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 규사와 소다회, 석회 따위를 섞어서 녹였다가 급히 냉각시켜 만든 물질. 단단하고 투명하나 깨어지기 쉬움. (국어사전)

유리조각 : 유리가 깨져 부서진 잔해들 

내겐 '유리' 또는 '유리조각'하면 떠오르는 동화가 있다. 아주 어릴 적에 읽어서, 읽었는지 어쨌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유독 한 장면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르는 동화다.

어느 마을에 꼽추 아들과 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받을까 봐 집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못하게 했다. 꼽추 아들은 바깥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자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뜨자, 꼽추 아들은 가난한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아버지의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선다.

"나도 이제 세상 속으로 나가 행복을 찾아볼 테야."

집을 나서자마자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는 꼽추 아들,  갈 길을 재촉하는데 저 앞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길바닥에서 뭔가가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꼽추는 "저게 바로 행복인가 봐" 외치며 달려나간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깨진 유리조각이 햇빛에 빛나는, 사금파리일 뿐. 꼽추는 실망하고 다시 행복을 찾아 앞으로 걸어나간다... 곧 요술 할머니가 등장하여 마술 지팡인가 뭔가를 건네주고 결국 꼽추는 많은 보물을 찾아 행복하게 된다.

이 동화의 다른 부분들은 시간이 가면서 다 잊혀지고 흐릿해졌다. 내용이라봐야 못 생긴 개구리가 왕자 되는 것 만큼이나 흔한 소재에 뻔한 결말이었다. 그런데 오직 한 부분, 잠깐이나마 꼽추의 눈에 유리조각이 행복으로 비쳐졌던 부분만은 내 마음 속에 그대로 꽂혔다. 동화 속 꼽추조차 실망했는데 내겐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이다. 먼지 풀풀 날리는 길바닥에서 '반짝' 빛났던 유리 조각들, 나는 아직도 그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믿는다. 허무하고 아무 것도 없고, 꽉 쥐면 깨져버리고 고작해야 햇빛에 반짝 빛나기나 하는 그것이.

깨지기 쉬운 이 삶 속에서 나는 무수한 유리조각들과 부딪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주, 옛날 옛적 그 곱추처럼 "저것이 바로 행복 아니야?" 소리치며 달려나가곤 한다. 그렇게 달려나가서, 그것이 금가루가 아니라 유리가루임을 확인하고 실망스러워 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달려나간다. 언젠가는 그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겠지. 동화의 기운에 힘입어, 내게 유리조각은 여전히 행복의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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