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집을 주제로 하는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빛의 현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나온 집들에 대해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이다. <빛의 현관> 주인공 아오세는 건설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로 인해 정주 (定住)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이주하게 건설현장의 숙소는 희한하게도 북쪽 벽에 창이 있었다. 그것은 새어 들어오는 것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도 아닌, 왠지 조심스레 실내를 감싸 안는 부드러운 북쪽의 빛이었다. 동쪽 빛의 총명함이나 남쪽 빛의 발랄함과는 다른, 깨달음을 얻은 고요한 노스라이트 (north light) 이후 주인공의 삶에서 행복의 이정표가 된다.



빛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아오세에게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빛의 현관' 행복한 추억으로 안내하는 ,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이었다. 노스라이트를 머금은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그가 꿈꾸는 집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별의 아픔을 거치면서 진정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그가 꿈꾸는 집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온 삶과 가치관이 반영된 집으로 변해간다.



내가 살고 싶은 . 눈을 깜빡이는 찰나에 '목조 주택' 보였다. 콘크리트 외벽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온존해온 계획, 햇살과 그늘이 어우러져 세월을 새기는 서양식 콘크리트 주택은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월을 새기는 '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에 지고 것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힘없이 스러져, 고개를 들려는 기척조차 없었다.” (<빛의 현관>, p. 40)



건축업계에서 절대적 신앙으로 떠받들고 있는남향 아닌북향으로 지어진 주인공 아오세의 집은 진정한 행복은 일률적이거나 보편적인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저마다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듯이 각자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집은 삶과 이야기, 행복에 대한 주관적 기준이 담겨 있는 집이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또는 사회의 시선에 좋고 나쁨이 판가름 나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보이지 않게 되는, 어떻게 발견해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없게 되는 소박한 감정이 우리가 추구해야 진정한 행복 인지도 모른다.





각각의 집들은 주인의 성향과 가족의 이원과 생활양식에 따라 다른 구성을 가진다.” (p. 131)



하재영 작가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 작가의 지난 동안 거쳐 다양한 집과 방에 관한 이야기다. 지나온 삶의 이력을 집을 빼놓고 얘기할 있을까? 작가의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 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집과 관련된 행복했던 기억, 아픈 추억, 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누구도 부정할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 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p. 198)


정체성들이 모여 나의 취향과 불호와 사고방식을 형성했다. 욕망의 많은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일부는 내가 살았던 곳에서 비롯되었다.” (p. 181)



인생이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이를 대표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우리가 꿈꾸는 삶에서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집이다. ‘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같은 노래 가사처럼 저마다 그리는 이상향에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투영된 있다. 우리가 집에 가진 고집들은 단순한 취미나 기호에 머물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과 숨겨진 욕구가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 과거에 뿌리내리고 있다. 과거의 지나온 삶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대해 하재영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소설 <빛의 현관> 닮아 있다.



책은 집이 여성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이야기, 또는 집을 통해 여성의 성장기라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안에서 여성의 상징적 자리 가늠해보려는 어설픈 시도이기도 했다.” (p. 218, 작가의 중에서)



하지만 작가는 책에서 단순히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는 넓게는 세상에서, 좁게는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하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과거 여성의 위치는 어떠했는지 되짚어보고, 그리고 고정된 역할에서 탈피하여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자리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세상에서, 좁게는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집이라는 개인적 공간에서부터 시작하여 사회적 관점에서 여성의 위치를 바라본 작가의 시도는 개인의 역사가 보편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는 새롭고 놀라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직 남아 있는 구시대의 전통과 고정된 성역할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여성들은 아직 자리에 위치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른바 사생활의 영역인 집에서도 장소 상실을 겪고 있고, 안에서 자신의 공간, 자신의 자리를 얻기 위해 공적 영역에서의 투쟁 보다 처절하다고 말할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김현경의 지적은 뼈아프다. (김현경, <사랑, 장소, 환대> 중에서) 작가는 주방이 가족 공동의 공간이 아니라 여자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가사 노동이 여자만의 일이라는 것인지,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는 가사 노동의 현장은 아내의 공간으로 구분할 , 부부 사람만 방을 소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떠나 보낸 것은 마리가 아니라 다정한 존재와 함께 삶의 시절이었다. 가끔 피피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에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부르는 일이었다.” (p. 175)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조용히 빛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하나의 섬이 아닐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나는 존재를, 시절을 잃고 집에 왔다. 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삶의 새로운 배경이 것이다.” (p. 181)



인생이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것을 하염없이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빛의 현관>에서 아오세의 가족이 찬란하고 고요한 노스라이트의 세례를 받았듯이, 구기동 자택이 작가 가족의 새로운 배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기쁨의 원천이 되길 빈다. 또한,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책을 읽는 독자들도 책을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나 불온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떠올리기 조차 힘겨운 순간을 겪어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위로로 다가온다.



불온했던 순간들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순간들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를 사랑할 수는 있었다.” (p. 12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12-3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이드님 우와 이책 읽으셨군요.
히데오에 빛의 현관을 떠올리게 된다니 더더욱 궁금 ㅋㅋ
2021년 새해 연하장 와일드님 서재방에 놓고 가여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잭와일드 2021-01-01 09:27   좋아요 1 | URL
scott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