뒷조사를 부탁한다. 하지만, 사와자키는 조사에 착수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여주인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리고자 의뢰인을 찾지만, 의뢰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이에 사와자키는 그가 일한다는 저축은행을 방문하게 된다. 하지만, 폐점 시간이 다 되어갈 때 은행에 갑자기 복면을 쓴 2인조 강도가 난입하며, 사와자키는 복잡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소설 <지금부터의 내일>은 큰 두 개의 에피소드를 큰 축으로 복잡한 사건들이 뒤엉키며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앞서 소개한 탐정사무소를 찾아온 신사가 의뢰한 이미 죽은 여인의 뒷조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의뢰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와자키가 겪게되는 은행강도 사건이다. 그 일련의 사건을 겪는 동안 사와자키의 오랜 팬들이라면 익숙한 형사와 야쿠자들이 등장도 참 반갑다. 하라 료의 '하드 보일드''사와자키'를 통해 시작되고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가 사건에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사와자키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그 아무리 빛나는 웰메이드 스토리가 있었다 한들 시리즈의 성공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와자키는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탐정이다. 물론 탐정이라는 직업과 하드 보일드라는 장르의 특성상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탐정 일을 삼십 년 가까이 해왔지만, 의뢰인이 친구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일이 끝난 뒤 내 일처리에 만족하지 않은 의뢰인은 별로 없었으리라. 친구 삼고 싶은 의뢰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친구가 된 적은 없었다. 탐정 일이란 그런 것이다.“ (P. 17)라는 사와자키의 말을 통해서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뢰 받은 사건을 제외하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완전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이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순된 매력과 친근감을 가진 캐릭터다. 이는 사와자키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걱정과 애정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점에서 냉혈한처럼 보이는 그가 실상은 온기를 가진 존재임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오십 년 이상 살다 보면 놀랄 일이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었다. 탐정 업무를 하는 탓에 죽음의 위험에 빈번히 노출되기도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폭력이 상대라면 악담을 내뱉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에 들린 담배를 다시 물고 연기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나는 아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p.423)

 


또한 그가 구시대적인 (Old Fashioned) 인물이라는 점도 사와자키에게 고유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휴대폰도 없이 전화 서비스를 이용해 메모를 받아 일을 진행하고, 여전히 낡은 블루버드를 타고 돌아 다닌다. (이번 작품에서는 좀 달라졌지만) 최첨단을 달리는 디지털 시대지만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추억과 향수를 불러온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는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명반처럼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워크맨과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히어로가 등장하고 대중은 이제 다시 LP판을 찾는다. 누군가가 종이책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이북은 아직 종이책 시장을 넘보지 못한다. 구시대적인 습관과 방식을 고수하지만, 탐정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이토록 깊은 감성을 가진 탐정이라니... 독자들은 이러한 사와자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탐정의 업무란 참으로 애잔한 것으로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나 이외에 누구도 모른다. 흥신소에 소속된 탐정이라면 개략적인 사항을 보고서로 작성할지 모르지만,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에서는 어디를 찾아도 보고서 한 장 발견할 수 없다. 내가 관여한 조사의 의뢰인이나 관계자들은 나의 일을 기억할까? 기억한다 해도 대개 하루빨리 잊고 싶은 불쾌한 기억이리라. 불평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탐정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P. 354)

 

 


<지금부터의 내일>'소설의 진정한 재미, 그것만을 생각하며 쓰고 또 썼다. 그 밖의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작가 하라 료의 자신감 있는 표현에 걸 맞는 작품이다. 14년이라는 현실의 시간이 흐른 만큼 소설 속 시간도 흘러 이제 사와자키도 50대의 중년이 되었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신주쿠의 어두운 뒷골목을 조용히 비춘다. 오랜 시간 고단한 현실을 겪으며 그를 기다려온 독자는 그의 건재함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사와자키도 우리처럼 낡은 사무실에서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며 탐정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을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알고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줘야 하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와자키처럼 독자들도 자신만의 아포리즘을 지키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과거와 미래 보다는 바로 지금’, 현재를 딛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가는 사와자키를 바라보며, 독자들은 현실을 헤쳐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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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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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50대가 된 사와자키... 속절 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그는 여전히 신주쿠의 어두운 뒷골목을 조용히 비춘다. 그의 건재함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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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좋은 삶
왕증기 지음, 윤지영 옮김 / 슈몽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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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싼쯔얼 (吱儿)’은 갓 태어난 새끼쥐를 산 채로 먹는 요리다. ‘쯔얼(吱儿)’은 새끼쥐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이기 때문에싼쯔얼은 새끼쥐가 세번하며 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막 세상에 태어난 새끼쥐가 접시에 담겨 나오면 젓가락으로 살아있는 쥐를 잡아 올리는 순간 첫번째쯔얼 (吱儿)’, 쥐를 들어 양념장에 담그는 순간 두번째쯔얼 (吱儿)’, 마지막으로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번째쯔얼’, 이렇게 세번 운다고 해서싼쯔얼이다.



