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화석과도 같다.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묻혀있을 뿐.

지나간 시간들의 어느 한 순간이 섬광처럼 스쳐지나갈 때가 있다. 그리움도 애탐도 없이 이제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듯 지나갈 뿐이다. 그때 그 자리, 그리고 나와 함께 있던 이들.

나는 내 역사를, 내 화석을 끌면서 살아간다. 누군가 지나간 모든 기억들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내 기억들은 이미 말(言語)을 잃어버렸다. 아름답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저 천연사진처럼 뇌리에 찍혀있을 뿐이다.    

모든 기억 중에서도 왜 사랑의 기억이 가장 강렬한지는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늘 外人이었고 이방인이었다. 불안하게 떠돌거나 지나치게 혼자 도취되어 있어, 남들이 다 아는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불쑥 덤벼들었다. 무식한 이가 용감하다는 식으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머리부터 디밀었다. 속내는 텅텅 무식쟁이이면서 아는 척을 하여 모두를 속였다. 몇몇은 알았으리라. 저 앤 정말 깜깜소식이로구나... 나는 그 몇몇 중의 몇과 사랑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어하면서 속을 태우고, 그 생각을 하다가 버스에 우산을 놓고 내리며, 종내 아무 소식 없어도 해를 넘겨가며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아. 소식이 없어도 사랑을 할 수가 있더라. 그 흔한 접촉 없이 그저 눈빛만으로도 눈물을 폭포처럼 쏟을 수 있더라. 말이 통하지 않아 외국인인 양 더듬거려도 사랑을 할 수가 있더라...  

나는 내가 보낸, 혹은 내가 떠난 사랑들을 이따금 기억해낸다.

개구리알들처럼 아직 그 푸른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내 사랑들, 벗어놓은 내 허물들. 나는 몸이 커져버려 이젠 그 허물 속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한 때는 내 것이었으되 이젠 내 것이 아닌, 내 현실이 아니게 되어버린 그 집들.

길을 가다가 문득, 예전에 벗어놓은 내 허물을 발견하게 되면 웃음이 난다. 정다운 친구라도 만난 양 반가워진다. 그래그래..., 그렇게 내 기억과 악수하고 헤어지는 날에는 조금, 아주 조금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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