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눈이 내렸다. 펑펑...퍼엉펑...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가 아니라 어제는 눈이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 포실포실 살찐 도톰한 모양으로 하늘에서 무작정 쏟아지고 있었다.  

눈 앞을 새하얗게 덮는 눈 속에서 잠시 내 머릿 속도 하얘졌다. 

요때만큼은 세상이 이대로 멈춰도 좋으리라.

너도 정물, 그리고 너를 바라보는 나도 정물이다.

 

아이는 눈 속에서 잠을 잤다.

창 밖으로 펄펄 휘날리는 눈 속에서 아이는 잠을 잤다.

눈 속에 기이하게 피어오른 아름다운 꽃이 있다면 이와 같으리.

매일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기적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니

 

사방에 눈 쌓이는 소리만 가득한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눈처럼 오랫만인 어느 知人의 목소리,

나직하고 조용한 그 목소리가 말한다.

으응, 눈이 와서 걸었어. 지금 뭐하고 있니?

눈처럼 오랫만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으응, 그냥...

 

아름다운 눈,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眼)

또 눈(眼)들...

어제는 충분히 아름답고 고요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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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1-1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내리는 것만 보라고 모든 것이 멈춰버려서 그렇게 조용한가 봅니다.
눈이 온다고 비가 온다고 알려주는 지인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