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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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옷이 나를 입고 있었다? 이것 또한 황당 시츄에이션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거지? 그래, 세상에는 별 이상한 일이 다 일어 날 수 있으니까 옷이 나를 입고 있다고 치고, 옷이 나를 입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안된다.

<보이지 않는 바비>를 읽을 때 생각이 난다. 분명 나는 존재하는 데 거울 속의 나는 보이지 않는다. 그 황당함.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의 '나'도 그렇게 황당했을 것이다.

황당함을 꼭꼭 눌러 두고 '녀석의 존재'를 나만 아는 존재로 치부하기로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기의 시야 밖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핸드폰을 사 들려주고, 학원에, 독서실에 감시카메라를 달고...... 그들에 관하여는 작은 것 하나라도 다 알아야 되겠다는 듯 행동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컴퓨터의 보안을 뚫듯 어른들의 감시망을 피하는 그들만의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에 제시된 방법은 어쩜 구태의연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몰라서 속기도 하지만 믿고 싶은 마음에 알면서도 어른들이 모른 척 하는 일이 더 많음을 아이들은 알까?

어찌 되었든 연애인을 좋아하고, 아바타를 꾸미며 이것저것 예쁜 것을 좋아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고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나이인 청소년들은 쇼핑을 간다.

쇼핑을 가기 전에 변신은 필수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는 것은 안다. '청소년은 청소년다워야 한다.'는 것도 안다. '청소년답다'는 게 뭔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원하는 것은 해 줄 수도 있다. 그럼 제대로 대접을 하란 말이야. 어리다고 무시하지 말고 그대로의 청소년을 인정하란 말야. 어리다고 무시하고, 부당한 대접을 받으니까 우리는 우리를 지키기 위하여 변신은 필수. 부모에게는 청소년기의 예쁜 딸로 있기 위하여 부모님들이 보기에 무난한 복장을 하고 나왔지만 쇼핑을 할 때는 우리도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은 포장을 해야 해. 몰래, 화장실에서 포장을 하는 것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게 어른들을 위한 나름대로의 작은 배려아닐까?

어찌 되었든 우리의 쇼핑멤버들은 동대문 시장을 간다. 그들의 톡톡 튀는 개성은 캐릭터를 살아있게 했다. 지나치게 강한캐릭터에 이들이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지? '하는 의문이 든다. '그 녀석'의 끊임없는 속삭임은 자신과 친구들을 객관화한다. 나, 그리고 친구들......

우여곡절을 겪으며 쇼핑에서 돌아오는 나는 세일러문으로서의 역할은 끝이 났다. 보통의 학생으로 돌아가 나는 일상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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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 - 현 교육 시스템에서 아들을 성공시킬 학습 전략 8가지
마이클 규리언.캐시 스티븐스 지음, 고정아 옮김 / 큰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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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아이들이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라고 읽었다. 아들을 아이들로 읽었다고 딸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니 딸아이도 처음에는 그랬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더라고 해 그럴 소지가 있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도입 부분에서는 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는구나 싶지만 읽어가다가 보면 아이들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고등학교의 남녀 공학의 경우 여학생의 성적이 남학생보다 우수하다는 인터넷 신문 보도를 보았다. 심지어는 아들을 자녀로 둔 부모의 많은 수가 남녀 공학보다는 남자 중,고등학교를 선호하며 그 이유는 내신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다>라는 최근 매체를 통하여 보이고 있는 여자들의 성적이 남자들에 비하여 좋다는 것을 책 광고로 이용하고 있다.

책을 읽어 가면서 교육에 과연 생물학적 성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 해 본다.


남자의 두뇌는 평균적으로 여자의 두뇌보다 공간-기계적 자극에 더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도표, 그래프 등의 체계적 제시를 잘 기억한다. 또 도파민 수치가 높고 소뇌의 혈류량이 많아 신체 움직임을 통해 배우는데 반해

여자 아이는 뇌량(두 반구를 연결하는 조직 다발)이 많아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 점수가 높고 여아는 덜 충동적이며, 브로카, 베르니케 영역(두뇌의 언어 중추)이 더 빨리 발달한다고 지은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실에서 남.녀 발달 단계와 생물학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채 같은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현 교육 시스템은 얼마간은 여학생들이 적응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구조임도 인정을 한다. 때문에 남자 아이들의 성적이 여자 아이들에 비하여 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것이 시스템만의 문제일까?

