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 중국 고전 시와 사의 아름다움과 애수
안이루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아름다운 제목, 미녀 작가, 은은한 책 표지.

나를 중국 고전 시와 사의 매력 속으로 인도한 이 책의 첫 인상.

중국 시라면 두려움부터 이는 내가 겁도 없이 덥석 이 책을 읽겠다고 덤빌 정도로 이 3박자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매력을 더욱 강하게 내뿜으며 나를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심장이 콩닥거리게 만들어버렸다.

 

 

죽든 살든 만나든 헤어지든

그대와의 약속 이루고자 하였네.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해로하자던.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1984년 생 젊은 작가 안이루가 재치있는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중국 옛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여느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 마치 중국 고전 시에 관한 책이 아니라, 옛 사랑 이야기를 엮어 놓은 듯한, 그리고 그런 사랑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시를 한 편씩 곁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시에 대한 부담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중국 고전 시를 몰라도 좋고, 어느 시대에 활동한 시인 누구누구같은 것도 몰라도 상관없다. 재미있고 애절하고 감동적이게 이 책을 읽고 나면 중국 고전 시와 사가 한결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와 있으니까.

'이른바 격조를 낮추고 불필요한 고상함을 버리고 읽어보면 작품이 정말 좋아서, 맑은 하늘의 난데없는 소나기처럼 밝고 구성진 느낌 때문에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는 지은이의 조언도 마음에 쏘옥!

 

 

사람들은 바다가 깊다고 하지만

그리움에 비하면 반도 되지 않지요.

바다는 끝이라도 있지만

그리움은 아득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거문고 들고 높은 망루에 오르니

텅 빈 누각에 밝은 달빛만 한가득

상사곡을 타고 있노라니

애간장 끊어지듯 거문고 줄 끊어집니다.

人道海水深, 不抵相思半.

海水尙有涯, 相思渺無畔.

携琴上高樓, 樓虛月華滿.

彈着相思曲, 弦腸一時斷.

 

이렇게 아름다운 (그리고 쉽게 와 닿는) 시들과 함께 지은이의 아름다운 해설과 그녀의 상상력이 빚어내는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 머릿속에도 어쩐 일인지 그 옛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시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 해석 덕분이다. 중국에서는 지은이의 파격적인 시 해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한다. 하지만 시 해석에 '정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오히려, 이 시는 이런 배경으로 씌여졌으며, 이런 의미를 담고 있으니 이런 방향으로 읽으시오, 하는 시 해석이 나는 별로다.) 그저 읽은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고 나만의 시로 간직하면 더욱 아름다운 시 읽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다. 시 한 편을 가지고 먼 옛날로 날아가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지은이의 풍부한 상상력과, 또 그런 상상력에 힘을 실어 주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부럽다. 

 

 

사랑은 삶에서 가장 찬란한 환각입니다. 잘 익은 술처럼 때로 아득히 먼 하늘가에 닿기 전에는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128쪽)

 

사랑이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증명 받고픈 허망함입니다. 꽃불은 불이 붙어야만 찬란해질 수 있듯 말입니다.(132쪽)

 

사랑, 그것은 일순간에 마음의 문을 두드려 봄날 꽃봉오리가 터지듯 다가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서서히 잊혀져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사랑했던 이를 또는 무지개처럼 찬란했던 그 순간의 달콤한 감정을 기억합니다.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을 기억.(224쪽)

 

아름다운 시만큼이나 아름다운 글들이 가득한 책. 특히, 사랑에 관한, 사람에 관한, 인연에 관한 글들이 어찌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던지 많은 글들에 밑줄을 그으며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절이 함께 온다佳人佳時幷俱는 말이 있다시피 어느 글자나 구절이 다가서는 것은 마치 천지가 개벽하던 그 시절부터 그곳에서 그대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라는 문장에 한참 시선이 머문다. 오래전부터 내가 다가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국의 옛 시와 나의 인연이, 이제 시작되는 것 같다. 모든 인생의 첫 만남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가장 강하게 내 마음에 와 닿은 한 구절!

 

값비싼 보석이야 쉽게 구하지만

마음에 둔 낭군 얻기 어려워라.

易求無價寶, 難得有心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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