대학시절 중국어를 처음 접했을 때, ‘싼쯔얼 (吱儿)’로 대표되는 중국의 음식 문화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놀라움을 넘어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장면과 탕수육, 굴소스, 두반장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음식은 너무나 친숙하고 평소에도 즐겨 먹는 것이었지만, 그 종류와 역사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었던 것이다. 비행기와 책상을 제외하고 네발 달린 건 다 음식 재료가 된다고 할 만큼 오래된 역사와 넓은 대륙이 지닌 지리적 특색 속에서 지역 마다 특화되어 독자적으로 발전되어 온 수많은 종류의 음식들의 향연은 솔직히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 후 중국어를 배우면서 언어와는 별도로 중국의 문화와 음식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책 "맛있는 음식이 삶의 재미를 더하고, 삶의 재미가 음식의 맛을 낸다." 는 중국음식에 관한 에세이 <맛 좋은 삶>을 접하게 되었다. <맛 좋은 삶>은 왕성한 호기심과 식탐을 가진 중국 문학계의 거장 왕증기 선생이 쓴 음식이야기다. 왕증기 선생이 중국의 동서남북을 종횡하고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수집한 다양한 음식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책에 대한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미식가들이 주목하는 중국미식의 경전으로 이른바 왕미 (汪迷, 왕증기의 팬)’ 을 대거 양산한 <맛 좋은 삶>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단어절과 오리알 절임을 비롯하여 각 지역의 전통 문화와 민간 예술이 빛나는 아름다운 산문 38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음식에 대해서 자신이 먹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먹는 것까지 뭐라 하면 안된다. 하지만 '어떻게 저런 음식을 먹을 수 있냐.'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광둥 사람들이 먹는 뱀이나, 물방개, 태족 사람들이 먹는 똥곱창 같은 음식들 말이다. 이런 음식들은 광둥 사람이나 태족의 입장에서는 이상한 음식이 아니다. 그들이 맛있어서 먹겠다는데 누가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p. 24)



인간은 모험하는 존재이다.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곳에 도달하고, 새로운 경험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의 모험심은 우리에게 내재된 원초적인 욕구이고, 문명 발전의 근간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세계 최초의 근대소설로 평가를 받고, <톰 소여의 모험>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소설들이 모험을 위해 태어나 모험을 하면서 성장을 거듭하는 인간의 원형을 그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단절되어 삶에서 모험이 거세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각자가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모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소년이었고, 우리 안에는 여전히 모험 그 자체인 소년, 모험을 하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맛 좋은 삶>을 읽으며 현대인이 추구하는 모험 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음식에 대한 탐구과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소비하는 것은 탄생과 소멸인 동시에 끝없이 반복되는 생과 사의 윤회와도 같다. 또한, 그러한 행위의 반복은 인간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역사와 문화는 논외로 하더라도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해나가기 위한 기본적인 행위인 동시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탐구할 수 있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혀와 위가 우리의 뇌에 가져다 주는 행복, 단순하기까지 한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저마다 다른 형태와 방식으로 소비되고 또 발전하고 있다.



'얘야 큰일 났구나. 며늘아기가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지 뭐냐.' 라고 말하자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요.' 하고는 파 한 뿌리를 가지고 나가서 우물가를 한바퀴 돌았다. 그러자 며느리가 우물 밖으로 튀어 나왔다. (p. 22)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권 마다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은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맛 좋은 삶>에서 인용하고 있는 우물 안에 들어간 며느리 조차 뛰쳐 나오게 만드는 산동 대파에 관한 에피소드는 가을 전어굽는 냄새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한국의 사례와 유사한 것이 흥미로웠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 씹는 순간은 인간이 자신의 생 앞에서 가장 진실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같은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은 그 무언가에 관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한 공유된 기억들이 구체적인 음식에 대한 취향을 다를지라도 서로의 문화와 음식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맛 좋은 삶>에는삶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라는 저자 왕증기 선생의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입맛을 조금 더 폭넓게, 조금 더 잡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폭넓고 잡스러운 입맛이 있어야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며,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라고 하는 중국의 다양한 음식과 문화를 맛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저자의 중국음식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여실히 드러난다. "치즈 냄새가 취두부 냄새를 따라가려면, 단언컨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중국 사람들의 잡스런 입맛은 세계에서 일등이다." (p. 17)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너 두즙에 도전해볼 수 있겠냐?"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 유무를 묻는 이 같은 질문에 저자 왕증기는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털 달린 것은 먼지털이 빼고, 다리 달린 것은 의자 뺴고, 고기라고 하면 큰 고기중에서 사람 고기 빼고, 작은 고기 중에서 파리 고기 뺴고는 다 드시는 몸이시다.'라고 대답한다. 음식에 대한 선호와 취향의 문제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문제고 강요의 대상도 아니다. 저자도 특정 음식의 대중화를 주장하며 억지로 권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 자신이 경험했던 맛있는 음식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체험할 수 있길 권할 뿐이다.