  

"남자 아이의 본성에 맞는 교육이 아들을 성공으로 이끈다." 고 지은이는 주장하면서 아들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육 시스템이 문제지 학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교육 시스템이 문제라고 했지만 현재 진행되는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본성을 이해하는 공교육을 주장하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된다. 본성을 이용한 교육은 공교육에서 논의되기보다는 아이들을 육아하는 방식에서 논의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이야기하고, 교육적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실제적으로 내 아이를 어떻게 도와 줄 것인가 고민하는 게 좀 더 현명하다.

우선은 내 아이의 특성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아이에게 맞는 양육 방법을 찾아주고 그 양육방법 속에서 교육을 논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먼저 안전한 ‘애착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한다.  내가 행복한 상황에서는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 것이다. 아이들도 애착관계가 올바르게 형성이 되어 있다면 주변의 것들을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인 틀 속에 아이들을 넣어 고 그 일반적인 잣대로 아이들을 측정하는데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평가에 연연하기보다는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해주고 잘하는 부분은 격려를 해 주어 그 아이의 개성대로 크게 하는 게 올바른  교육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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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12-0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그렇게 책 표지를 봤어요..내신 때문에 정말 남녀공학 기피하는데 함께 어울려 지내는 편이 훨씬 좋다는 것을 알겠더라구요..한참 성장기에 떨어져 궁금해 하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서로 잘하는 것도 배우며 못하는것은 서로에게 배우기도 하구요..그런데 저는 무조건 입시 제도가 문제라고 늘 여김니다..이렇게 생각하나 저렇게 생각하나 아이들은 무럭 무럭 성장하고 잇지만 말이지요..안타까운 현실에 늘 아이들에게 미안해집니다..하지만 사랑을 듬뿍 주며 믿어주고 잘 키워야겠지요??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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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황우석 문제로 떠들썩할 때, 사실 나는 황우석 사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우리나라 과학자가 줄기세포를 만들어내서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거짓말이었더라는 것 정도밖에는 알지 못했고, '어차피 나랑은 별로 관계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별 관심도 갖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가 거짓말을 한 게 밝혀졌을 때도 그냥 혀를 끌끌 찼을 뿐, 나는 황우석에 대해서도 PD수첩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정이 없다.

사실 책을 다 읽었지만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전에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조금 검색을 해 보았는데, 한학수PD를 믿는 사람들은 황우석 교수의 파렴치한 행동을 욕하고 있었고 황우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PD를 마치 거짓말쟁이에 매국노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나는 어느 누구 편도 아니었고, 어떤 선입견 없이 책 내용만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편을 드는 건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황우석 사건에 대해 얼마나 잘 서술하고 있는지 보다, 그것을 쓰는 과정에서 녹아든 노력과 책 자체에 대해 평가하는 시각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처음 글을 읽어나가며 '굉장히 자극적이고 상업적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현직 방송PD에 있는 사람이 쓴 글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잘 끌 수 있는지, 어떤 표현을 써야 더 흥미로운지를 잘 알고 그걸 바탕으로 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내용을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 없게 구성되어 있어서 한번 읽기 시작하니 쉽게 끝을 볼 수 있었다. 독자가 책을 중간에 놓지 못한다는 것은 그 책이 재미있고 내용 전달이 빠르다는 뜻이다. 나도 책을 읽으면서 전혀 알지 못했던 황우석 사태와 잡다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던 것처럼.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로 된 텍스트에 불과했지만 마치 머릿속에서는 한 편의 시사다큐를 보고 있는 듯했다.

한PD가 6개월간이나 전문 지식과 자문을 얻어가며 취재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생명공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내가 읽기는 조금 벅찼다.

