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 변종모의 먼 길 일 년
변종모 지음 / 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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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은 병이다. 그것도 전염력이 대단한.

그리고 여행서는 두말 할 것 없이 아주 막강한 '여행병 바이러스'!

나는 그만 또 병에 걸려버렸다. 이 책 때문에.

 

바야흐로 여행의 계절.

쏟아져 나오는 여행서들 중에서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이 책이 내 눈에 화악 들어왔던 건 <짝사랑도 병이다>의 저자이기 때문.

인도를 향한 애절한 짝사랑을 달래주었던 그 책의 저자라니, 감동 보증 100%!

(참, 그 짝사랑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정말 멋진 선택이었지.

이렇게 예쁜 책이라니!

이렇게 예쁜 바이러스라면, 평생을 걸려도 행복할 것 같다!

(이런 책은 포토리뷰를 올려줘야 마땅하나, 사진 기술 꽝이므로 어쩔 수 없이 생략!)

 

이 책에는 따뜻한 가슴과 뜨거운 열정과 포근한 감동이 있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저자는 정말 가슴이 따뜻한 남자다.

책을 읽다가 마주치는 감동스러운 장면들...몇 번이나 코끝이 찡해졌다.

거기에, 여행을 위해 일곱 번째 사표를 내던지고, 전 재산을 정리해 훌훌 떠난 그 열정은 또 어떻고! 멋지다. 나는 늘 꿈만 꾸는 일을 현실로 옮기다니, 부럽다.

 

나도 아무것도 생각말고 모든 거 정리하고 훌훌 떠나보고 싶다.

"언제까지 머무를 거예요?"라고 누가 물어온다면

"레몬 나무에 레몬이 다 떨어질 때까지."라고 대답하면서.(나는 외국에서 본 나무 중에 레몬 나무가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아. 어쩌면 좋나. 정말 지독한 병이다, 여행은. 만날 짝사랑!

올 여름에는 이 사랑 좀 이루어 볼까나?

사랑하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데!

 

오늘도 책상 옆의 지구본만 뺑글뺑글 돌리며, 짝사랑의 열병으로 괴로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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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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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목, 미녀 작가, 은은한 책 표지.

나를 중국 고전 시와 사의 매력 속으로 인도한 이 책의 첫 인상.

중국 시라면 두려움부터 이는 내가 겁도 없이 덥석 이 책을 읽겠다고 덤빌 정도로 이 3박자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을 더욱 강하게 내뿜으며 나를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심장이 콩닥거리게 만들어버렸다.

 

 

죽든 살든 만나든 헤어지든

그대와의 약속 이루고자 하였네.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해로하자던.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1984년 생 젊은 작가 안이루가 재치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중국 옛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여느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마치 중국 고전 시에 관한 책이 아니라, 옛 사랑 이야기를 엮어 놓은 듯한, 그리고 그런 사랑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시를 한 편씩 곁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시에 대한 부담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 고전 시를 몰라도 좋고, 어느 시대에 활동한 시인 누구누구같은 것도 몰라도 상관없다. 재미있고 애절하고 감동적이게 이 책을 읽고 나면 중국 고전 시와 사가 한결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와 있으니까.

'이른바 격조를 낮추고 불필요한 고상함을 버리고 읽어보면 작품이 정말 좋아서, 맑은 하늘의 난데없는 소나기처럼 밝고 구성진 느낌 때문에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지은이의 조언도 마음에 쏘옥!

 

 

사람들은 바다가 깊다고 하지만

그리움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지요.

바다는 끝이라도 있지만

그리움은 아득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거문고 들고 높은 망루에 오르니

텅 빈 누각에 밝은 달빛만 한가득

상사곡을 타고 있노라니

애간장 끊어지듯 거문고 줄 끊어집니다.

人道海水深, 不抵相思半.

海水尙有涯, 相思渺無畔.

携琴上高樓, 樓虛月華滿.

彈着相思曲, 弦腸一時斷.

 

이렇게 아름다운 (그리고 쉽게 와 닿는) 시들과 함께 지은이의 아름다운 해설과 그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도 어쩐 일인지 그 옛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시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 해석 덕분이다. 중국에서는 지은이의 파격적인 시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시 해석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이 시는 이런 배경으로 씌여졌으며, 이런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런 방향으로 읽으시오, 하는 시 해석이 나는 별로다.) 그저 읽은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고 나만의 시로 간직하면 더욱 아름다운 시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다. 시 한 편을 가지고 먼 옛날로 날아가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지은이의 풍부한 상상력과, 또 그런 상상력에 힘을 실어 주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부럽다. 

