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문장 1 - 고대와 현대, 시공을 뛰어넘은 로맨스의 고전
호소카와 치에코.호소카와 후민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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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홋. 오랜만에 추억의 만화를 읽었습니다. 제 손으로 책을 산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부지 친구분이 대형서점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저희 남매를 초대하셨습니다. 그 때도 책이라면 껌뻑 넘어가는 저라서 정신없이 고른 책들 중 몇 권은 놓아두고 서너 권만 받았는데 그 때 이 [왕가의 문장]을 소설로 만든 책이 끼워져 있었어요. 1,2권으로 되어 있던 그 책을 하룻밤에 단숨에 읽어버리고 단꿈을 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부터 저의 터무니없는 꿈도 시작되었죠. 저는 정말 21세기가 되면 타임머신이 만들어질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타임머신이 만들어지면  꼭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서 이 책의 주인공인 캐롤처럼 멋진 소년왕과 결혼하겠다구요. 그렇게 애정하던 주인공들을 만화로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그런데 아직도 완결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읽은 그 소설도 불법으로 만들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그 후에 읽은 만화도 해적판이라고 하니 말이에요. 

이번에 나온 [왕가의 문장] 은 어렸을 때는 <나일강에 피는 꽃>으로 알려졌던 그 만화의 정식 한국어판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만화에 풍덩 빠져 있어서 시험 기간 중에도 만화책을 읽다가 어무니께 호되게 혼난 기억이 나요. 지금도 아예 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만화는 소장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왕가의 문장] 을 보니 웃음이 나요.  내가 정말 이 만화를 읽고 그렇게 수많은 밤을 두근거리며 지새웠나 싶어서요;; 덕분에 이집트와 고대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고, 역사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만화이긴 한데 갑자기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라는 생각에 허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마 투탕카멘 왕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그 왕의 미라를 발견한 학자들과 인부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아서 '미라의 저주'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이 만화의 기본적인 줄기는 바로 그 사건이에요. 여주인공 캐롤의 아버지가 3천년 전에 묻힌 왕의 무덤을 발견했는데, 그의 미라와 함께 그를 사랑했던 누이 아이시스의 미라도 같이 묻혀있었던 거죠. 왕의 무덤을 둘러보던 중 고대어가 적힌 점토판이 깨지면서 아이시스의 미라가 깨어나고, 그녀는 동생의 편안한 잠을 방해한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하나씩 살해합니다. 캐롤의 목숨도 위협받지만 고고학 교수가 점토판을 맞추면서 아이시스는 고대로 돌아가게 되고, 그 때 캐롤도 데려가게 돼요. 그리고 이어지는 캐롤과 소년왕 멤피스의 사랑-이 주된 내용입니다. 
 

요렇게 내용을 되짚어보니 정말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 주인공 멤피스는 말 그대로 나쁜남자, 요즘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쭉 이어져 온 영원한 여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멤피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고 막 대하면서도 여주인공 캐롤에게만은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는 남자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왕'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처음에는 캐롤에게도 난폭하게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만 캐롤을 사랑하게 되면서 부드럽고 자애로운 남자로 변모해 갑니다. 단! 요것은 만화이니, 소녀분들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3천년 전의 고대로는, 어찌해도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예전에는 캐롤과 멤피스의 사랑만 보였는데, 이제는 아이시스의 사랑도 눈에 들어오네요. 일방적이고 잘못되긴 했지만 멤피스에 대한 그녀의 사랑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매가 결혼하기도 했다는 것!) 이 새삼스레 절절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절절함을 반감시켜버리는 유치한 대사도 있어, 가끔 풋!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저희 부모님도 만화를 대체 왜 보느냐고 하시는데요, 꿈과 희망을 키우기에 만화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애정하는 만화 중 하나가 [유리가면]인데, 가끔 꺼내보면서 다시 힘을 내곤 하거든요. 사랑으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꿈과 공상으로 인해 감성적으로 얼마나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옆에 이 [왕가의 문장]을 두고 풋풋, 웃음을 터뜨리거나 살짝 긴장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 추억의 만화로 즐거웠어요. 얼른 완결이 나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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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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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부모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 참 좋아졌어. 우리 때는 이런 거 상상도 못했는데" 그럼 저는 불과 2,30년만에 크게 변화한 세상을 새삼 둘러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2,30년 후를 살아갈 인생들에게 작은 질투도 합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과학의 달 행사때마다 그렸던, 우리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어쩌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한 번쯤은 그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기도 해요. 그런 질투와 욕망은 그 세상 속에서 정말 살아보고 싶다, 가 아니라 그저 한 번 보고 싶다의 선에서 끝납니다. 현실의 저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별로 관심도 없고, 생활이 디지털화되어 갈수록 아날로그적 생활에 깊은 정을 느껴가고 있는 정도니까요. 모든 것은 순리대로. 그것을 거스르려고 하면 더 심한 부작용과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조금씩 다가가고 있을 '죽음'도요.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은 순리에 맡긴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보고 싶은 것이 우리들의 진심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젠가 우리도 유비쿼터스 (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 초기 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그런 우리의 상상과 바람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회, 그 곳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아내 '이후'를 암으로 잃은 남자 홀. 그녀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의 앞에 어느 날 이후로부터 메일이 도착합니다. "여보, 나야. 잘 지내?" 그 메일에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바이앤바이의 사이트 주소가 적혀 있었죠. 큰 혼란과 두려움 앞에 선 홀. 그는 망설이지만 결국 가상의 세계로 아내를 찾으러 떠납니다.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지하세계로 떠나는 것처럼. 

