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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의 문장 1 - 고대와 현대, 시공을 뛰어넘은 로맨스의 고전
호소카와 치에코.호소카와 후민 글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홋홋. 오랜만에 추억의 만화를 읽었습니다. 제 손으로 책을 산 최초의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부지 친구분이 대형서점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어느 날 저희 남매를 초대하셨습니다. 그 때도 책이라면 껌뻑 넘어가는 저라서 정신없이 고른 책들 중 몇 권은 놓아두고 서너 권만 받았는데 그 때 이 [왕가의 문장]을 소설로 만든 책이 끼워져 있었어요. 1,2권으로 되어 있던 그 책을 하룻밤에 단숨에 읽어버리고 단꿈을 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부터 저의 터무니없는 꿈도 시작되었죠. 저는 정말 21세기가 되면 타임머신이 만들어질 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타임머신이 만들어지면 꼭 3천년 전의 고대 이집트로 돌아가서 이 책의 주인공인 캐롤처럼 멋진 소년왕과 결혼하겠다구요.
그렇게 애정하던 주인공들을 만화로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그런데 아직도 완결이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읽은 그 소설도 불법으로 만들어졌던 게 아닌가 싶어요. 제가 그 후에 읽은 만화도 해적판이라고 하니 말이에요.
이번에 나온 [왕가의 문장] 은 어렸을 때는 <나일강에 피는 꽃>으로 알려졌던 그 만화의 정식 한국어판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때까지는 만화에 풍덩 빠져 있어서 시험 기간 중에도 만화책을 읽다가 어무니께 호되게 혼난 기억이 나요. 지금도 아예 보지 않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만화는 소장하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왕가의 문장] 을 보니 웃음이 나요.
내가 정말 이 만화를 읽고 그렇게 수많은 밤을 두근거리며 지새웠나 싶어서요;; 덕분에 이집트와 고대문명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었고, 역사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 고마운 만화이긴 한데 갑자기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라는 생각에 허탈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마 투탕카멘 왕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그 왕의 미라를 발견한 학자들과 인부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아서 '미라의 저주'라고 한동안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이 만화의 기본적인 줄기는 바로 그 사건이에요. 여주인공 캐롤의 아버지가 3천년 전에 묻힌 왕의 무덤을 발견했는데, 그의 미라와 함께 그를 사랑했던 누이 아이시스의 미라도 같이 묻혀있었던 거죠. 왕의 무덤을 둘러보던 중 고대어가 적힌 점토판이 깨지면서 아이시스의 미라가 깨어나고, 그녀는 동생의 편안한 잠을 방해한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하나씩 살해합니다. 캐롤의 목숨도 위협받지만 고고학 교수가 점토판을 맞추면서 아이시스는 고대로 돌아가게 되고, 그 때 캐롤도 데려가게 돼요. 그리고 이어지는 캐롤과 소년왕 멤피스의 사랑-이 주된 내용입니다.
요렇게 내용을 되짚어보니 정말 소녀들이 좋아할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 주인공 멤피스는 말 그대로 나쁜남자, 요즘의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쭉 이어져 온 영원한 여자의 로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멤피스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친절하고 막 대하면서도 여주인공 캐롤에게만은 온갖 정성과 사랑을 쏟아붓는 남자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왕'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처음에는 캐롤에게도 난폭하게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만 캐롤을 사랑하게 되면서 부드럽고 자애로운 남자로 변모해 갑니다. 단! 요것은 만화이니, 소녀분들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3천년 전의 고대로는, 어찌해도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에요.
예전에는 캐롤과 멤피스의 사랑만 보였는데, 이제는 아이시스의 사랑도 눈에 들어오네요. 일방적이고 잘못되긴 했지만 멤피스에 대한 그녀의 사랑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매가 결혼하기도 했다는 것!) 이 새삼스레 절절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 절절함을 반감시켜버리는 유치한 대사도 있어, 가끔 풋! 웃음이 나기도 했어요.
저희 부모님도 만화를 대체 왜 보느냐고 하시는데요, 꿈과 희망을 키우기에 만화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애정하는 만화 중 하나가 [유리가면]인데, 가끔 꺼내보면서 다시 힘을 내곤 하거든요. 사랑으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지는지, 꿈과 공상으로 인해 감성적으로 얼마나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옆에 이 [왕가의 문장]을 두고 풋풋, 웃음을 터뜨리거나 살짝 긴장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운 추억의 만화로 즐거웠어요. 얼른 완결이 나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