내내 무슨 세포라인이니 스키드 마우스니 하며 잘 모르는 내용을 열거하는데 나로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얘기뿐이었다. 한PD역시 취재 전에는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다고 하니, 그 방대한 자료를 이해하기 위해서 6개월 동안 얼마나 열심히 취재했을지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민감한 사항을 취재하다 보니 주변의 도움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조사를 했을 텐데 이 정도의 양을 책으로 펴내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취재를 위해 일상을 바칠 정도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문장 곳곳에서 당시의 노력이 엿보인다. 유혹도 많고 위험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신념을 위해 끝까지 진실을 쫓는데, 보면서 굉장히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저 정도의 강한 믿음을 가지고 행동하면 안 될 게 없겠다는 느낌이었다. 보통 나 같은 심약한 사람은 그런 위험부담이 큰일에는 섣불리 도전할 생각을 갖지 못할 텐데, 한PD는 그런 면에서 굉장한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황우석 문제가 아직은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감추어진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어느 한 쪽을 맹목적으로 믿고 다른 쪽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의 모든 내용을 의심하거나 비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 나는 지식도 얕고 황우석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생각도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 책에서 '진실을 쫓는 신념'과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다. 황우석을 비판한 내용 자체만을 읽지 말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느껴가며 읽을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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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는 읽지마세요, 선생님 우리문고 13
마가렛 피터슨 해딕스 지음, 정미영 옮김 / 우리교육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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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티시. 그러나 평범하다는 것은 외부에서 볼 때 그런 것이지 티시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아니, 티시도 또래 아이들 처럼 평범하게 부모의 지원 하에 학교에 다니고 싶고 아이들과 그 아이들과 부딪히며 울고 웃고 하고 싶다.  그러나 티시의 환경은 티시를 평범에서 많이 벗어난 생활을 하게 한다.

우선 마초적인 기질의 아빠는 보통의 아빠들처럼 가정을 이끌지 못한다.  자기 듯대로 안 되면 주먹을 휘두르고 바람을 핀다. 게다가 걸핏하면 집을 나간다.  아빠가 그렇다면 엄마라도 아이들을 충분히 돌보고 아이들이 바르게 커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엄마 역시 아빠의 마초적 기질 하에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주장을 하나도 못하고 아빠에게 절절 매며 살고 있다.  아빠가 집을 나가면 열심히 일을 해서 가정을 끌어 가려하지만 엄마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지라 티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계를 돕고 동생을 돌본다. 아르바이트로 가계를 돕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친구들은 자기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티시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튼 다른 아이들과 많이 다른 환경 속에서 살지만 티시는 자신의 처지를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 짊어지고 갈뿐. 학교 과제물로 티시는 일기를 써야만 한다. 던프리 선생님은 선생님이 일기를 읽기를 원치 않으면 일지 말라고 일기 앞머리에 써 놓으면 자기는 과제를 했다는 것과 어느 정도의 분량을 썼는가만 보겠다고 한다. 매번 '읽지 마세요. 선생님' 이란 표시를 하면서 티시는 정말 선생님이 읽지 않는건가? 읽고도 모른 체하는 걸까 반신반의한다.  일기 속에 티시는 자기의 아버지 이야기, 엄마 이야기,  아르바이트 현장의 이야기, 학교 친구들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음을 안다.

잠깐 나타났던 아빠, 엄마는 아빠에게 의지하려고 했지만 아빠는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불쑥불쑥 화를 내고 엄마는 전전긍긍하고 동생 매트는 엄마 등 뒤에서, 누나 등 뒤에서 아빠를 빼꼼히 바라다보고 있다.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났고 그로 인하여 엄마는 혼자 감당 해 낼 세상의 짐에 절망한 듯 자기 안에 갇혀 며칠을 보내다가 불현듯 아빠를 찾아오겠다며 집을 나간다.

어른의 부재. 티시는 동생 매트의 보호자기 되어 최선을 다해보지만 집세, 전기세, 수도세 및 각종 공과금, 생활비...... 그것은 아직 고등학생인 티시 혼자 감당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버틸 수 있는 한도까지 버티다가  티시는 '제발 읽어주세요 선생님.'하는 일기를 쓰게 된다. 티시의 일기를 공개 하면서 티시는 혹여 아동 복지과에서 동생과 가지를 찢어 놓을까 두려워하고 부모님이 벌을 받을까 겁을 낸다. 비로소 알게 된 티시의 상황에 던프리 선생님은 놀란다. 아동복지과 에 알리는 한편 티시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티시를 도울 수 있는 한도에서는 최대한 도우려고 노력을한다. 티시는 아동복지과의 도움으로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내졌고 심리 치료를 받게 된다.  