애초에 이라는 건 실존하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내밀하고도 고유한 추억, 그리고 집단으로 공유되는 기억이 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음식에 이란 의미를 부여할 때는 공통의 관습과 개인적인 취향이 주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공유된 기억이 매개가 되어 타인의 내밀한 추억을 들여다보고, 결국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위무하며 우정을 쌓기도 한다. 결국 맛 좋은 삶이 지향하는 건 소박한 중국 가정식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중국인들, 나아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강한 삶의 방식이란 어떤 것일까?’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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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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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집을 주제로 하는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빛의 현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나온 집들에 대해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이다. <빛의 현관> 주인공 아오세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로 인해 정주 (定住)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이주하게 건설현장의 숙소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창이 있었다. 그것은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이었다.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다른, 깨달음을 얻은 고요한 노스라이트 (north light) 이후 주인공의 삶에서 행복의 이정표가 된다.



빛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오세에게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빛의 현관' 행복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이었다.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그가 꿈꾸는 집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별의 아픔을 거치면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가 꿈꾸는 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으로 변해간다.



내가 살고 싶은 .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목조 주택' 보였다. 콘크리트 외벽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존해온 계획, 햇살과 그늘이 어우러져 세월을 새기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에 지고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빛의 현관>, p. 40)



건축업계에서 절대적 신앙으로 떠받들고 있는남향 아닌북향으로 지어진 주인공 아오세의 집은 진정한 행복은 일률적이거나 보편적인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집은 삶과 이야기,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담겨 있는 집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또는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이 판가름 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이 우리가 추구해야 진정한 행복 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집들은 주인의 성향과 가족의 이원과 생활양식에 따라 다른 구성을 가진다.” (p. 131)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 작가의 지난 동안 거쳐 다양한 집과 방에 관한 이야기다. 지나온 삶의 이력을 집을 빼놓고 얘기할 있을까? 작가의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 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집과 관련된 행복했던 기억, 아픈 추억, 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누구도 부정할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p. 198)


정체성들이 모여 나의 취향과 불호와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욕망의 많은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일부는 내가 살았던 곳에서 비롯되었다.” (p. 181)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같은 노래 가사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 있다. 우리가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의 지나온 삶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해 하재영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소설 <빛의 현관> 닮아 있다.



책은 집이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 가늠해보려는 어설픈 시도이기도 했다.” (p. 218, 작가의 중에서)



하지만 작가는 책에서 단순히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는 넓게는 세상에서, 좁게는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하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과거 여성의 위치는 어떠했는지 되짚어보고, 그리고 고정된 역할에서 탈피하여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자리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세상에서, 좁게는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집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 관점에서 여성의 위치를 바라본 작가의 시도는 개인의 역사가 보편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새롭고 놀라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직 남아 있는 구시대의 전통과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아직 자리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른바 사생활의 영역인 집에서도 장소 상실을 겪고 있고, 안에서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의 투쟁 보다 처절하다고 말할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김현경의 지적은 뼈아프다. (김현경, <사랑, 장소, 환대> 중에서) 작가는 주방이 가족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여자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가사 노동이 여자만의 일이라는 것인지,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은 아내의 공간으로 구분할 , 부부 사람만 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나 보낸 것은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 삶의 시절이었다. 가끔 피피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부르는 일이었다.” (p. 175)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조용히 빛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나는 존재를, 시절을 잃고 집에 왔다. 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삶의 새로운 배경이 것이다.” (p. 181)



