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교회 청년부 비전과 사역
라준석 지음 / 두란노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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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교회는 과거 오랫동안 나의 관심속에 있었다. 역동적인 예배, 앞서가는 사역, 큰 비전, 쉼없이 계속되는 집회들...

군대에서 군종병으로 근무하면서 가보게 된 온누리 사역축제를 시작으로 나는 많은 모임과 집회, 축제들을 참석하면서 온누리에서 말하는 비전을 보고 함께 감격해 하고 도전도 받고, 거기서 들고 배운 것을 다른사람들에게 나누기도 했다. 지금은 약간의 다른 시각으로 보긴 하지만 온누리의 사역은 분명 이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현존하는 많은 교회보다 앞서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말씀에 깊이가 약하다는 점이고, 다양한 문화에 부분을 건드리면서, 활동 폭을 넓히고자 하는 비전이 있고, 세상 속에 침투하고자하는 비전과 영향력 있는 크리스챤, 역동적인 예배, 움직이는 사역, 많은 사역의 기회를 제공하다 보니 넓게 또는 다양한 면을 건드리긴 해도, 깊이 있는 사상적인 터치가 약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보는 안목 속에서 나오는 시대의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아쉬운 면이 있다.


 바라기는 온누리 교회 목사님들의 말씀에 대한 연구와 심도깊은 성경의 사상에 대한 연구 속에서 나오는 깊이있는 대안제시가 필요할 듯 하다.

나는 고민하고 있다. 과연 청중의 중심,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해야하는 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말씀을 증언하는 사역을 해야 하는 가? 세상적인 사람이 모이게 하는 교회경영을 해야할까? 말씀을 증언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까? 이분법적으로 나누긴 그렇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속에서 이뤄지고 성취될 수 도있다. 그러나 성경속의 사상을 접근하고, 바로세워지기엔 크나큰 아픔또한 따를 수 있는 데, 사람의 필요에 너무집착하면 많이 반대쪽으로 와버린 이 세대를 바로 세우기란 너무 힘겨운 일일수 있다.

라준석 목사님은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비전과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하용조 목사님은 김준곤 목사님을 통해 비전을 배웠다고 말했다. 하용조 목사님은 큰 비전을 갖고, 뜨거운 열정과 기도, 헌신, 말씀을 전함을 통해 오늘의 온누리 교회를 이뤘고, 93년쯤 부터는 성령사역을 선포하여 청년들이 구름 Ep같이 모여드는 것을 목도하였다고 한다. 청년들은 확실히 굶주려 있다. 나는 이 굶주린 청년들, 갈길몰라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수 있겠는가?

이책엔 라준석 청년목회자의 예배, 양육, 사역과 선교, 행복관, 비전과 리더쉽의 단원을 통해 교회의 사역을 소개하고 있다. 그 담임목사님의 그 담당사역자라는 말을 실감한다. 청년을 향한 뜨거운 열정, 오픈된 사고, 앞서가는 의식, 후하고 넓은 마음(통이라고 부르고 싶다). 나는 그렇게 통이 크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마음은 청년을 향한 뜨거운 열정, 사역자로서의 소명감, 그리고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마음, 책을 사는 것을 줄여서라도 영혼의 필요를 채워주고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이 있을 때 저들의 마음문이 열리지 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행복관. 크리스챤은 행복해야한다는 것은 약간 어패가 있는 듯 하다.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주를 인식하고 견딘다. 주를 바라보며 소망을 갖는다는 표현이 적당하지 않을 까?

