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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제목을 보는 순간 영화 <아바타>의 명대사 -I See You-가 떠올랐다. 당신을 본다는 것은 곧 상대방을 인식하고 각인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아닐까. 결국 어떤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뜻. 그 -I See You-가 -너를 봤어-라는 한글 제목으로 나타난 것을 보니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완득이] 이후로 몇 편인가의 소설을 발표했지만 [완득이]만큼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작가가 그 어떤 놀라운 변신을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사실 김려령이라는 작가는 나에게 의미있는-작품이 발표되면 바로 구매한다거나 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발표하는 작품이 끊임없이 궁금해지는 이유는 뭘까. 국내 작가라는 이유? 다양한 소재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 잘 모르겠다.
영재는 처음 본 순간부터 수현에게 빛으로 다가왔다. 한 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는,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환한 빛. 폭력과 고통으로 얼룩진 어린시절 속에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과거를 가진 수현은 결혼조차 자포자기하듯 그렇게 속행했더랬다. 단순히 아내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럼에도 그는 아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국 외로웠던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난다. 오직 그림자로만 존재하면서. 늘 고독과 어둠 속에 존재했던 수현에게 영재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는 너무 어두웠고 영재는 너무 밝고 따뜻했으니까. 그랬기에 수현은 선택할 수밖에. 그의 어둠이 그의 사랑을 변화시키거나 괴롭게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재가 없었다면 수현은 어찌됐든 하루하루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선택은 과거와 현재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영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내가 하고 온 것이 사랑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 때나 달려가고 싶고, 그렇게 내게로 왔으면 좋겠고, 지금도 간절히 그러하다는 것뿐. -p201
얼마 전 종영한 M본부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를, 남들이 욕하면서 보지 않을 때 나는 이상하게 공감하면서 열심히 봤다. 여주인공 서미도가 자신을 뒤에서 지켜주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준 한태상이라는 남자를 두고도 왜 이재희라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는지. 유복하지 않은 집안환경, 급기야는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가족.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한태상이 대학 등록금을 대주어도 결코 넘을 수 없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인식한 순간, 한태상은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라 또다른 감옥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녀가 괌에서 밝고 환한 미소를 가진 재희에게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비난받아야 하는 부분은 그녀가 자신을 도와준 한태상을 두고 이재희에게 끌렸던 점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재희에게 향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사실을 한태상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못하고 좀 더 빨리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도가 재희에게 끌렸던 것처럼 수현이 영재에게 끌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 자신, 어둡고 흔들리는 부표처럼 굳게 뿌리내리지 못했지만, 그녀, 사랑을 표현하는 데 있어 적극적이고 밝은만큼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도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한 사람에게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할 정도였다면, 꼭 그런 선택을 했어야 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지독한 사랑이 맞다. 그러나 그것을 '반전'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너를 봤어]가 좋은 책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저 읽는 동안 쉼없이 책장이 넘어갔고,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가슴이 이상해졌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느낌들. 그것으로 됐다는 기분.
늘 지금이 힘드니까 어쨌든 지나온 때가 그립고 그때가 진짜 살았던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 -p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