[굿바이, 욘더] 에서 나타난 것을 정리해보면, 죽음으로 내세워진 시간의 유한성과 존재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에요.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순간의 고통,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픔. 그 모든 것이 '죽음'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진부한 표현일지라도 시간의 유한성에 의해 그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지 않고 무한하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소중한 하루를 위해 열심히 뛰고, 사랑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오래 있고싶어 하며,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은 아마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물론 욘더와 같은 세상은 우리에게 큰 유혹이겠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입니까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과연 그들의 사랑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 지를.

[굿바이, 욘더] 는 죽은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 '영원'에 이끌려 많은 사람들이 욘더로 들어오고자 하지만 욘더가 과연 진실일까요? 기술 발달로 인해 만들어진 세계, 어떻게 죽은 사람들의 의지가 가상 세계에서 만나 영원한 행복을 약속할 수 있는 걸까요? 이성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이 책으로 인해 꽤 머리가 복잡해지실 거에요;;)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욘더에서 이후와 홀의 아이는 자라지 않습니다. 그저 머무는 거죠. 이후와 홀의 시간도 '그저' 흘러갑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 어떤 노후를 마련하겠다, 무엇을 해서 행복해지겠다,같은 이쪽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활발한 에너지를 보이지 않아요. 그런 삶이 정말로 행복인지, 그리고 '진짜'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 될 겁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리뷰를 적는 이 순간도 제가 이 책을 제대로 이해했는 지 의문이 듭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작가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중간중간 집중력이 끊기는 것이, 뭐랄까,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토막토막 끊기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미래 세계의 발달된 기술에 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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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비가
쑤퉁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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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뭐라 정의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책을 읽었습니다. 쑤퉁의 [화씨비가]. '화씨의 슬픈 노래'라고 해석하면 될까요. 거칠어보이는 손이나 그 사이에서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붉은 실은 처연함마저 느끼게 해요. 어쩐지 먹먹해지는 가슴을 안고 책장을 열었는데 그 곳에서 벌어지는 '말(言)들의 향연'에 그만 화들짝 놀라고 말았답니다. 쑤퉁의 작품 중 읽어본 것은 [측천무후] 딱 하나인데, [측천무후]의 분위기는 절제와 중후, 였어요. 아무래도 등장하는 인물이 인물이니만큼 그런 분위기가 배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화씨비가]의 분위기는 '이게 정말 같은 작가가 쓴 글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뭇 달랐습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장통 속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희노애락' 정도가 가장 비슷하다고 할까요. 시장이 주무대는 아니지만요.

