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터다이크: 21세기의 세계는 아마도 지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자본주의의 세계일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이슬람주의자들의 지하드 낭만주의, 전쟁 자본주의가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도들이 곧 있을 것 같다. 


문: 민주주의의 뿌리를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게 지식인이 할 일인가? 


슬로터다이크: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지식인들 자신 그 뿌리가 어디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문: 그렇다면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 독일인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자유보다 안락함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구석방에서 따뜻하게 웅크리고 있고 싶어하지 

큰 방에서 덜덜 떨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블로모프 같다. 소파에서 일생을 보내는 19세기 러시아 소설의 

주인공 말이다. 


슬로터다이크: 그렇다. 독일인이 누구인가 알려면 러시아인들과의 친연성을 보아야 한다. 

현대 독일인은 그들 생각보다 훨씬 더 러시아적이다. 우리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낭만적 상투형으로서의 러시안들을 닮았다. 냉전 시기 모종의 영혼의 여정들이 있었던 거 같으며 그렇게 우리의 영혼 속으로 그들이 이주해 온 거 같다. 그렇긴 한데 우리는 우리의 동방 사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안락함을 추구한다. 우리는 벼랑 곁으로는 결코 가지 않는다. 우리의 안락함은 일과 양립 가능하다. 



이건 2004년 연말에 있었던 인터뷰가 출전이다. Selected Exaggerations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은 

1994년 시작해서 연도 순으로 실려 있는데 마지막 인터뷰는 2012년. 


90년대에 있은 인터뷰들 보면 그런 일들이 그 시절 있었는가, 내가 이 시절을 살았던 거 맞는가, 등등 멀다 느껴지는데

21세기로 들어오면 거리감 사라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20년전과 30년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 "단절"이 

있었던 게 맞는 거 같다. 911. 세계를 지탱하던 상징 질서의 붕괴가 있었던 거 맞는 거 같음.   


인터뷰에서 그가 하는 말들. 

"음?" 하게 되는 대목들이 없는 게 아니지만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고 싶은 대목들이 무수하다. 정말 좋은 선생. 

위에 옮겨 본 건 밑줄 부분이 그냥 웃겨서. 

웃긴 말 많이 하시는 분이다보니 어떤 말들은 그냥도 웃기다. 


오블로모프. 소파에서 일생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 금시초문인데 

그냥 이것만 알아도 아낌없이 찬사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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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2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눕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하루종일 눕기에 집착한 인물‘의 사례로 나왔던 인물이 소설 <오블로모프>의 주인공인 ‘오블로모프‘에요 ㅋㅋ
[일리야 일리이치(오블로모프)의 안색은 별반 특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안색이다. 운동 부족 혹은 바깥 바람을 적게 쏘인 탓이리라. 윤기 없는 허연 목의 빛깔과 작고 오동통한 손, 그리고 가녀린 어깨로 판단하건대, 그의 몸은 전반적으로 남자 체격이라 하기엔 왠지 연약해 보인다. 걱정거리가 먹구름처럼 얼굴에 몰려들면, 시선은 멍해지고 이마엔 주름이 잡히면서 의심과 슬픔과 놀람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심이 일정한 하나의 사고틀로 굳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무엇을 하겠다는 의욕으로 발전하는 일은 더더구나 거의 없다. 모든 근심은 한숨으로 해결되고 무관심과 졸음 속에서 기력을 잃고 만다.
침대에 눕는 것은, 말 그대로 일상인 것이다. 사실 거의 매일 집에 틀어박혀 있고, 집에 있는 날은 항상 누워 있다. 침실 겸 서재이기도 하고 또 거실이기도 한 바로 그 방에서 말이다. 그에겐 방이 세 개나 더 있지만 거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아주 드물어서 고작해봐야 아침에 누군가가 자기 서재를 청소할 때나 어쩌다 들여다볼 정도다. 사실, 청소라고 매일 하는 것도 아님은 당연하다.
그는, 9시부터 3시까지, 8시부터 9시까지 자기 방 소파에서 빈둥거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잔잔히 밀려오는 기쁨을 누렸고, 보고를 할 필요도, 보고서를 작성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자유로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왠지 뿌듯했다.]

오블로프가 21세기에 살았다면 유툽에서 ‘눕기 기술‘로 구독자수 왕창 몰려서 골든벨 받았을지 도 ^ㅎ^

몰리 2021-01-22 10:37   좋아요 2 | URL
모든 근심은 한숨으로 해결되고.....

여기 주황색 형광펜 쫙 긋게 됩니다.
아 정말 러시안들. ㅎㅎㅎㅎㅎㅎ 아웃라이어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