또한 한편으로 차근차근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성경속의 생각을 전해야 한다. 내게 컨텐츠를 갖출 우선순위, 사명선언, 시간관리가 필요할 듯 싶다. 많이 만나고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나의 삶은 점점 주님을 닮아가며 제자로서 살고 있는 가를 점검해 보면서 성화의 열정, 주님을 닮아가고자, 그리고 제자 낚는 제자로서의 삶을 향한 열정이 필요할 듯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적인 학문으로도 발달되어 있는 조직의 경영 면에서도 프로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조직, 기획, 앞서가는 커뮤니케이션 사고, 앞서가는 의식, 창조적 사고, 배려하는 마음, 그러나 주도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며, 소중한 것을 먼저하고 저력을 쌓아가는 사역을 했기에 여기까지 온누리가 오지 않았을 까? 또한 상호이익을 추구하고, 경청하는 사고를 가지며, 시너지를 창출하고, 심신을 단련해온 리더들이 있었기에 이런 사역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나의 사역지인 1청년부도 비전과 꿈을 가진다. 나만의 비전인가? 공동체가 가야할, 함께 봐야할 비전인가? 함께 기도하고 말씀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이시리라. 세상의 공동체와는 다른 하나님의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뜻을 모두어 주의 나라를 확장하고, 주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시간이 오게하고, 말씀을 계대하리라. 서로를 향한 기도와 사랑을 갖고, 먼저 말씀이 바로 선포되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 주님 예배가 시작되도록 도와주세요. 함께 그런 얘기가 오갈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세요. 많이 나약해져 있습니다. 힘을 주시길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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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1 [dts]
유위강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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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직’에 관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 홍콩영화도 ‘느와르’라는 독특한 영화장르가 판을 쳤다.

이 영화 또한 폭력조직과 경찰간의 숨막히는 첩보, 속고속이는 전쟁과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무간도는 지옥이란 뜻이란다. 결국 조직에서 경찰로 심어논 자가 나중에는 속이고 제거해서 홀로 살아 남는 데, 그 사람이 무간도에 갈 사람이란 뜻으로 말하려 하는 걸까?


악을 제거한다는 자체가 현실의 법자체로 볼때 어려운게 사실이다. 경찰도 속여가면서 악한이들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제거하고자 애쓴다. 법을 어기지 않으면 악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인가?


또한 악을 제거하기위한 잘못된 모든 속임과 위장들은 어떤 기준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기준을 찾기 어렵다. 십자군 전쟁도, 미 대륙의 개척을 위한 인디언의 학살도...

내 좁은 생각으론 이 세상이 너무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지도 않고, 말씀을 절대라고 인정치도 않는 세상에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어떤 메시지를 증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믿고, 그 분의 뜻대로 전할 때 주께서 깨닫게 하시고, 그 진리가 역사하리라.


쉽지않은 세상이다. 나도 이세상에 동화되고, 이 세상순리에 맞장구칠까 두렵다. 하루라도 깨어있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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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커뮤니케이션
H.J.C. Pieterse 지음, 정창균 옮김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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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번역자이신 정창균 교수님도 평가하신 바와 같이 설교의 방법만을 다룬 책들, 혹은 이론만을 다룬 책들의 불균형적이고, 치우친 책들과는 달리 양쪽 면을 다 다룬 유익한 책이다. 먼저 설교에 대해서 이론적 설명을 심도 깊게 하면서 실제적인 통계적 접근을 통해 설교 양상에 대한 분석을 한다. 그 다음에는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면서 일방적 전달로서의 설교관을 쌍방간의 커뮤니케이션의 설교로서의 신선한 접근을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 행위로서 다양한 형태들을 소개하며 실제적 예들을 통해 유익을 끼치고 있다. 설교론, 설교와 커뮤니케이션, 설교 행위의 세 장을 읽으면서 제 2장 설교의 양상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당장에는 시간이 없어서(미리 읽지 못했던 게으름 때문이지만) 못 읽지만 실제 설교에 대한 통계적인 면을 통해 나의 설교에 대한 평가와 쇄신이 필요할 것 같아서 방학 중에 한번 읽어보고 싶다.

