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습작 -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올들어 김탁환 님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소설이 아니다. 먼저 읽은 책은 『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이번에는 『천년습작』이다. 앞의 책은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김탁환 작가의 책읽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었고, 이번에 만난 책 은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김탁환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읽기와 쓰기 분야에서 김탁환 작가의 책을 각각 한 권씩 만나다니, 행복한 인연이다.

 

이 강의는 총 16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강의를 하기 위한 (저자가 과거에 읽었던) 대표적인 작품이 있고, 그 작품을 중심으로 해서 작가의 특강은 진행된다. 지금까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내가 본 몇 안 되는 책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형식으로 글쓰기를 알려준다. 일단 '이렇게 쓰라, 저렇게 쓰라'하는 가르침은 없다. 마치 앞서 읽은 『김탁환의 독서열전』 속편인 듯, 작가가 읽은 책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 하지만 거기에 바로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이 숨어 있다는 것.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중략…… 이 강의를 위해 다시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꺼내 손바닥으로 쓸어보았습니다. 삐뚤삐뚤 그어놓은 많은 밑줄이 제 가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이 밑줄들이 만든 긴 흐름의 끝에 제가 서 있는 것이겠지요. 작가란 이렇듯 항상 밑줄 긋는 자이면서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일 겁니다.(16~17쪽)

 

이 책 속에는 바로 그 '항상 밑줄 긋는 자'인 저자의 모습,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저자의 열정이 담겨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해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저마다의 방향으로 찾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수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에 대해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이라는 정의를 괜히 내린 것이 아님을 알겠다. 그렇게 수많은 문장을 밑줄을 그으며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글쓰기 이야기를 따라가고, 작가의 방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소설의 영원한 짝꿍인 영화 이야기도 듣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강의 시간이 된다. 정말 가슴 벅찬 종강시간이다. 이 마지막 강의는 구구절절 모두 옮겨 적어 놓고 싶을 정도였다. 김탁환 작가가 강사로서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는 우리가 이 강의를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중요하다. 한 번이라도 글쓰기에 뜻을 품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나처럼 막연히 글쓰기에 어떠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강의를 꼭 들어볼 것을 권한다. 정말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다.

 

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百年學生)'입니다.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천년습작(千年習作)'을 각오해야겠지요. 좋은 글 한편 품고 문 두드릴 그날까지 맛난 술 익히며 기다리겠습니다. 2009년 봄날 꽃 진 자리에서 김탁환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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