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세요" 영어로 어떻게 말하냐는 질문은 나도 학생들에게서 받은 적 있다. 

그 뜻 그대로 ("고통 치르다") 말해선 안되고 한국어로도 그 말은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특히 학생이 선생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하는 말은 아니라고 답. 


아침 먹으면서 올리버쌤 이 동영상 봤는데 

"수고하세요" 번역에 빵터짐. 


Well, work hard and suffer well!


"일을 많이 해라!!!

그리고!!!! 고통 많이 받아라!!!!" : 이 말 할 때가 더 웃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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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그건, 인간이 가진 사악함의 능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와 접촉하고자 애씀을 뜻함. 그러는 과정에서 타락하지 않으며. 다시 말해 냉소적이거나 얕아지지 않으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사악함과 connect with하라. 

이것도 보기보다 심오한 말, 어쨌든 심화 확장할 수 있는 말. 


영어 구두법에서 롱대쉬(--)와 괄호, 쉼표가 어떻게 쓰이나에 대해

얘기하게 될 때가 수업에서 있는데, 어쨌든 이 셋은 (특히 롱대쉬와 괄호는)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는 얘기도 한다. 그런데 위의 문장에서 롱대쉬는, 괄호로도 쉼표로도 바꿀 수 없음. 

바꾸어선 안되겠음. 


and not to be corrupted -- made cynical, superficial -- by this understanding. 


냉소적, 피상적이 된다는 의미의 타락이 아니라 

극악한 종류의 타락도 있지 않나. 최순실, 박근혜, 우병우 등이 예인. 이들은 "be corrupted"인 게 아니고 

"be born corrupted"인가. 


어쨌든 일반적으로는, 냉소적이고 피상적이게 된다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타락의 거의 

전부를 말할 수 있는 것 같긴 하다. 이런 타락을 겪지 않음(않았음)이 그 자체로 품격... 의 증거일 테고 

그 예로 지금 떠오르는 사람은 노무현, 문재인. 기승전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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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주제로 수많은 저명인들이 명언들을 남겼나 봄. 

파울 틸리히가 출전이라는 위의 말도 찾아지는데, 당연 자명한 말씀이시고 

그거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지만 옮겨두고 싶어졌다. 아도르노 강의록 중 

파울 틸리히를 길게 자세히 회고하는 내용이 있는 강의록이 있는데 ("사회학 입문" 아니면 "부정변증법 강의") 

존경과 감사 보내는 그 회고 읽고 나서, 나도 덩달아 그를 존경하고 좋아하게 됨.  







고독에 대해 스탕달이 한 말(요 아래)도 생각을 자극하는데 

스탕달은 사랑에 대해서도 이런, 매혹적인 말을 남겼군요. "다른 열정들의 경우 거의 그렇지 않지만 

사랑에서, 당신이 가졌고 잃었던 것의 기억이 당신이 미래의 일로 희망할 수 있는 것보다 언제나 더 좋다." 

그런가 하면, 조금 더 생각해 보니, 희망하는 힘은 언제나 가졌고 잃었던 것의 기억에 의해 강화되는 것 같기도. 

그래서, 가졌고 잃었던 것의 기억이 더 좋더라도 그 기억에 의해 희망도 더 좋아지는 거라서........... 




여기서 character는 "(단련으로 얻어진) 성품" 같은 의미겠지. 

