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던 영어 선생님. 

대단히 열정적이셨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정도. 꿈엔들 잊힐리야... 거의 그 정도. 교안, 수업자료도 꼼꼼히, 풍부하게 만들고 (문법 사항을 색색 차트로, 뒤로 돌리며 넘길 수 있게) 어떤 수업에서든 눈을 반짝이며 몰입해서, 학생들에게 완전히 집중하면서. 과제를 굉장히 많이 내셨는데, 학기 중에는 매일 깜지 한 장씩. 반장이 걷어서 냄. 당시 우리가 썼던 말은 '빡빡이'였다. 


나는 이게 재밌어서 

몇 장씩, 언제나 빡빡이가 남아돌았고 

없는 아이들이 달라고 하면 주기도 했다. 꼼꼼히 검토하면 같은 사람이 쓴 몇 장의 깜지가 

발견되기도 했겠지만, 매일 걷는 숙제를 꼼꼼히 검토하진 않으셨을 것이다. 


그 시절의 유산으로 

나도 학생들에게, 깜지 생각하면서 

책에 나오는 문장들 여러 번 쓴 공책 내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보고 extra credit 가능. 학기가 끝나면 

공간의 반 이상이 비어 있는 공책이 여러 권 생긴다. 그것들을 그냥 버리기 아까우니, 내가 깜지로 쓴다. 공책 앞 학생 이름을 보기도 하면서.  




중학 시절엔 

빈 공간이 거의 없게 해야 했지만 지금은 남아돌게. 얼른 다 쓰고 다른 공책 써야 하기도 하고. 


볼펜도 남아돌고 (어디서 받아오는 사은품 볼펜들....) 

이면지도 남아돌기 때문에, 물자가 풍요한 이 시대에..... 볼펜 얼른 닳으라고 볼펜 똥도 부지런히 닦는다. 

부지런히 닦을수록 빨리 닳는 것이 사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당신 자신 철학자로서, 

어느 정도 자신을 니체의 후예라 보는가? 

후예는 니체를 숭배하는 제자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니체의 사상과 저술을 계승한 사람이란 의미에서다. 니체 사상과 저술을 자기화하고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삶을, 그것에 부여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다. 


As a philosopher yourself, can I ask to what extent you consider yourself an heir to Nietzsche? By heir I don't mean a pious disciple of Nietzsche. I mean someone who has inherited the thought and the corpus, and has metabolized it, and has given it a new life in a new time." 



영어 팟캐스트 이것저것 듣지만 

가장 많이 듣고 가장 감사하면서 들었던 건 역시 Entitled Opinions. 여러 모로 자극도 많이 주었고 

우울감에서 날 들어내고 힘이 솟게 해준 적도 많았다. 그러기 벌써 몇 년째. 무상의 기쁨. ;; 내 쪽에서 무상인 기쁨. 


지금 휴식 중인데 12월 15일에 스페셜 에피소드가 하나 업로드 되었고 

게스트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그가 스탠포드에 한 달 간 방문했으며, Entitled Opinions에 출연함 없이 

그를 독일로 보낼 수는 없었기에 그를 게스트로 스페셜 에피소드를 제작했음....... 이라고 오프닝에서 밝힌다. 


슬로터다이크는 영어를 못하는 건지 말을 못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둘 다일 것 같다, 독어로 말할 땐 어떤가 찾아봐야겠지만) 입안에 침이 고인 채로 말하는 것 같은 잡음;이 계속 섞이고, 문장이 허약하기도 한 데다 사실 할 말 자체가 별로 없는 상황이라... (그렇다고 짐작된다) 알아듣기가 참 힘들었지만 로버트 해리슨은, 언제나 그렇듯이 


적어도 어쨌든 

이런 말은 이렇게 하는구나... 의 좋은 표본을 준다. 