이야기는 화진더우가 재판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의 이야기인즉슨, 다니던 직장의 창고에서 아내가 목을 매달아 죽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화진더우가 분노와 당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 곳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결국 감옥에 들어간 그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씻을 겸, 그리고 아내의 영혼이라도 만나 자살한 이유를 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에 그만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화진더우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랍니다. 만나고자 한 아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이 살던 집과 동네를 오가며 남은 가족들을 지켜보는 그의 가슴은 답답하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합니다. 남은 자식들이 곤경에 처해도 뭐하나 도와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자식들은 자신들만 남겨두고 자살해버린 아버지를 무척 원망하는 상태. 누이가 자식들을 보살펴 주기는 하지만 생활은 어렵기만 합니다. 하나뿐인 아들의 변변찮은 행동, 처녀인 딸의 임신, 성장한 자식들의 고달픈 인생들이 화진더우의 시점에서 펼쳐집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죽어서라도 아내를 만나고자 했는데 아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자식들이 어려움에 처해도 도와줄 수도 없고, 누이에게 자식들을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제대로 전할 수 없으니 말이에요. 상황은 참 안타깝고 슬픈데 가끔 등장하는 장면들에 '풋' 터져나오는 웃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웃어도 되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거기에 절제된 느낌의 문장을 보여주었던 [측천무후] 때와는 달리 틀어놓은 수돗물인양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대사와 문장들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제 곁에 중국사람이 자리잡고 앉아서 그 대사들을 읊어주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조금 더 과장하면 한 마디도 할 수 없고 알아들을 수도 없는 중국어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작가는 화진더우를 주인공으로 그의 입을 빌려 그의 가족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거기에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현실, 절대 미화하지 않는 잔혹한 현실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에요. 하나뿐인 아들 두후가 멋지게 성공하여 집안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요, 딸들이 눈부신 신랑감을 만나 팔자를 고치는 따위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부모를 다 잃고 고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가장 현실에 존재할만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진실이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마지막에 고모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세월을 잡아당기고 싶은 듯 보이는 것이 그 애처로움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측천무후]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의 작품이지만, 어쩐지 더 친근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기도 해요. 한 번은 중후하게, 한 번은 떠들썩하게 인생을 풀어냈는데 이번에 같은 시기에 출간된 [성북지대]는 어떤 느낌을 전달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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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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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동물을 기를 수 없는 나로서는, 귀여운 냥이들이 한가득 담겨있는 책을 보며 위로로 삼을 수 밖에 없다. 언제부터 냥이들을 좋아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뚱뚱한 ' 돼지 냥이'를 본 후부터였던 것 같다. 동글동글하고 통통하고 푸근한 것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 때부터 냥이는 어둠 속에서 눈이 번쩍번쩍 빛나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쫑긋한 귀와 털북숭이 다리,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쓰다듬고 싶은 젤리를 가진 환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분명 예전에는 냥이보다 강쥐들을 더 좋아했었는데, 결국 사람의 취향도 절대불변이라는 법칙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는 듯 하다. 조건이 된다면, 이왕이면 두 마리로 냥이들과 생활해보고 싶지만 미미한 아토피 덕분에 이렇게 책으로나마 마음을 달래보는 것이다.

매일매일 좋아하는 냥이들과 생활하면서 밥을 챙겨주고, 사진을 찍고, 그들과 함께 한 일상을 이렇게 책으로 펴낸 저자가 정말 부럽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로 고양이쪽 책으로는 유명해진 그가, [명랑하라 고양이]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 책에 실린 냥이들은 도시의 냥이가 아니라 시골 냥이들이다. 그 중에는 집냥이들도 있지만 도시 못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길냥이들도 있어서 순간순간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그들과의 기쁜 만남 뒤에 또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이별의 순간들. 설레임과 가슴저밈과 아픔과 기쁨의 현장들이 이 책 한 권에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냥이들의 숫자는 좀 많다. 아직 생김과 무늬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는 이 냥이가 저 냥이 같을 때도 물론 있지만, 상세한 설명과 마을 지도, 관계도 등을 참고해 냥이들을 분별할 수 있었다. 저자의 집에서 오랫동안 급식을 받으며 생활한 자존심 센 바람이, 발라당의 달인이자 개울을 건너기 위해 자주 점프를 하던 살가운 봉달이, 봉달이가 뛰면 어느새 옆에서 같이 뛰고 있던 덩달이, 저자가 살던 동네 파란대문집의 마당고양이이자 뒷동산 산책을 즐기고 주변 풍경을 사랑하는 달타냥, 개울냥이네 가족의 수장인 까뮈, 개울냥이네의 막내인 여울이, 축사에서 생활하는 냥이, 까뮈가 낳은 아기냥이인 당돌이와 순둥이, 축사냥이 중 가장 여리게 생긴 여리 등 저자가 사료를 챙겨주고 애정을 쏟은 냥이들이 한가득이다.

