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 정목일 에세이집
정목일 지음, 양태석 그림 / 문학수첩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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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필의 대가' 정목일 님의 수필집을 이번에 처음으로 만나보았다. 그 동안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을 많이 접해봤지만, 이 글은 그 동안 읽었던 대부분의 에세이와는 달랐다. 얼마 전에 읽은 어떤 글에서 요즘은 진정한 수필을 보기 힘들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났다. 아, 이런 글이 바로 '진정한 수필'이라는 건가? 하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책 소개에 나와 있던 '서정수필의 대가'라는 표현도 떠올랐다. 피천득 님의 글을 떠올리게도 하는 아름다운 수필집 『햇살 한 줌 향기 한 줌』, 이 책과 함께 2009년의 여름을 맞이하는 마음이 참으로 따사로웠다.

 

글의 소재는 대부분이 자연과 사람이다. 자연도 사람도 늘 우리가 대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거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볼 때마다 놀라울 따름이다. 저자와 비슷한 장면을 보고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한 장면으로 여겨버리는 나에게는, 그 장면 하나하나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승화시켜 놓은 게 어찌나 경이롭고 존경스러운지! 그래서 수필은 보면 볼 수록 '매일 똑같은' 내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다운지 느끼게 해준다. 내겐 일상의 스승같은 존재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어쩐지 고전 수필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이 책의 느낌과 비슷한 책들을 더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데, 왠지 옛 글들에서 이런 향취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책장에 꽂아만 두고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봐야겠다. 이 책은 내가 그 동안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수필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제목만큼이나 참으로 따듯하고 환하고 향기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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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아름다운 광경은 역광이어서 눈조차 뜰 수 없다. 눈이 부셔서 오래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마음속에 담아 두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얼싸안아 일체가 되는 것이리라.

  순수, 진실, 사랑, 신비, 깨달음은 눈이 부셔서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역광인지도 모른다.(36쪽)

 

  열중하는 때는 삶을 통한 모든 체험과 지혜가 동원되는 순간이자, 영혼이 집중력의 빛을 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일에 골몰해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어떤 정신력에 감전이나 된 듯한 홍조가 떠오르고, 눈빛이 강렬하게 빛난다.

  아, 열중이야말로 최선의 정신력과 노력의 결정체를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열중할 수 있는 대상과 일을 찾아 마음의 방황과 갈등을 없앨 수 있을까. 절대의 의문과 만나서 그것을 푸는 일에 몰두 하고 싶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윤택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43~44쪽)

 

  인생은 만남과 떠남으로 이루어진다. 만남은 떠남의 시작이며 떠남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떠나는 존재이며 그 과정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이라는 표를 내고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의 승객이 된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서 내려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185쪽)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없게 되자 알싸하던,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던 김치 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자신을 소금에 절이고 뼈와 살을 녹여서 가족들을 위해 진국 맛, 젓갈 맛을 내던 어머니. 소리 없이 자신을 발효한 삶으로 가정에 건강과 웃음을 피워 내신 어머니. 아, 어떤 업적이나 남에게 내세울 일이 없더라도, 어머니의 일생은 거룩하고 훌륭하셨다.(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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