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소피 옥사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작품이 잘 번역되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이언 매큐언의 최고작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속죄]를 추천하겠다 (이 작가를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 하나 싶다). 한 순간의 질투심으로 어긋나 버린 두 연인의 운명. 그리고 그 운명의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살아온 한 여인의 '속죄'가 참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었다. 지금도 그 작품만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울음이 나고, 괜히 작품 속 인물에게 화가 나며 잠도 잘 이루지 못하겠다. 아마 그런 작품은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추방]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읽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도, 꼼꼼히 따지자면 줄거리와 구성도 다르지만 어쩐지 [속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그런 의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에스토니아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비극적인 역사와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책에서 그런 이미지를 받은 것은 나 뿐인지 살짝 궁금하다.

 

홀로 노년을 보내는 알리데 앞에 순간의 속임에 넘어가 창녀가 되어버린 소녀 자라가 나타난다. 포주로부터 도망온 자라가 알리데의 집 앞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었을까. 여전히 불안한 정세와 과거로 인해 타인에게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알리데는 어쩐 일인지 소녀에게로 향하는 마음에 그녀를 집 안으로 들이고 자라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라가 내민 한 장의 사진. 그 곳에는 자신과 언니, 잉겔이 찍혀있다. 언니 잉겔의 남자 한스를 사랑했던 동생 알리데. 어떻게도 한스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던 알리데는, 결국 선택한다. 자신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그리고 이제 과거의 얼굴을 하고 현재에 존재하는 자라를 통해 그 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려한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단어는 '선택'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았고, 어떤 책임을 지게 되었는지 알았으니까. 그로 인해 현실에서 '선택'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그들은 허구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내 삶, 바로 이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내가 어떤 책임을 지게 될지 생각하면 순간순간의 선택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결코 나중에 후회할 선택은 하지 말자고. 나로 인해 가슴 아픈 누군가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이 작품은 소설보다 연극에 더 어울릴법한 작품이다. 무대에 놓여진 테이블에서 알리데와 자라가 마주보고 앉아있고 대화를 나눈다. 무대가 바뀌며 알리데의 과거가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현재. 연극이었다면 더 인상깊었을 작품이지만 소설로서는 내게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강렬한 로맨스, 오싹한 서스펜스, 장대한 드라마-라는 선전문구 중 '장대한 드라마' 부분은 인정. 그러나 로맨스와 서스펜스 부분에서는 글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숙청>의 원작이라니 연극 대신 영화는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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