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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
강희진 지음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사실이, 진실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이지요?”
“벌을 주기 위해서지요. 백성들에게 전쟁의 상처를 남기고, 수많은 여인들로 하여금 목숨을 끊게 만든 죄. 제 아내와 딸아이를 잃어버리게 만든 죄. 왜 아무도 벌을 받지 않습니까? 저는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서 죄 지은 자에게 벌을 주어야겠습니다.”
기묘하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4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자 했다. 그 날 그 시각에 사라져간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 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와 사람들을 지켜야 했던 선장과 선원들은 제 목숨 살리고자 그 책임을 버렸고, 애꿎은 생명들이 대신 값을 치렀다. 국무총리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 했지만 이어진 인사의 난항으로 그는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선장과 선원들을 규탄하는 목소리는 점점 잦아지고,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던 방송들도 이제 다른 사건들을 보도하느라 바쁘다. 백성들을 버려두고 홀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 가장 먼저 탈출하면서 자신의 짐들을 싣느라 백성들 태울 자리 하나 만들지 못했던 강화도 책임자, 청에게 끌려가면 어떤 꼴을 당할지 너무나 빤히 보여 강화도 앞 바다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인들. 백성과 나라를 돌봐야 했음에도 가장 먼저 도망친 사람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벌은 내려지지 않았다. 소름끼치게도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소설 [이신]은 이씨의 신하로 살고자 했으나 다른 왕을 섬기게 된 ‘이신’의 이야기다. 그의 복수극이자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남자의 애처로운 고백이기도 하다. 얼자로 태어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전에 계해년의 반정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광해군의 내금위장으로 끝까지 그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고, 이신은 친우 유병기의 누이이자 동경하던 소녀인 선화, 어머니, 동생 숙이와 함께 산으로 도망간다. 선화와 연을 맺었고, 딸 난이를 얻었으며, 갖바치로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일어난 정묘호란.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잃고 청으로 끌려갔으나 청 태종인 홍타이지의 눈에 들어 관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이신은 아이러니하게도 청의 칙사로서 다시 조선을 찾는다. 조선은 변한 것이 없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무능한 관리자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반정에 성공하여 왕의 자리를 차지한 임금은 단지 반정공신들의 하수에 지나지 않았다. 고통 받는 것은 백성들, 그 중에서도 여인들이었다. 환향녀라는 이름으로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자진을 강요당하고, 쫓겨나고, 살해당했다.
돌아온 여인들과 이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왕에게 주청드리던 사대부들의 모습은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노비와 다르지 않다. 전쟁에 졌고, 민심은 어지러워졌고, 백성의 원성은 천지를 울리는 시대를 만든 것은 그들의 대의와 명분 때문이었음에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 대의와 명분을 버리지 못한 채 여인들을 내친다. 일을 벌이고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이, 제 배 두드리며 권리만 누리면서 의무와 책임은 엉뚱한 사람들에게 전가해버린 것이다. 벌을 받아야 하는 이는 누구인가. 회절강을 만들어 돌아오는 여인들이 그 곳에서 정절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죄하고 몸을 씻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사대부들이 그녀들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먼저 몸을 씻었어야 하지 않을까. 400년 전에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애꿎은 목숨들만 사라져갔었다.
그런 어지러움 속에서 이신은 꿈을 꾼다. 정묘호란 당시 아내 선화와 함께 도망치던 때의 꿈을. 꿈속에서 그는 결코 그녀를 구해낼 수 없고, 오히려 강화도에서 가장 먼저 도망쳤던 김흥진이 그의 앞을 막아선다. 아내의 등에 화살이 박히고 어머니와 누이는 차가운 얼음물 속으로 빠지던 그 때. 김흥진을 죽여야 한다는 격렬한 살기 속에서 잠에서 깬 이신은 칼을 쥐고 그의 집을 찾지만 뜻밖에도 칼에 찔려 절명한 김흥진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자객과의 대치. 하지만 그 집을 찾은 제 삼의 인물에 의해 자객은 살해되고, 마치 꿈에서 일어난 듯 현실감각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내 선화와 비슷한 여인을 발견한다. 아내의 행방을 쫓는 와중 이신은 역모의 낌새를 알아채고, 인조로부터 반정공신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부탁을 받은 채 심상찮은 흐름에 휩쓸린다.
권력이 무엇인가 싶다. 수많은 사대부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자리가 과연 많은 백성의 생명보다 귀중했던가 알고 싶다. 그들에게도 나름 할 말이 있었겠다. 태어나면서 보고 배운 것은 대의와 명분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정한 대의와 명분이 자기희생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결국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대의와 명분을 지키고자 그리 했다-하는 것이 아닌, 오직 살고자 그랬다, 이 자리가 너무 아까워 그랬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솔직해진다면 그들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겠다. 무엇 하나 바뀌지 않는 현실, 가슴에 새겨진 상처만큼이나 힘든 하루하루 속에 힘없는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보듬어줄 사람, 그들을 버리지 않을 사람이었다. 백성들을 버리고 먼저 도망가버리는 힘없는 왕이 아니라. 그들 전체에 이신은 백성들의 몫만큼 분노한다. 이신은 한 사람으로 등장하지만 그가 짊어진 분노와 복수심은 모두의 것이었다. 우리 모두가 이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저 밖에 있다.
2014년, 두 번의 호란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고, 국제정세는 어지럽다.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해졌고, 중국의 시진핑이 방한해 한국의 지도자와 국제 정세를 논했으며, 북한은 당장 오늘 새벽 개성 북쪽에서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책으로 읽었던 비극이, 역사 속의 그 상처가 다시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의 소중한 ‘선화’를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