인생이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빛의 현관>에서 아오세의 가족이 찬란하고 고요한 노스라이트의 세례를 받았듯이, 구기동 자택이 작가 가족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길 빈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도 책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나 불온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떠올리기 조차 힘겨운 순간을 겪어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위로로 다가온다.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는 있었다.”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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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드님 우와 이책 읽으셨군요.
히데오에 빛의 현관을 떠올리게 된다니 더더욱 궁금 ㅋㅋ
2021년 새해 연하장 와일드님 서재방에 놓고 가여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잭와일드 2021-01-01 09:27   좋아요 1 | URL
scott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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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의 <64>는 한동안 나의 인생 소설이었다. 여러 사건과 갈등들이 밀도 높게 중첩되면서 서서히 장대한 서사의 결말을 향해 수렴해가는 <64>는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는 물론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킬 만큼 내게 강렬한 소설이었다. 그 후 나는 작가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올해 오랜만에 만나는 작가의 신작 <빛의 현관>의 출간 소식이 너무나도 반가웠고,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빛의 현관>은 휴먼 미스터리의 정점이라는 홍보 문구에 걸맞는 작품이었다. 독서를 하면서 남아있는 분량이 줄어가는 것을 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그냥 넘기기가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가슴에 남은 진한 여운과 따스함을 느끼며 소설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다가 우연히 작가의 대표작 <64>와 신작 <빛의 현관>을 비교해 놓은 출판사의 블로그를 발견하고, 오래전 읽은 <64>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짧은 소회라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경찰 소설의 정수 <64> vs 휴먼 미스터리의 정점 <빛의 현관>


1. Round 1


출판사는 <64>의 장점으로 흠잡을 데 없이 강렬한 경찰 소설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64>는 작가가 되기 전, 12년간 기자 생활을 했던 작가의 경찰 조직에 대한 집요한 자료 조사와 더불어 1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공인 들여 쓰고 다듬으면서 완성한 경찰 소설이다. 경찰조직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조직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포착해내고 이를 통해 사회와 조직, 조직 내의 인간을 투영해낸 걸작이다.


신작 <빛의 현관>은 우아하고 따뜻한 미스터리를 표방한다. ‘아름다운 미스터리라는 홍보 문구와 깨달음을 얻은 듯 고요하고 부드럽게 내리쬐는 노스라이트 (north light)’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작가의 담백하고 건조한 문체는 휴먼 미스터리라는 서사를 만나 독자들의 감동의 폭을 넓힌다.


2. Round 2


이 두 소설은 분량과 서사 구조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64>14년전 일어난 유괴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면서 갈등의 중첩이 일어나고, 결국 이를 새로운 유괴사건을 통해 해결하는 절묘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이 엮어내는 이야기 구조도 복잡하다. 반면 <빛의 현관>은 주인공이 사라진 건축주에 관한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것과, 주인공의 건축사무소가 혼연일체가 되어 설계 공모전을 준비하는 두 가지 사건이 이야기의 양대 축을 이루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라서, 상대적으로 등장인물 수도 적고 관련하여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간의 갈등 구조도 단순하다.


3. Round 3


,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면에서 보면 휴먼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인간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의 맥은 일치하고 있으나, <64>는 경찰조직이라는 다소 무겁고 경직된 조직을 통해서 접근하는 반면, <빛의 현관>은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Y 주택을 설계하는 주인공 아오세와 타우트라는 전설적인 건축가, 작중에 등장하는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처럼 예술가의 작품과 철학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당신의 결론은...?


출판사의 블로그는 당신의 취향에는 어떤 작품이 더 가까운지 묻는 질문으로 <64><빛의 현관>두 소설에 대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두 소설 중 더 나은 소설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어떤 밸런스 게임 보다도 내게 어려운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의 선택은 <64>의 오카사베 부장의 명대사로 대신하고자 한다.



"자네가 맡은 자리로 돌아가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허비하는 건 아둔한 짓이야."

"오늘은 오늘을 위해, 내일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네." (p. 320)



오카사베 부장의 말처럼 <64><64>만의 <빛의 현관><빛의 현관>나름대로 그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면 두 소설 중 양자택일에 관한 질문에 대해 <64>의 문구로 대신하며 말도 안되는 답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어쩌면 나는 <빛의 현관> 보다는 <64>에 약간은 더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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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2-17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소설 7년전에 읽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경찰 내부조직을 작가가 굉장히 밀도높게 공들여 쓴 것은 기억나네요. 요즘 비밀의 숲 시즌2보면서 이 소설이 생각났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네요.

잭와일드 2020-12-17 12:59   좋아요 2 | URL
아 네 굉장히 밀도 높은 소설이죠. 작가가 되기 전 12년의 기자 경험과 10년에 걸친 집필기간이 집약된 소설인 것 같습니다.

재미감동다있어야 2021-01-03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을 믿고 64를 읽어보려고요.
저는 원래 미미 여사님의 시대물을 좋아했어요.
그분의 문체도 좋고 신비하면서 인간적인 내용에 빠지면서 나도 글 쓰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했죠. 왠지 요즘은 외출을 못 하게 되면서 우울해지고 책에도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어요. 어쨌든 추천 믿고 구매삽니다. 감사합니다.

잭와일드 2021-01-04 12:09   좋아요 0 | URL
네 취향의 차이는 있을수 있어도 어떤 의미에서든 잘 쓴 소설이라는 건 부정하기 힘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