 

 

사랑은 삶에서 가장 찬란한 환각입니다. 잘 익은 술처럼 때로 아득히 먼 하늘가에 닿기 전에는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128쪽)

 

사랑이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증명 받고픈 허망함입니다. 꽃불은 불이 붙어야만 찬란해질 수 있듯 말입니다.(132쪽)

 

사랑, 그것은 일순간에 마음의 문을 두드려 봄날 꽃봉오리가 터지듯 다가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서서히 잊혀져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사랑했던 이를 또는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그 순간의 달콤한 감정을 기억합니다.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을 기억.(224쪽)

 

아름다운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글들이 가득한 책. 특히, 사랑에 관한, 사람에 관한, 인연에 관한 글들이 어찌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던지 많은 글들에 밑줄을 그으며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절이 함께 온다佳人佳時幷俱는 말이 있다시피 어느 글자나 구절이 다가서는 것은 마치 천지가 개벽하던 그 시절부터 그곳에서 그대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문장에 한참 시선이 머문다. 오래전부터 내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국의 옛 시와 나의 인연이,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 모든 인생의 첫 만남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강하게 내 마음에 와 닿은 한 구절!

 

값비싼 보석이야 쉽게 구하지만

마음에 둔 낭군 얻기 어려워라.

易求無價寶, 難得有心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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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 정목일 에세이집
정목일 지음, 양태석 그림 / 문학수첩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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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필의 대가' 정목일 님의 수필집을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보았다. 그 동안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을 많이 접해봤지만, 이 글은 그 동안 읽었던 대부분의 에세이와는 달랐다. 얼마 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요즘은 진정한 수필을 보기 힘들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다. 아, 이런 글이 바로 '진정한 수필'이라는 건가? 하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책 소개에 나와 있던 '서정수필의 대가'라는 표현도 떠올랐다. 피천득 님의 글을 떠올리게도 하는 아름다운 수필집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이 책과 함께 2009년의 여름을 맞이하는 마음이 참으로 따사로웠다.

 

글의 소재는 대부분이 자연과 사람이다. 자연도 사람도 늘 우리가 대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볼 때마다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와 비슷한 장면을 보고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한 장면으로 여겨버리는 나에게는, 그 장면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승화시켜 놓은 게 어찌나 경이롭고 존경스러운지! 그래서 수필은 보면 볼 수록 '매일 똑같은' 내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느끼게 해준다. 내겐 일상의 스승같은 존재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어쩐지 고전 수필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의 느낌과 비슷한 책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왠지 옛 글들에서 이런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책장에 꽂아만 두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봐야겠다. 이 책은 내가 그 동안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수필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제목만큼이나 참으로 따듯하고 환하고 향기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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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름다운 광경은 역광이어서 눈조차 뜰 수 없다. 눈이 부셔서 오래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마음속에 담아 두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얼싸안아 일체가 되는 것이리라.

  순수, 진실, 사랑, 신비, 깨달음은 눈이 부셔서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역광인지도 모른다.(36쪽)

 

  열중하는 때는 삶을 통한 모든 체험과 지혜가 동원되는 순간이자, 영혼이 집중력의 빛을 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에 골몰해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어떤 정신력에 감전이나 된 듯한 홍조가 떠오르고, 눈빛이 강렬하게 빛난다.

  아, 열중이야말로 최선의 정신력과 노력의 결정체를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열중할 수 있는 대상과 일을 찾아 마음의 방황과 갈등을 없앨 수 있을까. 절대의 의문과 만나서 그것을 푸는 일에 몰두 하고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윤택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43~44쪽)

 

