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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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한 건의 살인사건으로. [658, 우연히] 사건 이후 조용하게 지내려던 데이브 거니 앞에 원초적인 마초 형사 잭 하드윅이 성난 코뿔소처럼 들이닥칩니다. 표면상으로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거니에게 사건 해결을 맡기려는 것이지만 불목하는 반장 로드리게스와 동료 형사 블랫에게 한 방을 먹이고 싶었던 하드윅이 들이민 사건은 완전범죄. 결혼식 날 아름다운 신부가 멕시코인 정원사 헥터 플로레스에게 목이 잘려 살해당하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내 매들린과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은퇴했던 거니였지만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는 형사의 본능과 직감으로 결국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무기로 사용이 가능한 두께(무려 641페이지)의 이 작품을 저는 추석 연휴동안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스릴러를 즐겁게 읽었다고 하니 조금 이상하긴 하나 책에 손이 딱 붙어 떨어지지 않더이다. 보통 이 정도 두께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부분은 지루할만도 한데 이 작품은 버릴 부분이 손톱만큼도 없는, 정말 완벽한 이야기였어요. 개인적으로는 [658, 우연히] 보다 더 좋았다고, 이 독자, 자신있게, 외칩니다아!! 사실 [658, 우연히]에서는 전직형사 거니가 지닌 암울한 심리와 아내와의 암울한 관계가, 사건보다 더 암울하게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악녀를 위한 밤]의 사전에는 지루함이란 단어는 절대 찾아볼 수 없고, 두 번은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가 될 겁니다. 완전범죄로 여겨지는 현장을 조사하고 모든 요소를 통합하여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이 독자에게도 하나의 즐거움이거든요. 그리고 누가 범인인가 뿐만 아니라 '왜'라는 숨겨진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 안에서 독자 또한 한 명의 형사가 되는 거죠. 이 작품은 그런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제가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감정표현, 인간의 본성에 관한 예리한 시각, 사건과 관련하여 작가가 던지는 예시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거니가 살해당한 신부의 남편이자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스콧 애슈턴의 책에서 밝힌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경계의식이라거나, 거니와 스콧이 만난 자리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예로 들며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방법이랄까요. 굉장히 섬세하고 구체적이며 독자에 대한 친절의식을 마다하지 않는 점이 엿보이는 장면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형사 거니가 아니라 남편이자 아버지인 데이브 거니로서 갖는 감정이 훨씬 깊어지고 설득력이 생긴 것 같아요. 어째서 아내 매들린과 그렇게 갈등해야 하는지, 거니가 한 인간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어떤지에 대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할까요. 반전은, 말할 것도 없죠.

 

끝이 다가올수록 페이지가 몇 장 남아있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2011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에 선정되고 유럽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데이브 거니 시리즈가 이것으로 끝일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사실 끝부분이 그런 느낌을 자아내게 했거든요. 다행히 시리즈의 3편인 [악마를 잠들게 하라]가 얼마 전에 출간되었다고 하니 우리도 곧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좀 빨리 만나게 해주면 안될까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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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2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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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입니다! 완벽해요! 짝짝짝! 예전 조 힐의 작품을 읽었을 때는 그 기괴함에 놀라서 다시는 보지 못할 작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스티븐 킹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 평가 기준이 더 높아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작품의 분위기가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어요. 영화 <드래그 미 투 헬>같은 그런 분위기라고 할까요. 그래서 [뿔]도 그런 성향이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NO!! 어느 부분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해도 이번 작품은 구성이나 인물, 이야기 전개 그 어느 것 하나도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소설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조 힐은 이런 말을 듣기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스티븐 킹의 아들다운- 굉장한 작가라고 할까나요. 역시 사람은 오래 두고 볼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해 있었다는 카프카의 [변신]과 유사한 첫 장입니다. 술에 취해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머리에 뿔 두 개가 생겨난 남자, 이그나티우스 마틴 페리시. 약칭 이그 페리시라 불리는 남자는 어느 날 아침 세면대 거울을 통해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뿔, 정말 기가 막힙니다. 사람들로부터 듣기를 원하지 않았던 온갖 더럽고 추악한 말들을 뱉어내게 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 안에만 담아놓고 타인에게는 절대 밝힐 수 없는 어두운 비밀들을요. 이그는 여자친구 메린을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풀려난 전력이 있는 남자로, 그 일로 인해 매우 오랫동안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그는 뿔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진실을 듣고 기묘한 체험을 하며 진범을 처단합니다. 신이 아닌 악마의 이름으로.