인간의 성격이란 방어기제의 총합인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 한 적 있는데 

이 말로 스탕달이 그 비슷한 얘기를 하는 걸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성품이란 걸, 불운의 일종으로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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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은 현실적인 것의 우위성이라는 이 명료하고 단순한 독트린을 논박하기 위해 쓰여졌다. 순탄치 않을 이 지반 위에서, 나는 "창조적" 상상력의 원초적이며 심리적으로 근원적인 성격, 그것의 긍정을 시도하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인지된 이미지와 창조된 이미지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심리적 현상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상상된" 이미지를 가리킬 새롭고 특별한 범주가 요구된다. 교과서에서 "반복(재생) 상상력 reiterative imagination"이라 기술되는 그것은 인지, 그리고 기억의 영역으로 귀속되어야 한다. 창조적 상상력은 과거 인지의 재생산에 의지하는 상상력과 아주 다르게 기능하는데, 이것이, 심리적으로 말할 때, 심리학자들이 개인의 "현실"에의 -- 사회적 승인을 누리는 그 무엇이든 -- 순응을 말하기 위해 자주 거론하는 "현실 원칙"과 비교할 때 어떤 점에서든 그만큼 강력한 "비현실 원칙"에 의해 관장되기 때문이다. 고독의 가치를 재수립하는 것이 이 비현실 원칙이며, 평범한 몽상은 고독의 가장 기본적인 면모에 속한다. 상상된 이미지를 모색하는 상상하는 상상력을 좇아가고자 한다면, 창조적 상상력의 활동이 갖는 수많은 예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 "서문" 2쪽에 있는 문단. 

아도르노가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여러 이유에서) 곳들에 

바슐라르는 단호하고 자유롭게 간다고,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 문단에서 특히 밑줄 친 부분도 그 예. 

내가 번역한 한국어 문장은 조금 꼬여 있지만 ("convoluted" 영어권에서도 이 말로 복잡하게 길어지는 문장들을 규탄할 때 많다) 그런데 그게 영어 번역문도 그렇다. Creative imagination functions very differently than imagination which relies on the reproduction of past perceptions, because it is governed by an unreality principle every bit as powerful, psychologically speaking, as that reality principle so frequently invoked by psychologists to characterize an individual's adjustment to whatever "reality" enjoys social sanction. 흐으 (한숨). 이런 문장. 


전체는 비진리고 

사회는 사악한데, 그러나 (그래서) 개인은 겨우 존재하고 

그것도 언제나 그 전체와 그 사회 속에서. : 아도르노에게 비관주의가 있다면, 이것이지 않을까. 

<미니마 모랄리아>에는, 사회적 승인이나 현실원칙(그것에 순응함), 이것들이 부재하는 영역도 인간 정신에 

있다고 말하려다 마는 것 같은... 대목들이 있다. 바슐라르가 그의 책들, 수많은 대목들에서 가는 곳이 그 영역. 





In Our Time, "고독의 철학" 에피소드가 

위의 소로우의 말 인용으로 시작하던데, 사실 소로우의 말도 좀 진부하지 않나. 

고독이 주제일 때 바슐라르도 가끔 (아주 가끔. 한 두 번) 상투적인 말도 하는데, 그런데 

들여다보고 생각할수록, 심오하고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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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에 대한 우리의 체험적 의식에서 -- 그리고 그에 대응하여, 우리 자신의 존재의 역동적 속성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서 -- 우선 "단단한"과 "부드러운"을 적용하지 않는 한 무엇도 이해될 수 없다. 더 풍요하고 더 미묘한 인상들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감각의 광대한 영역이, 이를 뒤따른다. 하지만 물질의 언어에서, "yes"와 "no"는 "부드러운"과 "단단한"으로 번역된다. 물질의 어떤 이미지도 초대와 배제의 이 변증법 바깥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In our experiential awareness of matter -- and correspondingly, in our knowledge of the dynamic attributes of our own being -- nothing can be understood unless we first apply the terms hard and soft. Thereupon follow richer and more subtle impressions, the vast realm of intermediate sensation. But in the language of matter, yes and no are translated as soft and hard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 1장 첫문단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정말 이 책 전체, 바슐라르의 시학서들 전체가 아도르노가 철학에게 다루라고 주문했던 

비개념적인 것, 개별적인 것 특수한 것 사소한 것. 그런 것들의 탐구. 혹은 해석되어야 했으나 해석된 바 없는 것들의 해석. 


처음 읽을 때, 이 문장들이 알게 하는 바, 아니 심지어 "yes"와 "no"도 한국어로 번역불가다. 

"예"와 "아니오"는 위와 같은 문장들에서, yes (oui), no (non)을 대신할 수 없지 않나. 둘 중 "아니오"는 그래도 

"no"일 수 있는데, "예"는 "yes (oui)"가 되지 못하는 이것 말고도 수많은 사례들을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례들에선, "예"가 아니라 "응"(.......) 혹은 "네"를 써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 이런 생각 했었다. 


