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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케이스 속의 소년 ㅣ 니나보르 케이스 (NINA BORG Case) 1
레네 코베르뵐.아그네테 프리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관해서는 작품 결말 부분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로 인해 온전한 가정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니나 보르. 깡마른 몸매에 짧은 머리, 약간 소년같은 외모를 한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고 난민을 위한 적십자캠프에서 일하면서 불법체류자들을 위한 의료봉사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어느 날 친구 카린의 부탁으로 기차역 보관함에서 슈트케이스 하나를 찾아오며 사건은 시작된다. 열어본 슈트케이스 안에는 어린 아이가 마취되어 죽은 듯이 누워있다. 이 아이는 누구이며 어째서 카린이 자신에게 맡긴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니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이미 피와 폭력으로 물든 잔인한 남자로부터 아이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니나.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제 발로 뛰기 시작한 시기타의 이야기가 불행한 개인사와 얽혀 함께 펼쳐지고, 결국 니나와 시기타의 만남으로 인해 어두운 진실이 밝혀진다.
작가가 여성 두 명인 것과 크게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슈트케이스 속의 소년]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니나 보르와 아이의 엄마 시기타이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아이를 갖게 된 시기타는 차마 그 사실을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채 떨어져 사는 이모를 찾아가 아이를 낳고, 낳은 아이를 입양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시 얻게 된 아이가 바로 슈트케이스 속에 있던 아이 미카스다. 이미 미카스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남편과는 별거 상태였고, 그렇게 단 둘이 지내는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기는 했지만 시기타는 무엇보다 아이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시기타와 미카스가 공원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을 때 미카스에게 초콜릿을 건네는 수상한 여자. 그 이후로 시기타는 기억을 잃은 채 병원에서 눈을 뜨고 미카스 또한 자취를 감춘다. 수사에 진전이 없고 기다릴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시기타는 더는 참지 못하고 미카스를 찾아나선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니나 보르 시리즈를 계속하기 위해 중심적인 인물로 니나 보르를 내세웠을 뿐 실제적인 주인공은 시기타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모성으로 가득차 아이를 찾아나선 시기타라는 인물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뚜렷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목적을 이루려는 남자와 역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과 살인도 불사하는 남자가 등장한다. 전자의 남자는 돈이 많고 후자의 남자는 돈이 없다. 이 둘의 차이는 그것 뿐이다. 만약 전자의 남자가 돈이 없었다면, 하지만 문제는 동일하게 발생했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살아온 환경에 따라 취한 행동이 달라졌을 수는 있겠지만 후자의 남자와 같은 선택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결국 이 둘에게 결여된 것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남이야 어떻든 자신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고 자신만 많은 돈을 챙겨 오직 눈앞의 여인과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상들에게 설명할 것이다. 사랑하는 너를 위해 그랬노라고, 이 모든 것이 너를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시기타를 응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기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므로.
주인공인 니나 보르는 슈트케이스 속에 있던 아이를 피신시키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한다. 이 아이가 고아원에 있던 아이였는지, 아니면 납치당한 아이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동유럽 여자를 만나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니나 보르의 가족들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남편과 아이들이 자신을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작품을 따라가다보면 그녀에게 가족은 오히려 벗어나고 싶은 대상처럼 보인다. 그리고 과연 니나처럼 다른 사람 일에 이리 목숨 걸고 홀로 대항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싶다. 지켜야 할 대상이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말이다. 형사도 아닌 가녀린 여자 간호사가 이런 시련들을 모두 감당해내다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중심인물인 니나의 캐릭터가 조금 빈약하기는 하지만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는 나쁘지 않다. 여성 콤비의 작품이라 그런지 어쩐지 더 섬세한 것 같기도 하고 차분한 가운데 긴장을 조율할 줄 아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시기타가 미카스에 대해 느끼는 감정, 아이를 찾기 위한 눈물겨운 여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시리즈인만큼 첫 작품만 읽고서는 완전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책날개에 예고된 다른 작품들을 통해 여성 콤비의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스릴러를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