  인생은 만남과 떠남으로 이루어진다. 만남은 떠남의 시작이며 떠남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떠나는 존재이며 그 과정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이라는 표를 내고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된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185쪽)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없게 되자 알싸하던,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던 김치 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자신을 소금에 절이고 뼈와 살을 녹여서 가족들을 위해 진국 맛, 젓갈 맛을 내던 어머니. 소리 없이 자신을 발효한 삶으로 가정에 건강과 웃음을 피워 내신 어머니. 아, 어떤 업적이나 남에게 내세울 일이 없더라도, 어머니의 일생은 거룩하고 훌륭하셨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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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인의 용의자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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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던 『슬럼독 밀리어네어(Q&A)』의 저자 비카스 스와루프의 신작이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진작 사다가 책꽂이에 꽂아 놓고 여태 읽지 않았는데(주변에서 그렇게 재밌다고 강추를 하는데도 다른 책 읽느라 밀려버렸다!) 같은 저자의 새책은 나오자마자 잽싸게 읽어보았다.

 

요즘 나는 '재밌는 책'이 아니면 잘 읽어내질 못한다. 새벽 1시나 넘어야 겨우 책을 잡을 수 있는데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지친 머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꿈나라로 들어가시려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그런 '잠의 공격'을 가장 강력하게 막아 버텨낸 책이다. 요즘 책 앞에서도 속수무책으로 감기는 내 눈꺼풀을 가장 오랫동안 버티게 해준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엄청 재미있다!! 완전 재미있다!!!(재미있지 않았으면 이 두께의 책을 결코 금세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 그대로 여섯 명의 용의자가 등장한다. 일단, 용의자가 있으니 사건이 있는 건 당연지사. 용의자가 여섯 명이나 나타난 그 사건은 일명 '비키 라이 피살 사건'이다. (인류에게 복되게도) 피살당한 비키 라이는 권력과 재력을 등에 업고 나쁜 짓을 일삼는 인간 말종이다. 루비 질이라는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던 그는 (당연하게도―유전무죄 무전유죄 아니던가!) 무혐의로 풀려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를 열었다가, 그 파티 현장에서 누군가의 총에 맞아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된다.(그가 천국으로 갔으리라고는 절대 상상 할 수 없다.) 그가 피살되자마자 현장은 봉쇄되고 그 자리에서 총을 가지고 있던 여섯 명이 비키 라이 살해 용의자로 붙잡히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여섯 명의 용의자 한 명 한 명을 집중 조명해 그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중심 사건보다 더욱 흥미로운 이 여섯 명 개개인의 이야기는 그 종착역이 모두 비키 라이가 연 축하 파티장이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보이는 이 여섯 명이 그들의 삶 어느 부분부분들에서 조금씩 얽히고설켜 있다가 결국에는 운명적인 그 장소에 모두 모이는 순간, 잠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인 나를 발견했다. 이제 드디어 범인이 밝혀지려는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그 긴장감과 재미와 흥분을 어찌 설명할까!

 

물론 이 책에는 단순히 이야기로서의 재미만 있는 건 아니다. 카스트 제도로 유명한 인도에서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이라는 게 어떻게 다른 건지가 그 유머 뒤로 아프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비카스 스와루프는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상류층 사람'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가 느끼기에는) 생생하게 잘 그려내고 있다. 그가 인정많고 따뜻한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하고 내심 그의 인간성까지 넘겨짚어보았다. 그러고보니 인도 여행기는 많이 읽었지만 인도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 것이었다. 여행기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인도인이 소설 속에 묘사해 놓은 인도의 사회상을 맛볼 수 있음도 이 소설의 큰 매력이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강추'했는지 알 것 같다. 이렇게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의 책이라면 망설임 없이 읽어봐야지!(형만한 아우 없다는 속담을 생각한다면,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얼마나 더 재밌을까!! 흥분된다.) 이제 더이상 다른 책에게 양보할 것 없이 다음 책으로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펼쳐 들어야겠다. 내게는 지금 '재밌는 책'이 절실히 필요하니까! 나와 같은 이유이든 다른 어떤 이유이든, 아니면 아무 이유 없든, 여하튼 재밌는 책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적극 권할테다. 이 책은 내가 '강추'한다!