얼마 전 <불의 정신분석> 끝내고 요즘 매일 읽는 바슐라르는 이 책인데, 다시 읽으면서 

같은 생각 하게 된다. 한국어의 "예"와 "네"는 지배와 복종을 배경에 두고 있는 말. 불평등이 번역불가의 이유. 

그렇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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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리 2016-12-0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어 문장들을 ˝영어-한국어˝ 구글 번역해 보았다.

˝경험에 대한 물질적 인 인식 - 이에 상응하여, 우리 자신의 존재의 역동적 인 속성에 대한 지식 - 우리가 처음에 단단하고 연약한 용어를 적용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더 풍부하고 미묘한 인상, 즉 중급 감각의 광대 한 영역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언어에서 예와 아니오는 부드럽고 열심히 번역됩니다.˝

˝영어-일본어-한국어˝ 순으로 해보니
˝私たちの体験的意識 - それに応じて、私たち自身の存在のダイナミックな属性に関する私たちの知識の中で - 最初にハードとソフトという言葉を適用しない限り、何も理解できません。 そこで、より豊かでより微妙な印象、中間感覚の広大な領域に従ってください。 しかし、問題の言葉では、「はい」「いいえ」は柔らかくて難しいと解釈されます。

우리의 체험 적 의식 - 이에 따라 우리 자신의 존재의 역동적 인 특성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서 - 먼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말을 적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풍부하고 더 미묘한 인상 중간 감각의 광대 한 영역에 따릅니다. 그러나 문제의 말은 ‘예‘ ‘아니오‘는 부드럽고 어렵다고 해석됩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놀랍도록 개선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갈 길 먼 듯. 멀 듯.

syo 2016-12-09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입학하고 이제 나도 철학책이라는 것을 좀 읽어볼까, 아는 척 하기 좋게- 하는 마음으로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다가 ˝불의 시학의 단편들˝을 뽑아들었는데 5분만에 울기 직전까지 갔었어요.... 전 비전공자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잘 읽는 편인데도 위에 인용된 글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어요...... 구글 번역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셨지만 어차피 사람이 한 번역도 이해가 안되는 입장에서는 뭔가 슬프네요ㅠ

몰리 2016-12-10 16:48   좋아요 1 | URL
처음부터 (책 ˝서문˝, 그리고 위의 대목 앞의 문장들) 보시면 이해될 거에요.
바슐라르가 정말,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어쨌든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는요) 현상, 주제들을 아주 개성적으로 탐구하신 분이라서 부분 인용하면 아주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요. 전체와 함께 보면, 훨씬 덜 그래집니다. 이 책 진짜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책인데, 예전 삼성출판사던가에서 나온 사상전집에 포함되었던 것말고는 한국어판 번역이 없고 그 한국어판 번역으로는 바슐라르의 개성, 독창성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다고 그 번역 보면서 생각했던 기억도 있는데, <불의 시학의 단편들>도 아마 한국어판에 비슷한 문제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사물들의 내적 본성을 우리가 상상하고자 할 때, 부드러움과 단단함의 변증법이 모든 이미지들을 관장한다˝ 이런 문장으로 1장이 시작하고, 단단한 물질(울프 소설 Orlando에서 올란도가 등을 기대 앉는 장엄한 참나무가 있는데, 그 참나무가 대표적 예), 그리고 부드러운 물질(Moby-Dick에서 선원들이 손을 넣어 휘젓는 고래 정액 등의 예)이 어떻게 인간의 상상력에 작용하는지 살펴보는 내용이에요. 밀가루 반죽, 찰흙, 모래의 세계... 칼로 썰면 파르르 떨리는 젤리와 편육이 자극하는 공격성. 이런 것들도 등장하고, 아마 모두가 내밀하게 체험했던 일들이지만 말할 수 없었고 말하지 않았던 일들.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은 (이 책은 다행히도 번역이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굉장히 좋은 번역이고요) 정말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구석까지 가고 있고 그래서 본원적인 난해함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대지 그리고 의지의 몽상>은 재미있고 그냥 대놓고 명백히 괴작. 앞으로 꾸준히 이 책에 등장하는 이상한, 이상하고 매혹적인 문장들 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