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사자들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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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모래바람에 말발굽 소리도 들려온다. 신라 여인들이 휘감던 비단 옷자락이 볼에 스치고, 낯설고 이국적인 향료 냄새도 어디선가 풍겨오는 것 같다. 마른 모래바람인가? 그러나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는 바람이다.

 

배미주 작가의 바람의 사자들은 그렇게 바람을 타고 떠돌아다니는 인물들을 담았다. 구슬과 종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또한 어느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는가. 먼 옛날 그곳에서 벌어진 이야기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진다. 우리는 낯선 이국의 옛 장터에 서 있거나 모래폭풍을 피해 낙타 등 뒤에 쭈그리고 앉아 마음을 졸인다.

 

사람 사는 모양과 그 의식은 시대나 장소를 뛰어넘어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오래 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흥미로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감보는 그저 알지도 못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현실과 끝없이 투쟁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거칠게 보이지만 강인한 모성의 품을 지닌 알지 역시 우리가 사랑하고 싶은 여인의 모습이 아닌가.

글을 읽으며 가끔 미소가 나왔다. 작가는 그림 같은 묘사 속에 인물들의 심리를 절묘하게 끼워 넣었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묘미라고나 할까. 단정하고 깔끔한 문장에도 감탄사가 나온다.

 

폭염으로 도시가 이글대고, 휴가철이라 여기저기 들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나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닫고 가만히 앉아 책을 펼쳐들었다. 책 속에서 우뚝우뚝 낯선 성곽들이 일어서고 말을 타고 달려오는 남자들이 보인다. 모래바람 부는 초원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리, 거칠게 푸른 초원의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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