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래 전에는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나'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모든 것처럼 모호하다고 느껴집니다. 이것은 장님 쥐가 코끼리를 만져보고 상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내 껍질, 그것도 아주 피상적인 껍질 뿐입니다.

  그 껍질은 생겨난 지 서른 여섯 해가 지났습니다. 알에서 깨어나고 껍질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김소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이제 그 이름은 나를 상징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이름을 가진 나는 수줍게 자랐습니다. 친구들을 잘 사귀지도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지도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사귈 때 어떤 말을 해야 좋은지, 또 어떤 말을 하지 않아야 좋은지 알지도 못해 낭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를 남들보다 잘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어느 특별활동에 크게 뛰어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혼자 생각하기만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그 생각들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 등걸 아래 어룽대는 햇빛 그림자를 쳐다보거나 달빛이 눈처럼 깔린 마당을 내다보는 것 정도였지요.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고, 내가 혼자 있었던 그 시간들은 마치 구름이 바람에 천천히 사그라들듯이 내 인생에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렇게 학창시절이 지났습니다. 머리만 큰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던 대학시절 역시 고난의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못했고 섞여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하라"고 했지만 정작 그 말을 믿고 내가 말을 할 때면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않고 빙글 도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껍질을 바꿔야만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껍질에 무늬를 새기고 색깔을 입혔습니다. 나는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사교적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그들과 가까워지길 원한다면 스스로를 개방하는 방법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이 방법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내게 사교적이며 진취적인 사람이라 종종 평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로서는 내가 정말 그런지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종종 저돌적으로 솔직해지는데, 그것은 무식이 용감해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지한 사람들에게는 나에 대한 턱없는 오해를 (빨강머리 아가씨라도 되는 양) 불러일으켰고, 보다 경쾌한 사람들에게는 과분한 공감을 불러들였습니다. 껍질에 무늬와 색깔을 입히고 지냈던 이 시절은 눈을 가리고 내달리는 말과 같은 시기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나는 결혼을 하고 가정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눈 가린 말의 부질없는 내달리기를 멈추게 하는 동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달리는 말에서 내려 천천히 움직이는 무거운 추에 매달렸습니다. 똑딱똑딱,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이 추는 서두르지도, 달리지도, 건너뛰지도 않습니다. 하루하루 그저 천천히 움직일 뿐입니다. 때로는 느리고 때로는 지루하며 또 때로는 아주 무겁습니다. 게다가 어떨 때는 어깨에 짊어진 아주 무거운 짐 같기도 합니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이 추가 싫증날 무렵, 나는 아주 빛나는 바늘을 하나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생겨난 이 바늘은 또릿또릿한 눈과 생기있는 입과 통통 튀는 몸을 가졌습니다. 너무나 예뻐서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잊어버릴 지경입니다. 나는 아픈 줄도 모르고 이 빛나는 바늘을 추 옆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이 바늘 덕택에 지루하고 무거웠던 내 일상이 날로 새로워지고 눈처럼 환히 빛나게 되었습니다. 바늘에 찔리는 아픔이야 이 보상에 비하면 거저입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거실에 놓인 꽃병에 대해서 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어쩌면 생각하지 않는 게 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다른 어떤 것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나무였으면, 높은 곳에 사는 독수리였으면, 아니면 누군가의 주머니나 서랍 속에 소중하게 놓여진 돌멩이였으면. 나는 돌멩이가 마음이 없어 좋습니다. 수많은 돌멩이 중 어느 하나의 돌멩이가 소중하다면 그것은 오직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 속에 추억과 소중한 기억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는 어떤 마음도 가지도 있지 않으면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이 나는 좋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이 그 하나의 돌멩이와 같겠지요.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내 껍질을 모두 버리고 마음도 버리고, 휙 던져버리면 그만일 뿐인 돌멩이처럼 먼 창공으로 날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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