초반에 설교론은 이론 부분이고, 쉽지만은 않은 내용이라서 그런지 빡빡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이해가 되며 좋은 관점을 제공해 주었다. 이론과 실천의 긴장관계, 상호 보완관계는 항상 있어왔다. 이론이 강한 사람은 꼭 실천이 약하고, 그 반대도 많이 있어왔는데, 사실은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되서도 안된다. 이론이 없는 데 어떻게 정확한 실천이 나올 수 있는가? 실천이 없는 이론은 탁상공론이 아닌가? 설교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론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하나님나라에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가에 대한 실천을 다룬 가장 영향력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이해였다.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으로 인식하는 것은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나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내용면에서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케 되었다. 접근 방법은 새로운 것 같지만, 사실 설교를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으로 보고 차례차례 준비부터 적용에까지 이르는 해석학적인 관점과 설교에 대한 이해는 내가 알고 있고 공부해온 설교학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다만 좀 더 실제적인 도움을 얻는 것은 독백적 설교에 대한 반성이다. 선포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그 설교에 참여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에 이르도록 끝까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엔 청중의 상황에 대한 고려가 더욱 필요함을 알게 되었고, 저자가 조언한 설교 전 토론 그룹과 설교 후 토론 그룹을 통해 피드백을 받는 것은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설교자가 겸손하게 그들의 소리를 듣고 평가 또한 받는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다양한 형식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은 다양한 설교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느낌이랄까? 그러나 꼭 한 번의 설교에는 한 가지 형식만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러티브적인 요소와 시적인 요소를 함께 하기도 하고, 교훈적인 설교 형식도 함께 첨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용에 대한 아쉬움은 설교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에 대한 부분이다. 저자가 이 부분에 관심을 덜 둘 수도 있을 것이고, 책의 방향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설교에 있어서의 성령의 역사하심의 중요성이 설교에 대한 포괄적인 책이라고 한다면 꼭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로이드존스의 책에서 느꼈던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설교가운데 기대하고 사모하는  것, 기도로 설교를 준비하는 것(묵상의 지속은 강조하였지만), 잘 준비된 설교가 성령의 역사로 회심과 변화가 일어나는 것 등의 부분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설교에 대한 좋은 관점과 이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설교라는 저자의 논지에서는 꽤 매끄럽고 신선하며 유익했던 것 같고, 그에 따른 실천의 방법을 잘 다룬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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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담긴 설교 - 21세기설교 1
워렌 W. 위어스비 지음 / 요단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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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학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근래에 읽은 설교에 관한 책 중에 이처럼 재미있고, 알차고, 상상력과 영감을 자아낸 책은 이 책이 으뜸이다. 돌아오는 주일날 오후에 바로 설교를 하게 되어서 그런지 나에게는 설교에 대한 고정관념이 수도 없이 깨지게 되었다. 설교 본문을 정해놓았기 때문에 그 본문에 대한 적용을 이 책을 보면서 계속해서 하게 되어서 생각보다 진도는 천천히 나간 셈이다. 그러나 읽는 가운데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창조적이고, 영감있는 하나님의 생각이 떠오르고, 말씀 앞에 더욱 침잠할 수 있도록 도운 책이기에 더욱 고맙기도 하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상상력과 삶’으로 상상이 담긴 설교의 이론적이고 성서적인 근거를 다루고 있고, 2부는 ‘상상력과 성서적 설교’로서 실제적으로 설교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주제별, 특징별로 어떻게 준비해서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체로 요약은 줄이고, 각 부분 부분마다 느끼게 되고 생각하게 했던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중심으로 paper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  

저자는 자신의 논지가 1부에 나와 있기 때문에 2부보다 먼저 1부를 숙독해볼 것을 권한다. 그래서 소감도 1부는 매 장마다 하려한다.  1부 첫 장인 ‘두 설교가 이야기’에서는 후새와 아히도벨을 비교하면서, 그림 그리듯 말하고 그의 우뇌를 정복해서 원하던 결과를 얻어내었던 후새를 말한다. 그는 또한 ‘수도관 은유’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설교가 단순한 진리의 전달이라고만 생각했던 한계점들을 떠올리게 했다. 설교자의 생각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전부이고, 청중의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도전을 열어주는 출발이었다. 그럼 뭐가 더 있는 가는 물음 말이다.