 

그래서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살해 당한 비키 라이의 아버지? 인도 뭇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섹시 여배우 샤브남 삭세나? 비키 라이의 여동생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휴대전화 도둑 문나 모바일? 간디의 영혼이 몸에 들어온 모한 쿠마르? 신성한 돌을 찾기 위해 인도로 날아온 소안다만제도의 원시인 에케티? 펜팔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인도 여인을 만나러 온 미국인 래리 페이지?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누가 비키 라이를 죽인 진짜 살해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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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살인에도 카스트제도가 적용된다. 가난한 인력거꾼의 피살 사건은 하나의 통계 수치에 불과하며 신문 한 귀퉁이에 묻혀버릴 뿐이다. 헤드라인을 장시하는 건 유명 인사의 피살 사건이다. 왜냐하면 살해된 부자와 유명 인사 이야기는 희귀 상품이기 때문이다. 코카인을 과용하거나 재수 없는 사고만 당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별 다섯 개짜리 삶을 살면서 혈통과 재산을 잔뜩 불린 다음, 인생의 황혼 녘에 가서야 별 다섯 개짜리 화려한 죽음을 맞이하는 법이다.(11쪽)

 

 

  "미친놈, 결국 진실을 기억해냈군. 내손의 별명이 갈고리다. 용의자들로부터 사실을 긁어내는 솜씨가 죽이거든."

  에케티가 뺨을 어루만졌다. "사람 때리는 걸 좋아하시나요?"

  판데이가 어깨를 으쓱였다. "매가 없으면 범인도 없어. 그래서 이런 식으로 일할 수밖에 없지. 그러다가 결국 구장 씹는 것처럼 개똥 같은 습관이 되고 마는 거야."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때린다는 건가요?"

  "솔직히 말하면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다. 우린 기껏해야 약자와 가난한 자만 건드리거든. 보복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형사가 의외의 고백을 했다.(414쪽)

 

 

  "인생이 다 그런 거야. 모퉁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 누가 알겠나?"

  "하지만 난 청소부 아들에 불과한걸요."

  "그래서? 조니 워커는 버스 운전사였지. 라지 쿠마르는 하급 관리였고, 메무드는 택시 운전사였어. 행운의 여신이 노크할 땐 문만 보지, 그 문 뒤에 누가 있는지까지 챙기진 않아."(5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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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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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김탁환 님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소설이 아니다. 먼저 읽은 책은 『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이번에는 『천년습작』이다. 앞의 책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김탁환 작가의 책읽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었고, 이번에 만난 책 은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김탁환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읽기와 쓰기 분야에서 김탁환 작가의 책을 각각 한 권씩 만나다니, 행복한 인연이다.

 

이 강의는 총 16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강의를 하기 위한 (저자가 과거에 읽었던) 대표적인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을 중심으로 해서 작가의 특강은 진행된다. 지금까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내가 본 몇 안 되는 책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형식으로 글쓰기를 알려준다. 일단 '이렇게 쓰라, 저렇게 쓰라'하는 가르침은 없다. 마치 앞서 읽은 『김탁환의 독서열전』 속편인 듯, 작가가 읽은 책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 하지만 거기에 바로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이 숨어 있다는 것.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중략…… 이 강의를 위해 다시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 손바닥으로 쓸어보았습니다. 삐뚤삐뚤 그어놓은 많은 밑줄이 제 가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이 밑줄들이 만든 긴 흐름의 끝에 제가 서 있는 것이겠지요. 작가란 이렇듯 항상 밑줄 긋는 자이면서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일 겁니다.(16~17쪽)

 

이 책 속에는 바로 그 '항상 밑줄 긋는 자'인 저자의 모습,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저자의 열정이 담겨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해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저마다의 방향으로 찾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에 대해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이라는 정의를 괜히 내린 것이 아님을 알겠다. 그렇게 수많은 문장을 밑줄을 그으며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글쓰기 이야기를 따라가고, 작가의 방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소설의 영원한 짝꿍인 영화 이야기도 듣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강의 시간이 된다. 정말 가슴 벅찬 종강시간이다. 이 마지막 강의는 구구절절 모두 옮겨 적어 놓고 싶을 정도였다. 김탁환 작가가 강사로서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는 우리가 이 강의를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번이라도 글쓰기에 뜻을 품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나처럼 막연히 글쓰기에 어떠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강의를 꼭 들어볼 것을 권한다. 정말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다.

 

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百年學生)'입니다.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천년습작(千年習作)'을 각오해야겠지요. 좋은 글 한편 품고 문 두드릴 그날까지 맛난 술 익히며 기다리겠습니다. 2009년 봄날 꽃 진 자리에서 김탁환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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