"당신은 니체의 후예인가?" 그가 이 질문을 할 때, 그래 이건 적어둘 가치 인용할 가치가 있으니 적어두겠다 작정했고 적어두는 중. 이 질문에 슬로터다이크의 답은, "메신저가 메시지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메신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인데, 이 말을 정말 알아듣기 힘들게 한다. 벙쪄 하는 해리슨이 보이는 거 같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말엔 그럴 기분 아니더니 17년이 시작하고 근 일주일 지나자

16년 돌아보고 싶어진다. 특별히 16년에만 있은 일이라거나 (알라딘 서재를 시작한 건 있다) 

여하튼 16년하면 기억하게 될 사건 같은 것은 없음에도, 그럼에도 중요하게 이 해에 일어난 

변화 같은 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전에도 진행 중이던 변화지만 이 해에 와서 한 지점에 도달한. 


그 중 하나는 

확실히 (저 마리 퀴리의 말이 당부하는 바) 사람에 대한 관심, 혹은 호기심이 작아졌다는 것. 

16년은 그것이 옳은 방향임에 대해 여러 번 생각했던 해. 


레너드 울프의 5부작 자서전을 보면 

당연히 버지니아 울프를 회고하는 내용도 많다. 울프 외에, 블룸스베리 그룹 사람들에 대한 회고 많고 

그들 외에도, 이 부부가 (혹은 그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 대한 얘기들 많은데, 심지어 버지니아 울프를 

기억할 때에도, 남 얘기 하듯이 한다. 남은 남인데, 지극히 중요하고 흥미로웠던 남? 하여튼, 관습적으로라도 

죽은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표현 같은 게 있어야할 것 같은데 없다. 자기 삶에서 아마 가장 중요했던 사람을 

기억할 때 그렇게, 독자는 내 감정의 사생활은 안물안궁하라..... 태도이듯이, 시대를 기억할 때도 간혹 감정이 격해지는 때가 

있긴 하지만 비슷하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 다루듯이 한다. 아마 자기 삶도 그렇게 볼 것이고. 


할 수 있는 한 저러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듬. 

특히 한국처럼, 권력은 권력의 사유화를 뜻하는 곳이라면. 

권력의 사유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으로 인한 타락을 그나마 막아낼 길 중 하나가 

인간을 아이디어로 보기. 인간에게 관심 갖지 않기. 아 이 주제로도 실은 천일야화 가능한데, 일단 여기선 이 정도로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7-01-06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과학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노력해서 저렇게 된다기 보다, 저런 성향이 처음부터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과학은 일단 일차적으로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상대로 하니까요.
그런데 저기서 people은 대중이라는 의미가 크겠지요? 인간에 대한 관심과 대중에 대한 관심은 같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어서요 (제가 그렇기 때문에 ㅠㅠ).

몰리 2017-01-06 20:07   좋아요 2 | URL
마리 퀴리가 어디서 무슨 맥락에서 저런 말을 했는지
전체를 보고 싶긴 해요 (많이 보고 싶은데, 열심히 구글링하면 찾아질 것임에도
아직 안 하고 있네요 ;;). 그런데 저는, 가십이나 네트워킹..., 인간 관계에 혹은 커넥션에
관심 갖지 말고, 네 공부나 해! : 이런 쪽 아니었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그 시절 그녀가 알던
과학계에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있는 이들 있지 않았을까. 윤석열 검사의 ˝나는 인간에게 충성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취지로 한 말 아닐까. 이 방향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퀴리 여사의 진의와 별개로
여러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무엇인가 전하는 바 있는 말일 거 같아요.
저는 (여태까지 제 경험으론) 권력이면 눈꼽만한 권력도 타락하는 한국에서는
타인을 향한 관심이나 애정이 반드시, 거의 반드시, 부패한 권력처럼 작동하게 되지 않나.
ㅋㅋㅋㅋㅋ 그런 쓸데없는 (어쩌면 틀린, 제 경험으로만 그럴 뿐인)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권력이 가시적이 되어 인간 대 인간, 개인 대 개인의 무엇으로 되면 ... 권력의 부패한 속성을 개인이 자기 사생활에서 따라가지 않기도 참 힘들지 않나. 그렇다면 부패한 이곳에서, 사람을 (부패한 그 사람을) 어떻게든 사람으로 보지 않기를 택해 보자. ;;; ;;;;;; 말이 말이 되게 쓰기가 좀 어렵습니다. ;;;;; 이 주제로 더 명료하게 쓸 수 있어진다면 더 써보겠습니다.
 