 '후새가 알았던 것: 사람’에서는 후새를 통해 사람에 대한 탐구의 중요성을 알게 하였고, 사람의 정신의 능력과 상상의 잠재력들을 다시금 알게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상상을 창조하셔서 우리와 교감하신다는 것과 성경을 증언하는 사람도 고대의 기록을 현대에 전할 때에 상상력이라는 가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후새가 알았던 것: 주변 세계’에서는 후새가 압살롬의 마음의 화랑에 그림을 걸어주었고,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세계를 통해 더 놀라운 것을 보게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저의 ‘성화된 상상의 가치’는 참으로 상상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는 글이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깊은 묵상과 숙고는 창조적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효과적인 전달임을 생각게 했다.

 후새가 알았던 것: 말’에서는 은유의 놀라움을 발견하였다. 은유란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사물을 ‘말을 통해 운반하여’ 결합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은유는 언어가 작용하는 방식 자체이며, 의사소통 때 불가피하게 쓰고 있음을 알았다. 아, 은유는 필수적이고, 가장 친근한 접근이겠구나!

 ‘설교자여, 내게 얘기 하나 들려주시오’에서는 나단을 통해 뒤로 치는 영향력을 보게 되었다. 자기에게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서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듯 했었는데, 알고보니까 자신의 얘기였던 것을 알게 하는 것은 굉장한 은유의 힘임을 알게 되었다.

 ‘강단에 춤추는 해골, 좌석에 늘어진 송장’은 참 예리하게 우리의 설교의 한계점을 보게 해 주었다. 우리의 준비 없음과 영감 없음에 대한 탓을 청중에 완악함에 핑계대고 있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 진리가 그들의 상상에까지, 그래서 현실의 삶까지는 전혀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감이 되었다. 청중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충고 라기 보다는 아는 것을 행할 힘이라고 했던 것처럼 그 의욕을 북돋아주고, 그들이 자유와 의지를 마음껏 발휘토록 불을 지펴줌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숨은 파괴자들’은 이 시대의 위험을 말한 장이다. ‘사실주의’의 위험성과 그것으로 인한 상상력 마비를 문제의 핵심으로 잡았다. 포르노와 TV의 가시적인 매체들은 그들의 생각의 틈을 막아버리고 단순히 정보와 즐거움을 제공하기에 그 순간에는 즐거워 보이나 나중에는 단순화되고, 노예와 같이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라디오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 나는 라디오와 책 둘 다 참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은유의 신비’에서는 연관짓기와 같은 다리 구실을 하는 은유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은유는 성경의 세계와 청중의 현실과 연결시켜 주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주어서 풍부한 현실성과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준다. 또한 상상력과 경험의 결합은 확실한 대안임을 알게 하였다. 성령께서 설교자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은유를 통해 듣게 되면 듣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산 진리로 번역하게 됨을 말하였다. 이러한 은유적 설교에 약간의 위험성은 본문을 드러내는 일에 설교자가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과 장점은 잘 드러내면서 은유로서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2부는 실제적인 내용이다. 이 부분은 1부의 내용이 너무 설교가 너무 상상 중심적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깨뜨려 줄 수 있는 중요한 시각을 제공한다. 본문에 충실하면서, 깊이 있게 성경을 연구하면서 거기에 상상을 더하는 시각이다. 본문에 대한 석의를 통해 기록될 당시에 의미를 숙고하게 해주며, 본문이 오늘의 교회와 나와 청중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숙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본문이 무엇을,어떻게 말하는 가,처음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에서는 단어와 문맥에 대한 정통적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문학적인 장르와 수사학적인 표현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말한다. 또한 원독자에게 무엇을 말하였는 가를 아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한국의 설교자들이 이런 석의 부분에 약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본문을 보는 힘, 문장과 글을 읽는 힘이 약한 것을 느낀다. 누군가 성경연구와 설교는 국어가 약해서 못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저자는 오늘의 교회의 의미를 파악해 보라는 역사신학의 문제도 거론하면서 본문에 대해 교회가 해석해온 역사를 보라고 말한다. 균형있는 관점이다.