 

이 작품은 섬뜩한 스릴러이자 굉장한 러브 스토리입니다.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있는 감독 알렉산드르 아야도 -세상의 모든 죄와 벌에 대한 가장 신선한 접근이며 인간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폭로이자 마음을 울리는 러브 스토리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는데요, -마음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라는 부분에서 절대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그의 살해된 여자친구 메린으로 완성되죠. 반전으로 밝혀지는 그녀의 사랑 앞에 저는 그만 별 다섯 개를 미련없이 주었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들에게는 신성모독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이 작품은, 과연 우리 세상에서 진정한 악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뿔이 자라나고 코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불에 타도 죽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그가 정말 악마인지, 악마보다 더한 악마같은 인간성의 사람이 사실은 진짜 악마가 아닌지에 대해서요. 때문에 -그렇게 인간과 악마가 같이 누워있는 잠시 동안 옛날 주물 공장은 고요했다. 어느 쪽이 인간이고, 어느 쪽이 악마인지는 아마도 신학적 논의의 문제가 되겠지만-이라는 문장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해피엔딩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당연히 이그가 행복해지기를 바랐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꿈이고 한순간 꿈에서 깨어나보니 메린은 여전히 이그의 곁에서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고, 이그가 그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는 장면이 마지막이 아닐까 조금 기대했어요. 그런데 역시 조금 뻔했는지, 색다른 결말을 보여주네요. 어쩌면 해피엔딩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는. 저는 나름대로 이그에게 있어 해피엔딩이라 결정지으렵니다. 굉장한 재미와 울림을 주는 [뿔]. 이제 스티븐킹의 아들이라는 수식어 없이도 혼자서 훨훨 날게 된 조 힐의 다른 작품들을 주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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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사랑
전경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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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지 못해 세상엔 이토록 많은 고통과 상처가 얽히는 것이다.

멀리 남쪽에서 이 곳으로 온 여자는 단지 동생을 만나러 왔을 뿐이다. 의붓동생, 새엄마의 딸. 어린 마음에 그 아이로 인해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는다 여겼고, 그래서 옳고 그름을 따질 여유없이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 때는 몰랐었다. 그 일이 이토록 평생,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고 마음을 짓누르며 그녀의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치게 될 줄은. 특별히 동생을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니었으나 새엄마의 죽음은 여동생을 다시 그녀의 기억 속으로 불러들였고 남편과 소원해지고 딸마저 자유롭게 훨훨 날아간 지금, 그녀는 동생의 집에서 동생을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첫 문장을 읽고 그 다음 문장을 읽어내리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아마도 처음부터 요양원이 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 우울한 분위기, 상실의 고통. 내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라서 아프고 힘든 부분은 책이라도 쉽게 넘겨버리지 못한다. 어쩌면 책이기 때문에 더. 책만큼은 나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므로 슬픔과 괴로움에 닿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 재미난다. 크게 자극적이지도 않고 엄청난 소설적 장치가 들어있는 것도 아닌데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동생이 사는 곳에 발을 딛고 생활하는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 그리고 종내는 만나게 될 여동생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그녀가 과연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 지 궁금했다.

 

이 작품은 굳이 정의하자면 '치유의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는 동생이 살고 있는 도시에 머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자연스럽게 그곳에 동화될 뿐. 성스럽게 추앙받는 성모상은 그녀에게 죄책감의 상징이고, 마음 한 켠에 새겨진 주홍글씨이며,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벌이었다. 그런 그녀가 반짇고리 노인을 만나고, 고양이 칠월을 만나고, 세상만사 상담소의 상담사를 만나고, 동생의 지인들을 만나며 동생을 맞아들일 준비를 한다. 아무런 꿈도 없던 미래에 그녀의 흔적을 벌써부터 남겨놓은 채.

 

일본문학에서 엿볼 수 있었던 형식에 우리의 정서를 담아낸 따스한 작품이다. [최소한의 사랑]이라는 제목처럼 작품 안에는 간간히 '최소한'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최소한. 그녀의 인생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고,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던 대학 동기조차 과도한 표현으로 그녀를 괴롭히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으니 존재할 뿐,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정도로.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세계였는데, 마치 유토피아 같으면서도 실제로 존재할 듯한, 아무것도 아닌 듯 하나 굉장히 마음이 든든해지는 그런 세상이었다.