이글을 보면서 나는 던프리 선생님을 생각 해 보았다. 아이들과 한 약속-일기를 보지 마라면 보지 않겠노라는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현장에도 이런 선생님이 곳곳에 많이 있으려니 하는 믿음을 가져본다. 던프리 선생님이 비록 자신이 학생들과 한 약속을 지키는 바람에 티시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더래도 말이다. 어른의 무책임이 아이들을 얼마나 위험 속에 빠지게 하는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가 하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이었다. 티시가 자기 동생을 건사하려는 노력이 정말 눈물겨웠다. 현실을 수용하고 어떻게 든 살아가려는 티시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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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임의 비밀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6
로버트 오브라이언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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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자전거를 타고 외출을 했던 아버지께서 크게(?) 다치신 적이 있다. 사고는 산모롱이를 도는 자동차의 강렬한 불빛에 눈을 제대로 못 뜬 나머지 논두렁으로 굴렀다는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모든 문명의 이기(利器)는 저 죽일 만큼은 다 된다."고 하시면서 어떤 물건을 사용 할 때 조심하라고 하셨던 것을 기억한다. 매스컴이나 활자 매체를 통하여 과학적인 어떤 결과를 접할 때마다 아버지의 말씀을 더 곱씹게 된다.


<니임의 비밀>을 읽으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는 과학이란 이름으로 포장을 하여 수많은 실험을 한다. 그 실험의 목적은 오로지 '인간을 위함'이다. 인간을 위한 실험을 하는데 인간을 직접적으로 쓸 수는 없다.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시점은 실험과 실험을 거듭한 끝에 안정 적인 데이터를 얻었을 때다.


안정적인 데이터를 얻는 그 시점까지 수많은 실험을 하게 되는데 그 실험을 대상이 바로 동물들이다.  그들이 실험용 동물로 단순한 대상물이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가진 생명체며 인간에 의하여 인간을 위하여 희생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좀더 신중하게  실험용 동물들을 대해 주길 바란다.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인 니임의 한 실험실에서도 인류의 지능향상과 노화방지 연구를 위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 실험의 대상물은 쥐였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은 연구원들이 그 결과를 미처 다 도출해내기 이전에 쥐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인식 시켰다. 한 무리의 쥐가 탈출을 한 것이다. 인간을 위한 실험도구로 이용이 되었던 쥐들은 실험과정에서 얻은 지능과 길어진 수명을 선물로 받았다. 탈출을 한 쥐들은 더 이상 인간들의 쓰레기나 뒤지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싶었다. 쥐들은 책을 통하여, 신문을 통하여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습득했으며 끝도 없는 인간의 욕심이 이루어 놓은 인간들의 문명에 대하여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보게 된 인간 사회는 모순투성이였다. 모순투성이의 이난 사회에 쥐가 기생 해 산다는 것은 쥐의 앞날을 위하여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잘만하면 쥐는 쥐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 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지하에 그들만의 문명을 남들에 낸다. 그러나 그 문명의 기초가 되는 자원은 자연에서 얻는다기보다는 인간들이 떨어뜨리어 놓은 부스러기를 재창조한다거나 훔치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 그들은 아직 그들 스스로 어떤 재화를 만들어 낼 능력까지는 얻지 못했다. 쉽게 주변에서 재화를 얻어 오는 것(훔치는 것)을 두고 뭐 어떠냐는 쪽과  우리가 인간 사회에 기생하지 않겠다고 한 애초의 뜻과 다르다는 파와의 대립은 첨예하다. 결국 재화를 쉽게 얻는 파는 독립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쥐들은 인간들과 좀 더 떨어져서 정말 자신들만의 세계를 꿈꾸며 열심히 일을 한다. 그들은 힘들더라도 인간 세상에 기생하여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먹을 것은 스스로 재비 할 계획을 세운다. 비록 초기 재화로서 씨앗은 또 인간의 창고에서 훔치지만 말이다.  


쥐의 독립을 위하여 불편함도 마다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보면서 다시금 인간 사회를 되돌아본다. 더 편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물건들, 그 결과는 수만의 쓰레기들을 배출한다.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이란 말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는 감추어진 여러 개의 불편과 모순을 갖고 있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기에 쉽게 알아챌 수 없다. 내재하는 문제를 감추기 위한 덧씌우기 작업은 연결고리가 되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지만 몇 발자국 앞까지 바라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쥐들이 보기에 인간들의 용심과 허영은 자신들이 경계할 가장 큰 것 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인간과 등 붙이고 인간이 이루어 놓은 문명을 조금씩 빌려 쓰면서 사는 삶을 포기하고 그들만을 위한 문명 건설을 위하여 몸을 낮추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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