‘본문이 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를 바라보라고 하는 데, 청중을 위한 설교준비, 성경연구가 많음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설교는 나의 인격을 통해 걸러진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인격을 관통하여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내가 말씀 앞에 해결된 경험과 부딪혀본 경험과 체험되고, 검증된 내용이라면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나도 참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참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적용에 대한 관점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전인격적인 변화(지,정,의)를 통해 말씀으로부터 배운 바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감정적인 뜨거움을 추구하거나, 지적인 내용만을 제공받거나, 의지적인 결단은 하게끔 하는 데 내용이 없다거나 하면 모두 불완전한 적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인격적인 적용과 청중의 변화을 향한 설교에 목표를 두자.

실 예를 들어서 자르기와 합치기의 분석과 종합을 보여준 것은 내 설교에 적용해 보기에 유익했다. 무슨 질문들을 던져야 하고, 무엇을 삼가야(언어유희...) 된 다는 것을 알았다.

상상력과 인물설교, 장례식을 위한 위로 설교, 특별한 날을 위한 메시지의 설교의 구체적인 주제를 정하고, 상황과 현실에 따라 설교를 작성해가는 실제적 지침은 급하게는 필요하지 않더라도 두고두고 참고하면서 적용할 필요를 느꼈다. 장례설교는 아직 할 기회가 잘 없지 않은 가? 그러나 막상 장례설교를 부탁하면 막막했었는데, 좋은 지침이 되었다. 인물설교를 하려면 무엇보다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고 진지한 탐구와 자료조사가 필요함을 알았다. 전 이해를 내려놓고 무엇보다 거룩한 상상력을 지닌 통찰력으로 예리하게 적용해가는 힘,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의 결실로 나타남을 알았다. 짧은 기간에, 수고 없이 통찰력은 생기지 않는다. 노련함 가운데 통찰은 존재함을 알고 있다.

 유머와 창조력은 내가 나름대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장담 못할 것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훈련시키지 않고 적용해나가지 않으면 금방 녹슨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생각들을 훈련하며 좌뇌(논리적 사고)와 우뇌(감성적 사고)를 골고루 훈련하는 것이 필요할 듯 싶다. 창조는 주의 깊은 관찰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알았다. 또한 휴식의 필요성, 재충전과 묵상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열심히 한 다음에 쉬어야 그 쉼이 의미를 더 크게 가질 것 또한 기억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갖고, 어휘를 늘려갈 것을 다짐케 한 것은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큰 수확이다. 삶 속에서의 도전 정신, 시도해 보고자하는 실험정신이 내게 많이 있었는데 좋은 조언이 되었고 더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결국 이 책을 통해서 본문에 충실해야함과 본문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서 딱딱한 진리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성경적인 설교가 아님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달방식과 적용방식의 변화와 보완을 통해 거룩한 상상을 불러 일으켜서, 청중의 전인격적 변화와 삶에서의 열매들을 거두는 종으로 살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설교는 잘 안할 때는 몰랐는데 설교를 계속 준비하다가 보니까, 그리고 성경과 신학 또한 공부하면 할수록 더 궁금증이 많아지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 지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쉽게 생각했던 교만한 태도를 벗어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영원한 숙제인 설교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 있는 접근으로 나의 지평을 넓혀주고, 도전을 준 이 책의 저자에게, 소개해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젠 지속적인 적용과 도전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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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이끄는 삶 (반양장) 목적이 이끄는 삶
릭 워렌 지음 / 디모데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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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새들백교회이야기(원제: Purpose driven church(목적이 이끄는 교회))"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앞서 책이 교회에 적용할 원리들을 제시했다면, 이 책은 신자 개인의 영역에서 적용할 원리들을 성경말씀을 근거로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을 저자인 릭 워렌 목사님이 섬기고 있는 새들백교회에 적용해 보았는데 엄청난 변화들을 겪었다고 말한다. 40일을 꾸준히 묵상하게 되어있는 이 책의 내용을 신자들이 함께 읽고 묵상하고, 적용할 때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말한다. 정말 이 책은 우리 신앙인의 목적을 존재(being)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행할 바(doing)에 까지 이끌어주는 친절한 가이드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의 존재자체가 그분(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우주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성경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지난 책(새들백교회 이야기)에서 말한바와 같이 이어서 우리는 5가지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요, 성도의 삶을 살아간다고 말한다. 첫째는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영광을 돌린다. 즉 하나님을 높이고 그 분 안에서 만족할 때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는 다른 믿는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영광을 돌리는 것인데, 즉 교제이다. 거듭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믿는 것뿐 아니라 그분에게 속하고 하나님의 가족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임을 말한다. 셋째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감으로 영광을 돌린다. 이것은 영적으로 성숙해 진다는 것인데, 온전한 성숙에 이르도록, 즉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방법이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제자도, 제자화, 제자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넷째는 우리는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독특한 재능, 은사, 기술, 능력으로 다른 사람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 사용케 하신 것이다. 다섯째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함으로 영광을 돌린다. 진리는 나누게 되어있는 것이다. 즉 선교, 증거의 사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의 삶의 목적을 단순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들을 5가지로 구분하여 말하고, 자신을 살펴볼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예화들을 통해 쉽게 설명하며, 자신의 성도의 삶의 불균형이 있다면 점검하게 해주는 역할까지도 이 책은 하고 있다.

