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눈이 내렸다. 펑펑...퍼엉펑...
"어제는 비가 내렸네, 키 작은 나뭇잎 새로..."가 아니라 어제는 눈이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 포실포실 살찐 도톰한 모양으로 하늘에서 무작정 쏟아지고 있었다.
눈 앞을 새하얗게 덮는 눈 속에서 잠시 내 머릿 속도 하얘졌다.
요때만큼은 세상이 이대로 멈춰도 좋으리라.
너도 정물, 그리고 너를 바라보는 나도 정물이다.
아이는 눈 속에서 잠을 잤다.
창 밖으로 펄펄 휘날리는 눈 속에서 아이는 잠을 잤다.
눈 속에 기이하게 피어오른 아름다운 꽃이 있다면 이와 같으리.
매일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기적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니
사방에 눈 쌓이는 소리만 가득한데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눈처럼 오랫만인 어느 知人의 목소리,
나직하고 조용한 그 목소리가 말한다.
으응, 눈이 와서 걸었어. 지금 뭐하고 있니?
눈처럼 오랫만에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으응, 그냥...
아름다운 눈,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눈(眼)
또 눈(眼)들...
어제는 충분히 아름답고 고요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