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요 하숙집의 선물
오누마 노리코 지음, 김윤수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여자 셋과 60대 아주머니 다마요가 살던 하숙집에 도모미라는, 얼핏 듣기로는 여자로 확신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 아저씨가 들어옵니다. 아저씨라고 해도 질이 좋아보이는 원단의 트렌치코트 차림에 진회색의 중절모, 모자 밑으로 흘러나온 아름다운 회색 머리카락의 소유자, 중후한 분위기를 가진 할아버지라고 할까요. 으음. 저는 이상하게 도모미씨에 대한 인상을 확정짓기가 어려웠어요. 어쩐지 오빠같기도 하고, 아저씨 같기도 하고, 할아버지 같기도 한, 다양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모미씨는. 아. 중요한 것을 하나 잊었네요. 그의 사랑스러운 시바견을 태운 하늘색 유모차.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슈코가 도모미씨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이랬어요. 게다가 웃을 때는 약간 험상궂게 느껴질 정도로 입가가 움푹 패여버려서 금방 겁을 먹어버렸죠. 그런데 이 도모미씨, 웬만한 사람보다 하숙집 관리인의 역할을 척척 해냅니다. 살림 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데면데면하게 살고 있었던 세 여자-데코, 료코, 슈코-의 인생 속으로 슉 침투해버렸네요.

 

슈코는 어렸을 때의 가족에게 생긴 일로 인간관계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겉으로는 허허, 착하고 순한 사람이지만 실상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살아가는 사람이랄까요. 폭력적이었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죽음, 언니와 어머니의 관계. 그 모든 짐으로부터 슈코는 다마요 하숙집으로 피신해온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동료의 배신으로 해고 당한 후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현재 백수입니다. 하숙생 중 가장 맏언니인 데코는 36세의 잘 나가는 골드 미스입니다. 그런데 띠동갑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덜컥, 아기가 생겨버렸어요. 료코는 프라이드 높고 왕고집의 어떻게든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해도 찾아가기는 커녕,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매몰찬 딸래미에요. 그런 각각의 사연을 가진 세 사람의 생활에 어느 새 스며들어버린 도모미씨. 자기 나름대로 그녀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참 귀엽습니다.

 

혈연관계라고 해서 반드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건 아닐 거에요. 물론 여전히 우리 문화에서 '혈연'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지만, 어느 새 그런 경계는 허물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작가, 오누마 노리코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오누마 노리코라는 작가를 알게 해 준 [한밤중의 베이커리]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혈연관계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진득한 정을 자랑하는 '가족'이었거든요. 한밤중에만 문을 여는 베이커리에 푹 빠져서 책을 읽는 내내 빵이 먹고 싶어졌던 그 때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 때는 빵이 먹고 싶었다면, 지금은 어디 이런 하숙집 없나 궁금합니다. 타인이더라도 피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가족만큼 깊은 정을 나누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즐겁고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책이었어요. 오누마 노리코의 따뜻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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