바람이는 자존심이 세서 저자에게 사료를 배급받으면서도 한 번도 귀염을 떨거나 발라당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알던 냥이다. 파란대문집의 달타냥은 궁극의 산책고양이에 꽃을 좋아하며 봉달이는 최고의 발라당을 보여주는 냥이다. 축사냥이들은 더러운 물을 마셔 저자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죽은 줄 알았던 어떤 냥이는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모습을 드러내 기쁘게도 했다. 길가에서 살아가기에 늘 위험과 고통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던 냥이들의 삶들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위대하다는 깨달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많은 정성이 들어간 책이다. 순간순간을 포착해낸 멋진 냥이 사진들에, 저자의 마음이 듬뿍 들어간 글, 귀여운 일러스트와 포토카툰까지 모든 것들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번 겨울도 무척 길고 추웠는데 길가의 냥이들은 잘 지냈을지. 부디 수많은 사람들이 냥이가 무섭고 자신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소중한 그들의 생명을 경시하거나 짓궂은 장난으로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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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대한제국 100년 후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공감코리아 기획팀 지음 / 마리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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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이었다. 짧기는 했지만 황제도 있었고, 자주독립과 근대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시기. 그 후 100년 동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의 길을 걸으며 상처 섞인 발전을 이루어왔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 미만이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 육박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던 곳, 캄보디아에서 무상원조를 받을 정도의 나라가 30년 사이에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1980~1990년대의 아픔을 통해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이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의 개최국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G20 정상회의를 기념하기 위해 2010년 10월 1일부터 10월 29일까지 광화문 해치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선진화, 길을 묻다> 공개 강연회 내용을 담았다. 세계의 금융위기, 빈곤, 환경파괴, 기후변화 등 많은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바로 G20 정상회의였다. 100년 동안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엄청난 발전을 이룩해온 것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 우리는 앞으로의 세계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가 앞으로도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수환, 금난새, 김경훈, 김광웅, 김용택, 김학준, 나경원, 민경욱, 박세일, 양승룡, 유홍준, 윤평중, 이상묵, 이석연, 이석형, 이원복, 이자스민, 조봉한, 조정래, 주철환, 한비야, 홍준표. 총 22명의 인사가 명사의 강의라 해서 인터뷰 식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평범한 인문서적의 형식을 띄고 있다. 각기 자신이 처한 상황, 믿고 있는 가치에 따라 미래의 우리나라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에 대해 다양하게 피력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다. 

이제 기술로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관계맺기'를 원한다. 페이스북, 트위터가 그토록 이슈가 되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를 알고 싶어하면서 인간적인 감정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대두되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학생의 인권, 교사의 인권, 장애인의 인권, 성소수자의 인권 등 인간의 권리에 대해 그 어느 시대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은, 본래부터 중요시했어야 할 가치인 인간에게 올바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파생되는 것이 또한 '글로벌 세계'다. 말로만 하는 글로벌이 아니라 이제는 눈에도 보이는 글로벌 세계. 그 증거로 우리나라도 이제 더 이상은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문화가정이 증가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 인권, 글로벌 세상. 모두 전쟁이나 냉전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 대화를 바탕으로 이룩할 수 있는 가치들이다. 

하지만 강연 내용에는 의외로 원론적인 사항들도 더러 있어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우리가 모두 한 몸이 아닌 이상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자의 이익이 걸리면 그 상황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변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평화와 공존을 원하는 것은 모두의 희망이 아닐까. 그 누구도 전쟁으로 상처받거나 고립된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100년 동안 우리나라가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온 것처럼 앞으로의 100년, 200년이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서는 잠깐 멈춰서서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 이 책이 함께 한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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