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아동문학 작가 시오반 다우드(Siobhan Dowd)가 유방암과 투병하면서 남긴
1천 단어 분량 원고를 이어, 패트릭 네스가 완성한 소설. 다우드는 자신이 머지 않아 죽을 것임을
알면서 죽기 전에 완성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죽음이 그녀가 바랐던 것보다 더 빨리 왔다고 한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그녀가 남긴 원고에 대해 네스에게 얘기하고, 공동 작업은 결코 하지 않는 네스는
타계한 작가가 남긴 원고에서 시작하는 형식 공동 작업이라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
원고를 읽은 다음 입장이 바뀌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쓰여졌고 16년 겨울 개봉했던 영화도 제작되었다.
아마존 독자 리뷰 보면
"암환자 이야기임. 내가 싫어하고 피하는 장르.
이건 어쩌다 보았음. 그리고 내내 울었다. 내내 줄줄 울었다...." 이런 리뷰가 있다.
어머니가 암환자인 소년. 아버지는 새 여자를 만나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고
어머니와 소년은 새로 나왔다는 암 치료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지만, 아마 거의 확실히 임박한
이별에 대해 둘 다 알고 있다. 학교엔 소년을 괴롭히는 아이도 있고 그 아이 말고는 소년을 전부
엄마가 중병에 걸린 불쌍한 아이 취급한다. 소년을 괴롭히는 아이만이, 소년을 온전하게 (공정하게?) 자기 또래 취급.
소년의 집 근처에 거대한 주목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몬스터'로 변신해 소년에게, 이야기의 힘을 알게 하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소년이 알게 될 깊은 상실("profound loss")을 겪을 준비를 하게 한다.
Bookworm에 출연한 작가 인터뷰 들으면서
작가도 책도 영화도 금시초문인데, 듣던 동안 점점, 점점점, 점점점점, 점점점점점;
기대가 높아지던 책이었다. 이 정도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 아니야? 정말 이런 책이 쓰여졌단 말인가? : 이런
믿을 수 없다 느낌이 들기도 했다.
주목나무가 변신하는 몬스터가 소년에게 찾아와서, 소년을 위로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고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핵심은, 이야기 전엔 무슨 일이 있었으며
이야기 후엔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라고. 작가 네스 자신이, 어린 시절 동화를 읽을 때 견딜 수 없던
지점이 이것이었다고 한다. 이 얘기 시작 전엔 무슨 일이 있었는데? 끝난 다음 그들은 어떻게 사는 거야?
그리고
"어린이에게 적합한 비참의 수준은 무엇인가? What level of misery is appropriate for children?"
.... 이 질문에 무제한. 이라 답하는 책이다. 아이들은 그들이 읽은 책에서 비참을 사랑하며 비참을 원한다.
그리고 아이들 자신(특히, 10대 중후반)이 쓰는 글들을 보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비참이
가득한 세계인지 모를 수 없다. 그들의 세계에 비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명랑한 책을 그들을 위해
쓰는 건, 그들이 각자 혼자 알아서 비참을 겪어가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고 "부도덕"하다.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다"고 십대 아이들에게 말하면 코웃음치겠지만, 이 책은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한 다음 그리고 그 주장을 스스로 실현하는 책. 이야기들을 통해 제시되는, 진실과 인식, 진실과 인식의
힘에 관한 이야기.
몬스터에 대해 말하면서 작가는 "kind vs. nice" 구분이 필요하다고 했다.
"kind가 nice보다 위대한 것이다. 조금도 kind하지 않아도 nice할 수 있다 (You can be nice without being at all kind). 그리고 이것은 사실 악행의 일종이다. 그런가 하면 그 역도 마찬가지로 끔찍할 수 있다. 전혀 nice하지 않은 데 kind한 것. 몬스터가 그런 존재다. 소년에게 닥칠 재난을 몬스터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몬스터에게 언제나 소년을 향한 kindness가 있다. 책이 끝날 때 소년은 몬스터에게 Will you stay?라고 묻는다. 이 마지막 문장. 이것이 진정 이 책의 한 줄 요약이다. 이 결말을 지금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감정이 격해진다. 몬스터는 I was to stay라고 답한다."
원작이 그야말로 "책들을 권하는 책"이라니
책을 펼친 이미지로 제작된 이 포스터, 원작에 충실한 포스터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