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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 복수의 여신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4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 앞서 출간된 다른 작품들을 읽었던 분들에게는 스포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스노우맨]과 [레오파드], [레드 브레스트]에 이번에 출간된 [네메시스]와 [박쥐]까지 국내에 총 5권이 출간되었다. 본래 작품의 진행과는 약간 순서를 달리해서 출간되었기 때문에 인물들의 등장이 다소 들쭉날쭉하고 주인공 해리의 연애전선에도 흐림과 맑음이 반복되지만 <해리 홀레 시리즈>는 매 작품, 늘 새로움과 깊이를 더해간다. 시리즈의 처음으로 접했던 [스노우맨]에도 분명 존재했을 해리 홀레의 사색적인 분위기와 작가의 철학적 사고는, 어째서인지 [스노우맨]보다 앞서 발표한 [레드 브레스트]와 [네메시스]에 더 깊게 녹아있는 것 같다. [스노우맨]과 [레오파드]에서는 끝없는 어둠의 기운만을 내뿜고 있던 해리가, [레드 브레스트]와 [네메시스]에서는 조금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 그를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영향이지 않을까.
은행에 복면을 쓴 강도가 침입했다. 그는 은행에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전혀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은 채 한 명의 여직원-스티네 그레테-을 인질로 잡고 그녀를 통해 말을 전달하며 돈을 요구한다. 점장이 25초 내에 가방에 돈을 넣지 못하면 스티네는 죽는다. 긴박한 상황에서 점장은 강도의 가방에 돈을 집어넣지만 예정됐던 25초를 넘겨 결국 스티네는 강도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리고 연이어 벌어지는 은행 강도 사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팀이 구성되지만 해리는 새로 들어온 베아테 뢴과 따로 팀을 꾸려 독자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한편 [레드 브레스트]에서 연인 사이로 발전한 라켈과 그녀의 아들 올레그가 양육권 문제로 러시아로 가 있는 사이, 해리는 예전 여자친구였던 안나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라켈이 러시아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 꺼림칙하긴 했지만, 결국 정해진 식사약속. 그런데 어쩐 일인지 눈을 뜬 해리의 기억 속에는 간밤의 기억이 없다. 안나가 입었던 까만 드레스의 잔상만 남아있을 뿐.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보지만 그녀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안나는 그녀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총이 손에 쥐어져있어 단순 자살로 사건은 매듭지어지지만 해리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고 그녀가 살해당했다는 생각에 홀로 움직인다.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엘렌 사건. 해리는 어서 이 모든 사건들을 해결하고 그녀의 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네메시스]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섬세한 작품이다. 작품 곳곳에 메시지를 암시하는 문장들이 적혀 있고, 작가가 독자와 함께 움직이고 싶어한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홀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단서와 암시를 제공하면서 이 사건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동기가 무엇인지를 같이 생각해보자고 손을 내밀고 있는 영상이 떠오른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복선과 암시들에도 마지막까지 범인을 예측하기란 힘들었다. 계속 머리를 굴려봤지만 오히려 그런 복선과 암시에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마치 그것이 함정인 양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결국 이 작품을 아우르는 하나의 단어는 ‘복수’이다. 이제 이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은 이 한 단어만 기억하시길. 그래도 문제를 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레드 브레스트]에서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잔혹사가 펼쳐졌다면 [네메시스]에도 역시 슬픈 가족사가 존재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더 잔인하게 펼쳐질 수밖에 없는 복수극. 생각해본다. 만약 그런 일이 핏줄로 얽힌 가족이 아니라 생판 남인 사람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그리 잔인할 수 있었는지를. 어쩌면 가족이기 때문에 향했던 믿음과 신뢰는 그것이 깨질 때 더 처참해질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렇다해도 그들이 선택한 길은 너무 아프고 슬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처절한 길을 포기한 그 누군가의 또 다른 선택과 대비되어 결국 복수라는 것은 그 복수의 대상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파멸로 몰아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작품에서 해리 홀레는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 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비록 [레드 브레스트]에서 파트너였던 엘렌이 살해당하기는 했지만 그의 옆에는 그를 보스처럼 떠받들고 존경하는 잭 할보르센이 있으며 해리의 괴짜 성질에 고개를 흔들기는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비아르네 묄레르 경정이 존재한다. 독특한 재능을 갖추고 있어 해리의 사건 해결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데다 이제 잭 할보르센과 사랑에 빠질 베아테 뢴도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 라켈과 올레그도.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이리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미 [스노우맨]을 통해 할보르센과 묄레르 경정이 죽거나 실종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끼는 사람들의 죽음과 실종, 라켈과의 관계 변화 등으로 해리가 품고 있는 어둠은 더 짙어져 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엘렌이 죽기는 했지만 지금 해리가 서 있는 곳은 따뜻하다. 어쩌면 [네메시스]에서 보여주고 있는 해리의 모습이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간적이고 행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부디 실종으로 처리된 묄레르 경정이라도 [레오파드] 이후 작품에서 등장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매 작품, 분위기와 재미가 남다르다. 질리지 않고 계속 기다리게 된다. ‘더’ 요구하게 된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마다 기쁘면서도 아쉽다. 이번 요 네스뵈 작가의 방한을 기념하여 특별히 출간된 [박쥐]와 [네메시스]. 일년에 한 권 꼴로 나오던 작품들이 연달아 두 권 출간되는 것을 보면 작가의 방한에 출판사와 독자들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을 한 번에 두 권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앞으로도 결코 해리 홀레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이 마음을 부디 작가가 저버리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