나에게도 몇 가지 유익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빌브라잍 목사님의 간증은 큰 도전이 되었다. “젊었을 때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네, 직접 계약서를 쓰고 밑에 서명을 했는데, 거기에 ‘바로 이 날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썼다네”. 우리가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 앞에 서 보고 있지만 얼마만큼 그분 앞에 항복하는 가? 나의 삶의 전부를 내어놓고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가? 그리고 그 주님 앞에 한 고백과 계약에 얼마나 책임있게 반응하는 가? 나의 삶의 무책임했던 점과 우리 일부 한국교회 신앙인들의 수동적이고, 책임 없는 모습들이 많이 회개가 되었다. 

우리교회에게 있어서는 성도들의 은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세우는 일에 헌신하는 ‘사역’적인 부분과 세상 속에 복음을 나누고 증거 하는, ‘선교’하는 일에 더 분발해야 함을 느꼈다. 교역자와 평신도가 함께 복음 앞에 마음껏 반응하며 자발적으로 우리의 은사들을 사용하여, 섬기고 나누고, 선교할 장이 더 활짝 열리길 바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첫째는 다양한 영역본의 사용인데,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고 사고를 넓히고, 고정관념 속에 있었던 성경개념을 확대해서 새로운 관점에서 볼 의도에서 쓰여 졌다고 말하나 그 반대의 측면도 약간은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지면의 한계를 말했지만 문맥을 무시하고 논지를 위해서 말씀을 찾아서 쓸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번역적인 번역본을 많이 사용함으로 원문에 의미가 너무 현대식으로, 번역자의 주관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 또한 기억해야할 것 같다.

둘째는 개인의 신앙성장과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물론 이렇게 변화된 사람이 변화된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사회의 구원, 구조 악에 대한 측면, 그리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출해 내는 측면에서 신앙인의 사회에 대한, 세상에 대한 참여나, 세상에 대한 싸움의 측면이 약하게 표현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성도의 세상에 대한 싸움은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죄와의 싸움 뿐 아니라 이 시대의 사상, 문화, 사회구조 전 영역에 걸친 싸움이기에 그런 세상에 대해서 하나님나라를 구출해 내고, 오(임하)게 하는 역할은 하나님의 아들된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이라 생각한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현재 우리의 모호한 성도의 삶의 목적과 그에 따른 행동의 주저함을 다시금 하나님의 목적을 알게 하고 집중케 하는 큰 유익을 주었고, 쉽게 성도들에게 호소되며 적용할 수 있는 편한 어조가 큰 장점인 것 같다. 많은 성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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