16년 12월, 지난 달에 나온 책. 

npr 서평 팟캐스트에서 저자 실비아 타라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오래 고도비만자..... ㅋㅋㅋㅋ (이걸로도 농담을, 잘 되는 적은 없었지만 몇 번 시도했었다 흐으)

였던 1인으로, 공감(고통 속에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지점들이 있었다. 특히, 


"원래 체중이 150파운드인 사람과 

170이었는데 감량해서 150파운드인 사람이 

150파운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열량이 다르다. 

감량해서 그 체중에 도달한 사람이 원래 그 체중인 사람보다 덜 

때로는 훨씬 덜, 먹어야 한다. 일종의 caloric penalty가 작동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허기를 참는다는 것이 

호흡을 참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덜 먹으라는 요청은 실은 할 수 없는 요청이라는 걸 기억하자." 





타라 자신 찌고 빼고를 반복하다 

어쨌든 30파운드를 감량했다고. 사실 안해본 다이어트가 없다고. 

그리고 그녀에게 통했던 다이어트 중에는 초절식(1000 칼로리 이하 제한) 다이어트도 있는데 

물론 그게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자기는 해낼 수 있었다... 이런 얘기도 해서, 음????? 사짜 아니야?? 

잠시 그러게 되었다. 여러 조건과 함께, 이것들을 염두에 두고 지키는 한 초절식 다이어트도 시도할 수 있다... 는 식이긴 했다. 너의 의지가 아주 강해야 하며, 좋은 음식을 잘 먹어야 하고.. 등. 


하지만 그건, 그렇게 타고나지 않은 사람에게도 

"호흡을 참는" 훈련이지 않겠느냐 나는 생각하는 중. 2주 이상이 된다면 죽음의 체험일 것. 

내가 해 본 건 아니지만 상상한다면. 


운동을 많이 하거나 활동량이 아주 많거나 

해서 몸이 피곤해야만, 그래야만 허기를 못 느끼는 일. 

내게 일어나는 일은 이런 일이다. 다이어트 식단이라기엔 고열량으로 

먹고 있음에도, 허리가 접힐 듯 배 고프고 별 보이는 일. 수시로 일어나는 일. 

그러다 나가서 걷고 오거나 집안일을 한바탕 하면, 견딜만해지는 일. 다음 끼니로 조금 더 가까이 왔음에 안도하면서. 


그래도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는 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7-01-0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서 google 검색해봤어요. Biochemist답게 Fat에 대한 과학적인 논문들을 근거로 쓴 책 같네요. 차고 넘치는 다이어트책은 아닌 것 같아 일단 관심이 가요.
(몰리님 서재에는 얻어갈게 많아요 ^^)

몰리 2017-01-06 20:39   좋아요 0 | URL
팟캐스트 듣는데 이 분도 말이 참, 아주 음악적으로 유창해서
늘 하던 생각 또 하게 되기도 했어요. 왜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못하나(않는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지 않나요.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질문 아닌가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한국어를 더 잘, 더 아름답게 쓸 것인가. 누가 그렇게 쓰고 있는가.

그런데 초절식 다이어트는
무조건 안된다........ 쪽이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그것이 건강에 유익하게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초인적인 조건이라면
무ㅔ야 그게? ;;; 같은 반응 하게 되던데, 그래도 말투도 언어도 믿음을 주는 저자여서
저도 일단 관심책으로 찜했습니다.
 



"This is fantastic. 

I'm in heaven." 



이것도 정녕 미친 장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ck Books의 천재적인 면 중 이것도 있다. 거의 전부가 누구라도 직접 겪고 알았을 만한 상황, 심지어 직접 하거나 아니면 들었을 만한 말들. 그런 것들로 만들어내는 미친 대사와 상황들. 과장의 천재성인가. 


누가 술을 맛으로 먹어! 

: 버나드가 이 대사 고함치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걸로 울고 웃고 터지게 만드는, 괴력. 




*오늘도 긴 하루일테죠. ;;;; 길고 짧은. 

좋은 시작을 합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