 

최소한이라는 단어는 '아주 조금'이 아닌 '당연히 지켜야 할' 로 귀결된다. 사랑에서, 인연에서, 생활 속에서. 억지로 큰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최소한의 것을 바라며 최소한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상. 아름답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힐링은 최소한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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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 지구가 혼자 돌던 날들의 기억
애비 셰어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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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 때만 해도 학교 수업이 오전반, 오후반 나뉘어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 날은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저보다 엄마가 먼저 외출하시면서 문을 잘 잠그고 나가라고 당부하셨죠. 문을 잠궜는지, 아니면 그냥 열어놓고 갔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엄마가 저에게 문을 잘 잠그고 가라고 했더니 오히려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갔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크게 혼나지는 않았어요. 엄마도 어이가 없으셨는지 그냥 그렇게 말씀하시고 앞으로는 문단속 잘 하라고만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일이 제게는 무척 충격이었던가 봅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문단속에 무척 신경쓰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병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저는 제 스스로 강박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열쇠로 문을 잠그는 순간을 똑똑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문이 정말로 제대로 잠겨있는지 몇 번씩 확인하곤 했거든요. 특히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제가 마지막으로 나갈 때는, 현관문이 떼어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몇 번씩 잡아당겨봐야 직성이 풀렸어요. 그나마 지금은 도어록으로 바뀐 덕분에 나아지기는 했습니다만. 게다가 저는 제가 아끼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과도(?)해서 혹시라도 그 물건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날은 아무것도 못하곤 했어요. 그것도 조금 나이를 먹고, 몇 번 물건을 잃어버리고 하다보니 조금 극뽁이 되기는 했습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거든요. 기억에도 남아있고요. 그런데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확인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거에요. 제 안에 어떤 기준을 마련해놓고 있는 거죠. 몇 번 확인하면 괜찮아, 그 수만큼 확인하면 괜찮을거야-라는 기준. 사실 [아멘 아멘 아멘]을 읽으면서 무척 불편했어요. 애비는 자신 안에 기준을 마련해서 쓰레기를 줍고, 몇 십번씩 기도를 하고, 운전을 하면서는 누구를 치어죽이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해야 하며, 끝내는 자해까지 감행하죠. 그 시간들이 주위 사람에게는 걱정이고 두려움이겠지만 본인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와 공포였을 지 조금은 이해하니까요. 자신 안의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는 행동들로 분명 피곤했을 거에요.

 

그녀의 강박증은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높았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은 있고 그 기준을 지키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니까요. 결코 밝을 수만은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용기있게 써낸 그녀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그녀가 겪은 강박장애는 결코 부끄럽지도, 이상한 눈으로 판단될 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을테니까요. 누구나 겪는 우울증이 특별한 취급을 받지 않게 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이고, 아직도 우울증에 헉!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분들도 많다는 현실은 아쉽습니다. 학교만 해도 한 반에 우울증을 앓는 아이들, 심리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적게는 두 세명, 많게는 열명 가까이 있거든요. 분명 그녀의 책이 용기있게 세상으로 걸어나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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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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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나에게 건넨 말이 생각난다. 그 사람은 내가 들고 있던 책을 힐끔 보더니 -너 그런 책도 읽냐?-라고 힐난하는 듯 이야기했다. '사랑'이라는 글자만 보고 그 사람은 내가 가벼운 연애소설을 읽는다고 지레 짐작한 모양이었다. 이 작품은 결코 '가벼운' 연애소설이 아님에도, 나는 그 때 책의 초반을 읽고 있던 중이라 그 힐난 비슷한 한 마디에 괜히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후로 어째서 가벼운 연애소설은 읽으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높은 곳에 두는 가치는 사랑이라고 하면서 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책은 가치있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인가 궁금했다.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연애소설을 좋아한다. [해를 품은 달]도 재미있었다. 이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연애소설이기에 좋아하기도 하지만, 단순히 연애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더 좋아한다.

 

옛날에,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 접한 이 작품은 내게 굉장한 충격을 안겨주었다-는 기억이 난다. 약10년 전이었던 듯 한데, 자신에 대해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에서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던 것이니)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인간의 무의식과 의식, 본능과 이성이라는 개념을 알았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순간의 상처가 한 인간의 삶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알았다. 그리고 가장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 점은 개인상담, 정신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놓아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몸이 아프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는 것처럼, 우리 마음이 아플 때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부끄럽다는 생각에 부여잡고 참기만 하면 그것이 더 큰 어둠이 되어 나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두 여자가 과거를 통해 현재의 나를 발견하고 미래를 꿈꾸는 과정이 애틋하다. 이제 그녀들과 비슷한 (그래도 한참 떨어지기는 했으나) 연배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그녀들의 삶이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김형경 작가의 팬이 되었었다. 그 후 그녀의 장편, 단편소설은 거의 찾아 읽었지만, 이 작품만큼 내 가슴을 울렸던 이야기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개정되어 출간된 것이 특히 기쁜 이유다. 심리 에세이 [사람풍경], [천 개의 공감], [좋은 이별] 등으로도 유명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새롭게 주목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 이 작품을 계기로 김형경 작가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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